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학교 5.18연구소에서 내는 학술지 [민주주의와 인권] 23권 2호에 실리는 논문을 올립니다. 


이 논문에 관해 토론하거나 비평하기를 원하는 분들은 학술지에 게재된 판본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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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과 불화하기

[이 글은 2022616~17일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주관으로 진행된 “518, 역사와 기억의 불화학술대회의 기조강연으로 처음 발표되었으며, 20229235.18 기념재단의 오월기억포럼에서 다시 발표된 바 있다. 두 차례의 강연에서 유익한 조언과 토론을 통해 수정과 보완의 기회를 마련해준 청중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아울러 이 글의 심사위원 두 분의 세심하고 유익한 조언에도 감사드린다. 앞으로 다른 연구에서 조언에 부응하는 주제를 다뤄보고 싶다. 다른 심사위원 한 사람의 비평에 대해서는 각주 7)에서 답변을 제시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국문초록

이 논문은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불화’(mésentante, disagreement)라는 개념을 빌려와서 5.18 광주항쟁의 의의와 한계, 과제를 새롭게 고찰해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5.18과 불화하기라는 제목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첫째, ‘5.18의 정신에 입각하여 X와 불화하기를 의미하며, 여기에서 5.18은 무엇보다 불화의 정신, 불화의 힘을 의미한다. 하지만 둘째, 이 제목은 또한 ‘5.18에 맞서 5.18과 불화하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은 5.18의 핵심인 불화의 정신으로 성역화되고 물신화된 5.18을 문제 삼아야 함을 가리킨다. 결국 이 논문은 5.185.18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핵심으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5.18이 맞서 싸운 국가폭력의 성격을 해명해야 하는데, 우리는 에티엔 발리바르의 극단적 폭력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것을 극단적 국가폭력으로 규정하고자 한다. 이러한 폭력은 비인간적 야만성으로 특징지어지는 것이며, 폭력의 피해자를 동일한 폭력에 오염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5.18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최후의 항쟁 투사들이 대항적 폭력의 유혹을 이겨내고 극단적 국가폭력에 맞서 반폭력적인 투쟁(에티엔 발리바르) 내지 비폭력적인 저항(주디스 버틀러)을 실행할 줄 알았다는 점이다. 반면 5.18은 한국 사회의 감각적인 것의 나눔의 중심에 빨갱이를 배제하는 극단적 폭력이 존재한다는 통찰에 이르지 못했으며, 그것에 대한 저항을 5.18 자신의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삼지 못했다. 이는 5.18의 리프리젠테이션에 관한 불화가 5.18과 불화하기의 장래를 규정함을 의미한다.

 

 

 

주제어

5.18, 국가폭력, 극단적 폭력, 리프리젠테이션, 불화, 에티엔 발리바르, 주디스 버틀러, 자크 랑시에르

 

 

 

I. 머리말

 

내가 이 글에서 말해보고 싶은 것은 ‘5.18과 불화하기라는 주제다. 뒤에서 더 자세히 말하겠지만, 이것은 이중적인 의미로 이해되어야 하는 주제다.


첫째, 이 제목은 ‘5.18과 함께 불화하기를 가리키며, 이 경우 5.18의 정신, 5.18의 핵심은 불화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으로서 5.18은 무엇보다 불화의 정신이다. 군사독재와 타협하지 않고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온갖 종류의 지배와 차별, 배제에 저항하는 불화의 힘이 바로 5.18을 한국 민주주의의 토대로 만들고 그칠 줄 모르는 민주화의 동력으로 만들고 있다. 따라서 5.18은 불화의 정신, 불화의 힘으로서 타오를 때 5.18로서 살아남을 수 있고 5.185.18로 살아 움직일 때 한국 민주주의도 생생한 현재의 운동으로 지속될 수 있다. 따라서 ‘5.18과 불화하기의 첫 번째 의미는, 불화의 힘, 불화의 정신으로서 5.18과 함께 하기이다.


둘째, 하지만 또한 ‘5.18과 불화하기불화의 정신으로서의 5.18에 입각하여 5.18 자신과 불화하기,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궁극적인 권위로서, 성역으로서의 5.18에 맞서기이다. 따라서 이 글의 제목이 뜻하는 두 번째 의미는 무엇보다, 1980518일 이후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시점에서 5.18의 현재는 어떤 것인지, 그것은 여전히 불화의 정신, 불화의 힘으로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 아니면 혹시 그것은 이미 불화의 불씨가 수그러든 채 일체의 비판과 교정, 변화 및 개조의 요구에 대해 면제되어 있는 모종의 성역이 된 것은 아닌지, 그럼으로써 한국 민주화의 지속적인 동력보다는 오히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국가권력의 보호에 의탁하고 있는 박제된 골동품이 된 것은 아닌지, 또는 그렇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보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글의 제목인 ‘5.18과 불화하기5.18과 함께 5.18에 맞서 불화하기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오늘 그리고 내일 5.185.18로서 남아 있기 위해 또는 영속적인 불화의 힘으로서 작용하기 위해 우리가 5.18에서 배우고 교훈을 이끌어내고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확장해가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해보는 일이다. 요컨대 5.185.18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해보려는 것이 이 글의 궁극적인 목표다.

 

II. 불화에 대하여

 

그럼 먼저 이 글의 모티브를 이루고 있는 불화라는 개념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해보겠다. 이 개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불화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의 정치철학을 집대성하고 있는 󰡔불화: 정치와 철학󰡕이라는 책에서 유래하는 것이다(Rancière, 2015). 내가 불화로 옮기고 있는 단어는 프랑스어로 메장땅뜨(mésentante)이다.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 번째 의미는 듣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한다는 뜻이다. 메장땅뜨의 어근을 이루는 앙땅뜨(entente)듣기이해하기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며, 그 동사형인 앙땅드르(entendre) 역시 듣다이해하다라는 중의적인 뜻을 지닌다. 따라서 앙땅뜨의 반대말인 메장땅뜨는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둘째, 이 단어는 다른 한편으로 논쟁이나 갈등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프랑스어에서 고부간의 갈등이나 고용주나 피고용인 사이의 갈등을 가리킬 때 바로 이 단어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메장땅뜨, 곧 불화는 한 편이 말하는 것을 다른 한 편이 듣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갈등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실제로 랑시에르 자신이 불화의 기본적인 의미를 이렇게 제시한다.

 

대화자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알아들으면서도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 불화는 희다고 말하는 사람과 검다고 말하는 사람 사이의 갈등이 아니다. 그것은 희다고 말하는 사람과 희다고 말하는 사람 사이의, 하지만 같은 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또는 상대방이 흼이라는 이름 아래 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다(Rancière, 2015: 17).

 

예컨대 오늘날 민주주의는 누구나 사용하고 누구나 원용하는, 말 그대로 보편적인 단어 내지 이념이 되었다.[또는 다른 식으로 말하면, 만약 누군가가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정치적 가치나 이념에서의 불일치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질서 및 인간적인 삶의 양식 자체에 관한 전혀 상이한 기준을 채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서구식 민주주의에 대해 반대하는 이슬람이나 중국 등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동일하게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조선일보󰡕가 이해하는 민주주의와 국내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해하는 민주주의, 이주노동자나 성적 소수자가 이해하는 민주주의는 동일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또한 신군부가 이해하는 5.18과 당시의 광주 시민들이 이해하는 5.18, 광주 시민들 가운데서도 무기 반환을 주장했던 이들이 이해하는 5.18과 도청을 사수하려고 했던 이들이, 또한 나중에 유공자가 된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이 이해하는 5.18이 같은 것일 수는 없다.


하지만 랑시에르가 불화라는 용어를 자신의 정치철학을 집대성하고 있는 책[내가 집대성이라는 말을 두 차례에 걸쳐 사용하는 것은, 그만큼 이 책이 랑시에르의 정치철학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 이후 랑시에르는 정치철학 대신 미학 연구에 몰두하는데, 그의 미학 연구의 근간이 되는 감각적인 것의 나눔 개념이 󰡔불화󰡕에서 유래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불화󰡕는 랑시에르의 정치철학을 이해하는 데서나 미학을 해명하는 데서 공리(axiom)와도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의 제목으로 사용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야 한다. 랑시에르에게 불화라는 개념이 중요하다면, 그것은 그가 보기에 어떤 주장에 대한 토론이 토론 대상에 대한 계쟁(係爭, litige; dispute) 및 그 대상을 대상으로 만드는 이들의 자격에 대한 계쟁에 준거하게 되는 것이 바로 불화의 구조(Rancière, 2015: 20)이기 때문이다. 만약 민주주의를 둘러싸고 불화 또는 계쟁이 발생한다면, 그리하여 자유가 중요하냐 평등이 중요하냐, 형식적 절차가 중요하냐 아니면 실질적 ()분배가 중요하냐, 다수결이 중요하냐 소수의 권리가 중요하냐 등과 같은 논쟁이 일어난다면, 이것은 논쟁의 상대방들이 민주주의라는 말로 동일한 대상을 지칭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주장에서의 불화는 대상 자체에 대한 불화를 이미 함축하고 있다. 더 나아가 대상에서의 불화는, 민주주의라는 대상을 그 대상으로 제시하는 이들의 자격(qualité)에 대한 계쟁을 함축한다. “민주주의는 바로 이것이야또는 “5.18의 본질은 이런 거야라고 말하는 이들의 주장에는 이미 그 대상에 걸맞은 주체가 누구인지, 어떤 자격을 가진 이들이 민주주의나 5.18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드러나지 않은 암묵적인 전제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전제는 그냥 관념들 내지 믿음들의 질서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랑시에르가 감각적인 것의 나눔”(partage du sensible)이라고 부르는 사회의 기본적인 짜임(configurations)에 터하고 있다. 곧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 행위 양식들과 존재 양식들 및 말하기 양식들 사이의 나눔(Rancière, 2015: 63)을 의미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둘러싼 또는 5.18을 둘러싼 불화는,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가에 관한 불화(민주주의 또는 5.18이라는 대상의 본질은 무엇인가), 누가 그것을 말할 자격이 있고 자격이 없는지에 관한 불화(누가 민주주의의 주체인가, 누가 5.18의 진정한 주역인가, 누가 유공자가 될 만한가, 누가 국립묘지에 안장될 만한가, 곧 누가 애도할 만하고 애도할 만하지 않은가 등) 이전에, 어떤 행위 양식과 존재 양식, 말하기 양식이 올바른 것인지, 어떤 행위가 수행될 수 있는 것이고 어떤 존재 양식이 허용될 수 있는 것인지, 어떤 말하기가 가능한 것인지를 둘러싼 불화다.


