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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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대학시절에 "나이는 짤짤이 해서 따는 것이 아니야"라는 농담을 자주 했었다. 주로 어린 나이의 또래들끼리 모여 한두살 더 어린 후배들한테 술 사주면서 하는 소리였지만... 이 책을 보면서 한동안 잊었던 그 농담을 다시 생각해냈다. 우와 나이는 진짜 짤짤이해서 따는게 아니야.

나이 먹는다는게 우리 사회에선 별로 자랑스런일이 못‰쨈? 대부분 그 단어는 몇가지의 욕들과 붙어 다닌다. 온 사회가 미친 듯이 더 젊어보이게 더 어려보이게로 질주하고 있는듯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가끔 인생의 깊이에서 우러나온 무게있는 말이나 글들을 보면 새삼스럽게 신선하고 나도 이렇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나이든다는 것을 정말로 삶에대한 관계에 대한 통찰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으로 느끼고 싶다.

이 소설은 연애소설이다. 하지만 모든 연애소설들의 규칙들을 일거에 부숴버린다. 누구에게나 가슴아련할 첫사랑에 대해 말하면서도 전혀 낭만적이지도 지고지순하지도않다. 오히려 인간이란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가가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그것이 낯설지 않다. 죽고 못살것 같던 잠시의 시간을 벗어나면 우리를 짓누르는 건 생활의 무게이고 그 즈음에서 연애를 하는 모든 인간들의 계산기가 움직인다. 소설속의 나 역시 자신의 삶을 빛내주던 첫사랑을 버리고 안정된 삶을 선택, 은행원과 결혼한다. -그 첫사랑에 대한 묘사에서조차도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소설을 보던 나부터 '에고 이런 인간과 결혼하면 고생길이 훤하다.'라고 생각했으니까... 안정을 찾아 한 결혼은 역시 지나칠정도로 안정적이었고 그 안정감에 지리멸렬하던 중 다시 자신의 생활에 윤활유가 되어 줄 첫사랑과 다시 만나고 그 모든 과정이 자기 중심적으로 합리화된다. 그 남자에게 닥친 불행마저도 자신의 입장에 맞춰 재해석되고...

이 소설을 읽는건 쉽지않다. 인간의 너무나도 적나라한 감정을 대하면서 이것이 나의 모습과 겹치면서 참 부담스럽게 힘겹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아마도 사랑의 환상을 갖고 있었을 20대에 이 책을 읽었다면 나는 책을 던져버렸으리라... 그리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뭐 이리 웃기는 할머니가 다있어!" 하지만 난 아줌마다. 이쯤되니 사랑은 더 이상 환상이 아니라는 것, 생활속으로 들어온 사랑은 오히려 구질구질하게 느껴질 때가 더 많다는 것 정도까지는 인정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아직은 나의 모든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마지막 나의 구질구질함을 숨겨둔다고나 할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다 말하지는 못한다. 아니 안한다. 아니 아예 인정하지 않는다는게 더 정확할까? 자신의 내면속에서조차도 자신을 속이는게 인간이 아닐까? 박완서씨 정도의 삶을 살면 나도 저렇게 나라는 인간의 추한면조차도 당당하게 내보일수 있게 될까?  인간의 마지막 안쪽의 감정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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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토끼 2005-11-09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말씀대로- 저는 읽다가 이 책을 덮어버렸는데요 아직 읽을 마음이 생기지 않네요. 이런 후기들을 쭉 읽어봐도..
 
측천무후 - 상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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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말하지 않더라도 인류의 역사는 남성이 주도한 역사였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인다. 그런 속에서 여성 통치자는 극소수일 수 밖에 없고 그 희소성으로 인해서 그들은 항상 소설의 주인공들이 된다. 그런 여성 통치자들 중에서도 자신의 왕국을 스스로 창출해 낸 사람은 아마도 측천무후, 하나 뿐일 것이다. 얼마나 드라미틱한 인생일까? 그 존재 만으로도 여성독자들을 끌어들일수 있지 않을까

측천무후는 중국 당 태종의 후궁으로 들어갔다가 간택되지 못하고 그 아들 당 고종의 황후가 된다. 그리고 남편이 죽자 아들들을 물리치고 스스로 여황제에 올라 국호를 '주'로 고치고 16년동안 중국을 다스린다. 그녀가 죽은 이후 왕위에 오른 그녀의 아들은 다시 국호를 당으로 고치고.... (이 시기는 우리 역사에서는 고구려가 안시성에서 당 태종의 군대를 물리치고, 결국 당 고종대에 신라와 연합한 당군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바로 그 시기에 속한다)

