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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경기문학 3
배수아 지음 / 테오리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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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배수아 작가가 오랜만에 소설 신간을 냈다는 소식을 접한 날, 바로 구매를 눌렀다. 2016년 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 선정작으로 단편 두 편을 함께 묶어낸, 시집만한 크기와 가격의 책인데, 한동안 번역에만 몰두하는 듯 보였던 작가의 새 문장에 목말라하던 나로서는 이 두께도 감지덕지. 단편영화 감독의 하루를 다루는 표제작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과, 혼외자로 태어나 집안의 수치로 여겨져 금기시되는 인물 경희를 둘러싼 이야기 <영국식 뒷마당>, 두 편이 실려 있다. 감상을 한 구절로 요약하자면 '반복을 통한 평범의 비범화' 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표제작인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은 단편영화감독 험윤의 하루를 다루는데, 작가의 페이스북을 팔로잉 중인 나로서는 묘하게 작가 본인의 하루 일상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 얼마 전 그녀의 포스팅에서 읽은 것처럼, 욕조에서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작가의 모습이, "험윤이 가장 사랑하는 일은 미지근한 물속에 잠긴 채 책을 읽는 것이다."라는 문장 위로 오버랩 되기에. 곱게 간 커피 가루에 곧바로 끓는 물을 부어 천천히 식혀가며 마시는, 깔깔한 가루의 촉감을 즐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험윤의 모습도, 심플한 아침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으로 균형잡힌 금욕적 생활을 영위하는 모습도, 집안 곳곳 손이 닿는 모든 곳에 서로 다른 종류의 책을 비치해 두고 동시다발적으로 돌아가며 읽는 것도 모두 작가 자신의 하루를 그린 것이 아닐까 싶은 묘사들. 디테일은 다를지언정 그 자족적 독립성은 분명 그녀의 모습을 상당 부분 카피해 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상상하며 읽는 동안 즐거웠다. 

소설의 도입부는 이렇게 꼼꼼하며 아무런 사건도 추가 등장인물도 없는 일상의 묘사로 채워진다. 유일하게 비일상적인 사건이라면, 험윤이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이 분명한 누군가의 책을 집 안에서 발견하는 것 뿐이다. 그저 어깨를 한 번 으쓱할 정도의 비일상성. 그는 아무 페이지나 펼쳐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 를 읽는다. 아무 페이지나 펼친 것이므로 '밀레나'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없다. 욕조의 물이 식을 때까지 알 수 없는 어느 여자, 밀레나의 이야기를 읽고 험윤은 밖으로 나간다.

이 부분에는 문체의 맛도 특별한 감성도 딱히 느껴지지 않기에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집중력이 풀리면서 자칫 지루해 보일 수 있는 문장들을 꼬박꼬박 다 읽어나가야 하는지 과감히 스킵할지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그저 읽어 나가다 보면 '지극히 사소하고 평범한 일의 묘사일 뿐인 문장들'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반복이 거듭되면서, 시선을 끌고, 힘을 얻는다. 

험윤이 아파트단지를 나갈 때마다 지나쳐야 하는 긴 낭하는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으며, 아무도 그와 마주치지 않는' 곳으로 묘사된다. 지극히 일상적인, 평범한 아파트단지의 긴 낭하를 지나가는, 나가고 들어오는 활동의 묘사일 뿐이다. 그러나 아침에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으며, 아무도 그와 마주치지 않는' 낭하를 지나 시내로 나간 험윤이 그날 저녁 집으로 되돌아 올 때, 그 낭하는 여전히 같은 풍경이면서 동시에 같지 않은 어떤 것이 되어 있다. 


"오전에 집을 나설 때와 같은 풍경이다. 어제도 그리고 그 전날도 항상 같았던 변함없는 집들의 풍경. 늦은 밤, 그의 발소리가 낭하에 유난히 크게 울린다. 손가락처럼 갈라진 커다란 이파리의 화분 그림자가 어느 집의 창가에서 흔들거린다. 고양이가 운다. 수도관을 흐르는 물이 운다. 귀뚜라미와 창틀이 여리게 운다. 긴 다리를 가진 밤의 거미가 운다. 방충망에 달라붙은 채 전 생애를 보내는, 투명한 날개의 회색 나방이 운다. 부유하는 꿈들이 운다. 그 모든 것들의 울음 소리가 낭하에 가득 울려 퍼진다."