따라서 랑시에르가 말하는 불화는 흔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럴 만한 것이, 행위 양식, 존재 양식, 말하기 양식의 나눔과 같은 감각적인 것의 나눔은 정상적인 사회적 질서의 기본 조건을 이루는 것이며, 우리가 아는 대개의 사회적 갈등은 이러한 조건 위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매년 수많은 노동 쟁의가 일어나지만 이 쟁의들 가운데 랑시에르가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라고 부르는 것을 문제 삼는 일은 매우 드물다. 4년에 한 번씩, 또는 5년에 한 번씩 우리 사회의 운명을 좌우한다고들 말하는 주기적인 권력 투쟁이 발생하지만, 이러한 권력 투쟁이 감각적인 것의 나눔을 둘러싼 불화를 촉발하는 경우 역시 매우 드물다. 그러한 투쟁은 대개 감각적인 것의 나눔에 기초를 둔 치안 질서를 전제한 가운데,[잘 알려져 있다시피 랑시에르는 우리가 보통 정치라고 부르는, “집단들의 결집과 동의, 권력의 조직, 장소들 및 기능들의 분배, 이러한 분배에 대한 정당화 체계”(Rancière, 2015: 61)치안”(police)이라고 재규정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 말하는 치안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평상시 사용하는 용어의 의미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졌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 내부에서의 몫을 둘러싼 투쟁의 성격을 지닌다. 이 투쟁이 사소하다거나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랑시에르 자신이 지적하다시피 모든 정치 질서는 기본적으로 치안의 질서에 불과하다는 허무주의적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더 좋은 치안과 덜 좋은 치안이 존재하며, 치안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더 좋은 치안 역시 치안의 본성을 전혀 변화시키지 못(Rancière, 2015: 64, 65)한다. 그것은 어쨌든 치안으로 남아 있다.


랑시에르에게 진정한 의미의 정치란, (그에게는 정치는 곧 민주주의이고, 민주주의와 다른 정치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란, “부분들 및 부분들의 몫이나 몫의 부재가 정의되는 [치안이라는] 짜임과 단절하는 것(Rancière, 2015: 63). 감각적인 것의 나눔과 불화를 일으키고 그것과 단절할 때 정치가 발생한다. 그런데 만약 치안이라는 것이 단순히 제도적인 차원에서의 지배에 의거해 있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인 것의 나눔, 행위 양식들과 존재 양식들 및 말하기 양식들 사이의 나눔에 토대를 두고 있다면, 어떻게 이러한 감각적인 것의 나눔 및 치안의 질서와 단절하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가 랑시에르의 치안에 대한 정의, 감각적인 것의 나눔에 대한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진정한 의미의 정치 또는 민주주의가 발생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그것은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또는 총선에서 압도적인 의석수를 확보한다고 해서 또는 대통령을 탄핵한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가 역사적으로 알고 있는 혁명들조차도 랑시에르적인 정치 내지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를 충족시키는 데는 불충분해 보인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혁명들조차 기존의 행위 양식, 존재 양식, 말하기 양식과 단절하고 그것을 개조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한 불충분함 때문에 역사적인 혁명들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조금 다른 시각에서 레닌주의로 대표되는 20세기 마르크스주의 혁명 전략을 “2단계 전략”(stratégie en deux temps, two steps strategy)으로 규정한 바 있다(Wallerstein, 2017: 또한 김정한, 2020도 참조). 혁명의 첫 번째 단계는 부르주아 계급에게서 국가 권력을 탈취하는 것이며, 두 번째 단계는 이러한 권력을 바탕으로 사회 체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따라서 착취와 억압을 행사하는 체계를 더 평등하고 더 민주주의적인 체계로 전화하기 위해서는 국가 권력의 장악이 필수적인 과제가 된다. 이것은 비단 마르크스주의 또는 레닌주의에 고유한 전략은 아니다. 아마도 민주당 정부(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 ...)를 지지하는 많은 이들 역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러한 전략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특히 사회적 약소자들 또는 을들에게) 이러한 전략이 가능하고 또한 바람직할까? 월러스틴 자신은 1968년의 세계 혁명이래 이러한 전략은 더 이상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혁명을 비롯한 사회주의 혁명(및 제3세계의 민족해방혁명)에서 구현된 2단계 전략은, 첫 번째 단계에서 성공했다 하더라도 두 번째 단계에서는 거듭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은 장악했지만 지배 계급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새로운 체계는 이전 체계보다 더 자유롭지 못할뿐더러 딱히 더 평등하다고, 그리고 더 민주주의적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2단계 전략에 전제되어 있는 생각은, 국가란 중립적인 통치의 도구이며, 정의로운 목적을 지닌 선량하고 유능한 엘리트들(레닌이나 마오, 또는 김대중이나 노무현 등)이 국가권력을 갖게 된다면, 이러한 통치 도구를 정의로운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2단계 전략을 고수하는 한, 늘 약소자들, 을들에게는 대의를 위해 희생할 것이 요구될 것이다. 지금 당장 각각의 영역에서, 각각의 조직에서, 각각의 실천에서 을들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대신, 먼저 갑의 권력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단결하고 통일해야 하고, 선차적인 목표와 부차적인 목표를 구별해야 하며, 전자를 위해 후자는 포기되거나 지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는 먼저 적폐 세력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누가 압도적인 여당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소수 정당 대신 특정한 야당이나 여당에게 표를 몰아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소수 정당에게 투표할 수 있는 기회는 결코 나타나지 않으며, 약소자들, 을들의 몫을 위한 정치의 시간은 도래하지 않는다. 랑시에르와 월러스틴이 각자의 방식대로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이 바로 이런 생각이다.


다시 앞의 논의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기존의 감각적인 것의 나눔과 단절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행위 양식, 존재 양식, 말하기 양식과 단절하고 그것을 개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랑시에르는 단절은 이러한 [감각적인 것의 나눔의] 짜임에서 아무런 자리도 갖지 못한 어떤 전제, 곧 몫 없는 이들의 몫(part des sans part)이라는 전제를 통해 이루어진다(Rancière, 2015: 63)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말하는 단절로서의 정치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이러한 단절은 부분들과 몫들, 몫들의 부재가 정의되는 공간을 다시 짜는 일련의 행위들에 의해 명시된다. 정치적 활동은 어떤 신체를 그것에 배정된 장소로부터 이동시키거나 그 장소의 용도를 변경하는 활동이다. 이러한 활동은 보일만한 장소를 갖지 못했던 것을 보게 만들고, 오직 소음만 일어났던 곳에서 담론이 들리게 만들고, 소음으로만 들렸던 것을 담론으로 알아듣게 만드는 것이다(Rancière, 2015: 63).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정치란 감각적인 것의 나눔의 질서, 그 짜임을 재편하거나 개조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전의 감각적인 것의 나눔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만들고, 소음으로만 들렸던 것을 조리 있는 말 내지 담론으로 들리게 만드는 행위, 이것이 랑시에르가 말하는 정치의 핵심이다. 이것은 역사적인 혁명들보다 훨씬 더 사소할 수 있지만(실제로 랑시에르가 제시하는 정치의 사례들 가운데는 민중 권력의 획득이나 새로운 헌법의 제정과 관련되어 있는 혁명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혁명들이 변화시키지 못한, 정치적 관계 및 사회적 관계의 기본적인 짜임을 문제 삼고 개조하려는 활동이다.

 

III. 5.185.18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1. 불화로서의 5.18

 

이제 내가 왜 이 글의 제목을 ‘5.18과 불화하기라고 붙이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조금 더 분명히 드러났으리라 생각한다. 5.18과 불화하기는, 현대 철학에서 널리 쓰이는 또 다른 용어법으로 말한다면, ‘5.18을 탈구축하기’(deconstructing 5.18)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자크 데리다의 유명한 이 개념을 이 글의 제목으로 삼을까 하는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보다는 ‘5.18과 불화하기가 제 논점을 더 잘 전달해주는 것 같다. 더욱이 이 제목은 이미 제목의 뉘앙스 자체에서 5.18 또는 5.18 연구를 탈구축하기라는 의도를 품고 있다.


5.18과 불화하기는,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무엇보다도 5.18을 불화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가리킨다. 내 생각에 5.18은 불화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며, 성립할 수도 없는 것이다. 5.18불화 그 자체. 우선 5.18은 국가폭력과의 불화일 것이다. 5.18의 배경을 이룬 것이 계엄령의 전국 확대라는 국가폭력이었으며, 5.18을 직접 촉발한 것이 공수부대의 폭력이었고, 5.18을 비극적인 사건으로 종결되게 만든 것 역시 국가폭력이었다. 5.18은 국가폭력과의 불화 없이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점점 더 강렬해지는 국가폭력에 대한 대담한 저항이 없었다면, 그리고 도청 사수의 최후의 순간까지 국가폭력의 야만성을 드러내려는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결단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5.18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저항과 결단을 통해 5.18은 한국 현대사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평상시에는 드러나지 않는 감각적인 것의 나눔 속에 극단적 폭력이 내재해 있음을 드러내주었다. 우리는 5.18 덕분에 우리 사회의 저변에는, 우리의 행위 양식과 존재 양식, 말하기 양식을 규정하는 극단적 폭력이 존재해왔으며,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5.18은 공동체와의 불화다. 뒤에서 더 논의하겠지만, 5.18은 죽음을 각오한 시민들의 연대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공동체가 사실은 불화의 대상임을 보여주었다. 국민 공동체와 그것을 상징하는 것, 태극기, 애국가 등은 자명한 어떤 것이 아니라, 적대적인 갈등 및 폭력을 내포하고 있는 것임을 5.18은 드러내주었다. 더욱이 5.18은 이른바 절대공동체항쟁공동체내부에도 또 다른 갈등이나 적대가 내재한다는 점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좀 더 비판적으로 말한다면, “절대공동체항쟁공동체같은 개념들은 그것에 내재하는 갈등을 (정신분석 용어를 사용한다면) 상상적으로 봉합하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5.18은 리프리젠테이션(representation)과의 불화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에서 리프리젠테이션이라는 용어를 최대한 넓게 사용하고 있다(이런 의미의 리프리젠테이션에 관해서는 (Fraser, 2007; 진태원, 2019). 그것은 표상이나 재현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기억이나 서사를 포함하고, 더 나아가 정치적 의미의 대표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5.18은 우리가 국가폭력을 재현하고 공동체를 표상하고 대표와 주권을 사고하는 방식, 더 나아가 역사를 기억하고 역사와 삶을 서사화하는 방식에 깊은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끼치고 있다. 5.18 이후 우리는 더 이상 국가폭력과 공동체, 역사에 대해 이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재현하고 표상하고 기억하고 서사화할 수 없으며, 주권과 대표에 관해, 따라서 정치적 실천에 관해 동일한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위할 수 없게 되었다. 더 나아가 5.18에 대한 리프리젠테이션 자체가 지속적으로 자기 자신과 불화를 일으키고 있다. 5.18광주사태광주의거”, “광주학살로 재현되었다가 다시 “5.18 광주민중봉기내지 민중항쟁또는 민주화운동으로 재현되었고, “5.18”이라는 숫자로 표상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명칭이 함축하는 5.18 리프리젠테이션의 불화는 아마도, 재현과 기억, 서사의 공식화에도 불구하고, 또는 어쩌면 바로 그것으로 인해,[최정기(최정기, 2020)1997년 대법원 판결에 의한 5.18 기억의 공식화가 2000년대 5.18에 대한 왜곡과 조작을 촉발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바 있다. 그것은 5.18에 대한 공식적인 진상규명보고서가 나온다고 해서, 또는 실증적인 진실 규명 작업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종결될 수 없을 기억전쟁이다. 그러한 기억전쟁은 민주화 운동 내부에서도 역시 종결될 수 없이 전개될 것이다.] 종결되지 않고 지속될 것이다. 민주화운동에 맞서, 그리고 민주화운동 내부에서도.