소설은 일인칭 독백의 형태로 측전무후의 탄생에서 부터 죽음 이후시기까지를 모두 다루고 있다. 일인칭이라는 시점의 선택은 소설적 흥미를 돋우는 역할을 한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측전무후의 내면을 탐색한다. 평민출신으로 당건국에 공헌하여 출세한 아버지 밑에서 행복하던 시절, 아버지의 죽음으로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시절, 궁에 들어가 있는 듯 없는 듯 만명의 여자중의 하나일 뿐이던 시절, 드디어 권력에 진입해 권력을 장악하고 결국 쓸쓸한 죽음을 맞기 까지 측전무후의 내면을 섬세하게 따라가고 있다. 세상의 중심인 남자들을 물리치고 세상의 최고봉에 선 여자, 그 여자의 내면은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법한 나 역시도 궁금할 수 밖에 없는 시점의 선택, 이 책은 아마도 상업적으로 성공할 듯이 보인다.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이 한국에까지 번역된걸 보면 아마도 그러리라.)

하지만 그럼으로써 이 책은 역사소설이 아니다. 이 책에서 역사는 그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할 배경의 역할밖에는...(그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너무나도 감상적인 문체속에서 측천무후라는 역사적 인물은 실종되고 권력의 정점을 향해 꿈을 키우는 그저 한 여자가 있을 뿐이다. (하긴 저자가 역사소설을 표방한 것도 아닌데 이런 얘기는 좀 그렇군...쩝...) 그렇다면 측천무후라는 한 인간의 내면을 정말로 잘 따라잡기는 한걸까? 글쎄 별로 아니다. 책속에 묘사된 측천무후는 그저 그런 한 여자일 뿐이다. 그녀의 이름을 측천무후가 아니라 완전히 허구의 인물이나 아니면 그저 평범한 한 여자로 바꿔쳐도 소설의 내용이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측천무후는 그저 상업성을 위한 소재정도에 지나지 않는게 아닐까?

사족 하나 - 이 책을 중국인들이 읽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글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의 저자가 중국인인것 같은데 겉만 그런것 같다는 생각. 서구인들의 입맛에 맞춰 보여지는 중국. 그들의 오리엔탈리즘적인 환상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구도하에서 계산되어 쓰여졌다는 혐의가 계속 드는 건 왜일까?  아마도 이런 요소가 또한 상업성과 결부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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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의적 2006-07-11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환상에 대해 조금 공감합니다. 그리고 측천무후가 아닌 다른 인물을 대입시켜도 별로 읽기에는 부담이 없을 듯한 소설로 보임.. 역사소설이 아니다라는 점에 상당한 공감입니다.
 
칼의 노래 1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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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이 다들 이 책을 괜찮다고 할 때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순신에 대한 책은 관심이 없었기에.... (내가 관심이 없는건 인간 이순신이 아니라 '장군 이순신에 관한 책'이다.) 이순신은 그야말로 우리 나라 역사에 있어 박제된 영웅이다.(박통시절의 유물이겠지) 그는 지나치게 신성화되어 있어 거의 인간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말그대로 성웅 이순신이다.(이순신을 이렇게 만든 결정적인 인간 박통은 아마 이순신이 이 시대 인간있었다면 그를 죽였을 것이다. ^^)

그래도 유행에 완전히 무심할 수는 없는게 나인지라(내성격의 특징 중 하나 - 부화뇌동형이다.) 어쨌든 손에는 들었는데 어랍쇼? 이건 일인칭이네.. 아니 감히 성웅 이순신에게 이런 시도를.... 사람은 원래 밖으로 보이기에는 있어보여도 그 있어 보이는 한가지를 하기 위해 얼마나 유치하고 잡스런 과정들을 거치는가? 근데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일인칭의 내면 고백이라니...