낭하를 지나가며 귀에 들어오는 것들은 모든 것들의 울음 소리다. 그리고 그는

"아무와 마주치지 않으며, 아무도 그와 마주치지 않는다. 그는 아무에게도 자신에 대하여 묻지 않으며, 아무도 그에게 그에 대하여 묻지 않을 것이다."


그 날 하루 그에게 일어난 어떤 일이 밤의 낭하를 울음으로 가득 찬, 스스로를 낯설게 만드는 의미 부재의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아무와 마주치지 않으며 아무도 그와 마주치지 않는 일상성은 이 반복에서 비일상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작가는 여러 가지 이미지의 묘사를 반복하면서 그 때마다 조금씩 디테일을 더해 간다. 반복의 사이에 벌어진 일이 더해지는 디테일에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처럼. 매일의 삶이 의미를 획득하는 방식은 익숙한 것들의 반복과 그 사이의 사건 간의 비관계성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일상의 반복을 채색하는 것이다. 아침에 험윤이 읽었던 '밀레나'는, 아무도 아닌 어떤 여자, 지극히 평범하여 존재를 특정할 수도 없을 만큼 평범한 여자, 단순히 '평범한 것으로서의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를 만남으로써, '아무도 아닌 밀레나'로서 그 '특정할 수 없음'으로 인해 '특별'해진다. 반복을 통해 평범함을 주목할 때 평범은 비범이 된다. 


이런 반복에 의한 의미의 획득은 <영국식 뒷마당>에서도 동일하게 전개된다. 화자는 집 안의 혼외자, 뇌수막염에 결려 오랫 동안 병원 신세를 지다가 친척들 집을 전전하게 된 인물, 경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경희에게서 처음 들은 말, "나는 마침내 영국식 뒷마당으로 가는 길을 찾아낸 거야...... ." 라는 문장에 매혹되어 그녀는 금기된 경희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그저 경희의 상상 속의 공간인 '영국식 뒷마당으로 가는 길'은 그 자체로 사건도 아니고 의미도 없지만 운율을 가진 노래의 후렴구처럼 소설 내내 반복됨으로써 그 동화스러운 신비함이 증폭되고, 실재 여부와 상관없이 화자와 독자를 매혹한다. "그것은 이상한 노래 같았고, 여러 가지 동화에서 한 조각씩 가져와 이어 붙인 연결되지 않는 만화경 같기도 했으며, 거꾸로 돌아가는 필름 같기도 했고, 미친 여자의 독백, 혹은 잠든 사람의 무의미한 웅얼거림, 혹은 고양이나 뻐꾸기의 울음처럼 이해할 수 없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매료시켰다." 는 화자의 독백은 이 소설이 의도한 독자의 심정이 아닐까. <영국식 정원>은 반복의 미의식을 탐구하기 위한 작가의 실험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영국식 뒷마당'이라는 이미지의 반복만으로 '이상한 노래' 같기도 하고, '연결되지 않는 만화경'이기도 하며, '거꾸로 돌아가는 필름' 이나 '미친 여자의 독백, 혹은 잠든 사람의 무의미한 중얼거림' 혹은 '고양이나 뻐꾸기의 울음처럼 이해할 수 없는 소리'같기도 한 어떤 것을 창작해 보고자 한 실험. 


배수아 작가의 글에서 기대할 수 있는 실험성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던 작품들.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채 식기도 전에 게걸스럽게 읽어내려간 문장들이 더 읽고 싶어 아쉬운 글들이었다. 다만, 짧은 길이의 탓이었을까, 조금 너무 실험적인 탓이었을까, 형용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예민한 감성을 발라내는 그녀의 솜씨가 살짝 덜 보인 느낌이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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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돈에 구애받지 않는 법 - 항상 돈에 쪼들리는 사람에게
고코로야 진노스케 지음, 김한나 옮김 / 유노북스 / 201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평생 돈에 구애받지 않는 법'


오래 살진 않았지만 평생 이런 책을 사 본 적이 없었다. 이 무슨 사기성 제목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샀다. 왜냐하면 이 책을 쓴 사람이 자기개발전문가나 투자상담가가 아니라 심리상담사여서. 돈을 화두로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하려는 걸까, 아니면 정말 돈에 관한 이야기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다시 학생 신분이 되고 나니 돈이 궁했다. 입에 풀칠 못할 만큼은 아니어도 공부가 길어지면 머지 않아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단 예상을 하던 참이다. '돈 잘 버는 법'에 관한 책은 아니고, 분명 '구애받지 않는' 법을 알려준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하는 마음으로 구매를 눌렀다. 