 

2. 국가폭력과의 불화

 

따라서 내가 불화라는 개념을 화두로 삼아 살펴보려고 하는 주제는 5.185.18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인데, 이 주제는 새로운 주제라고 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 주제는 지난 40여 년 동안 5.18 연구 및 5.18에 관심 있는 이들이 거듭해서 묻고 또 물었던 주제, 5.18에 관한 고찰의 근본 주제라고 할 만한 것이다. 예컨대 5.18연구의 대표작 중 한 권인 󰡔오월의 사회과학󰡕에서 최정운은 절대공동체라는 유명한 개념을 제시한다. 5.185.18로 만드는 것, 5.18우리 역사에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게 만든 사건이며, 아울러 우리 모두에게 각자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만드는 사건(최정운, 1999: 26)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절대공동체라는 주장이다. 반면 김정한은 이러한 관점을 비판하면서 5.18대안 국가도 계급도 없는 항쟁이었으며, “공수부대와 맞서는 극한의 상황에서 광주 시민들은 국민 그 이상의 국민을 지향했으며, 자유민주주의라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내재해 있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적 보편성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저항했다고 주장한다. 5.18이 보여준 것은 대중 봉기의 가능성과 힘”(김정한, 2021: 73~75)이었다.


다른 한편 최정기는 5.18공수부대에 의한 국가폭력과 그에 대한 저항이라는 두 가지 과정으로 이루어졌다”(최정기, 2021: 217쪽 주 1))는 견해를 제시한다. 그는 대개의 5.18 연구들이 저항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국민들의 저항을 강조하기에 앞서서 더 절실한 것은 국가권력에 의해 아무런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민간인들이 살해당했다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유 없이 정부의 총에 맞아 죽지 않는다는 보장을 받을 수 없는 나라에서 어느 누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가? ...... 최소한도의 관점을 취해도 쟁점은 국민이 함부로 살해돼서는 안 된다는 보장에 관한 것이다. 이 보장은 국가가 국민의 국가로 성립하기 위한 최소한도의 조건이다.”(최정기, 2001: 405) 그에 따르면, 5.18이 지닌 이 측면은 폭력의 세기로서 20세기에 이루어진 수많은 대학살 사건들, 곧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나 일제의 난징대학살,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보스니아의 민족청소’(ethnic cleaning) 등과의 연관성을 살피기 위해서도 주목해야 하는 지점이다.


나는 최정기의 이러한 견해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5.185.18로 만든 것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5.18에서 자행된 국가폭력의 성격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5.18의 시초에 국가폭력이 존재했다는 것, 이러한 폭력이 5.18의 비극을 산출했고 또한 그 경이와 숭고함을 산출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어떤 국가폭력이었는지, 왜 그것이 광주 시민들을 그토록 충격에 빠뜨렸고, 또한 이후의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충격을 주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정운은 5.18 초기 공수부대가 자행했던 국가폭력의 성격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인상적으로 서술한 바 있다.

 

5.18 광주는 폭력극장이었다. 죽거나 살거나가 문제가 아니라 처참하고 눈 뜨고 볼 수 없게 패고 찌르고 자르는 등 엽기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진압의 기본 원칙이었고, 이를 위해 이미 4월에 특수 진압봉을 주문했고 처음부터 대검을 사용했다. 공수부대의 만행은 우리 사회의 특이한 국가권력의 폭력 사용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악용한 것이었다. 우리 사회는 발포는 용서하지 않지만 통상적 폭력, 예를 들어 구타 등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면을 악용한 것이다. 말하자면 총을 쏘면 안 된다는 윤리적 기준, 더 정확히는 정치적 정통성의 기준을 군부는 총만 안 쏘면 된다로 뒤집어 실행한 것이었다.


이러한 폭력은 시위 진압이라 할 수 없으며 통상적 폭력도 아니었다. 이는 시각적 언어였고 명쾌한 뜻을 전하고 있었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며, 악귀다그리고 우리에게 너희들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또한 이들의 폭력, 특히 전설처럼 남아 있는 엽기적 행위는 결코 인간의 공격적 본능이나 분노의 표현이나 환각제의 효과가 아니라 고도로 훈련되고 오랜 연습을 통해 익힌 전문 기술이며 주로 월남전에서 갈고닦은 것이었다. 5.18의 공수부대는 문명이 이성으로 만들어낸 야만이었다(최정운, 2012: 90~91).

 

최정운의 묘사는 5.18을 촉발한 국가폭력이 세 가지 측면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다. 첫째, 그것은 폭력극장이라는 말이 시사하듯, 의도적으로 자행된 것이었다. 의도적으로 엽기적인 폭력을 연출함으로써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공포를 자극하여 시위를 무력화하려는 것이 그 국가폭력의 목적이었다. 둘째, 그것은 민간인에 대한 군인의 총기 사격이라고 하는, 한국 사회에서 금기가 된 폭력 이하의 수준에서 허용된 최대치의 폭력을 행사한 것이었다. 이것은 합법성의 틀 안에서도 국가폭력은 얼마든지 잔인하게 실행될 수 있음을 시사해준다. 셋째, 최정운 선생은 공수부대의 엽기적 폭력, 주로 월남전에서 갈고닦은 이 폭력은 고도로 훈련되고 오랜 연습을 통해 익힌 전문 기술”, “문명이 이성으로 만들어낸 야만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를 연상시키는 반인간적 폭력, 또는 에티엔 발리바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극단적 폭력(violence extême)의 형태를 띠고 있다(Balibar, 2010; Balibar, 2012).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며, 악귀다그리고 우리에게 너희들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최정운의 표현은, 이러한 국가폭력의 반인간성 내지 야만성을 섬뜩하게 드러내고 있다.


내가 최정운의 인용문을 소개하면서 국가폭력이라는 말에 작은따옴표를 사용한 이유는, 이 개념이 외양에도 불구하고 자명하지 않다는 점을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5.18의 중심에 국가폭력이 있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5.18 이후, 5.18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루어진 국가에 의한 민간인 학살 또는 간첩 조작과 고문, 의문사 등의 행위들에 대해 이제 광범위하게 국가폭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국가폭력이라는, 자명해 보이는 이 개념은, 사실 적지 않은 애매성(ambiguity)을 포함하고 있다. 우선 국가폭력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자. 직관적으로 그것은 ‘state violence’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구글학술검색을 사용해보면 ‘state violence’라는 표현은 상당히 드물게 사용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우리말의 국가폭력에 상응하는 말로 영어에서 더 폭넓게 사용되는 것은 ‘state terror’라는 표현이다. 실제로 과거청산이나 이행기 정의 등과 관련된 연구에서는 많은 경우 ‘state terror’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예컨대 국내에도 번역되어 있는 프리실라 헤이너의 󰡔국가폭력과 세계의 진실위원회󰡕의 영어판 제목은 “Unspeakable Truths: Confronting State Terror and Atrocity”이다(Hayner 2002; Hayner 2008).


이와 관련하여 서승은 한 글에서 일반적인 의미의 테러와 구별되는 국가테러에 대해 이렇게 규정한 적이 있다.

 

[국가테러는] 소수파에 의해 행사되는 테러가 아니고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자에 의한 테러를 말한다. 통상적으로 권력의 행사는 법질서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민주적인 절차를 거친 다수의 지지에 의거하지 않고 권력을 장악한 정치적 정통성이 없는 국가권력의 경우는, 소수 집권자의 의지를 강요하거나, 합법성을 위장하기 위하여 열등한 아웃사이더집단을 희생양으로 삼거나 하여 대중에 대한 테러를 가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계엄령, 히틀러의 비상대권, 유신시기의 긴급조치 같이 법으로 위장한 초법적인 수단으로 민중에 대하여 압도적인 공포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적나라한 폭력을 동원하여 민중을 지배 혹은 말살하기도 한다(서승, 2001: 922, 4)).

 

서승은 국가 테러의 특징을 정치적 정통성이 없는 국가 권력에 의해, 소수 집권자의 의지를 강요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지는 대중에 대한 테러라고 요약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5.18 당시 신군부의 명령에 따라 자행된 광주 시민들에 대한 공수부대의 폭력과 잘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가에 의한 민간인 학살 또는 간첩 조작과 고문, 의문사 등의 행위들을 지칭하기 위해서도 국가테러라는 용어가 더 적절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국가테러와 국가폭력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이다. 국가테러가 민주적인 절차를 거친 다수의 지지에 의거하지 않고 권력을 장악한 정치적 정통성이 없는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이라면, 국가폭력은 정치적 정통성을 지닌 국가권력에 의해 (우발적이든 고의든 간에) 행해지는 폭력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일반적인 의미의 국가권력이 행사하는 공권력과 국가폭력의 차이는 어떤 것일까? 전자가 합법성의 틀 속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쳐 행사되는 것이라면, 후자는 반대로 적법하지 않은 절차에 따라 행사되는 불법적인 공권력이라고 정의하면 될까? 하지만 형법적인 측면에서 보면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해도 그것이 바로 국가폭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공권력의 행사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국가폭력이 되려면 공권력의 행사가 그 자체 형법적인 의미에서 불법이 되어야 한다. 즉 국가공권력이 합법의 틀을 벗어나 형벌권의 청구대상인 국가폭력이 되기 위한 일차적 조건은 그것이 형법의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해야 하는 것이다.”(김성돈, 2018: 12) 이러한 형법적인 규정을 뒤집어서 생각해본다면, 범죄구성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서 법적인 측면에서 국가폭력으로 규정되지 않고 따라서 처벌의 대상이 되지도 않지만, 사실은 다양한 방식으로 행사될 수 있는 국가폭력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합법성의 틀 내에서 시민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피해를 주고, 심지어 상해나 사망을 낳을 수도 있는 국가 공권력의 행사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공권력과 국가폭력의 차이를 규정하기에는 합법성이라는 기준이 충분치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국가권력이라는 개념 자체에 내재하는 애매성 때문이다. 발터 벤야민과 자크 데리다가 보여주었듯이, 게발트(Gewalt)라는 독일어 단어는 이러한 애매성을 잘 드러내준다(Benjamin, 2004; Derrida, 2004). 왜냐하면 게발트는 한편으로 국가권력’(Staatsgewalt)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면서 동시에 불법적인 폭력을 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동일한 한 단어가 적법한 공권력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불법적인 폭력을 함축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폭력을 정의하려고 할 때 “‘국가를 주어로 하고 폭력을 술어로 하는 합성어인 국가폭력은 국가권력 내지 국가공권력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에 있다”(김성돈, 2018: 11)거나 “‘국가폭력이라는 말은 사실 동어반복일 수 있는데 모든 국가는 폭력 수단을 독점한다는 전제 위에서 유지되고, 법과 사회계약 질서라는 것도 폭력 사용의 위협 아래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김동춘, 2013: 115) 같은 유보 조건을 달아놓고 시작하는 경우들이 나오게 된다.


