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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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먹은 안정제의 기운이 떨어지고 저녁 약을 먹기 직전 자정 무렵의 생각의 속도가 좋다. 너무 빨라 타이핑으로는 물론이고, 말로도 따라갈 수 없는 생각의 점핑. 여기서 저기로 핑 핑 날아다닌다. 술에 취하는 것처럼 생각에도 취할 수 있다. 이것도 일종의 중독. 


한병철의 <타자의 추방>은 밀도가 높아 좀처럼 읽히지 않는다. 미약한 정신으로는 따라갈 수 없어서, 박상미 에세이집 <나의 사적인 도시>를 뒤적거린다. 예술과 삶에 관한 저자의 전반적 견해랄까, 취향이랄까 하는 부분에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지만,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예술작품과 작가들 속을 넘나들며 뉴욕에서 오래 타향살이 해 온 그녀의 독특한 경험이 잠깐씩 책장을 멈추게 만드는 통찰을 보여준다. 예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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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은 시간 개념이 없다. 그래서 과거를 지난 일로 취급할 줄 모른다. 의식은 시간이 갈수록 지난 일을 잊기도 하지만 무의식은 그럴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그 일을 '살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 속의 일들이 현재형으로 존재하는 방식은 아무래도 다양할 것이다. 아침을 괴롭히는 꿈일 수도 있고, 불면의 밤일 수도 있고, 엉뚱한 순간에 떨어지는 눈물일 수도 있고, 한쪽 입가에만 생긴 주름일 수도 있고, 뜻하지 않게 종이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어떤 원더풀한 단어들일 수도 있다. 무의식에 대한 의식의 지식은 매우 제한적이어서 우리가 지금 어떤 과거를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할 뿐이다. (176쪽~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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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있는 약이 기억에 약간 영향을 주는데, 과거에 있었던 일들은 뜬금없이 생생하게 최근의 일처럼 재생되고, 바로 하루나 이틀 전의 일들은 대개 한 달쯤 전의 일처럼 모호하게 흐리다. 심지어 한 순간, 예컨대 누군가와 나눈 대화, 내가 적었던 어떤 글과 같은 순간들이 통째로 편집되어 날아가버리고 전혀 기억을 못하는 일도 생긴다. 그래서일까. 저 구절을 읽는 순간 생애 어떤 때보다 무의식에 가까운 요즘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그 일을 '살고' 있는 무의식. '어떤 일도 잊지 못하는 사람'의 괴로움을 유사 체험하고 있는 요즘, 공감이 가는 구절이다. 나의 경우 재연되는 기억은 주로 깊이 상처 받았던 순간, 처음 겪은 모멸의 순간, 당황과 수치, 배반과 분노의 순간들이다. 사무실에서, 학교에서, 식당이나 카페에서 이유도 없이 갑자기 그런 순간들로 소환당해 다시 한 번 배반당하거나, 상처받거나, 모멸과 자괴감에 주먹을 움켜쥐게 된다. 


멍하니 생각 속에 잠시 가라앉았다가 다시 읽어내려간다. 이 책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은 방대한 양의 예술 정보에 있다. 처음 만나는 화가, 시인, 소설가, 조각가, 팝아티스트들이 책장 사이 사이에서 반짝이며 독자를 기다린다. 그들이 소개되는 방식은 우아하면서 시적이다. 예컨대, <월든>으로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산책에 대해 남긴 다음과 같은 말이 인용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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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는 아무리 짧은 산책이라도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모험심을 갖고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부모와 형제와 아내와 자식과 친구들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리고 그들을 다시 보지 않을 생각이라면, 만약 빚을 다 갚았고 유언을 썼고 온갖 일들을 다 처리했다면, 당신은 자유로운 인간이다. 당신은 비로소 걸을 준비가 된 것이다."  (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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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나가 듯 가볍게, 어디 멀리 가지 않을 것처럼 턱 턱 집을 걸어나와 그대로 계속 걸어 사라지고 싶다. 나는 걸을 준비가 되었나. 언젠가 썼던 유언은 아직도 유효한가. 빚은 없고, 세금도 다 내었고, 꼭 처리해야할 일도 없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날 준비는 되었나. 