표지 뒷페이지 작가 소개란은 '일본 도쿄와 교토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심리상담사.' 라고 시작하는데,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이면 뭐든지 일단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꼬인 성격의 나로서는 제목과 함께 지은이의 첫 소개도 마음에 안 들었으나, 기왕 샀으니 첫 장을 넘겼다.


"돈이 많으면, 좋아하는 물건을 구입할 수 있고 호화로운 요리를 먹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떠받들어 주고 원하는 장소에 갈 수 있습니다. 또 매장 점원이 귀한 손님으로 대접해줘서 마음속이 만족감으로 가득 찹니다.

그래서요?

당신은 안심할 수 있습니다."

-본서 1장 에피소드1 '내가 돈으로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중-  


멈칫했다. '정말로 원하는 것은 사실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이 많을 때의 안도감'이라는 해석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으나 분명한 사실이었다. 실제로 통장 잔고와 상관없이 앞으로 돈이 궁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이 책을 샀으니까. 안심하고 싶어했던 게 분명하고, 꼬박 꼬박 월급이 들어올 때도 지출의 즐거움을 위해 돈을 모았던 것은 아니었다. 

첫 장의 인상이 꽤 강렬해서 술술 책장이 넘어 간다. 


"돈은 일해서 받는 '대가'가 아니다."

"돈은 아낄수록 사라지고 쓸수록 들어온다."

"오늘의 돈 문제는 오래된 가족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열심히 하면 오히려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


상식과 정반대의 도발적인 제목들인데, 전체를 요약하면, 우리는 돈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가지고 있을 때의 마음의 평화(안심)를 원하는 것이고, 무조건 아끼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어렵다는 생각때문인데, 사실 돈은 공기처럼 주변 어디에나 있고 무의식중에 공기를 들이마시듯 자연스럽게 흘러다니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무릎을 딱 칠 만큼 맞아! 하고 공감되는 내용은 아닌데 그렇다고 딱히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도 어려우며,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어릴 때부터 돈은 노동의 대가이고, 고생해야 얻을 수 있고, 불로소득은 나쁜 것이라는 편견(?)을 교육받아 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기르게 된다는 말에는 특히 수긍이 간다. 저자의 말처럼 돈은 어디까지나 '가치의 상징'이지 그 자체에 도덕성은 없다. '좋은 돈 나쁜 돈'의 구분은 돈을 '벌거나 쓰는 과정의 행위에 대한 도덕률'을 돈에까지 확장에서 적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논리적 오류이다. 그래서 돈 자체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돈은 있거나 혹은 없을 뿐이고, 있다면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이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돈은 쓸 수록 들어온다던지, 돈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 악착같이 모으기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던지 하는 여러 가지 돈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그 중에서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 기억에 남는 것은 '존재급'이란 개념이다. 저자는 책의 초반부에 아주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당신은 이 사회에 기여하는 게 전혀 없는 존재입니다.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해서 남들에게 폐만 끼치고 잠만 자는 상태입니다. 

자, 그런 당신이 매달 받을 수 있는 돈은 얼마일까요?"


질문을 읽자마자 순간적으로 0원이라고 대답했다. 저자는 설명하기를, 실제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가?"가 아닌 "어느 정도의 가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다시 말해 자기 스스로 인정하는 '자신의 가치'가 바로 '존재급'(월급의 기본급에 해당)이라고 한다. 나처럼 0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가치를 0원이라고 여긴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웁스. 

이처럼 자각하는 존재가치가 낮은 사람은 열심히 일해서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려고 하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 '성과급'이란다. 같은 돈을 벌더라도 존재급이 높은 사람은 성과급을 많이 얻을 필요가 없어 여유롭고, 존재급이 낮을 수록 성과급으로 필요한 양만큼의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들다는 설명이다. 왠지 억울한데, 맞는 것도 같다. 실제로 월급과 일을 생각해 봐도, 같은 일을 할 때의 퍼포먼스는 월급과 상관없이 거의 일정하다. 내가 기대한 월급이 300만원인데 실제로 100만원을 받는다고 그 차이만큼 덜 하는 것은 아니고, 500만원을 받는다고 정확히 차액만큼 더 일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나의 퍼포먼스는 일정하고, 그에 대해 스스로가 부여하는 가치는? 분명 제로는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다. 


