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주의 역사 강의 - 유토피아 사회주의에서 아시아 공산주의까지 새움 총서 1
한형식 지음 / 그린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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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를 공부할 때 항상 용어가 혼란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용어를 단순하게 대상의 이름을 지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서 혹은 다른 정치적 입장과의 차별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쓰기 때문입니다. 20p


온갖 책에 소개되는 사상들이 어려운 이유는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전달하는 언어에 있다고 느껴왔다. 이해시키고자 정의를 한껏 내리지만, 덕지덕지 붙이는 수사만을 봐서는 그것이 설명인지 해석인지, 펼쳐 보이기 위함인지 숨기려는 건지 의아하다. 아마도 여기서부터는 들어오지 말라는 학문적 ‘영역표시’가 아닌가 한다. 그런가보다 하고 여러 책에서 뜨믄뜨믄 읽다가 이 책을 읽게 되니, 개안(開眼)된 느낌이다.


맑스주의의 역사는 150년간 단일한 자기정체성을 유지한 정치적 이념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고 어떤 면에서는 자기동일성을 유지하지만 동시에 그 동일성을 끊임없이 깨뜨리면서 새로운 영역으로 확산되어 간 정치적 이념의 역사입니다. 415p



그 동안 맥락을 몰랐던 게다. 맥을 짚어내질 못했으니 맥없이 들어만 봤던 ‘지식’처럼 사용되어져 왔다. 역사적 맥락과 배경으로 사상의 흐름, 갈등, 변화를 통해 맑스주의의 맑스주의성을 설명하는 방식의 적절함과 대중을 위한 친절함은 이 책이 왜 좋은가를 말해준다. 마이클 샌댈의 ‘정의는 무엇인가’가 왜 그렇게 인기인가. 누구누구의 정의론이 수없이 출판되어도 대중에 먹히지 않던 이유를 보면 우린 인문, 사회, 역사학에 무지했던 게 아니라, 배제되어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은 ‘좋은 책의 특징’을 많이 갖고 있다. 당파성이나 논란이 많은 부분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그에 비하면 문젯거리가 아니다. 사회과학서 치고 특정 성향이 없거나, 저자가 개입하지 않은 책은 없다. 국정교과서도 국가의 개입이 있거늘… 책이 독자를 끌어당기면 그 다음부터는 독자가 알아서 간다. 이 책으로 맑스주의를 알고자 하게 했다면 책으로써의 역할은 다한 것이다. 맑스주의가 당대의 사상이 아니라, 진화하는 생명성을 가지고 있다면 학자들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독자들에게서 나올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민중의 힘, 민중이 역사를 이끌었다고 믿는다면 말이다. 세밀함은 다음의 일이다. 보폭이 문제인데, 속도를 말하는 것은 오바다.

세상에 초월적이고 영원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역사적일 뿐이라 것, 역사의 변화와 그 원인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 이것이 맑스 사상의 대전제 중의 하나입니다. … 맑스주의가 역사적이라는 것은 단일한 맑스주의란 있을 수 없고 최소한의 동일성을 공유하는 상이한 복수의 맑스주의들이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맑스주의들이 어떤 점에서 같고 어떤 점에서 다른지, 그 차이는 왜 발생하며 이 차이들의 실천적 의미는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맑스주의의 역사를 통해서 접근해야만 합니다. 420p


궁금함을 불러일으키는 내용들, 특히 수정주의의 대두와 제국주의와의 영합에 관한 내용, 그리고 냉전이 만든 세계적 구도를 통한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게끔 하는 부분으로 역사적 진실에 한 발작 다가서게끔 한다.
이재오와 김문수를 큰 틀로 알게 된다고나 할까. “역사는 한번도 나를 비켜가지 않았다”라는 책을 쓰신 비전향장기수의 글과 사상도 오버랩이 된다. 군사정권의 슬러지들이 아직도 꾸물거리는 것을 봐도, 보수주의라는 틀을 쓴 미제국주의의 꼭두각시들, 한국사회의 욕망과 망상의 형상을 그리는 데에 많은 도움을 받은 것 같다. 간만에 공부하고 싶어졌다.


저자의 비판도 인상 깊다.

좌파의 유럽 편향은 심각한 지경입니다. 유럽에서 거의 아무런 실천적 영향력도 없는 좌파이론의 수입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21세기에 일시적이지만 유일하게 집권에 성공한 공산당이 있는 네팔이나 공산당이 집권하지 않은 나라 중에서 공산당 당원 수가 가장 많았던 인도네시아 공산당의 사례, 그리고 바로 그 인도네시아 공산당을 상대로 자행된 20세기 최대의 대학살 중의 하나에 관심을 갖는 한국의 좌파는 거의 볼 수 없습니다. 맑스주의가 사변적 이론이 아니라 실천을 위한 담론이라는 데는 누구나 동의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학계 내의 관심에만 몰두한 유럽 좌파 학자들의 주장을 수십 년간 목숨 바쳐 투쟁한 수많은 민중의 이야기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는 한국 좌파들의 풍토는 지극히 비맑스주의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3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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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0-09-28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지막 인용 문단. 왠지 저도 찔리는 군요!

라주미힌 2010-09-29 09:53   좋아요 0 | URL
저자의 생각이 뒤로 갈수록 드러나더군요 ㅎ

머큐리 2010-09-29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널리 공유하기 위해 분투 중...ㅎㅎ

라주미힌 2010-09-29 09:53   좋아요 0 | URL
저도 누군가의 추천을 받고 읽을거라 ㅎㅎ 남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에요..

2010-10-11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1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1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