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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오브 맨 - 할인행사
알폰소 쿠아론 감독, 클라이브 오웬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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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리뷰 옮기기 >

    작성일 : 2007년 3월 19일

 

 

    "으애애앵~~~~~ 으앵~~ 으헤헤헹 !!!!!! "


    이제 막 태어나 눈도 뜨지 못한 갓난 아기의 찢어지는 듯한 울음 소리는 
    서로 죽이기 위해 눈에 핏발을 세우며 총과 폭탄으로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굉음으로 가득 찬
    폐허 마을을 정적 속에 놓았다.
    반정부주의자들도, 군인들도 아기 울음소리는 처음 듣는 듯한 신기하고 경이로움을 숨기지 못한
    표정으로 건물 안에서 나오는 어린 흑인 여자가 안고 있는 아기를 쳐다본다.

    어떤 이는 남이 들고 있는 사탕을 쳐다보듯 순수한 눈빛이고,
    어떤 이는 몸에 십자가를 그으며 신을 찾기도 하고,
    아기가 이렇게 생긴 것이구나 하는 표정으로 좀 더 가까이 가려는 이도 있는 
    그 부자연스러운 모습은 
    '아기가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 아이들이 없는 시대'의 기적을 알리는 감동스런 모습이다.

 

    영화의 배경은 고작 10년 후, 바로 우리 코 앞에 다가온 근 미래로 잡으면서 
    인간이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는 비참한 시대를 그렸다. 
    산모들은 계속해서 유산을 해대고 그나마 전에 있던 아이들은 이미 다 성인이 되어 학교나
    놀이터는 폐허가 된지 이미 오래.
    마지막으로 태어난 소년이 18세의 나이에 죽어버리자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 슬픔을 감추지 못한다.
    모든 나라는 무정부사회로 폭력집단이나 범죄집단이 폭주하고, 가난한 자든 부자든 더 이상 인류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희망없는 암흑의 세상.

    "요즘 의학으로도 아기는 얼마든지 태어나게 할 수 있는데. 왜? 왜? 왜? 왜?
     아, 왜 - 미래에서 아기를 못 만든다는게 도데체 뭐야? "
    라고 계속 딴지를 걸어봐도 영화속의 사람들이 대답해줄리 없으니 답답해서 속 터지는 줄 알았지만
    어쨌거나 '어떤 수를 써도' 아기가 태어나지 못한다는 설정 속에서 -
    기적같이 흑인 여자는 아기를 낳게 되고 바다로 나가 '내일' 호를 타고 '인간 프로젝트' 가 있는 곳에
    가서 인류의 희망을 또 잉태하러 가는 곳에서 끝이 난다.

 

    그 여자 하나를 살려내기 위해 몇명이 죽음으로 희생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생명의 기적.
    마지막까지 그녀와 아기를 구하기 위해 온 몸을 던져 헌신을 다 했던 남주인공 '테오'는 작은 배로
    바다의 기상계측기 불빛이 있는 곳까지 데려온다.
    남자는 여자에게 '반드시 '내일'호가 와서 당신과 아기를 데려갈 것이니 믿어라.' 라고 말하고.
    총에 맞아 피를 흠뻑 흘린 남자는 서서히 잠을 자듯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떨구며 조용히 죽는데
    마치 그 모습이 전철 안에서 그저 졸음을 못 이겨 옆으로 몸을 기울인 모습으로만 보인다.

 

    그는 사명을 다하고 편하게 떠났다.
    겨울이 되어 낙엽들이 썩어 땅속의 뿌리들에 거름이 되어
    다시 새 잎이 돋아나는 힘과 영양을 주는 것처럼 -
    인간도 구세대를 거름으로 신세대가 살아가고, 다시 신세대가 구세대가 되어 자신의 할 일을 다해
    죽어 거름이 되어 또 신세대를 탄생시키고... 그런 돌고 도는 사이클이 이어지지만.
    인간만큼은 다른 생물에 비해 이 사이클의 수명이 다 하는 시기가 빨리 올 것만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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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D] 알렉산더
가람넷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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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리뷰 옮기기 >

    작성일 : 2007년 3월 1일

 

 

    【 The Alexander  】


    * 2005년 4월 15일에 만난 영화 이야기 -

 

    이 영화속의 알렉산더는, 책 [알렉산더] 의 표어 -

    "역사로 태어나 신화로 남은 남자, 알렉산더 대왕" 와는 사뭇 다르게 그저 이상과 꿈을 이루고자 했던

    로마. 그리스 시대의 '평범한' 남자였다.

 

    유년시절 친구보다 실력이 떨어졌던 그는 문무 겸비를 위해 더 노력했고,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뱀을 
    키우는 야망이 큰 어머니의 부부 갈등 밑에서 자란 - 생모가 멀쩡히 살아있는데도 젊은 두번째 부인을
    맞은 아버지와 그 두번째 '어머니' 가 낳은 어린 아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던 20살의 젊은 청년.
    자신의 어머니가 배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암살극으로 아버지를 잃고, 갑자기 왕이 된 그가 고향을 떠나
    오랜 세월 많은 나라와 전쟁하면서 찾고 싶었던 그의 이상적인 [안식처]는 무엇이었을까.
 

    전설적이고 신화적인 도시 [바빌론]을 차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
    수 많은 나라들과 피로 춤을 추는 전쟁을 하며 늘어가는 그의 영토들에서 알렉산더는 흔히 알고 있는
    "위대하고 카리스마 강한 대왕"이 아닌 "자신의 영혼의 안식처를 찾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보여주었다.
 