이처럼 국가권력과 국가폭력의 관계가 우리가 보통 가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밀접하다는 것이 드러나면, 국가폭력의 문제는 더 복잡해지고, 5.185.18로 만든 국가폭력의 정체의 문제도 더 미묘해진다. 김동춘은 위와 같은 유보 조건 속에서 국가폭력을 이렇게 규정한다.

 

이러한 폭력이 국가의 공식 정책과 방침, 제도와 법, 이데올로기에 의해 저질러질 때 우리는 국가폭력이라 말할 수 있다. ...... 국가가 노골적인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드물기는 하지만 국가는 언제나 폭력을 행사할 준비가 되어 있고, 사실 근대 국가의 건설과 운영이 전쟁 혹은 폭력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었다. 국가폭력의 주요 주체는 주로 군대와 경찰 및 민간 정보기관, 그리고 양 조직 내의 사찰기관이나 정보기관이다. 이들은 전쟁 혹은 평화 시에도 안보와 질서의 이름으로 주로 폭력을 지휘 명령한다.(김동춘, 2013: 115)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민주화 이행 이후 국가폭력의 양상은 달라지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대체로 직접 폭력을 행사하던 국가는 민주화 이후 문화적 폭력, 상징 폭력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한다. 그러나 피해자들에게 이 두 폭력의 효과는 동일하다.”(김동춘, 2013: 114) 이제 국가폭력은 물리적 폭력 이외에 문화적 폭력, 상징 폭력을 아우르는 것이 되고, 국가의 공식 정책과 방침, 제도와 법, 이데올로기에 의해 행사되는 것이며, 평화 시에도 안보와 질서의 이름으로행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김영희는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공식화하는 국가의 활동 자체가 이미 국가폭력을 함축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것은 국가 폭력을 은폐하거나 정당화하기, 5.18에 관한 기억을 독점하기, 피해자에 대한 보상의 기준을 정하고 피해자들에 대해 자신이 그 기준에 부합하는 존재자인지 스스로 입증하도록 요구하기 등으로 나타난다.

 

40년이 흘러간 ‘5·18 광장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분명하게 목격한 것은 국가가 폭력을 자행했을 뿐 아니라 그 폭력을 은폐하고 정당화했다는 사실, 그리고 국가가 왜곡한 기억들을 국가가 바로잡을 터이니 나머지 기억들은 이제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고 말하는 현실,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광장에 있었는지 그 참여와 피해 정도에 따라 국가가 갈라서 정해줄 터이니 국가를 상대로 이를 입증해 보라는 식의 요구, 국가폭력을 자행하고 은폐했던 시스템 안에서 국가가 정한 기준과 방식에 따라 폭력의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현실 등이다.(김영희, 2020: 120)

 

이것은 국가폭력의 문제, 그리고 국가폭력이라는 용어 자체가 얼핏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5.18은 국가폭력 자체 및 국가폭력이라는 개념과 불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불화의 심층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봐야 한다. 만약 5.185.18로 만드는 것이 국가폭력이라면, 그리고 지금까지 논의했던 것이 얼마간 일리가 있다면, ‘국가폭력이라는 단순한 용어만으로는 왜 그것이 5.18을 예외적인 사건으로 만드는 것인지 충분히 해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5.18이 어떤 의미에서 공동체와 불화하는지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5.18을 촉발했던 국가폭력이 어떤 국가폭력이었는지 좀 더 명확히 규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약간의 우회를 더 해보는 것이 좋겠다. 국가권력과 국가폭력은 사실 동어반복이라는 점을 가장 명확하게 표현한 이들은 마르크스 및 마르크스주의자들(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이다. 일례로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국가는 특수한 권력조직이며 어떤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폭력조직”(레닌, 2015: 55)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만 이렇게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근대 사회과학의 또 다른 창시자 중 한 명인 막스 베버 역시 국가의 본질을 폭력에서 찾는다. 베버는 생애 말년에 했던 유명한 강연 직업과 소명으로서의 정치(1919)에서 국가를 이렇게 정의한다. “국가란 일정한 영토 이것 즉 영토[국가라는 개념의]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만 안에서 정당한 물리적 강제력/폭력의 독점(Monopol legitimer physischer Gewaltsamkeit)을 자신에게 (성공적으로) 요구하는 인간 공동체입니다.”(Weber, 1992: 158~59; Weber, 1994: 63)[강조는 원문에 의한 것이며 폭력이라는 표현은 인용자가 추가한 것이다. 독일어 Beruf가 갖고 있는 중의적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베버의 강연 제목을 직업과 소명으로서의 정치라고 번역했다.]이 정의에 따르면 근대 국가는 정당한 물리적 강제력/폭력의 독점을 본질로 하는 것으로 하는 것인데, 이 정의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자주 오해되는 점이지만, 베버의 말은 근대 국가의 본질이 강권국가 내지 무력국가(Machtstaat)라는 뜻이 아니다. 베버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와 정반대되는 논점을 전달하고 있다. 국가가 물리적 강제력 내지 폭력을 독점한다는 것의 반대말은, 국가와 다른 집단이나 개인들이 물리적 폭력을 나눠 갖는다는 것, 곧 사적인 군대나 경찰 조직을 영주나 기사 등이 거느리고, 또한 정식 군대와 다른 용병 부대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베버가 이해하는 봉건제의 상황이었다. 이러한 사적인 폭력을 금지하고 국가가 정당하게물리적 폭력을 독점할 때 근대 국가가 형성된다. 이러한 정당한 물리적 폭력의 독점의 효과 중 하나는, 인권 내지 주관적 권리(subjective rights)가 실효성을 얻게 된다는 점이다(Colliot-Thélène, 2003; Anter, 2014 1).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국가의 폭력 독점이 없다면 인권도 가능하지 않거나 실효성을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국가가 물리적 폭력을 정당하게 독점함으로써, 개인들이 사적인 신분관계들에 종속되지 않고, 국가와의 시민적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정치사회학적인 용어법으로 하면, 국가와의 이차적인 관계가 공동체와의 일차적인 관계에 선행하는 것으로 전제될 때, 어떤 국가의 국민으로 존재하는 것이 이런저런 공동체적인 관계(가족, 지역, 종교, 직업 등)를 맺기 위한 전제로 간주될 때, 근대 국가가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루이 알튀세르가 유명한 호명(interpellation) 개념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과 그리 멀지 않은 발상이다.

 

3. 극단적 폭력

 

이러한 우회를 통해 국가폭력은 국가에 대해 외재적이거나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재적이고 본질적이라는 점이 더 분명해졌다. 하지만 5.18에서 시민들이 맞닥뜨린 국가폭력은 이러한 정상적인국가폭력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예외적이고 보기 드문 국가폭력이었다. 최정운이 이를 반인간적이고 야만적인 국가폭력으로 묘사한 것이나 최정기가 5.18의 본질은 민간인 학살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측면에서 아주 정당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되고 5.18에 자행된 민간인 학살이 어떤 성격의 국가폭력인지 좀 더 정확히 특정해야 한다. 5.18 국가폭력의 반인간성, 야만성은 정확히 어떤 것인가?


나는 앞에서 발리바르의 극단적 폭력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공수부대의 시민 학살을 규정한 바 있는데, 이 개념은 우리가 5.18 국가폭력의 특성을 좀 더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발리바르는 극단적 폭력은 인간화의 형식과 제도 자체에 인간에 의한(곧 사회문화에 의한) 인간적인 것의 생산인간에 의한 인간적인 것의 파괴가 공존한다는 점, 극한적으로는 서로 식별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Balibar, 2012: 130. 강조는 원문)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발리바르는 극단적 폭력의 세 가지 측면을 강조한다. 첫 번째는 인간에게 고유한 저항 가능성이 소멸되고 인간이 사물화되는 현상이다. 그는 시몬 베유의 󰡔일리아스󰡕에 대한 주석에 의거하여 이를 설명한다. 베유에 따르면 극단적 폭력은

 

죽이지 않는 힘, 곧 아직은 죽이지 않는 힘 ...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을 사물로 만드는 권력[이다]. ... 죽지도 않는 가운데 생애 내내 사물이 되어버리는 가장 불운한 존재들도 있다. 그들의 나날에는 어떤 놀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 자신의 내면에서 생겨나는 것을 위한 어떤 여지도, 어떤 빈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도, 다른 이들보다 사회적으로 더 아래쪽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아니다. 그들은 다른 종류의 인간, 인간과 시체의 타협물이다. ... 죽음이 끝장내기 이전에 이미 얼어붙게 만드는 그런 삶인 것이다.”(Balibar, 2012: 105)

 

이처럼 살아 있는 사람을 사물처럼 만드는 폭력의 기저에 존재하는 두 번째 측면은 죽음보다 더 나쁜 것으로서의 삶이라는 측면이다. 이것은 고문을 당하는 사람이 차라리 죽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경우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지만, 발리바르가 세네갈 출신의 철학자 아쉴 음벰베(Achille Mbembe)를 원용하여 지적하듯이 식민지나 포스트식민지에서 끝없이 계속되는 폭력의 상황에서 존속하는 삶의 경우에도 찾아볼 수 있다.


극단적 폭력의 현상학의 세 번째 측면은 목적 합리성, 효용성을 초과하는 것으로서의 폭력이라는 측면이다.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는 아무런 사회적 효용성도 없고 경제적 합리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무익한 낭비에 불과함에도 대대적인 비용을 들여서 유대인 대학살을 모의하고 실행하는 경우가 대표적이거니와(Arendt, 2006: 218 이하), 합리적인 효용과 무관하게 심지어 자기 손해나 자기 파괴를 무릅쓰면서 감행되는 폭력이 나타나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든 바로 극단적 폭력의 이 세 번째 측면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극단적 폭력이 자양분으로 삼고 재생산하는 전능함의 환상, 극단적 폭력이 그 희생자들을 무기력으로 환원하는 것(극단적 폭력의 내재적 목표가 바로 이것이다) 사이에 상호연관성이 존재”(Balibar, 2012: 112)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상호연관성에는 폭력의 대상을 이루는 희생자들이 폭력에 감염되는 차원”(Balibar, 2012: 112)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은 우리 시대에 자살폭탄테러와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공포감을 통해 대표적으로 나타나듯이, 제국주의적 폭력과 그에 맞선 절망적인 대항폭력 사이의 악순환과 관련되어 있으며, 또한 프리모 레비가 회고록에서 묘사한 바 있고 지그문트 바우만이나 조르조 아감벤이 나치즘에 관한 자신들의 분석에서 각자 분석한 바 있는, 도살자와 희생자 사이의 구별 불가능성이라는 문제 또는 희생자 자신을 도구로 삼아(이른바 특수부대’) 희생자를 도살하는 잔혹한 폭력의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다.