조금은 기대했던대로, 돈을 화두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누구나 자신이 충분히 가치 있다는 생각(높은 존재급)을 할 때 걱정하지 않아도 돈은 자연스럽게 들어온다는 것이고, 그 흐름을 억지로 끊지 않으면, 다시 말해 악착같이 벌어들이기만 하고 선소비를 하지 않으려는 욕심만 버리면 돈은 공기처럼 돌고 돌아 언제라도 부족하지 않게 유지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자신의 가치를 많이 인정할 수록, 돈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 해석하에서, 공감가는 논리다. 

돈에 대한 새로운 시각, 그보다도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 준 책. 흥미로운 책. 

처음 한 번은 반신반의하며 훑듯이 읽어버렸지만 시간이 흐른 후, 어쩌면 책장에서 다시 꺼내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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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의 기적
키아라 감베랄레 지음, 김효정 옮김 / 문학테라피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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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다. 서로 아주 다르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다양하다. 지루해서 책을 읽고, 호기심 때문에 책을 읽고,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책을 읽고, 일상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어서 책을 읽고, 지식을 알고 싶거나 망각하고 싶어서 책을 읽고, 머릿속을 파고드는 괴로운 생각을 완화하거나 털어 버리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

- 본문 p.156-

그 뿐만이 아닐 것이다. 문득 거울 속에 짙은 다크써클을 드리운 낯선 사람이 서 있을 때, 왕복 12차선 횡단보도를 건너며, 출퇴근 만원 지하철 안에서, 저녁의 번화가 불빛 아래를 우르르 몰려다니는 사람들의 무리에서 자신의 얼굴을 마주칠 때 우리는 책을 읽게 된다. 나를 알 수 없을 때, 너와 다른 유일무이한 나의 존재가 의심스러워 질 때, 나조차도 나를 받아들이기 힘들 때, 어떻게든 '나'라고 생각되던 것의 파편을 그러모아 재구성해야 할 때 책을 읽는다. 꼭 책의 주인공처럼, 인생에 호되게 꼬라박혀 혼미한 정신으로 여기가 어디인지 구분조차 어려울 때, 아침에 눈이 떠지면 눈 뜬 것이 후회될 때, 이 책을 읽었다.


평생을 살아온 고향을 떠나 대도시 로마로 이주하자 마자 남편과의 이별과 갑작스런 실직이 36살의 주인공에게 찾아 온다. 남편은 출장지에서 만난 여자와 사랑에 빠져 전화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통보하고, 오래 기고하던 잡지사의 칼럼란은 TV쇼에 출연하는 유명인에게 뺏긴다. 불안, 두려움, 무기력과 슬픔, 분노가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낯선 집안을 채운다. 

주인공은 상담을 받지만 별 차도가 없다. 그러다 의사의 새로운 처방을 받는다. 한 달 동안 매일 단 10분 간만 평생 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일을 해보라고. 


35년 동안 살아온 고향 마을을 떠나, 18살 이후로 줄곧 함께했던 남편과도 떨어진 채, 처음 경험하는 갑작스런 실직까지 이 모든 것이 이미 처음 겪어 보는, 예상한 적도 기대한 적도 없으며 대처 불가능한 변화인데. 삶의 의욕을 잃은 그녀에게 의사는 예상 밖의 임무를 주었다. 그리고 첫 날, 그녀는 생전 처음으로 미용실에 가 매니큐어를 바른다. 평소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을 화려한 자홍색 매니큐어를. 신체의 일부를 낯설게 함으로써 '스스로에게 무심해 지는 순간'의 기분이 나쁘지 않아 그녀는 이 게임을 계속해 보기로 결심한다. 


게임은 일상의 소소한 발견으로 채워진다. 누텔라를 바른 팬케이크 만들기, 길거리에서 뒤로 걷기, 힙합 춤추기, 씨앗 심기, 한 번도 궁금해 한 적 없던 엄마의 인생에 대해 질문하기......