잠시 손이 멈추었다. 다시 스스륵 책장을 넘겨 본다. 에세이집이라 앞에서부터 차례로 읽을 필요가 없어 책상 한 켠에 두고 머리가 복잡할 때, 활자가 필요할 때 부담없이 읽기에 좋다. <깨질 수 밖에 없는>이란 제목이 눈에 들어와 꼼꼼히 읽어 본다. 월리드 베쉬티 Walead Beshty 라는 작가를 나는 처음 보는데, 그는 FedEx 상자 안에 꼭 맞는 크기의 육면체 유리 상자를 아무런 완충제 없이 넣어 전시장으로 배달시킨다고 한다. 

출처: http://www.thisiscolossal.com/2017/01/fedex-works-walead-besh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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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랩 같은 보호막 없이 페덱스 상자에 꽉 맞는 육면체 형태의 긴장으로 버티는 유리 상자는 도착하면 물론 깨져 있다. 수없이 금이 갔지만 그 형태는 간직한 채, 어딘가 다다르기 위해선 반드시 깨져야 하는 무언가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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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태는 간직한 채, 어딘가 다다르기 위해선 반드시 깨져야 하는' 것이라...... 여기서 누구나 인생을 떠올릴 것이라 생각한다. 무수히 금이 가 형태를 유지하기 힘든 요즘의 나는, 아직 덜 깨진 것인지, 너무 많이 깨져서 힘이 드는 것인지, 얼마나 더 깨져야 할 것인지를 잠시 생각해 본다. 굳이 시도하지 않아도 되었을 모험, 굳이 겪을 필요 없었던 사랑, 굳이 집착할 필요 없었던 성취들이 쩍 쩍 금을 내고 있었던 것일까. 아주 작은, 공기가 겨우 통할 만큼의 틈이라도 벌어지면 와장창 무너질 것 만 같다고 생각하며 훌쩍 책장을 넘기는데, 필립 로스의 책 <유령 퇴장 Exit Ghost>의 한 구절이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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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이란 걸 상상할 수 있어? 당연히 못하겠지. 나도 못했으니까. 어떤 건지 전혀 몰랐지. 그림을 잘못 그렸던 것도 아니야. 전혀 그림이 없었던 거지. 아무도 상상해보는 것조차 원하지 않아. 직접 당하기 전까지 원하지 않는 거지. 이게 다 결국 어떻게 될 거냐고? 둔감함이야말로 필수적이지. 내 인생보다 앞서 있는 어떤 인생도 상상할 수 없다는 건 당연한 일이야. (중략) 중년이란 많은 사람들에게 힘든 시기지. 하지만 노년은? 재밌게도 이 시기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이 그 안에 있으면서도 완전히 그 밖에 있게 되는 그런 시기야. 내내 자신의 소멸을 관찰하면서 계속되는 활력 때문에 그 소멸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거지. 심지어는 완전히 독립된 것 같기도 하지. (중략) 그 객관적인 거리의 잔임함이야 말로 끔찍한 거야.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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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와아!! 하고 기대감에 부풀었으나, 그 거리감이야 말로 끔찍하게 잔인하다는 마무리에 김이 샌다. 모르겠다. 아직 중년도 되지 않은 나로서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 자의식과 함께 한 몸에 갇힌 느낌이고, 통계적으로 본다면 이대로 최소 수십 년 동안 더 이 룸메이트와 화해하고 어떻게든 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모옵시 짜증난다. 자의식이라니.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밖에 있단 건 어떤 느낌일까. 여기서 이렇게 행동하고 숨쉬고 있는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듯 통제불능의 느낌인 걸까. 알 듯 모를 듯 하지만 뭔가 끔찍한 느낌일 것 같기도 하다. 노년이 오면 편안해 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금이 갈 일도, 그 금이 형태를 무너뜨릴 만큼 치명적일 일도 더 이상 없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는데. 


이렇게 발길 닿는 대로 산책하듯이 책을 탐독한다. 시종일관 밀도가 높은 것도, 가슴 저미는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니라 오히려 자주 손이 가는데, 그렇다고 소일거리를 위한 책은 절대 아니다. 글, 현대미술, 패션, 음악 등 장르를 불문하고 이 정도 큐레이션을 이 정도 깊이로 경험할 수 있는 책도 드물다. 엄마 새가 먹이를 꼭꼭 씹어서 소화되기 쉽도록 만들어 새끼 새를 먹이는 것 같다. 저자만의 통찰력 있는 필터링으로 현대 예술은 의미불명의 잡동사니가 아닌, 세상에 대한 유일무이하고 재미있는 해석이 되고, 그로 인해 독서는 여유롭고 즐거운 산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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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죽음에 관한 책 두 권을 동시에 읽게 되었다. 프랑스 철학자이며 유대인으로서 두 번의 세계 대전을 모두 겪어야 했던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1903~1985)의 『죽음에 대하여 Penser La Mort?』와,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이병욱의 『자살의 역사』다.