극단적 폭력이 합리성을 초과하는 폭력이라면, 이는 극단적 폭력에 의해 개인의 삶과 인간의 문명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규범들이 애매해지거나 식별 불가능해진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으며, 역사적 진보는 고사하고 목적 합리성과도 무관한, 따라서 경제적 효용이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자행되는 폭력들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연결되어 있다. 이는 극단적 폭력이 의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무의식의 차원, 특히 환상의 차원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이 때문에 극단적 폭력에 대한 분석에서는 정신분석(여기에는 자캉 라캉과 앙드레 그린 같은 정신분석가만이 아니라 조르주 바타이유,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자크 데리다 같이 정신분석에 관한 탐구를 수행하는 철학자이론가들의 작업도 포함된다)에 대한 준거가 본질적이다(Balibar, 1007; Balibar 2007; Balibar 2010 1부 두 번째 강연).


5.18에서 놀라운 것은, 발리바르가 극단적 폭력의 특징으로 제시하는 세 측면이 모두 나타나지만, 동시에 그것과 길항하는 힘도 같이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공수부대의 폭력은 광주 시민들을 사물화하는 폭력, 시민들을 사람이 아니라 심지어 개나 돼지도 아니라, 아무렇게나 파괴해도 상관없는 사물처럼 다루는 폭력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폭력이 시민들을 경악하게 만들고 공포에 젖게 했지만 그들을 사물로 환원하는 데는, 곧 그들이 순순히 굴종해서 물러나게 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또한 그것은 가혹한 고문을 수반하는 폭력, 삶을 죽음보다 더 나쁜 것으로 만드는 폭력의 성격도 띠고 있었지만, 시민들은 때로는 비극적이게도 내면이 파괴되어버리거나 자살을 택했지만,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아마도 가장 놀라운 것은 세 번째 측면일 것이다. 광주 시민들, 특히 무장한 시민군들은 공수부대의 극단적 폭력에 용감하게 저항했고 동료 시민들의 피의 값을 되찾고자 했지만, 거기에 맞서 극단적인 대항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으며, 그 대신 우리가 비록 저들의 총탄에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박호재임낙평, 2007: 407)는 말을 남긴 채 죽음을 택했다. 또한 한 여성 노동자가 증언하듯이, “그 애리디애린 것들이 여자를 보호한다고 우리한테 누군가는 살아남아서 이 소중한 역사에 대해 증언을 해야 되지 않겄냐”(윤청자 씨의 증언.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2012: 116)고 무슨 선지자 같은 얘기를 하면서 여성 동료들을 죽음에서 구하고 스스로는 역사가 되었다.[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극단적 폭력에 대한 이러한 비극적 저항에 관한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


아마도 여기에는 군사력의 절대적인 차이가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혹시라도 시민군이 더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다면, 그들의 항쟁이 더 오래 지속되었다면, 사정이 달라졌을까? 그것은 더 파괴적이고 더 많은 살상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일종의 내전으로 귀결되었을까? 아무튼 5.18은 극단적 국가폭력에 맞서 저항하면서도, 그러한 저항이 또 다른 극단적 폭력으로 변질되는 것에도 저항할 줄 알았으며, 자신들의 저항을 윤리적정치적 행위로 승화시킬 줄 알았다. 이것은 발리바르가 정의했던 의미의 반()폭력(또는 시민다움)의 정치 내지 주디스 버틀러가 정의했던 의미에서의 비폭력의 두드러진 사례 중 하나다. 버틀러는 비폭력을 이렇게 정의한다.

 

폭력을 가하는 것이 극히 정당해보이고 당연해 보이는 바로 그 순간에 (의무적 선택지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가능한 선택지로 주어지는 저항적 실천이 비폭력이라는 것이 비폭력을 묘사하는 가장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보자면, 비폭력이라는 실천은 폭력적인 행동이나 폭력적인 과정을 막아내야 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 형태의 행위를 때로 공격적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그런 까닭에 내가 할 논의 중 하나는, 비폭력을 생각할 때 단순히 폭력이 없는 상태 또는 폭력을 삼가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평등과 자유의 이상을 긍정하기 위한 지속적 참여라고, 나아가 공격성의 경로를 바꾸는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Butler, 2021: 43)

 

나에게는 이 대목이 아주 의미심장해 보인다. 왜냐하면 비폭력을 이런 식으로 정의한다면, 도청에 마지막으로 남은 시민군들의 저항이야말로, 탁월한 비폭력의 행위였다고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버틀러가 말하는 비폭력은 폭력을 방관하거나 폭력에 대해 체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세상의 폭력성에 대하여 나 혼자만의 도덕적 비폭력을 고수하려는 태도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1) 폭력에 대한 도구주의적 관점을 타파하고 그것에 대한 진정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2) 그러면서 동시에 세상의 폭력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3) 더 나아가 폭력 자체를 반대하는 지속적이고 심지어 완강한 저항의 행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불화로서, 불화의 정신으로서의 5.18은 바로 이러한 비폭력의 정신이 아니었을까?[이 논문의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은 이 논문에 관해 다음과 같은 심사의견을 제시했다. “5·18 민주항쟁을 7공수여단과 11공수여단을 추가 투입하며 진압한 신군부 세력의 야만적 폭력 행위는 국가의 물리력 행사가 아닌 일부 군사 쿠데타 세력의 헌정질서 파괴행위, 반란 및 내란 행위이다. 이에 대해서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고등법원(1996) 및 대법원 판결문(1997)을 참조 바란다. 따라서 5·18 민주항쟁은 오히려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희생이었다는 것이 사법부의 최종 판결이다. 즉 법률적으로 폭도는 시민이 아니라 신군부이다. 따라서 5·18 민주항쟁은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 혹은 불화가 결코 아니다. 5·18 민주항쟁을 필자와 같이(혹은 필자가 인용한 일부 저자와 같이) 이해할 경우, 5·18 항쟁에서 희생된 시민들을 관점에 따라 폭도로 규정할 수 있는 여지가 열릴 뿐 아니라, 필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이는 미안하게도 필자가 국가와 정부의 차이, 그리고 공동체의 차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따른 것으로 사료 된다) ‘5·18 민주항쟁을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으로 보는 관점은 심각한 사실적 오해라는 점에서, 이는 더 이상 이론적 논란의 대상이 아닐 뿐 아니라, 법원의 판결과 대한민국 공동체의 합의된 정서에 반하는 관계로, 안타깝게도 심사자로서는 이에 대한 양보나 추가적인 협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울러 심사평의 다른 대목에서는 위헌적 사고운운하면서 겁박을 하고 있다. 이 심사위원의 황당하고 착란적인 궤변에 대해 일일이 답변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리라 본다. 이것은 심사를 가장한 지적 테러리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이 심사위원의 견해의 적합성 여부는 독자들 스스로 32~3절의 논의를 참고하여 충분히 판단할 수 있으리라 본다. 여기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2~3절의 논의의 요점을 간단하게 요약해보겠다. 첫째, 나는 최정기의 연구를 원용하면서 5.185.18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국가폭력 개념을 정확히 해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시했다. 둘째, 그 이유는 막스 베버의 유명한 국가에 대한 정의에 따르면 근대 국가는 본질적으로 폭력의 독점체이며, 발터 벤야민과 자크 데리다가 게발트라는 독일어에 대한 성찰에서 잘 보여준 바 있듯이, 공권력과 폭력은 뗄 수 없이 결합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수부대 및 그 배후의 신군부가 5.18 당시에 자행한 폭력은 통상적인 국가폭력이라는 용어만으로는 제대로 규정되기 어려우며, 별도의 특수한 규정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나는 한편으로 최정운의 󰡔오월의 사회과학󰡕과 서승의 연구에 입각하여,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에티엔 발리바르의 폭력론을 원용하여 공수부대 및 그 배후의 신군부가 자행한 폭력은 야만적이고 반인간적인 국가폭력이며,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국가테러 내지 극단적 국가폭력으로 규정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셋째, 나는 5.18 당시 신군부가 행사한 국가폭력을 이처럼 극단적 국가폭력으로 정의함으로써, 5.18의 민주주의적 탁월함의 특성을 좀 더 정확히 해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극단적 폭력의 특성 중 하나가 폭력을 감염시킴으로써 폭력의 피해자로 하여금 동일한 극단적 폭력을 행사하도록 유혹하는 것인데, 광주항쟁의 투사들은 극단적 대항폭력으로 응전하기보다는 주디스 버틀러가 정의한 의미에서 비폭력 저항으로 맞섬으로써 유례없는 반폭력 내지 비폭력의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4. 공동체와의 불화: 공통적인 것의 나눔 대 빨갱이

 

그렇다면, 5.18은 최정운이 말하듯 절대공동체에 도달했던 것일까? 아니면 구체적 이념 이전의 순수한 인간 본성의 발로이자 응답하는 주체들의 공동체로서 “5.18 항쟁공동체”(김상봉, 2015)를 이루었던 것일까? 나는 기본적으로 이들을 비판하는 김정한의 견해에 찬동하는 편이다. 그의 비판에 따르면, “절대공동체항쟁공동체라는 발상은 기본적으로 반()정치적 발상이며, 이는 그것이 이런저런 이념 이전에 존재하는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격 내지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주의로의 회귀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 동의하면서도 저는 광주 시민들이 극단적 폭력에 맞서 보여주었던 그 저항의 연대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인지, 그것이 어떤 것에 기반을 둔 것인지 설명해야 할 책무를 느낀다. 광주 시민들은 어떻게 그런 저항을 전개할 수 있었을까? 나는 이점에서는 박경섭의 공동체 논의가 의미 있는 통찰을 제시해준다고 본다. 그는 한편으로는 장-뤽 낭시의 공통적인 것의 나눔개념에서 영감을 얻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르조 아감벤의 공통적인 어떤 것”(whatever the common)이라는 개념을 실마리로 삼아, 극단적 폭력에 맞서 광주 시민들이 보여준 공동체의 성격을 해명하려고 한다. 그는 광주 시민들에게 공수부대의 야만적 폭력, 짐승 같은 행위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의 눈높이에서가 아니라 마을의 법, 인륜도덕으로 용납이 안 되는 것이었으며, 항쟁의 참여자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시민이 아니라 인륜도덕을 중요시하고 사람의 됨됨이를 분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박경섭, 2015: 41)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말하는 인륜도덕이나 마음이 호혜성의 의무나 공동체의 윤리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 그것은 오히려 마치 의례 때 제상에 올렸던 하나의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과 유사”(같은 글, 같은 곳)하다는 점이다. 본능적인 충동과 이성적인 판단 사이에 존재하는 이 공통적인 것의 나눔이 극단적인 폭력에 맞서 광주 및 전라도 시민들이 저항의 연대를 펼칠 수 있었던 마음의 힘이었다. 박경섭이 정당하게 지적하듯이, 이것은 군부 엘리트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이며, 또한 애국주의나 국가주의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거듭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절대공동체항쟁공동체로 신화화하거나 절대화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반증하는 명백한 사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빨갱이가 궁극적인 배제의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빨갱이는 절대공동체라고 칭송받는 광주 코뮌 내에서도 그 자리가 허용되지 않는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었다. “빨갱이에 대한 이러한 터부화는 한편으로 우리는 빨갱이가 아니다는 자기 결백성에 대한 강조로 표현된다. 예컨대 당시 21세였던 김준봉 씨는 526일 한 고등학생을 도청에서 내보내며 이렇게 말한다. “항상 마지막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 지금 사태를 정확히 후세에 전해주라. 우리는 빨갱이가 아니었다고 이야기해 주라. 정확하게 역사에 전달된다면 내 죽음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꼭 살아남아서 전해 주라.”(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1990: 233; 김정한, 2021: 100에서 재인용) 또한 이런 증언도 있다. “사람들은 6.25 때 빨갱이들도 이렇게 무고한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죽이지는 않았다면서 같은 민족, 한 형제인 대한민국 군인이 이럴 수가 있느냐고 분노를 토했다.”(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1990: 1354; 김정한, 2021: 101에서 재인용)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빨갱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 반응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거부 반응은 운동 주체들 사이에서도 나타나서, 수습파는 강경파를 향해 빨갱이 아니냐고 몰아붙여서 무력 충돌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5.18의 영웅 중 한 명인 전옥주 씨의 사례는 당시 광주 시민들이 빨갱이에 대한 거부 반응을 폭넓게 공유하고 있었음을 잘 드러내준다. 그는 가두방송을 하는 도중에 두 차례나 간첩으로 지목되어 결국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징역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에게 더 가혹했던 것은 징역살이 끝에 사면을 받아 출감한 뒤 가해진 2차 가해였다. 출감해서 나오는 길에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저 여자, 간첩이었는데 안 죽었네라고 수군거리고, 고향에 내려가서도 고향 사람들은 그를 향해 어머, 간첩이었대. 근데 어떻게 석방됐대.” 하고 손가락질을 해댔다고 한다(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2012: 163~64). 전옥주 씨는 자신에게 진짜 고문은 이런 것이었다면서 울분을 토로한 바 있다.


