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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춘만의 중공업
조춘만.이영준 지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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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조선업이나 중화학공업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십중팔구 그 규모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말을 한다. 이것은 내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명제들 중 하나다. 그 이유는, 내가 선박의 엔진을 직접 본 사람이기 때문인데, 그 크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비유를 들곤 한다: 동네에 한 10년쯤 묵은 5층짜리 연립이나 빌라 있으면, 엔진이 그 빌라 한 동 만하다고 보면 돼요. / 조선소에 있던 후배 직원이 하는 얘기는 이렇다. 배 그거 한 이십층 짜리 건물만한 것도 있고, 오십 층짜리 건물만한 것도 있고 그래요(여기에 10층 높이를 더하면 63빌딩이다).


이러한 배를 짓는 공방으로서의 건물은 일반적인 건물과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철판과 자재들이 작은 블록이 되고, 그 블록들을 기계로 실어날라 다른 더 큰 공정에서 합쳐 더 큰 블록을 만들고, 그 블록을 또 실어날라 크레인으로 들어 다른 블록과 맞추고, 또 맞춘다. 쇠로 건물을 짓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서울에 있는 웬만한 아파트들과 비슷한 크기의 건물이 몇 달이라는 시간 안에 용접용접용접 하며 지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의 중간 결과물들과 그 결과물을 둘러싼 풍경들을 사진으로 담아낸다는 것은, 그리고 그 결과물들은, 보는 사람에게 혹은 찍는 사람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적어도 기업들이 카달로그 속에서 보여 주고 싶은 이미지나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공간지각력으로 그려낼 수 있는 이미지는 아닐 것이다.


조선소에 있다가 중동 쪽 건설현장을 돌고 온 용접사 조춘만은, 중동에서 벌어온 돈으로 이런저런 장사를 하다가 대학교에 진학했는데, 사진학과에 갔다고 한다. 중동 시절 사 온 니콘 카메라를 이용하여 사진을 찍은 경험이 있어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 과정에서 처음 했던 일인 취부사(철판을 이용하여 가장 작은 단위의 부품을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에서 용접사를 거치며 느꼈던 거대함에 대한 어떤 생경한 감각을 담아내는 방법을 익힌 것 같다.


어찌 보면 대단히 plain한 사진들이다. 배가 화면 정중앙을 가득히 채우고 서 있다. 얼핏 보면 배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보는 순간 가슴이 뛰고 압도당한다. 그 압도의 감정은 아직도 수수께끼다. 내가 그 사진에 들어 있는 배들이 수십 미터, 아니 백여 미터 밖에서 대구경 망원으로 때리지 않으면 담기지조차 않을 만큼 거대한 물건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도 아니고, 그 안에 있는 배들이 엄청나게 아름다운 구도로 잡혀 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럼에도 보는 순간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온다. 이영준은 이를 두고 겸재의 그림을 논하기도 하는데, 어느 정도는 동의할 만하다. 대상에 극도로 몰입한 나머지 사람, 주변풍경 등이 모두 사라져버리고 그 대상 하나만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내 눈앞에서 거대하게 나를 짓누르는 느낌.