장켈레비치는 1966년에 출간된 죽음 La Mort』라는 저서를 통해 인간이 결코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곧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질문을 탐구했다. 아직 국내에 죽음 La Mort』은 번역되어 나오지 않았고, 이 책은 장켈레비치가 여러 매체와 나누었던 대담을 모은 것이다. 죽음의 의미, 죽음에 대한 종교적·일반적 태도, 안락사 논쟁과 죽을 권리, 죽음에 대한 불안과 폭력 등이 다루어 진다. 대담집의 장단점을 모두 가진 책이다. 죽음에 대한 광범위한 내용을 이론서보다 쉬운 언어로 다루지만 충분한 이해를 도모하기엔 깊이가 부족한 감이 있다. 사실 다니엘 디네와의 대담을 다룬 첫 장 <돌이킬 수 없는 것>과, 조르주 반 우트와의 대담을 쓴 두 번째 장 <죽음에 대한 성찰과 태도>를 제외하고는 조금 지루했다. 아무래도 한 세기를 먼저 살다 간 철학자인만큼 그 사이 의학 발달과 사회의 고도화로 생명 연장과 질병의 극복, 그리고 죽음의 질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어 그의 죽음 사유의 기초를 이루는 사실관계가 다소 시대에 뒤쳐진다. 그리고 첫 장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들에서는 질문의 날카로움에도 불구하고 장켈레비치가 질문의 핵심을 비켜간 듯한 답변도 꽤 있다. 

다만 첫 두 장에서는 죽음을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가능한지를 다루고 있어 흥미로웠다. 예컨대 디네는, 죽음은 생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살아볼 수 없는 것이며 삶을 무화시켜버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삶은 바로 이 죽음의 가능성 때문에 팽팽하게 활력과 긴장을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 질문한다. 이에 대해 장켈레비치는 다음과 같이 베르그송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베르그송을 인용하며) 눈이 없이는 볼 수 없으므로 눈은 분명히 시각 기관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눈이 시각에 장애가 된다고 말입니다. 눈이 없으면 훨씬 더 잘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이 아니라 다만 눈이라는 것 자체가 시각을 제한한다는 말입니다. 두 눈을 가졌다는 것은 본다는 것을 뜻하지만 동시에 단지 제한적으로만 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이는 다른 어떤 경우에든 타당한 얘기입니다. 나는 육체를 통해 여기에 현존하고, 표현하고, 존재하고, 살아가지만, 그와 동시에 육체로 인해 나는 다른 곳에 존재하지 못하고, 각종 질병과 온갖 육체적 문제에 좌우됩니다. (……) 어떤 관점에서 보면 언어는 표현에 장애가 된다고 할 수 있지만, 자기표현에 장애가 있다는 점 때문에 인간의 표현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표현의 장애가 곧 표현의 수단이 됩니다. 죽음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지요. (본문 20쪽~22쪽)


죽음은 삶의 중단이므로 존재의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장애이지만 동시에 그 때문에 '누군가 이 세상에 살았음을, 그가 존재했음을 영원히 확정'(본문 44쪽)짓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존재의 조건입니다. 죽음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동시에 의미를 제거한다고 말한 사람들이 있는데,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죽음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비의미non-sens입니다. (본문 45쪽)


그러나 자의식을 가진 존재로써 인간의 실존은 중단없이 '계속 나아감'을 요구하므로 우리는 취약한 육체의 구석 구석으로 언제든 파고들 수 있는 죽음의 가능성을 외면한다. 만약 우리가 완전한 끝인 죽음을 향해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으며 언제 죽을지조차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수긍한다면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라도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죽음의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일상에서 스스로의 죽음은 필연이 아닌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느껴지는 것이며, 이러한 기만은 '계속됨을 전제로 하는 실존의 필연성'에 의해 정당화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와 비슷하게 죽음에 대한 불안도 자아를 '조망'할 줄 알고, '존재한다는 사실의 놀라움을 아는' 인간에게만 특유한 것으로 설명된다. 