광주 시민들 내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빨갱이에 대한 이러한 터부화는 아주 역설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5.18이 한국 현대사에서 지닌 중요한 의미는, 무엇보다 그것이 한국 현대사의 국가폭력이 극단적 폭력의 성격을 지닌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더 나아가 이러한 극단적 폭력에 대한 반()폭력적인 저항이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며,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요소 중 하나를 구성한다는 것을 놀라운 저항의 연대, 마음의 공동체를 통해 입증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5.18은 빨갱이를 이러한 마음의 공동체에서 배제했으며, 그는 극단적 폭력의 대상이 되어도 무방하다고 간주했다. 한국 현대사, 적어도 남한의 현대사의 극단적 폭력은 무엇보다도 빨갱이에 대한 폭력이었으며, 국민을 빨갱이와 빨갱이 아닌 자로 분류하는 것의 폭력이었다(김득중에 따르면 그것은 여순사건에서 기원한 것이다. 김득중, 2009). 이것이 해방 이후 남한의 치안 공동체(랑시에르적인 의미의)의 기저에 놓여 있던 감각적인 것의 나눔의 본질적인 속성 중 하나였다. 남한에서 공동체의 정당한 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빨갱이처럼 행동해서는 안 되고, 빨갱이처럼 존재해서는 안 되며, 마치 빨갱이처럼 보이게 말을 해서는 안 되었다. 이러한 감각적인 것의 나눔을 위반하는 자는 공동체로부터 배제되고 극단적 폭력의 대상이 되었다. 남한에서 국민이 되기 위한 조건은 자신이 빨갱이가 아니라는 점을, 행동과 존재, 말을 통해 끊임없이 입증하는 것이다. 5.18이 공수부대의 폭력을 통해 보여준 것은, 이러한 극단적 국가폭력이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는 감각적인 것의 나눔에 내재한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5.18은 이러한 빨갱이에 대한 거부 반응, ‘레드 콤플렉스를 극복했어야 했지만, 오히려 5.18의 저항의 연대는 빨갱이에 대한 배제를 전제로 하여 형성되었고 자신을 유지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5.18은 치안의 질서와 단절하지 못한 채, 치안 내에서의 저항으로 머물러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물론 5.18 항쟁을 간첩 및 불순분자들에 의한 폭동으로 몰아가려는 신군부의 언론 통제와 조작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항쟁 공동체 내부에서 이미 빨갱이에 대한 배제가 존재한 결과이기도 하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심사위원 중 한 분은 항쟁 당시 시민들이 함께 모여 가장 많이 부른 노래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으며, 이는 광주항쟁을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적대로 작동하는 분단의 논리와의 관계 속에서 인지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광주항쟁은 현상적으로는 레드콤플렉스를 직접적으로 타파하지는 못했지만, 레드콤플렉스라는 견고한 지형에 균열을 내었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견해를 제시해주었다. 앞으로 더 다뤄볼 만한 유익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한다.]

 

5. 민주주의와의 불화, 리프리젠테이션의 불화

 

이런 시각에서 보면 5.18이 국가의 공식적인 기념일이 된 이후, 국가 및 지방정부의 관료주의와 특권화된 당사자주의의 결합을 통해 신성화와 상품화의 이중구속에 빠져든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박경섭, 2021). 5.18의 국가화는 “19805월에 그곳있었던이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애국시민으로 정체화하게 만들었던 폭력’”(김영희, 2020: 131)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을 더욱 공고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실 5.18의 명예회복은 5.18 민중항쟁 당사자들의 염원이었고 5월 운동의 참여자들이 추구했던 바이지만, 그것은 불가피하게 국가권력을 요구하고 그 권력을 통한 인정 및 승인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5.18의 명예회복은 국가권력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권력의 인정과 승인이 없는 명예회복은 보편성을 획득할 수 없다. 하지만 국가권력은 국가폭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으며, 국가권력을 통한 인정과 승인의 전제는 국가폭력의 수용이다. 그러한 폭력은 앞에서도 언급했던 바와 같이 국가 폭력을 은폐하거나 정당화하기, 5.18에 관한 기억을 독점하기, 피해자에 대한 보상의 기준을 정하고 피해자들에 대해 자신이 그 기준에 부합하는 존재자인지 스스로 입증하도록 요구하기 같은 방식으로 수행된다. 이것은 불가피하게 당사자와 비당사자, 애도할 만한 이들과 애도하지 않아도 되는 이들(Butler, 2021)을 나누게 되며, 전자를 통합하고 후자는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518의 기억투쟁은 국가의 공식적인 기억과 민중의 기억 사이의 투쟁이 아니라 국가의 자리를 대리한 당사자들의 공식 기억이 비당사자들의 침묵과 망각을 생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당사자들에 의한 518의 신성화, 기억의 기념비화는 기억의 현재화, 활성화에 힘쓰기보다 시간을 거슬러 ‘80년 항쟁 당시라는 시점으로의 회귀 경향을 보인다(박경섭, 2021: 63).

 

이것은 또한 여성들을 5.18의 당사자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여성들은 항쟁의 주요 당사자였던 시민군이 아니었으며, 도청 사수의 영웅들에 포함되지도 못했다. 그들은 정성껏 시체를 닦아서 시민장을 치르게 하고 밥을 만들고 여러 가지 돌봄 노동을 수행했지만, 그것은 항쟁의 당사자 자격으로 표상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5.18 운동의 초기 국면에서 여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재현되었다. 한편으로 여성은 훼손된 신체 이미지를 통해 공수부대가 자행한 극단적 폭력을 입증하는 증거의 기능을 수행했다. 다른 한편으로 여성은 또한 저항 공동체 내부에서 특정한 젠더 역할(어머니나 누이)로 고착되거나 파편화된 존재자로 나타났다(김영희, 2018).


5.18의 기억과 서사의 문제와 관련하여 또 하나 중요한 쟁점은 포스트 5.18’의 문제다. 5.18을 직접 체험하거나 자기와 동시대, 동세대의 일로 경험하지 않은 세대, “비체험세대”(배주연, 2020: 8)에게는 5.18이 그 이전 세대와 동일한 방식으로 경험될 수 없고, 동일한 의미로 재현될 수 없다. 비체험세대에게 5.18리프리젠테이션을 통해서만 접근 가능한 사건, 곧 교과서에서 배우고 영화 󰡔택시운전사󰡕나 웹툰 󰡔26󰡕 또는 소설 󰡔소년이 온다󰡕를 통해서 접하게 되는 사건, 끔찍한 국가폭력이 자행되었고 여기에 맞선 용감한 광주 시민들의 투쟁 덕분에 민주화를 이룩하게 된 사건, 하지만 자신의 일상과 큰 관련성이 없는 사건”, 그러면서도 특히 전라도나 광주 출신의 젊은 세대에게는 때로는 홍어라는 비하 명칭을 받게 되는 사건으로 나타난다(김꽃비 외, 2021: 167). 또한 비체험세대에 속한 어떤 젊은이들에게 5.18은 트라우마로 경험된다. 어린 시절 아빠 손을 잡고 망월동 묘역을 방문하여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 그는 5월에 관한 다큐멘터리나 사진들, 관련 자료들을 접할 때마다 벗어나고 싶은 공포를 느낀다고 말한다. 하지만 광주에서 살아가는 그에게 5월은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다가오고, 그의 현재는 늘 19805월로 환원된다. “2000년대를 살아가며 광주도 지금을 살고 있지만, 광주를 호명하는 이들은 지금이 아닌 19805월의 그때만을 호명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화가 났다. 나의 이 선연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고 나도 2000년대를 살고 싶은데 자꾸 19805월만을 부른다.”(김유빈, 2021: 128) 그리하여 나의 모든 생활권이 오월이었고, 이 무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체념을 배우며 광주 사람이 되도록 교육받았다.”(김유빈, 2021: 125) 태국과 캄보디아 NGO 단체에서 인턴 생활을 경험한 그는 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인해 다시 깊은 충격을 받는데, 미얀마 군경의 무차별 진압으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하게 된 사건들이 그에게 다시 오월의 죽음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요컨대 비체험 세대에게 5.18은 아무래도 자신들의 삶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경험하기 어려운 사건이지만 커다란 트라우마를 안겨주는 사건으로 재현될 것이다.


리프리젠테이션을 둘러싼 이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질문들을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내가 보기에 이 문제들은 앞에서 논의했던 국가폭력, 그것도 극단적 국가폭력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5.18은 극단적 국가폭력에 직면하여 그것에 대해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 적어도 대항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저항함으로써, 한국 현대사의 기초에 내장되어 있는 극단적 국가폭력을 드러내주었다. 이러한 폭력의 경험은 많은 사상자를 낳았고 또 살아남은 이들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그것이 한국 현대사가 품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라는 점을 파악하게 해주었다. 그럼에도 5.18은 극단적 국가폭력을 정치의 쟁점, 민주주의의 쟁점으로 끄집어내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이러한 폭력에 직면하여 애국국민이라는 기표들에 매달렸고, 그 타자로서의 빨갱이를 배제했으며, 지금까지 5.18에서 이러한 쟁점이 제대로 제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때의 빨갱이는 치안의 질서에 어긋나는 이들에 대한 일반적 명칭일 것이다. 여기에는 간첩, 좌익용공 분자도 포함되겠지만, 또한 이상하게 너무 말 잘하는 여자도 포함될 것이고, ‘퀴어라 불리는 성적 소수자들도 포함될 것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5.18의 고통을 경험한 광주 및 전라도 시민들은 극우파 집단에게 홍어라든가 전라민국또는 ‘7같은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되고 있고, 이것은 그들에게 또 다른 트라우마의 원천이 되고 있다.

