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브, 각자도생을 거부하라 - 당신은 원래 혼자가 아니다!
시배스천 영거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혹시 먹고 자는 극히 기본적인 활동과 다름 없이, 소속감 혹은 공동체의식 역시 생존의 필수조건이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만원 지하철을 꽉 채운 타인들을, 거리의 노숙자를,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옆집사람을 유의미한 개별 개체로, 동일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지하는 것', 다시 말해 나와 관련 있고 내가 아는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느껴본 적은? 대도시 생활의 익명성과 사람들의 상호 무관심이 문제라고 생각하긴 했어도 막상 문이 열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모르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일이쉽지는 않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넘치고 넘치는 인간의 물결에 진절머리를 내는 대신 내가 속한 공동체의 번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가능한가? 뿐만 아니라 그것이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정말?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시배스천 영거는 YES라고 확신한다. 그는 오랫동안 중동에 파병된 미군 부대를 취재하며 파괴되는 사회 속에서 함께 파괴되는 인간 정신과 동시에 그로부터 새롭게 피어나는 본능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기록해 왔다. 


우리가 영위하는 하루하루의 삶에서 결핍되어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을 확실히 알아내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의 삶이 심하게 망가지고 파괴될 때 과연 어떤 태도들이 자발적으로 생겨나는지를 관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본문 p.176)

인간은 성공보다는 실패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전해 왔으므로, 역사상 유래없는 평화의 시기를 구가 중인 현대 사회의 숨은 결핍을 찾아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 평화가 단기간에 확실하게 깨지는 사건들을 들여다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전쟁이 나면 사회는 아비규환이 되고 정신질환은 겉잡을 수 없이 증가할 것이라는 게 통념이라면, 이 책에서 과장없이 제시하는 많은 예들은 오히려 반대의 진실을 보여준다. 전쟁이나 자연재해와 같은 재난이 닥칠 때,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인간은 보다 인간다워 진다. 부자와 빈자, 힘센 자와 약한 자, 남녀노소, 외국인과 내국인, 피부색에 상관없이, 인류가 지금껏 지겹도록 내세워 온 모든 차별이 순식간에 극복되고 살아남은 자들은 오로지 생존을 위해 뭉친다. 적군의 폭격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중에도 패닉에 빠지거나 벙커로 숨어드는 대신 노인과 아이들을 보호하고, 식량보급을 위해 공터가 된 폭격지 위에 먹거리를 심는다. 자연스럽게 남은 자원을 모아 나눠 쓰고, 오늘 하루를 또 살아 남았음에 감사한다. 지금 이 순간 옆에 살아있는 형제가, 자식이, 부모가 고마워 저녁 식탁에서 주린 배를 쥐고도 마주 보며 웃는다. 돈 버느라, 공부 하느라 서로 얼굴 볼 새가 없던 가족들이 모인다. 한 여자아이는 가까스로 전쟁지역에서 탈출한 후에 1년도 채 안 되어 다시 가족이 있는 전쟁터로 되돌아 갔다. 전쟁이 터진 이후보다 더 많이 웃었던 적이, 더 행복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실제로 전쟁이나 재난 등 사회의 정상적인 기능이 마비되고 대량의 죽음이 발생하는 사건이 터질 때 정신질환은 오히려 급감한다고 한다. 미국의 119 테러 후에도 증가 추세이던 정신질환이 2년 동안 감소하는 패턴을 보였는데, 저자는 그 원인을 위기 앞에 급작스럽게 회복되는 인간 본능, 즉 공동체의식에 있다고 결론 내린다. 고독감, 우울, 자살 등의 원인은 많은 경우 소속감, 즉 타인에게 존중받고 받아들여지는 느낌, 하나되는 느낌의 부재에 있다. 자신보다 더 큰 의미에의 소속, 개인의 존재를 가치롭게 만드는 사회를 경험하지 못하는 인간은 정신이 병든다. 그 결과, 공동체의식 역시 의식주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간답게 생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꼼꼼하게 정리 된 방대한 양의 학술자료, 전문가인터뷰, 현장취재가 설득력 있게 주장을 뒷받침한다. 


공동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자의 태도는 매우 인본주의적이고 열성적이면서도 시종일관 분석적이다. 오죽하면 실험실 쥐들의 공동체로부터도 시사받을 점이 있다고 할 정도니까. 


실제로 모든 포유류 동물은 '동료애(Companionship)'로부터 혜택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실험실의 쥐들도 혼자 있는 것보다 다른 쥐들과 함께 우리에 갇혀 있는 편이 훨씬 더 빨리 트라우마에서 회복된다.

책 전체의 구성은 다소 방만한 느낌이 있지만, '함께 사는 삶'이 입에 발린 정치 구호이거나 이상주의자의 꿈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인류의 생존 조건' 임을 설득하고자 하는 저자의 열성이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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