개와 고양이 같은 동물들도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존재하지만 그 어떤 동물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놀라워하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인간은 존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존재한다는 사실을 놀랍게 여깁니다. 전적으로 부조리하고 근거도 없는 놀라움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바로 인간의 힘입니다. (본문 63쪽)


이것을 인간의 힘으로 불러야할지 약점으로 불러야할지 의문스럽지만, 어쨌거나 그는 인간의 자의식을 죽음을 인식하는 불안의 근원으로 보며, 종교의 존재 역시 바로 이 죽음에 대한 인간 본연의 불안을 처리(위로)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본다. 신자와 비신자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신자에게는 종교에서 제시하는 내세가 현세와 동일하게 - 마치 두 번째의 삶과 같이 - 실재로 존재하는 것으로써 가치를 지니므로 죽음이 또 다른 삶의 시작이 되지만, 비신자에게 죽음은 완전한 無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그는 죽음에 관해 사유할 수 밖에 없으며, 그 결과는 곧 '죽음을 전혀 모르며 알 수 없다'는 태도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죽음이야말로 경험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이며, 만약 그에 대해 사유한다 하더라도 '내가 죽음에 대해 상상하는 모든 것은 삶의 변이형이고, 여전히 삶'(본문 58쪽)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신자에게 있어서 '죽음에 대한 태도'는 '삶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일 수 밖에 없고, 죽음에 대한 성찰은 곧 실존에 대한 진지한 탐구이다. 

그래서 종국에는 무로 돌아갈 존재에게 중요해 지는 것은 자기 삶의 의미를 보다 큰 전체 속에서 보는 것, 즉 사회 속에서 나의 존재가 타인에게 주는 의미가 된다. 


나의 삶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의 삶 전체는 나 자신에게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깊이 사색에 빠지거나 인간 실존의 일반적 의미나 나의 실존이 나 자신에게 갖는 의미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는 그 의미를 찾을 수 없을 테니까요. (……) 한 생애는 그것이 다른 무언가에 포함될 때 의미를 갖습니다. 제 연구는 제가 강의를 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고, 그런 식으로 생이 끝날 때까지 의미가 조금씩 이어집니다. 그렇지만 하나의 총체로서 저의 실존은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제 자신에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 나의 일생을 보다 넓은 전체 속에 위치시키지 못한다면, 삶은 아무 의미 없는 지리멸렬한 지속에 불과하게 됩니다. (본문 33쪽~35쪽)


얼마 전 미국의 저널리스트 시베스천 영거가 쓴 책 『트라이브, 각자 도생을 거부하라』에서 '사회적 연대감'을 현대사회에서 인간 생존의 필수 조건이라 설파하던 것이 생각나는 부분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이 '공동체 속에서 찾을 수 밖에 없는 개인의 삶의 의미'라니. 그것이 죽음 앞에서 인간이 반복적으로 발견할 수 밖에 없는 진실이라면 단순히 사회통합과 구성원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프로파간다는 아니리란 생각이 든다. 


실존자에게 있어 죽음의 의미, 죽음을 사유하는 것의 의미,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흥미롭게 논파한 책이다. 그의 저작 죽음 La Mort』이 번역 출간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병욱의 자살의 역사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동서양 인물들의 자살 사례 모음집이다. 구미가 당기는 제목과 함께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라는 저자의 약력을 보고, 자살에 대한 역사적·이론적·경험적·철학적 분석과 논의가 펼쳐지기를 내심 기대하고 샀으나, 전혀 다른 구성에 다소 실망했다. 책은 제1부 <서양의 죄의식 문화와 자살>, 제2부 <동양의 수치심 문화와 자살>, 제3부 <한국인의 한과 자살>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살자 한 명 당 약 두 쪽 정도의 지면을 할애해 자살하기까지의 생애를 간략하게 정리했다. 