 

IV. 결론을 대신하여

 

5.18의 명칭을 둘러싼 논란, 따라서 5.18의 리프리젠테이션에 관한 또 하나의 불화 속에서 광주민주화운동내지 ‘5.18민주화운동이라는 명칭은, 한편으로 그것이 국가의 공식적인 법적제도적 명칭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5.18의 진정한 주체였던 민중을 포함하지 않는 명칭이라는 점에서, 다소 기피되거나 외면 받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민주화운동이라는 명칭이 상당히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명칭이 더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민주화운동이라는 개념을 좀 더 심층적으로 개조할 필요가 있다. 공식적인 법적 의미로 이해하면 민주화운동은 이미 종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군사독재에서 문민정부로 이행하고,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5.18이 국가의 공식적인 기념의 대상이 됨으로써 5.18 민주화운동은 더 이상 시빗거리의 대상이 아니지만(알다시피 2022~235.18 기념식에는 윤석열 정부 및 여당의 지도부들이 대거 참석했다), 또한 동시에 현재와 미래의 진보운동을 위한 동력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요컨대 5.18은 민주주의와의 불화를 중지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우리가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을 ()폭력의 정치(발리바르) 내지 비폭력적 저항(버틀러)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한다면, 곧 극단적인 폭력을 감축하고 퇴치하기 위한 운동으로, 폭력 그 자체에 맞서기 위한 지속적인 돌봄의 연대의 구성과 전개라고 이해한다면, 사실 민주화운동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할 운동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다.


한국 현대사의 토대에, 또는 랑시에르 식으로 말하자면, 한국이라는 치안 공동체의 감각적인 것의 나눔의 질서에 극단적 국가폭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국민 개개인이 행동하고 존재하고 말하는 방식 자체가 극단적 국가폭력에 의해 규정되고 있음을 함축한다. 만약 민주주의가 기존의 감각적인 것의 나눔과의 단절을 의미한다면, 그리고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끊임없는 운동으로서만 실현될 수 있다면,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극단적 국가폭력을 감축하고 퇴치하기 위한 운동으로 전개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것은 분단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운동일 뿐만 아니라 평화운동이기도 하고, 여성운동이자 성소수자 인권운동일 뿐만 아니라 또한 국가를 내부로부터 민주화하고 문명화하려는 운동일 것이다. 김영희를 비롯한 여성주의 연구자들은 “5.18을 국가폭력으로 재사유한다는 것은 ...... 국가라는 경계를 벗어난 기억과 애도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질문”(김영희, 2020: 121)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충분히 의미가 있고 중요한 관점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그에 못지않게 국가를 내부로부터 민주화하고 문명화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막스 베버가 말했듯이 국가를 경유하지 않는 보편성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며, 알튀세르가 말했듯이 호명과 다른 방식으로 보편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길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는 폭력적인 본성의 기계임과 동시에 시민들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동체라는 속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따라서 국가가 폭력적이라면, 그만큼 더 국가를 민주화하고 문명화하려고 해야 한다. 5.18이 이러한 운동에서 앞으로도 지속적인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그것이 계속적인 불화의 원천이 될 수 있을지는 선험적으로 결정되어 있지 않다. 내가 보기에 확실한 것은, 그러한 운동이 5.18의 리프리젠테이션에 관한 불화, 5.18의 정체성에 관한 불화의 핵심을 이루며, 그것이 5.18과 불화하기의 장래를 규정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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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문화 120호 기념 심포지엄이 오는 7월 8일 토요일 개최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 주소로 가셔서 신청서를 작성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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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전환을 위하여: 다중재난 시대의 새로운 길 찾기 (google.com)









이번 심포지엄의 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황해문화 통권 120호 발간기념 심포지엄


정의로운 전환을 위하여: 다중재난 시대의 새로운 길 찾기

 


기획 취지


1. [황해문화] 30주년을 맞이하며

 

[황해문화]가 어느덧 통권 120호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1993년 인천을 중심으로 한 지역 계간지로 출발했던 [황해문화]는 이제 명실상부 한국의 비판적 공론장을 대표하는 잡지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평범한 시민들과 약소자들, 곧 우리 사회 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동안 양적, 질적으로 성장해오면서 [황해문화]전 지구적 시각, 지역적 실천이라는 창간 당시의 초심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황해문화]가 첫 발을 내디뎠던 1993년은 전 지구적으로, 그리고 국내적으로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당시는 100년 넘게 세계를 분할해온 주요 세력 중 하나였던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당시는 민주화 이행의 기쁨이 민주화 운동 내부의 분열과 패퇴, 수구 보수 세력의 연이은 집권에 따른 좌절감으로 퇴색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탈냉전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세계 문명의 창도는 인천을 비롯한 각 지역의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통찰은 지난 30여 년 동안 [황해문화]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꿋꿋하게 전진해올 수 있었던 길잡이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200650호를 발간하면서 [황해문화]이제 성장도 정리도 끝난 포스트 모던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세간의 시대인식에 거슬러, 우리에게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근원적 난제들은 인식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음을 명시한 바 있습니다. 그것은 시대적인 혼돈의 와중에 섣부른 판단과 명령을 내리기보다 그 혼돈의 상황을 직시하고 그 속에 담겨 있는 불행과 고통과 갈등과 비명의 목소리에 귀 기울임으로써 가능하다는 [황해문화]의 자세였습니다.


몇 년 전 100호 출간을 기념하여 열린 심포지엄에서 [황해문화]통일과 평화 사이에서 황해의 위상에 대해 질문한 바 있습니다. 이 질문은 지난 70여 년 동안 한국 사회를 질곡에 빠뜨려온 분단과 전쟁의 엄중함을 기억하면서도 섣부른 통일과 평화에 대한 기대를 경계하기 위함이었으며, 진정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해서는 그 주체와 장소, 방법에 관해 좀 더 깊이 숙고해야 함을 일깨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황해라고 하는 주체’, 곧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지난 근현대를 살아온 주변부의 작은 지역의 시민들이, 황해라고 하는 장소’, 곧 분단과 냉전의 경계이면서 동시에 섬과 섬, 항구와 항구, 지역과 지역을 잇는, 그리하여 하나의 세계와 다른 세계가 교류하고 어울리는 곳에서, 황해라고 하는 방법’, 곧 중앙집권적이지 않은 자율적인 변방성, 폐쇄적이지 않은 개방성, 선형적이지 않은 횡단성을 바탕으로 대안적인 통일-평화의 기획을 모색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선언이었습니다.

 

2. 복합위기에서 다중재난으로

 

이제 다시 120호를 맞이하여 [황해문화]는 새로운 30년의 출발점에 서게 되었습니다.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자는 창간사의 다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확인하면서도 우리는 오늘날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볼 때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함을 새삼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위기라는 말로는 제대로 형용하기 어려운, 절박하고 다면적인 재난의 먹구름이 현재와 미래의 세계를 뒤덮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이다.


요즘 언론과 정치권에서 복합위기라는 말이 자주 거론되고 있습니다. 2022년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에너지와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되었고, 이를 잡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급격하게 금리 인상을 함에 따라 각국 중앙은행도 연쇄적인 금리인상 대열에 합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여기에 더해 환율 인상, 금융 불안정, 부동산 가격 하락, 가계부채 문제 등과 같은 다면적인 위험 요인들이 누적되고 있는 것이 곧 복합위기의 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합위기로 표현되는 이 문제들이 한국 경제와 사회에 적지 않은 부담과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리면 이것은 치안’(police)의 관점에서 이해된 위기일 뿐입니다. 치안에게는 기존 지배 질서의 안정적인 재생산이 최고의 목표이기 때문에, 이를 위협하는 요인들은 모두 무차별적으로 위기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치안에게는 인플레이션이나 금융 불안정도 위기이지만 민주화 시위도 위기이고 세월호 참사도 위기입니다.


더욱이 치안이 위기라고 부르는 것들은 많은 경우 진정한 위기들을 은폐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실제로 언론과 정치권에서 복합위기라고 부르는 것에는 인류세(anthropocene) 내지 자본세(capitalocene)라는 명칭으로 표현되는 생태적 재난이나 3년여의 시간 동안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보건 재난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서로 맞물려 있는 이러한 생태적보건적 재난은 인류 문명의 토대 자체를 잠식하는 문명적 위기이며 민중의 삶에 심각한 피해를 낳을 수밖에 없지만, 복합위기론에서 이 문제는 방치되거나 배제되고 있습니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이래 전 지구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이나 세월호 참사 및 이태원 참사로 대표되는 사회적 재난들과 더불어, 비정규직 노동자들, 여성과 성적 소수자들, 장애인들, 이주자, 탈북민, 난민 등과 같은 사회적 약소자들이 직장에서, 일상에서 직면해 있는 불안전 재난도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급격하게 재편되고 있는 전 세계적인 지정학적 변동과 그것이 특히 동아시아의 정세에 미칠 파장 역시 제대로 고려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냉전으로 명명되고 있는 이러한 재편은 군사적정치적경제적 질서의 전환 흐름 속에서 동아시아에서는 한미일 대 북중러 사이의 대결구도로 가시화되고 있는데, 이는 군사적 긴장만이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불안정을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전망은 점차 멀어지고 적대적인 대결 구도가 권위주의적 통치를 정당화하고 이는 다시 민중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의 경로가 고착되지 않을지 우려스럽습니다.


이러한 재난들의 중심에는, 낸시 프레이저가 말하듯 식인 자본주의가 놓여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날의 식인 자본주의는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할 뿐만 아니라 제국적 생활양식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될 수 있는, 글로벌 남반구와 북반구 사이의 구조적 불평등의 간극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이는 자연 생태계의 파괴를 산출함으로써 문명의 기초를 잠식하고, 인공지능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에 입각하여 대중들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을 이용하여 대중들의 사고와 감정, 행동에 대한 정밀한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3. 정의로운 전환을 위하여

 

따라서 비판적 인문사회과학에서 주목해야 하는 진정한 위기는 치안이 명명하는 복합위기가 아니라 그것이 은폐하고 배제하는 다중적 재난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러한 재난들은 누구에게나 명백하게 드러나는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사실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것들을 서로 중첩된 다중적 재난들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것들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겪어야 하는 민중들, 곧 을()들의 관점에서 문제를 이해하고 사고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의로운 전환은, 다중재난을 몸으로 겪으면서 그것에 맞서고 있는 민중의 관점에서 이러한 재난들을 인식하고 그것들을 진보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다중적이고 다면적인 노력의 방향을 지칭하는 포괄적인 명칭입니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우리는 먼저 돌봄에 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돌봄은 흔히 생각하듯이 어린아이나 노인 또는 환자나 장애인에게만 필요한 서비스 활동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 활동이며 더 나아가 자연 생태계가 온전하게 재생산되기 위해 필수적인 활동입니다. 우리들이 각자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으로서 사회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며, 또한 다른 누군가의 삶을 지속적으로 돌봐야 합니다. 그것이 생태적사회적 연관망 속에 존재하는 관계적 존재로서 인간의 본성입니다. 따라서 자기 자신과 다른 누군가의 삶을 돌보고 돌봄을 받는 것은 모든 시민의 의무이자 각자가 누려야 할 권리이며 필수적인 삶의 조건입니다.