물론 배 말고 석유화학공업 쪽도 있다. 내가 배를 좋아해서 그런데, 여튼 화학 쪽 또한 매우 아름답다. 배가 규모로 사람을 압도하는 만큼 중화학 공장도 말도 안 되게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탱크 벽들의 질감이나 탱크/파이프라인에 걸려 있는 긴장감과 압력을 그대로 담아낸 듯한 결과물 역시, 조선 만큼이나 놀랍다. 여러 산업사진가들의 사진들을 보지 못 한 상태에서 섣불리 평가할 수는 없겠으나, 나의 일천한 경험에 비추어 말하니 너무 믿지는 않았으면 하는데,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본 사진집 중에 이렇게 사람의 말문을 틀어막아 버리는 느낌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책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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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야만 - 20세기의 역사
클라이브 폰팅 지음, 김현구 옮김 / 돌베개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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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클라이브 폰팅의 이 책을 보다가, 돌베개의 출판 의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 혹시 홉스봄의 장기 19세기 3부작을 대체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닐까? '학회' 모임을 할 때 읽을 '커리'로서의 성격이 강한 책이라는 뜻이다. 교양서와 교과서의 중간쯤 되는 책이란 뜻인데, 사실 별거 없다. 총론의 성격을 가지고 다루는 대상 전체를 조망하고 있으며, 세미나 발제하기에 부담이 없을 정도로 서술은 평이해야 하지만 주요 주제는 빠짐없이 다루어야 하며, 그 수준은 발제 내용 보면서 읽으면 슬슬 읽힐 정도까지 되어야 한다(중립과 정확성을 강조하는 교과서와는 다른 교양서로서의 이미지를 갖추어야 하지만 적당히 진지하기도 해야 하는, 균형이 필요한 장르라 하겠다). 이 위치에서는 홉스봄의 책이 어느 정도 정전의 위치에 오른 강력한 저작이긴 한데 한길그레이트북스 세 권이니 가격도 상당하고 (까치에서 나온 <극단의 시대>를 합하면 10만원 훅 깨짐) 무엇보다 분량이 1,500쪽에 달하는지라(역시 '극단'을 합치면 2,000쪽에 달한다)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이 책이 그런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겠으나, 내가 보기에는 이 요건을 꽤 충족하고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책의 구성인데, 연대기적 구성이 아닌 주제별 서술을 택하고 있어 영역별로 툭툭 치고 나가는 세미나의 특성에 따라 발췌독이 가능하다는 점. 홉스봄 책도 그런 (적어도 차례 상으로는) 그런 서술방식을 택하고 있다. 둘째는 분량인데, 700쪽 정도로 간소(?)한 편이고 마지막 결론을 제외하면 21 챕터라 적당히 발췌하거나 2챕터씩 하면 한 학기에 대충 맞고, 1년 커리를 써도 된다. 셋째는 서술인데, 인용예나 통계들로 미루어보아 정론적인 서술은 아닐 것으로 보이지만, 사례들이 풍부하고 재미있기 때문에 나중에 끝나고 술먹으면서 썰풀기가 좋음(??). 넷째는 셋째와 이어지는데, 넓은 커버리지. 오늘 아침에 마지막 부분을 읽다가 “농경으로 인한 토양 유실 관련한 책을 내가 근래 읽은 기억이 있는데, 뭔지 도저히 기억이 안 나는구먼... 기억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하며 자괴감에 빠져 있다가, 그 내용이 이 책 4 챕터에 나온 내용이라는 걸 알고 망연자실했을 정도. 그만큼 많은 내용들을 넓은 주제에 걸쳐 뿌린다.   


홉스봄 책만큼 평단의 지지를 자랑하지 못 하고 있는 점은 단점이라 할 만하나, 그거야 뭐... 기번 책과 싸우는 로마통사가 언제나 슬프듯... 여튼 20세기에 한정하여 전체를 조망하는 읽기라는 면에서는 오히려 좋은 책일 수도 있다. 깊이로서는 홉스봄의 권위를 따라가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읽기라는 면에서는 그 평이성이 오히려 장점이 된달까? 위에서 '커리'감으로서의 자격을 논했지만 이는 일반인들이 20세기의 세계사를 통사적으로 해석하는 시작점으로서도 꽤 괜찮은 책이라 하겠다. 다만 '커리'감이 보통 '혼자 읽으면 잘 안 읽히지만 모여 읽으면 어떻게든 읽어지는' 성격을 가진 책이라는 점에서, 읽는 데 있어 눈누난나 슥슥 읽어치우겠다는 계획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굳은 각오가 필요하다 하겠다(일단 700쪽도 적은 분량은 아니기 때문에 하루에 챕터 하나 잡고 노는 날 따지면 한 달짜리 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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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정보라 지음 / 아작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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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의 공대생 만화>가 책으로 출간됐다기에 시간 난 김에 직구다! 하면서 강남 교보에 갔다가 허탕을 쳤다. 아이고 아이고. 그러다 이 책에 눈에 띄어 냅다 집어왔다. 정보라는 사실 예전 체코SF 단편선인 <제대로 된 시체답게 행동해!>라든지 브루노 슐츠 작품집 번역 등 꽤 좋은 작품들을 골라 매끈하게 번역해 온 사람이라 흥미가 동했다. 그래서 집어들고 후루룩 넘기는데 "덫"의 문장들이 눈을 잡았고, 몇 자 읽다가 바로 사 왔다(약력을 보니 그 정보라와 같은 사람인 듯하다).