게임이 계속되어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은 생기지 않는다. 남편은 돌아오는 것도 아닌 것도 아닌 상태로 그녀와의 관계를 바라고, 새로 쓰기 시작한 소설은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불안과 두려움도 그대로이다. 친구들의 걱정과 관심이 아니라면 먹고 마시는 일조차 귀찮을 만큼의 끈적한 무기력과 피로감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몇 달이나 살아온 이 거리에 중국인 가게가 있고, 수예점과 꽃집이 있고, 생선 가게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중국인 가게 주인은 무뚝뚝하고 말이 서툴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수예점 할머니는 어릴 적 친할머니를 꼭 닮았으며, 꽃집에서는 고추씨와 상추씨를 팔며, 생선 가게에서는 모두가 크리스마스 만찬준비를 위해 모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뒤로 걸어도 사람들은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고, 세상에는 마법에 걸린 것 같은 팔다리로 멋지게 힙합을 추는 소녀가 있으며, 걸핏하면 쏟고 깨는 서투른 손으로도 맛있는 티라미수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배운다. 


그리고 변화에 몸을 맡기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운다. 우리가 현재를 얼마나 확고하다고 여기며 살아가는지, 하지만 사실은 얼마나 바늘끝같은 확률로 위태롭게 지속되고 있는 것인지를 배운다. 그럼에도 인생이 어떻게든 지속될 수 있는 까닭은 그 아슬아슬한 확률을 지속되도록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는 까닭임을 배운다. 생각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고, 안녕을 바라며, 만나러 와 준다는 것을 배운다. 책 속의 그녀가 배우고, 내가 배운다. 

 

이 책은 지금 떠나고 있는 사람에게, 넘어진 사람에게, 쓰러져 울고 싶지만 자존심이 허락치 않거나, 전력으로 도망치고 싶으나 어떻게 해야할지조차 감이 오지 않는 사람에게, 내일이 없는 사람에게, 오늘이 두려운 사람에게, 인생의 맨 얼굴을 마주하고 몸서리치고 있는 사람에게, 당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자신조차 낯설어질 만큼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그리고 '인간을 위해 인간이 만들었으나 비인간적으로 과대망상에 빠진 것 같은(본문 p.224)' 지금 우리의 도시에서 길을 잃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니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고, 너무 겁낼 필요 없다고, 10분 게임을 하듯이 매일을 채워가보는 것은 어떠냐고 말해주고 싶다. 인생을 '인생'이라 부르는 순간 추상적이며 모호한 어떤 것으로 변해버리지만, 실은 이케아 매장에서 '팬케이크 만들 때 쓸 고무 냄비 손잡이(본문 p.225)'를 고르는 것만큼 단순하고 확실하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라고 어렴풋이, 알 듯 모를 듯 그런 듯한 감이 들기 때문이다. 

알 듯 모를 듯 괜찮을 듯한.   


**참고: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오탈자가 제법 눈에 띄고,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이 있으므로 책 내용과 상관없이 별 4개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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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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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에 찰 만큼, 오지도 않은 내일을 산다. 시작하지도 않은 일에 지치고, 만성적인 불안에 피로하다.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것이 인생인가 싶던 차에 요코 여사의 책을 봤다. 출판사나 독자들의 리뷰가 좋았던 것보다도, 오로지 제목 때문이었다. 작가가 40대 중반에 썼다는 에세이집은, 요즘 세상에 참으로 고마운 당당함으로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한동안 골랐던 책들이 무겁고 진지한 것들이었기에, 비록 훌륭한 마음의 양식이 되어주었으나 끝까지 소화하지 못하고 중간에 접어두고 말아 책상은 엉망이던 참이어서, 이번엔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리란 기대로 책을 주문했더랬다. 

경쾌한 연푸른 바탕에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적힌 제목을 보는 순간, 더 이상은 무리라고 헐떡이며 널부러진 몸 위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숨 좀 돌려.'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웬걸. 정작 저자 자신은 참으로 열심히, 억척같이 살았다.


연꽃밭에 연꽃이 피어 있었다.

함께 있던 아름다운 저명한 동화 작가가 "어머!" 하고 소녀같이 소리 질렀다.

우리는 연꽃밭에 쭈그리고 앉았다.

연꽃밭을 자세히 보니 '미나리'가 있다. 