    지난번 보았던 [트로이의 목마]의 "아킬레스"에 대해 다룬 영화에서 그랬듯이 -
    [알렉산더] 영화에서도 주인공의 화려한 겉모습과 위대한 업적이 아닌, 한 남자의 여리고 약하고 
    인간다운 모습에 초첨을 둔 그저 고독한 남자의 모습을 그린 영화였다. 
    적어도 내게 비친 모습으로는 -

 

    문득, 영화 끝날즈음 -
    나중에 읽으려고 몇개월전에 사두고 책장에 꽂아둔 책 [알렉산더]가 떠올랐다.
    영화보다 더 상세하게 알렉산더에 대해 집필했을 것 같은 그 책에서 묘사한 얼굴과는 많이 달랐지만,
    영화 속 알렉산더는 너무나 사랑했던 영혼의 진정한 의지처이자 유일한 친구가 갑자기 죽자, 
    며칠 후, 만찬회에서 누군가 암살극으로 꾸몄을 것 같은 붉은 술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채 
    벌컥 마셔버린 남자.

 

    그리고 같은 증세로 친구를 따라 죽음을 택한 남자.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독수리 환영에 자신의 이상과 우정을 끼우고 싶었던 남자.
 

    위대한 위인들이 오래동안 후손들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이유는 -
    그들이 남긴 대단한 업적이나 비범함이 남긴 것들보다도 (만들어가는 수단과 방법이 어찌되었든)
    보다 많은 인류를 위한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려고 했던 평범한 인간의 처절한 노력과 고통때문은 아닐까.
 

    "모든 인종이 서로 자유롭게 교역하며 더 잘 사는 유토피아를 건설할거야."

     - 죽어가는 친구를 두고 -

 

    "세상 끝까지 가볼거야.  아직은 아니야... 내 안식처를 찾아야 해."

     - 바빌론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하는 사람에게, 인도와의 전쟁을 앞두고 -

 

    위인들의 공통점은 큰 이상을 이루고자 했던 비범함과
    그로 인해 얻어지는 주체할 수 없는 지독한 고독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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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쉬 (2disc)
폴 해기스 감독, 맷 딜런 외 출연 / 엔터원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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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리뷰 옮기기 >

    작성일 : 2007년 2월 27일

 

 

     * 2006년 봄에 만난 영화 이야기 -
 

    이 영화에 다른 제목을 지으라고 한다면 '보이지 않는 인연'이라고 하고 싶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 매일 혹은 가끔 보는 사람, 가족, 친구, 인척 등은 전부 아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사실은 수많은 모르는 사람들하고도 '모르는 인연'이 존재한다는 것 -
    직적접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이 연결되어 있어 서로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 핵심 내용인 듯 싶다.

 

    가령, 내가 오늘 어떤 가게에서 물건을 샀을 때 불친절한 직원이 있다면 투덜거리겠지.
    그리고는 그 직원의 인성에 대해 그 한 면만을 가지고 평가를 하겠지. 대부분 그럴거야.
    그런데 어느 날, 그 불친절한 사람이 앞서 가던 사람이 떨어트린 지갑을 주워주면서 웃는거지.
    게다가 지갑 주워준 김에 모르는 길까지 물어봤는데 너무 잘 알려주더라 이거야.
    그 지갑을 받은 사람은 상대방이 참 정직하고 친절하다고 생각했겠지.
    그리고 지갑을 받은 사람은 집에 와서 그 친절한 사람에 대해 칭찬을 했는데.
    그게 나의 가족이나 친구라면?

    하지만 나는 절대로 알 수가 없어. 나에게 불친절하여 불쾌감을 주었던 그 사람과 나의 가까운 사람에게
    친절하게 했던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은 절대로 알 수가 없게 만든 운명의 교모한 실타래거든.

 

    그런 영화라구.
   『메트릭스』 『데스티네이션』 영화같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할 것 같은 세계나 현상들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심난한 영화 말야.
     하지만 '충돌'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이 영화의 Crash의 제목에서 -

    "어느 한 시점에서 만난다. 접하다. 부딪힌다. 결국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라는 암시를 주고 싶었나.

   

    그러니까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 세상이 달라져 보인다...라는 거창한 감동 따위는 없어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현상, 사물들이 사실은 내 이면(異面)에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아주 긍정적으로 - "저 사람 좀 마음에 안드는데. 하지만 다른 곳에선 착할지 모르지." 라고 생각하면
    왠만해선 화를 내지 않아도 된다구.

 

    그런데 말이지. 신(神)이라든가, 시간을 지배하는 우주라든가, 혹은 알 수 없는 어떤 존재가 이 엄청나게
    복잡한 연결의 고리들을 수천가지 엮으며 보고 있다면 -
    사실은 이미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우리는 살고 있을지 몰라.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한다." 라는 발상조차 이미 지어진건 아닌가 몰라.

 

    "우웩- 나는 감시당하며 정해진 대로만 사는 호두까기 인형인가!!!" 라고 질색할 필요까진 없어.
    이건 이 나름대로 인연의 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 나의 인생의 설계도가 어떻게 짜여졌는지 가만히
    지켜보며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거든.
    정해진 것 같아도 매 인연과 매 순간 상황들의 실들이 수천가지나 되니까
    결국 자신의 선택에 따라 인연도 운명도 그 방향대로 움직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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