소설은 괴담의 영역으로 들어가기도 하며 때로는 신화의 영역을 건드리기도 한다. 그런데 뭐 이게 괴담이든 신화든 어때, 재미있으면 된 거지. 여튼 정보라의 이 소설집을 꿰뚫는 단어 중 둘을 꼽자면 '죽은 자'와 '돌아옴'이다. 유령들, 과거의 잔재들이 현실과 교호하는 영역들이 시공간을 뒤덮고, 그 영역이 현실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환상의 세계가 구축된다. 세계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과거의 잔재들이 현재와 부딪히며 피와 살이 튄다. '거한 그로테스크'라 하겠다. 그 그로테스크가 단정한 문장 안에 담기니 읽기에 쾌적하다.


쾌적하다는 말을 했는데, 내용들이 혼돈과 파괴를 담고 있음에도 문장과 서술이 무너지지 않고 단정하게 잘 잡혀 있어 마음에 들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과격한 내용이나 혼란한 내용을 던져넣을 때 자신이 그 이야기에 너무 몰입하여, 이야기 전개가 급하다 못해 마치 블랙홀 주변의 중력장에 물체가 찢기듯 흐트러지는 경향을 볼 때가 있다. 작가가 왜 독자를 넘어서 혼자 흥분하나 싶어 기분이 좀 별로일 때가 있는데, 정보라는 이야기를 강하게 던지면서도 고삐를 잘 틀어쥔다는 느낌이 든다. 번역가로서, 혹은 슬라브문학도로서 많은 문장을 만지면서 쌓은 레퍼런스나 훈련이 영향이 있었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문장 자체의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원한다면 강추할 만한 책이다. 때마침 GROUPER의 A | A (2011)을 같이 들었는데 썩 잘 어울린다. 농어 라는 이름의 이 음악가는 자신의 목소리와 악기 소리를 테이프에 녹음하거나 컴퓨터에 입력한 후 로우파이한 방식으로 변조하여 음악으로 가공해 내는 작가인데, 소리를 한계까지 무너뜨리고 그 질감의 완성도로 다른 이들과의 차별성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질감에 집착하면서도 전체적인 곡의 스토리라인을 놓치지 않는데, 그게 이 책과 닮은 면이 있다. 그루퍼(농어)의 음원은 애플뮤직에 있는데, 그거 없다면 줄리아나 바윅 같은 분들 음악이랑 같이 들어도 좋겠다.


덧) 출판사는 이 이야기들을 꽤 밝게 본 것 같은데, 작가 역시 '작가의 말'에서 "작품을 쓸 때의 의도는 전혀 달랐기 때문에 나는 상당히 놀랐다"고 밝히고 있다. 뭐 근데 편집자가 작가한테 소설 맘에 든다고 하면서 "차갑고 이지적으로 쓰였지만 밑에 깔린 정서나 세계관이 정말 제 심경을 득득 긁고 기분 찝찝하게 만드는 점이 정말 맘에 들어요" 라고 말하는 게 쉽겠나? 생각해 보면 편집자의 그 말이 딱히 이상한 것도 아닐듯하다.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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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ubauten 2017-07-12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거 꼭 별점 찍어야 등록되냐? 그런 거 좀 별론데...
 

잭 웨더포드는 예전에 김호동 교수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수업 들을 때 영어 책을 제본하여 보라고 주셔서 알게 된 저자인데, 알라딘에서 알림을 보내줬길래 찾아보니 국내에서도 꽤 출간이 되어 있었네요.


1. 칭기스칸, 잠든 유럽제국을 깨우다.

제가 교수님께 받아서 본 책은 <Genghis Khan and the making of the Modern World>입니다. 이걸 번역해서 이 책이 나오죠.


세부적인 서술이나 사료 해석에는 문제가 있으나 거시적인 시각으로 읽기 쉽게 썼다며 추천해 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영어 책 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도 후닥후닥 읽어서 한 달만에 다 읽었던 걸로 기억해요. 문장도 평이하고 서술도 편하게 돼 있는데다, 몽골제국이라는 게 진짜 흥미진진한 탐구대상이거든요. 여튼 이 책은 유목제국의 발전과 멸망을 '근대적 제도의 도입과 발전'이라는 틀에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몽고제국이 성립하는 과정에서 인두세, 화폐, 교역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이것이 제국을 유지하는 접착제로 작용했다는 시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던한 제국'의 등장이 서양을 모던하게 만들었다는 유사역사학적인 발언까지는 나가지 않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번역은... 제가 영어로만 봐서 제대로 됐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영목 + 사계절이면 뭐 믿을만 하죠. 문장이 평이하고 “본격 학술고전”은 아니기 때문에 사실 크게 불안하진 않습니다. 추천!