'미나리'는 연꽃 아래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나는 "앗, 미나리다"하고 땅바닥에서 '미나리'를 떼어 냈다. 오늘 운이 좋구나, 이걸 따서 가져가면 어머니가 칭찬해 줄 거야. 먹을 수 있는 것을 가득 가득 가져가는 것은 인간의 임무, 당당한 국민이 된 것처럼 우쭐한 기분이었다. '미나리'를 따 가지고 가서 어머니에게 칭찬 들은 것은 옛날 옛날의 일이다. 지금은 '미나리'를 따서 가져가도 칭찬해 줄 사람은 없다. 칭찬해 줄 사람이 없어도 먹을 수 있는 것이 땅바닥에 나 있으면, 그냥 있게 되지가 않는다. 

내가 양손 가득 '미나리'를 쥐고 일어섰을 때, 저명하고 아름다운 동화 작가는 연꽃 다발을 들고 연꽃밭 속에서 동화 속의 주인공처럼 서 있었다. 나는 양손에 '미나리'를 쥐고 귀환자의 자식 같이 서 있었다.

-"연꽃 밭에서" 중-


들판 가운데 양손 가득 미나리를 거머쥔 귀환자의 자식이 떠올라 머리가 징하니 울린다. 출판사의 책소개는 분명 "거침없는 솔직함으로 심각한 것도 가볍게 만드는 시크한 그녀가 왔다!" 라고 되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연애 소설로 읽고, 영화를 보면 반드시 남자 주인공과의 로맨스를 상상하는, 철부지 아줌마의 일상 이야기다. 그래서 잠시 방심하고 흥미진진하게 달리다 보면 반드시 쿵, 무방비한 심장을 멎게 만드는 문장들을 만난다. 


그러나 감기조차도 걸리지 않는 나는 오래도록 계속 사는 거다. 계속 살다 보니 어렴풋하게나마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잘 가오 신데렐라" 중-   

"산다는 건 뭘까?"

"죽을 때까지 이렇게 저렇게 어떻게든 한다는 거야. 별 대단한 거 안 해도 돼."

-"인격자와 우울증" 중-

(전략) 모든 것을 물러나게 하면, 나는 언제든 세계의 중심에 있는 거다. 

50억명 인류 하나 하나는 세계의 중심에 서 있다. 눈알은 그런 식으로 달려 있다. 애리조나의 황야 속을 달리면 자신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정말 온 몸으로 알게 된다. 그 넓은 곳에 오직 나 뿐이다. 넓다는 것은 자기중심에 홀연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황야에 서면 나는 남자가 되고 싶다" 중-


패전 후의 궁핍한 일본, 가난한 부모와 많은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그닥 똑똑하거나 예쁘지도 않은 채 책 읽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었던 딸아이로 어린 시절을 지내 온 작가는 일생동안 부유함과는 인연이 없었고,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거치며 홀몸으로 아들까지 키우면서 평생 연꽃 아래 엎드린 미나리처럼 씩씩하게 살아 왔다. 그 녹록치 않았을 삶의 여정에서 포기하지 않은 사람만이 얻을 수 있었던 통찰이, 마찬가지로 녹록치 않은 지금 우리들의 삶을 따스하게, 뭉클하게, 담담한 희망으로 맞이해 준다. 오렌지톤의 달콤 말랑한 희망이 아니라. 궁핍과 졸렬함, 인간의 한계, 비정상, 두려움과 실패, 수치심과 후회를 인생의 본모습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데서 오는 체념의 희망이다.  


책을 사면서 내심 느슨한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그러면서 '이렇게 살아도 된단다' 종류의 감상을 기대했다. 하지만 '평범하게 치열했던' 그녀의 삶을 마주하면서 내 삶의 불안, 피로, 두려움이 무찔러야 할 대상이 아니라 무덤까지 안고 가야하는 '살아있음의 본질적 부분'이라는 체념을 확인했다. 여전히 피곤하다.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고, 특별한 방법도 찾지 못했다. 다만, '왜 이럴까" 라는 질문이 '아, 그렇구나' 라고 바뀌었을 뿐.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내일을 맞이하는 마음이 달라졌으므로 조금은 가쁜 숨을 가다듬을 수 있지 않을까. 느슨한 일상의 평화로움이나 경쾌한 청량감에 대한 기대가 배신 당했으나, 이 책에, 그녀의 삶에, 별 다섯 개를 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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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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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새벽 1시.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집어 들어 아무 곳이나 펼쳤다. 