굳이 이렇게 세 부로 나눈 이유에 대한 언급과 분석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 부분이 없다. 저자는 서문에서 한국의 이례적으로 높은 자살률을 언급하며 자살의 동기와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앞으로도 벌어질 비극적 자살들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했다고 집필 의도를 밝히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자살 동기나 배경에 따른 분류, 분석, 이론 확립, 한국 사례의 특수성과 보편성 등 학술적으로도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고 그것이 핵심일 것 같은데 아쉽게도 사례 수집에 그치고 있다. 의미가 있다면 '자살'이라는 터부에 대해 이만큼 방대한 양의 아카이빙을 했다는 것이겠다.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이라면, 저자가 서문에서 논한 자살의 '베르테르 효과' (자살의 모방심리와 파급효과를 나타내는 용어, 본문 7쪽)란 것이 바로 이 책을 읽다 보면 일어난다는 점이다. 서문에서 이은주, 안재환, 최진실 등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 사례와 당시의 파급효과를 사례로까지 들면서 설명해 놓고도, 본문은 이 백명 가까운 유명인의 자살 사례로만 채워져 있어 연속해서 읽어내려 가기가 어렵다. 좋은 소재에 많은 노력이 들어 간 책일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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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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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게 산문으로 쓰여 졌으나 누군가는 시로 읽게 되는 글이 있다. 처음 만나는 작가, 해외에서는 '체코 소설의 슬픈 왕'으로 불리우는 체코의 국민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시처럼 농밀한 소설이었다.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삼십오 년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느라 삼십오 년간 활자에 찌든 나는, 그동안 내 손으로 족히 3톤은 압축했을 백과사전들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나는 맑은 샘물과 고인 물이 가득한 항아리여서,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는 이제 어느 것이 내 생각이고 어느 것이 책에서 읽은 건지도 명확히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본문 1장 9쪽)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네 문장은 책을 좋아하는 이들의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을만 하다. 오로지 책과 가까이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폐지압축공이 된 남자, 한탸의 인생이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침울하고 장렬하게, 또 엄숙하게, 먹먹하고 담담하게 펼쳐진다. 대부분의 소설은 줄거리를 요약한 다음 어떤 점이 좋았다고 감상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 책은 시를 읽을 때처럼 더 이상 요약할 수 없고, 한 마디로 감상을 말할 수도 없다. 다만 읽던 중에 즉흥적으로 남겨놓은 짧은 메모가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될까.  


"내내 춥다. 축축한 음산함이 퀴퀴한 악취를 풍기며 엄습한다. 인간 세상의 온도와 냄새다. 나는 프라하의 폐지 공장 지하실에서 20기압의 힘으로 인류의 지적 영광과 오물을 구분 없이 공평하게 짓이기는 압축기 앞에 서 있다. 쉼없이 돌아가는 압축기의 굉음에 온몸이 덜덜 떨린다. 반쯤 눈이 먼 채 책을 파먹다가 책과 함께 압축되어버리고 마는 쥐떼처럼 영원히 그 어둠을 떠날 수 없다. 그 사로잡힘이, 인생이, 몹시 벗어나고 싶으나 몹시 뿌리치기 어려운, 매혹적인 더러움이다."  


책이 추웠다, 딱히 어두운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 아닌데도. 그도 그럴 것이 자뭇 덤덤한 어조로 계속되는 세세한 묘사 사이에서 덜컥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만나 버리기 때문이다. 


프라하의 하수구와 시궁창에서는 쥐들이 생사를 건 대전쟁을 벌이는데, 승리하는 쪽이 포드바바까지 흘러가는 배설물과 오물을 전부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 변증법의 논리대로 승자가 다시 두 진영으로 나뉜다는 것도 그 고매한 하수구 청소부들이 내게 알려주었다. (본문 3장 37쪽)


절망의 기도를 올리기 위해 꽉 맞잡은 양손처럼 내 압축기의 아가리가 『도덕경』을 분쇄하는 광경을 나는 지켜본다. (본문 3장 47쪽)


청년들과 아름다운 처녀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빛을 발하는 젊은 예수에게서 나는 눈을 떼지 못한 채 맥주를 단지째 들이켰다. 반면 노자는 홀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무덤을 찾고 있었다. (본문 4장 52쪽)


닭장을 벗어난 닭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내려오며 모이를 쪼아대면 손 하나가 그들을 낚아채 산 채로 꼬챙이에 꿰어 목을 잘랐다. (본문 6장 97쪽)