2. 칭기스 칸, 신 앞에 평등한 제국을 꿈꾸다

알라딘이 (저자 신작이라고) 소개해 준 책입니다.


이 책은 위 책만큼은 땡기지 않는군요. 몽고제국이 적은 인력으로 광대한 땅을 지배한 데는 (정복 말고 관리 차원에서의 지배 말이죠)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하나가 현지 인력의 적극적 활용이고 둘째가 이를 이용한 제국 내의 “물자/정보 흐름”을 만드는 기술입니다.


1번 책이 후자를 강조했다면 2번 책은 전자를 얻는 기술로 '종교적 관용'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입니다. 너무 나가면 위험한 주제 중 하나죠. 실제로 몽고군의 지배 과정에서 무조건 종교적 관용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특정 종교가 몽고에 개기기를 택했을 경우 상당한 피해를 입기 때문에, 실제적으로는 선택적 관용에 가깝죠. 이걸 너무 과대평가하면 책이 무너집니다. 그런데 위에 소개한 책도, 제국의 모던함만을 강조하진 않는 균형감이 있기 때문에 동양사 교수가 굳이 추천하지 않았겠습니까 ㅎ. 아주 불안할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마케팅 포인트를 이렇게 잡아서 그런가, 마치 칭기스칸이 종교적 관용의 상징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는데, 곤란하죠. 정말 많이 죽였다구요.


3. 칭기스 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

저는 이 책이 오히려 궁금하군요.


 라시드 앗 딘이나 그루쎄 책 등은 남성 위주의 역사서술이거든요(몽고비사는 아직 못 읽어봤는데 여성배제라는 차원에선 대동소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칭기즈칸의 딸들에 대한 서술은 제가 들어본 적이 없는 게 사실입니다. 궁금할 수밖에 없지요.


다만 이 경우 정사가 여성을 배제했다는 것은 '정사로 인정받는/검증된 자료들' 내에서는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위험을 말하기도 합니다. 다시말해, 다른 자료들을 끌어다 메우는 방식으로 점들을 연결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1번의 위험인 사료의 해석 상 문제의 가능성이 더해지면 어이쿠, 몽고는 여성의 국가! 하며 역사를 과대평가하는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라시드 앗 딘의 <칭기스칸기>나 그루쎄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등과 같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그리고 2, 3의 역자가 이종인 씨라는 게 좀 맘에 걸리는군요. 이 분 너무 많이 하십니다. 역서가 무려 298권이에요. 한 달에 한 권씩 해도 25년 걸릴 분량의 책을 내셨단 얘기죠. 물론 정영목 씨 같은 분도 200권이 넘긴 하는데 이분은 교양서나 문학 위주의 작은 볼륨을 많이 하시는 반면 이종인 씨는 촘스키, 호이징가, 카잔차키스에, 얼마 전 화제가 된 칼라나티 책까지. 너무 전방위로 많이 하십니다. 물론 위에 적은 웨더포드의 책들은 문장이 평이하고 아주 전문적인 1차문헌들을 정확히 번역하는 게 핵심인 책들이 아니라 큰 문제는 없겠습니다만.


참, 이 책(야만과 문명,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은 여기서 소개할 계재가 아닌 듯하여 패스합니다. 뭐라고 적을 만한 건덕지가 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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릇 옛글을 빌어 자신의 생각을 드러냄에 있어 말하고자 할때, 옛글을 빌어 드러내고자 하는 당대 사회의 말살이, 그 말살이를 가능케 하는 사회 저간의 사정을 중요시하는 것이 첫째라 할 것이다. 이태리의 대문호 움베르토 에코 선생의 경인년 신작을 견실한 번역가 이세욱 선생이 옮겨 계사년에 출간한 “프라하의 무덤”에서도 이러한 문제 설정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리라.



역자는 후기에서 에코 선생이 19세기의 신문 연재 문학을 되살리려 했다고 말하며 번역 역시 옛글이 주는 맛을 살려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는데, 이를 바탕으로 말하자면 19세기의 연재소설 문학의 문체적 특질뿐만 아니라 그 문학이 놓인 저간의 사회·문화적 사정을 톺아보는 게 의미가 있으리라 본다. 박천한 소양의 평자가 이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적절하지도 않은 바, 옛글의 몸을 빌어 얕은 의견을 몇 자 적는 것으로 그 평가를 갈음한다.