처음으로 이순신이 인간으로 다가왔다. 적때문에 두렵고 왕때문에 두렵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 두렵고 온갖것이 슬픈 그냥 인간 말이다. 물론 그는 여전히 나같은 범인이 흉내낼 수 없는 저 멀리 위쪽의 인물이지만 그래도 인간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그의 고통 두려움 슬픔을 따라가면서 같이 그러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책의 전체에 흐르고 있는 전쟁의 풍경들은 단지 역사를 지식으로만 알고있는 사람들에게 그 시대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같이 느낄 수 있는 공감으 장을 마련해주고 있다. 역사교과서나 역사책과는 다른 역사소설이 가져야 할 미덕을 고루 갖추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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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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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에 대한 이미지가 좀 가볍지 않나 싶어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본 소설이다. 근데 소재 자체가 우리나라 1900년대의 멕시코 이민사인지라 가벼울래야 가벼울수 없는 글이었다. 그러면서도 비슷한 소재가 나오는 아리랑처럼 이상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실제로 그랬음직하게 사람들을 되살려 놓고 있다.

이 나라에 제국주의 국가들이 물밀듯이 밀려오던 그 시절, 이 땅에서도 못살아 멀리 남의 땅까지 갔던 사람들에겐 어떤 사연들이 있었을까? 다들 만만찮은 사연들이리라. 오죽이나 살기 힘든 시대였는가말이다. 그래도 이 책에서는 그 많은 사람의 사연을 구구절절히 다 풀어놓지는 않는다. 독자의 몫이다.

노예선같은 험한 항해를 마치고 그들이 도착한 멕시코 역시 그들의 꿈대로 신천지는 당연히 아니었다. 가혹한 기후조건, 노동조건하에 노예의 삶을 살아야 했다. 조선에 남아있느니만 못한 삶을... 그래도 그들은 살아낸다. 물론 조선에 남았더라면 살았을 삶과는 천지차이로 다르다. 그들의 성격만큼 다양한 삶들을 주인공들의 심리묘사를 통해 작가는 조심스럽게 이끌어낸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언뜻 등장인물들의 삶이 쉽게 이해 안되는 면이 있다. 가장 극적인건 역시 왕실의 후손인 이종도네 일가다. 아버지인 이종도야 전형적인 조선의 양반으로 산다. 끝까지 선비와 양반의 도를 얘기하면서 무능력하게 시대착오적이게.... 그러나 그외의 가족들 딸 연수는 이정이라는 고아소년과 사랑을 하고 그의 아이를 가지고 그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중인 역관 출신의 악덕 통역관인 권용준의 첩이 되었다가 다시 구한말 제대 군인인 박정훈의 처가되고.... 그녀의 동생 이진우 역시 살길을 찾기 위해 전혀 양반답지 않은 길을 택한다. 권용준에 빌붙어 스페인어를 배우고 그로서 출세의 길을 찾고... 가장 파격적인건 이들의 어머니인 이종도의 아내이다. 연수가 세월이 흐른 후 농장으로갔을 때 어머니는 마야인 감독과 결혼해있다. 조선의 양반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들하고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 모습들이 그 때 양반이 어떤 의식의 소유자들인데 이런 타락을.... 차라리 자결을 했으면 했지라는 결론은 지나치게 성급하지 않을까... 인간의 기존 사고체계가 완전히 허물어지는건 쉽지는 않지만 한 번 무너지면 그 속력은 걷잡을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면 삶에 대한 애착은 말해 무엇하랴? 이들에게 있었던건 살아남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으리라... 일단 그런 생각이 지배하고 나면 기존의 사고방식, 가치관은 쉽게 합리화된다. 그래도 이들의 삶이 더 눈물겨웠다.

소설속의 인물들의 삶이 약간의 거슬리는 비약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 예를 들면 이발사를 하다가 멕시코 혁명에 참여하는 박정훈의 경우 -  주인공들의 심리를 따라가다보면 이해되지 못할 변신은 없다. 인간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그런것이 아닐까?

이 소설을 미학적으로 문학적으로 분석할 능력은 내게는 없다. 하지만 대담한 생략과 섬세한 주인공들의 심리묘사를 통해 독자의 몫을 많이 남기고 있다. 그들의 삶을 상상해보고 그 삶의 중간에 있었을 그들의 육체적 심적 고통들을 헤아릴 시간이 필요하다.