1930년 4월 13일

나는 항상 타인들과의 공감대 형성이 극심하게 부족한데, 그것은 대다수의 타인들이 느낌으로 생각하는 데 반해 나는 생각으로 느낀다는 차이에 기인한다.

보통 평범한 사람들에게 느낌은 산다는 것이고, 생각은 삶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생각이 삶이고, 느낌은 생각을 위한 영양분과도 같다. 

그나마 내가 가진 극히 부족한 감동의 능력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은 놀랍게도 대개 나와 정반대의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지, 나와 유사한 정신세계의 소유자들은 절대 아니다. 

(하략)


우연의 일치일 뿐인데도, 마치 보란 듯이 펼쳐진 글이 자신의 일기장 한 페이지인 것만 같아서 손가락이 멈춘다. 사변적 삶의 고독에 대한 긍정, 긴 호흡에도 흐트러짐없는 맥락, 집중하지 않으면 자칫 말장난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은 퍼즐 조각처럼 정확하게 사용되고 있는 낱말들, 행간을 흐르는 누렇게 빛바랜 피로와 권태의 향기,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공허와 나약함의 에너지. 그리고 번역가 배수아. 외딴 끈기, 용맹한 고독에 통달한 그녀라는 필터를 통했기에 이런 문장이 가능했을 것이다. 머리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처럼 "누군가 나와 다르면 다를수록, 그는 나에게 더욱 현실적으로 보인다." 라는 문장을 읽는다. 좁은 다락방 뿌연 창문 앞 책상에 등을 구부리고 방금 막 "그가 나의 주관성에 그만큼 덜 의존하기 때문이다."를 끝낸 소아레스(페소아의 페르소나)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스스로의 삶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만큼, 나와 다를 수록 현실성을 획득한다. 넌덜머리 날만큼 가짜인 주관성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만큼이나 가짜인 것이겠지. 그가 '범속한 인간이 되기를 거부하며 또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인간들을 대상으로 세심한 관찰을 계속하는 것'은 '그들을 증오하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해서 이다. '회화 속에서 환상적으로 묘사된 풍경'처럼 아름답지만 내 마음의 지형으로부터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떤 곳, 절대로 닿을 수 없기에 증오하고 그 때문에 사랑하는 대상을 줄곧 관찰한다. 그러면서 "나는 그들의 실체를 결코 느끼고 싶지 않기에 그들을 즐겨 관찰한다. 회화 속에서 환상적으로 묘사된 풍경이 편안한 침대인 경우란, 거의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건 아마도 절반의 진실일 것이다. 그 실체에 가 닿고 싶고, 느끼고 싶고, 이루고 싶으나 어쩌면 그런 욕망조차 자각할 수 없을 만큼 그럴 수 없으리란 확신. 그 아래서 찬란하게 현실적으로 보이는 반대편의 풍경 역시 직접 겪는 입장에서는 편안하지만은 않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한 것일까.


페소아 자신은 이 책을 '사실 없는 자서전'이라 기록한다.

상호 어떤 연관성도 없고 연관성을 구축하고 싶다는 소망조차 배제된 인상만을 이용하여, 나는 사실 없는 내 자서전, 삶 없는 내 인생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이것은 내 고백이다. 

내가 고백 속에서 아무 것도 털어놓지 않는다면, 

그건 털어놓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 텍스트 12 


발문에서 김소연 시인은 이 책을 다음과 같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이 책은 불안에 대한 갖은 해명에 지쳐 있는 누군가가 읽었으면 좋겠다. 불안함에 대하여 충분히 숙고하여 불안의 편에 서 있지만 그 입장마저도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누군가가 읽었으면 좋겠다. 나와 나 사이를 커다란 괘종시계의 추처럼 똑딱이며 왕복운동을 하고 있어서 그 현기증마저 이제는 관성이 되어버린 누군가가 읽었으면 좋겠다. 가끔은 나와 내가 나란히 벽에 기댄 채 헐렁하게 손을 잡고 앉아서, 창문으로 들어온 네모난 햇빛이 시간과 함께 조금씩 움직여 나와 나의 테두리를 온전히 가두는 느낌을 아는 누군가가 읽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이 책은 세상의 모든 현혹으로부터 완전하게 비켜서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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