첫째로, 에코 선생이 차용하고 있는 외젠 슈, 빅또르 위고, 大뒤마/小뒤마의 세대는 불란서 시민혁명과 꼬뮌을 거치는, 영국의 홉스봄이 써냈던 19세기 3부작에 걸쳐 있는 시대라 할 것이다. 민족주의가 발호하여 민족국가의 수립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신문 소설이 문학을 넘어 선동과 사회개혁의 도구로서 인식되던 시대, 그 소설의 힘이 줄어들고 음모론 등의 문서와 첩자들의 공작, 불안한 정세가 맞물린 시대는 거칠게 말해 괴력난신의 시대라 해도 그 과함이 지나치지는 않을진대, 그러한 저간사정을 담은 글의 몸을 반도의 문학사에서 빌려 할 때는 그에 해당하는 내셔널리슴이나 혁명의 격률을 담은 文을 참고하는 것도 그 한 가지 방법이라 할 것이다.

한편 역자는 1910년의 번안소설을 률로 삼되 에코 선생이 옛글의 입맛을 살려내는 방식을 참고했다 밝히고 있다(786쪽). 평자의 얕은 소견으로 미루어 보면 민족 독립을 두고 사상들이 쟁투하던 깝프 시기의 문학이나 격문, 신채호의 강파른 아나키슴이나 이광수의 계몽적 글 사이에서 찾을 수 있는 다른 글의 몸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당시의 번안소설들 역시 당대의 지식인에 의해 번역되었다는 점, 당대의 역자들 역시 시대의 격랑을 타고 움직여갔다는 점, 그리고 이것들이 신문지면에 실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딱히 나쁜 선택이라 할 수도 없을 뿐더러, 에코 선생이 '요즘의 글과 옛글 사이에서 벌이려 했던 줄타기'를 각 나라의 글로 살려 달라고 부탁했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이 책의 문장이 선생의 뜻을 살려 담는 데 큰 문제가 없다는 출판사나 역자의 판단에도 졸자는 큰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둘째 논지는 어느 정도 첫째 논지에 닿아 있다 할 것인데, 당대의 글을 되살림에 있어 낱말의 선택이나 말끝의 선택 외에도 문장의 흐름이나 맺고 끊음 역시 중요하다는 점이다. 기실 이 부분은 번역문이라는 이 책의 성격에 기인하는 근원적 문제라 해야 할 것인데, 세기 초 구라파 말글이 가진 흐름을 세기초 반도의 글에 끼워넣는 작업 자체가 근원적인 한계를 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문으로 생각하는 버릇을 들인 자가 외국의 옛글과 반도의 옛글 사이에 벌어지는 충돌을 파악하고 타협하여 중재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기 때문이라 할 것인데, 원글의 뜻을 깨지 않는 한도 내에서 새말글을 만들어 옮겨 담는 역서의 특성상, 지난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역자가 현대문의 흐름을 타고 옛글의 낱말들을 흩뿌리거나 옛글의 색을 덧입히는 정도에서 마무리를 하게 되는 경우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에 불만을 느끼는 독자들도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 작업이 가진 난해함을 차치하고, 참하 읽을 수 없는 문장을 내놓을 수 없었던 역자와 편자의 마음 또한 중요하다 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며, 역자가 마치 자신이 당대의 첩자/평자라도 되는 양하여 에코 선생이 만들어낸 옛글을 반도의 옛글에 끼워넣기 위한 휨과 덧댐을 가한다는 것은 오히려 역자의 책임을 방기하는 귀결로 이어질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바,  현재의 문장에서 굳이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대단히 정당하다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졸자의 취향에 이 글이 충분히 古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그것이 현재의 평균적 독자들의 말글살이에 비춘 것이라 볼 수도 없으며, 비교적 가까운 19세기의 문헌을 차용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문체의 차용에도 불구하고, 현대문이 남아 있을 가능성 또한 全히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말글의 옮김 자체를 소상히 판단하는 것은 원문과 옮긴 글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기 전에는 힘들며, 각국의 역자들이 많은 고민을 기울였을 것이라 믿지만, 어느 경우든 원 글의 뜻을 따라 기존 글 위에 새로운 글을 덧짓는 과정, 덧지은 글을 다듬어 읽을 만한 책으로 박아내는 과정이 지니는 한계를 일정부분 떠안는 지난한 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중한 과업을 성실히 수행해 준 역자와 편자에게 상찬을 보내며, 첩보소설과 연재소설의 틀을 가진 이 책을 통해 19세기의 빠리와 이태리의 정경, 그곳의 사람살이와 말글살이에 대해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에 열린책들 구성원들께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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