세상을 살다보면 단지 살아남는것만이 절대절명의 과제가 되는 그런 때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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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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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가 들면서 갑자기 집안의 족보니 문중이니 이런걸 챙기는 아버지를 보면서 의아해 했던 적이 있다. 구구절줄 묵은 옛날 얘기들을 끄집어내면서 족보를 잃어버리는데 누구 책임이 제일 컸다는 둥 명절마다 모이면 핏대를 올리는 집안 어른들, 살기도 빠듯한데 집안 족보에 제대로 이름을 올리기 위해 우리 집 형편으로 거금을 쓰는 아버지, 별 쓸데없는 일도 다한다 싶으며 혼자서  "아마 그 족보, 90%는 가짜일걸요. 그냥 우리 집안은 상놈의 집안이예요"라는 말만 웅얼거렸다. 그러다 안동권씨 집에 시집을 갔더니 이 집은 더하군. 오로지 양반출신 집안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에휴~~~ 좋은 전통인지 나쁜 전통인지 전통의 힘은 참 무섭다. 나도 더 나이들면 지금 어른들처럼 저럴려나... 그 오랜세월 다른 사회를 살아오면서도 참 질기게도 살아남는 것들, 족보, 가문의식, 제사, 아들욕심등(딸만 둘인 나는 지금도 친정아버지나 시댁 어른들의 아들 욕심에 하나 더 나을것을 당부받는다. 다행히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부모님들께서 더 이상 안 낳아도 된다고 해주는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한 몇년동안 소설을 안보다가 요즘 들어서 조금씩 다시 읽기 시작했다. 전에는 특히나 한국의 여성작가들이 자신의 신변잡기나 자기 경험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했던 얘기를 우려먹는다는 느낌이 많아서 좀 식상했었다. 그런데 오랫만에 본 한국소설들은 참 많이 나아가고 있구나 생각이 들어 즐거워진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소재의 폭이 참 넓어졌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변의 세계를 떠나 상상력의 범위가 확대되니 그 상상력을 따라가는 사람도 참 즐겁다. 이 책 역시 종가집이라는 흔치않은 소재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시대를 넘어 반복되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마르크스가 얘기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종가집에 시집온 불행한 종부가 친정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글로 진행되는 과거는 너무도 가슴아픈 비극이다. 종손 아들을 낳을때까지만 하더라도 집안의 보물로 애지중지 귀함을 받던 며느리가 남편 죽고 종손아들마저 죽고나서 '집안이 잘못되는건 모두 사람이 잘못들어온 탓'이라며 시아버지의 눈밖에 나고, 뱃속에 있던 유복자마저 딸로 태어나자 딸은 종가의 대를 잇지못하게 되엇다는데 거의 실성하다시피 한 시아버지의 발에 밟혀 죽고 자신은 자결을 강요당하고....이런 과정들이 옛고어체에 실려 더욱 더 가슴을 아프게 한다.

현대에 이르면 주인공 조상룡의 할아버지가 옛 비정한 시아버지의 화신으로 나온다. 그는 망해가는 종가를 다시 일으켰고 가문의 명예를 되찾는 것만이 삶의 유일한 목표인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손자 조상룡은 눈에 차지 않는 손자다. 친손자이기는 하지만 무엇 하나 특별난게 없고 결정적으로 그 출신이 자신이 인정하지 않은 혼인을 통해 난 손자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주눅들어 자란 상룡 역시 마음의 상처와 빈 구멍으로 가득찬 사람일 수 밖에 없다. 제대로 된 애정이라곤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그에게  맹몽적인 사랑을 주는 이가 부엌데기 정실이다. 정실이가 다리 병신에다 80kg이 넘는 거구에다 지독하게 못생겼으나 상룡에게 중요한건 그의 자아를 인정해 주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일게다. 이들의 관계는 당연히 할아버지에게 인정 받을 수 없고 소설은 비극을 향해 치닫는다. 그러나 과거의 비극이 시대적 한계에 갇혔던 사람들의 어쩔수 없는 행보로 순전히 비극이었다면, 현대에 이르러 상룡의 할아버지의 비극은 시대착오에 감금된 한 인간의 아집이 스스로 만들어낸 비극이라 아픔보다는 조소를 날리게 된다.

이 소설을 단순히 종가집이야기나 아들 선호사상에 대한 경종정도로 읽고 싶지는 않다. 모든 인간들은 모두 자신의 내면에 자신만의 집을 짓고 산다. 그 집은 너무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있어 왠만한 외풍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을 아집이라 부르든, 독선이라 부르든....그런 독선을 외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될때는 누구나가 이렇게 비극으로 치달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리라..... 이 책을 나는 오히려 이런 인간성에 대한 성찰로 읽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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