한없는 연민으로, 때로는 분노로, 시니컬한 조소로 세상을 관조하는 시선. 주인공은 고독을 사랑하는 관념적인 현자요 시인이다. 그는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본문 1장 18쪽)' 혼자이며, '덜컹대는 고철의 소음 속에서 20기압의 힘으로 그것들을 짓이기도 있노라면, 인간의 뼛조각 소리가 들리곤' 하는 감수성의 소유자다. 집안 머리맡엔 2톤은 족히 넘을만한 책들을 쌓아두고 언제든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쏟아져 압사당할까 두려움에 떨면서도 책들에 둘러쌓여 찬양하며 신봉한다. 한탸에게 책은 인간이고, 신이고, 삶이고, 그 자신과 다름 없다. 시대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가깝지 않은 주인공인데, 남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지 않아서 130쪽 남짓한 짧은 책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들썩거렸다.


책의 말미에 이런 독백이 있다. 


우리는 만신창이가 된 다음에야 최상의 자신을 찾을 수 있다. (본문 8장 127쪽)   


흐라발은 이 책을 들어, '나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수십 년간 공산주의 체제의 감시 하에 굴곡 깊은 삶을 살았던 작가가 선언한 필생의 역작. 그의 최상이 이 책이라면 아마도 만신창이가 되도록 힘들었던 삶의 여정에서 얻은 씁쓸한 지혜와 서늘한 연민이 책의 정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잘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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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브, 각자도생을 거부하라 - 당신은 원래 혼자가 아니다!
시배스천 영거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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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혹시 먹고 자는 극히 기본적인 활동과 다름 없이, 소속감 혹은 공동체의식 역시 생존의 필수조건이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만원 지하철을 꽉 채운 타인들을, 거리의 노숙자를,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옆집사람을 유의미한 개별 개체로, 동일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지하는 것', 다시 말해 나와 관련 있고 내가 아는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느껴본 적은? 대도시 생활의 익명성과 사람들의 상호 무관심이 문제라고 생각하긴 했어도 막상 문이 열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모르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일이쉽지는 않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넘치고 넘치는 인간의 물결에 진절머리를 내는 대신 내가 속한 공동체의 번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가능한가? 뿐만 아니라 그것이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정말?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시배스천 영거는 YES라고 확신한다. 그는 오랫동안 중동에 파병된 미군 부대를 취재하며 파괴되는 사회 속에서 함께 파괴되는 인간 정신과 동시에 그로부터 새롭게 피어나는 본능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기록해 왔다. 


우리가 영위하는 하루하루의 삶에서 결핍되어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을 확실히 알아내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의 삶이 심하게 망가지고 파괴될 때 과연 어떤 태도들이 자발적으로 생겨나는지를 관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본문 p.176)

인간은 성공보다는 실패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전해 왔으므로, 역사상 유래없는 평화의 시기를 구가 중인 현대 사회의 숨은 결핍을 찾아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 평화가 단기간에 확실하게 깨지는 사건들을 들여다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전쟁이 나면 사회는 아비규환이 되고 정신질환은 겉잡을 수 없이 증가할 것이라는 게 통념이라면, 이 책에서 과장없이 제시하는 많은 예들은 오히려 반대의 진실을 보여준다. 전쟁이나 자연재해와 같은 재난이 닥칠 때,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인간은 보다 인간다워 진다. 부자와 빈자, 힘센 자와 약한 자, 남녀노소, 외국인과 내국인, 피부색에 상관없이, 인류가 지금껏 지겹도록 내세워 온 모든 차별이 순식간에 극복되고 살아남은 자들은 오로지 생존을 위해 뭉친다. 적군의 폭격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중에도 패닉에 빠지거나 벙커로 숨어드는 대신 노인과 아이들을 보호하고, 식량보급을 위해 공터가 된 폭격지 위에 먹거리를 심는다. 자연스럽게 남은 자원을 모아 나눠 쓰고, 오늘 하루를 또 살아 남았음에 감사한다. 지금 이 순간 옆에 살아있는 형제가, 자식이, 부모가 고마워 저녁 식탁에서 주린 배를 쥐고도 마주 보며 웃는다. 돈 버느라, 공부 하느라 서로 얼굴 볼 새가 없던 가족들이 모인다. 한 여자아이는 가까스로 전쟁지역에서 탈출한 후에 1년도 채 안 되어 다시 가족이 있는 전쟁터로 되돌아 갔다. 전쟁이 터진 이후보다 더 많이 웃었던 적이, 더 행복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실제로 전쟁이나 재난 등 사회의 정상적인 기능이 마비되고 대량의 죽음이 발생하는 사건이 터질 때 정신질환은 오히려 급감한다고 한다. 미국의 119 테러 후에도 증가 추세이던 정신질환이 2년 동안 감소하는 패턴을 보였는데, 저자는 그 원인을 위기 앞에 급작스럽게 회복되는 인간 본능, 즉 공동체의식에 있다고 결론 내린다. 고독감, 우울, 자살 등의 원인은 많은 경우 소속감, 즉 타인에게 존중받고 받아들여지는 느낌, 하나되는 느낌의 부재에 있다. 자신보다 더 큰 의미에의 소속, 개인의 존재를 가치롭게 만드는 사회를 경험하지 못하는 인간은 정신이 병든다. 그 결과, 공동체의식 역시 의식주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간답게 생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꼼꼼하게 정리 된 방대한 양의 학술자료, 전문가인터뷰, 현장취재가 설득력 있게 주장을 뒷받침한다. 


공동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자의 태도는 매우 인본주의적이고 열성적이면서도 시종일관 분석적이다. 오죽하면 실험실 쥐들의 공동체로부터도 시사받을 점이 있다고 할 정도니까. 


실제로 모든 포유류 동물은 '동료애(Companionship)'로부터 혜택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실험실의 쥐들도 혼자 있는 것보다 다른 쥐들과 함께 우리에 갇혀 있는 편이 훨씬 더 빨리 트라우마에서 회복된다.

책 전체의 구성은 다소 방만한 느낌이 있지만, '함께 사는 삶'이 입에 발린 정치 구호이거나 이상주의자의 꿈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인류의 생존 조건' 임을 설득하고자 하는 저자의 열성이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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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 넘치는 생각 때문에 삶이 피곤한 사람들을 위한 심리 처방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크리스텔 프티콜랭 지음, 이세진 옮김 / 부키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가끔, 책을 펼치자마자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읽는 동안 팡팡 분출되는 도파민이 느껴지는 책. 

- 난 생각이 너무 많아요.

- 성격이 까다롭고 쓸데없는 일로 끙끙 앓는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 머릿속이 늘 복잡해요. 가끔은 생각을 멈추고 싶어요. 

(p. 9)

이런 하소연을 해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은 당신을 위한 책이다. 타인의 어려움에 쉽게 공감하고, 맡은 바 일에 완벽을 추구하고,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고, 정확한 언어 구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불의에 쉽게 분노하고, 쉽게 질리고,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고, 학습 능력이 뛰어나고, 인간의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지 궁금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변덕스런 기분때문에 타인으로부터 핀잔을 듣고, 그런 사소한 핀잔에도 하루 종일 마음이 쓰이며, 서로를 100% 이해하는 완벽한 사랑을 꿈꾸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과도한 불안을 느끼며, 뭐든 쉽게 결정내리지 못하고, 무엇보다도 남들도 당신과 같이 이럴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이 책은 정말 당신을 위한 책이다. 

심리치료사로 오래 일해 온 저자의 노련함과 예리함이 정신적 과잉활동인(지나칠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두뇌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정확한 분석으로 빛을 발한다. 읽다보면 어느 새 있는 줄도 몰랐던 답답함이 해소되고, 다친 줄도 모르고 있던 마음이 치유된다. 그러나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 아니라면 다소 어리둥절하고 지루할 수도 있겠다.     

 

그야말로 매사에 지나친 것이다. 생각이 지나치고, 질문이 지나치고, 감정이 지나치다. 매사에 ‘super-‘, 나아가 ‘hyper-‘라는 접사가 붙을 만하다. 과잉 행동, 과민, 과잉 감정 ... ,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살면서 겪는 자질구레한 사건들을 매우 민감하고 강렬하게 경험한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마음에 와 닿은 것이 있으면 크리스털처럼 울리고 동요한다. 별것 아닌 일조차도 그들에겐 보통 사람이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다가올 수 있는데, 특히 그들의 가치 체계에 관련된 일이 그렇다. 지각, 감정, 감수성..., 모든 것이 부풀려 진다. 사실, 그들은 감각 체계 및 감정 체계 자체가 과민하다. 예민한 지각은 신경학적인 이유에서 비롯되어, 현실을 지각하는 단계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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