자연과 인간, 주체와 객체, 공공성과 사유성, 국민 대 비국민, 남성과 여성 등과 같이 대립적이고 경쟁적인 범주들에 의거하여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자본주의 문명을 전환하기 위해 돌봄 개념은 우리에게 어떤 길을 제시해줄 수 있을까요? 생태적보건적 재난과 불안전 재난, 신냉전의 전개, 디지털 자본주의의 심화는 사회의 공동 이익 및 인류의 공동 생존을 추구해야 할 집합적인 정치적 주체를 해체하여 그들을 서로 상이한 이익 추구를 위해 끝없이 경쟁하는 신자유주의적인 행위자들로 변모시키고 있습니다. 더욱이 트럼프 시기의 미국에서,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그리고 동아시아 등에서 부상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권위주의 통치는 강자들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약소자 시민들의 권리를 짓밟고 외면함으로써 민주주의 공동체의 기초를 파괴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오늘날 을들 간의, 민중 간의 새로운 연대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러한 질문들은 결국 자본주의에 관한 질문과 연결됩니다.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해체된 이후 자본주의는 유일하게 가능한 현실적 사회경제 체제로 존립해 왔고 정당화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다중 재난이 직간접적으로 자본주의의 비이성적인 광기와 연결되어 있다면, 정의로운 전환의 시도는 자본주의 이후라는 문제, 자본주의를 넘어서라는 문제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전의 사회주의의 시도가 실패로 귀결된 이후, 오늘날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들을 어떻게 사고하고 실천해볼 수 있을까요? 자본주의보다 더 나은 세계 문명을 구성할 수 있는 길을 우리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심포지엄에 참여하는 선생님들께 저희는 이런 질문들을 제기해보고자 합니다. 이번 심포지엄이 앞으로 [황해문화]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데서나 우리 사회의 진보적인 전환을 추구하는 데서나 중요한 한 이정표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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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4년 적용 최저임금은 시급 12,000(250만원)은 되어야 합니다.

- 노동계는 지난 4월 4일 2024년 적용 최저임금의 노동계 요구로 시급 12,000원(월 250만원)으로 확정 발표했습니다.

- 지난 4년간 최저임금은 물가인상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인상되었고, 코로나19로 어려움이 가중된 지난 2022년과 2023년 최저임금은 법에서 정한 기준조차 준수하지 않은 채 공익위원의 자의적 기준으로 결정되었습니다.


2. 월급빼고 다 올랐습니다.

- 2023년 최저임금 9,620원으로는 최소한의 생계유지조차 어렵습니다.

- 40%가까이 치솟은 난방비, 전기요금, 교통비 등 공공요금이 연일 오르고 있습니다. 공공요금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비용, 물가가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서울 직장인 평균 점심값 12,285원, 식당의 소주와 맥주는 6,000원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최저임금으로 밥한끼 먹기 어렵고, 가족 친구들과 외식은 꿈꾸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3. 하루 세끼는 사치, 두끼는 과식, 한끼는 일상이랍니다.

- 대학생들이 말하는 2023년의 현실입니다.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유지하는 대학생들에게 하루 세끼는 사치라 말합니다. 기본적인 의식주 중 식(食)조차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 하여 3포 세대라 불리운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3포를 넘어 의식주조차 포기해야 하는 서글픈 현실, 최저임금 대폭인상이 기본적인 해결책입니다.


경제도 살리고, 모든 노동자도 살리기 위한 최저임금 인상에 동의해 주십시오.

- '모두를 위한 최저임금, 1만2천원 운동본부'는 모든 노동자의 생존과 삶을 위해 최저임금 대폭인상을 위해 나서겠습니다. 노동계가 요구하는 최저임금 12,000원(월 250만원)에 동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 여러분의 동의서를 최저임금을 심의하는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 제출해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dFEn4uUdE4KunUj6xubINxGjtX6iJEj3KqMsd7e4t4ktwJlQ/view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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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필로소픽 출판사에서 자크 데리다의 [환대에 대하여] 새 번역본이 출간됩니다. 


이보경 선생님이 번역을 맡아서 공들여 새로 번역을 해주셨는데, 


제게 해제를 하나 써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간단히 글을 한 편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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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라는 이름의 철학적인 것: [환대에 대하여] 한국어판 해제

 

 

데리다의 [환대에 대하여]를 읽는 일은, 몇 번의 놀람 또는 반전을 경험하는 일이다.

 

첫 번째 놀람 또는 반전.

[환대에 대하여]를 손에 든 독자들은 아마도 무조건적 환대또는 절대적 환대를 머릿속에 떠올릴 것이다. 그것을 긍정하든 부정하든 간에, 데리다는 무조건적인 환대를 주장한 철학자 내지 윤리학자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들이 실제로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데리다의 환대론을 그처럼 단순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된다. 예컨대 데리다는 이렇게 질문한다. “무엇이 더 정당하고 더 애정 어린 것일까? 묻는 것일까, 아니면 묻지 않는 것일까?”(47) 묻는 것이 더 정의롭고 사랑이 담긴 대응일까, 아니면 묻지 않는 것이 더 정의롭고 사랑을 베푸는 일일까? 요컨대 묻는 게 환대하는 것일까, 아니면 묻지 않는 게 환대하는 것일까?


여기서 묻는다는 것은 이름을 묻고 신원을 파악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여행이나 사업차 또는 공부 등을 위해 찾아간 외국의 공항에서 우리는 이름과 국적, 방문 목적 등을 묻는 해당 국가 관리의 질문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질문들을 통해 우리가 그들에게 위험하지 않은 존재자임이 확인되고 난 이후 우리는 비로소 해당 국가에 입국할 수 있다. 이것이 대개 우리가 경험하는 환대의 절차다. 그렇다면 묻지 않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것, 이름이 무엇이고 국적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우리나라에 왔는지 물어보지 않고 입국시켜주는 것, 요컨대 무조건적으로 환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데리다가 만약 무조건적인 환대를 주장하는 철학자라면, 데리다는 당연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정의롭고 애정 어린 환대의 태도라고 주장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데리다는 묻는 것과 묻지 않는 것 사이에서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과연 어떤 게 더 정의로운 것인지 묻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무엇보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곧 무조건적인 환대를 실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국경을 모두 개방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도래하는 이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가 누구인지, 무슨 목적으로 입국하려는 것인지 묻지 않고 그냥 모두 받아들인다면, 그 경우 국경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을 것이다. 국경이야말로 검열과 분류, 선별의 장소, 곧 묻고 따지는 장소가 아닌가? 그런데 이처럼 국경을 모두 개방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모든 나라가 국경을 없애고 모든 사람들이 모든 나라들을 자유롭게 왕래하게 된다면,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평화로운 곳이 될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마 세계가 대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 더 개연성이 있는 일일 터이다. 왜냐하면 (개연성이 전혀 없는 것이기는 해도) 국경이 모두 개방되면, 현재와 같이 부유한 나라들과 가난한 나라들로 분할된 세계에서, 더욱이 소수의 부유한 나라들과 대다수의 가난한 나라들로 분할된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소수의 부유한 나라들로 몰려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처럼 국경이 절대적으로 개방된다면,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타자들에 대한 커다란 불안과 공포(panic), 아마 실제 일어난 혼란보다 훨씬 더 큰 공포를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공포는 집단적인 불안과 안전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자극할 것이며, 이는 다시 공적일 뿐만 아니라 사적인 형태의 무장과 폭력들을 대규모로, 그리고 다양한 수준에서 유발하게 될 것이다.


무조건적인 국경의 개방과는 전혀 거리가 멀지만, 시리아 내전 이후 시리아 주변국들만이 아니라 유럽으로 수많은 난민이 몰려들면서 유럽 대륙은 큰 혼란에 빠져들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자의반타의반으로 많은 수의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여전히 유럽 대륙으로 몰려드는 많은 난민들이 존재하며, 유럽의 각 나라들은 난민 문제로 애를 먹고 있다. 이처럼 많은 수의 난민을 받아들이면서 인종주의와 국민주의적 반동이 격렬해지고 반()이민, ()이슬람 감정이 고조되고, 그에 편승하여 극우파 정당들이 득세하게 되었으며 치안과 검열 활동이 강화되었다. 따라서 만약 무조건적 환대의 방식으로서 국경의 완전한 개방이 이루어진다면, 그 경우 오히려 환대는 더욱 더 제한될 수 있다. 절대적인 환대를 실행하려는 것이 환대를 제한하게 되며, 환대를 실행할 수 있는 주체의 조건을 잠식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출간된 환대에 관한 세미나에서 데리다 역시 이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확히 정치적인 것이 파괴될 때, 곧 갑자기 명확한 국경이, 지정된 시민권이, 조국에 대한, 종교에 대한, 따라서 가능한 정체화(identification)에 대한 준거가 존재하지 않게 될 때, 바로 이 순간 증오가 적대를 대체하게 되고, 증오가 한없이 절대적으로 분출하게 됩니다.”(Jacques Derrida, Hospitalité, vol. 1, Seuil, 2021, p. 190.)


따라서 데리다가 무조건적인 환대를 주장했다는 소문은, 사실 책을 읽어보지 않은 이들의 순진한 상상의 결과일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놀람 또는 반전이다.

 

두 번째 놀람 또는 발전.

여기에서 두 번째 놀람 또는 반전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조건적 환대가 무조건적 환대보다 더 낫다는 뜻인가? 우리는 더 많은 공포와 불안, 혐오와 폭력을 초래할 수도 있는 무조건적 환대보다는 현실적인조건적 환대를 수행할 수밖에 없고, 또 수행해야 한다는 뜻인가? 만약 데리다가 󰡔환대에 대하여󰡕에서 내리는 결론이 이런 것이라면, 과연 철학이란 무엇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굳이 철학 없이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일상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그 사람이 나 또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지 손해가 될지, 그 사람이 나 또는 우리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고려하면서 누군가를 사귀거나 가까이 하지 않는가? 우리가 외국인을 들일 때도 우리는 그 사람이 우리나라에 도움이 될지 아닐지를 일차적으로 고려하면서 (관광을 와서 돈을 잘 쓰고 가는지, 이주노동자로 와서 성실히 우리나라 경제를 위해 기여할지, 100만원 가사도우미로 와서 저출산 문제 해결에 기여할지 등) 들이거나 거부하거나 하지 않는가? 그런 상황에서 굳이 조건적 환대를 정당화하는 철학이 필요할까?


아니 데리다는 확실히 조건적 환대보다는 무조건적 환대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데리다가 이 책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이가 외국인또는 이방인이며, 그 중에서도 절대적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오이디푸스, 단 [오이디푸스 왕]의 오이디푸스가 아니라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의 오이디푸스에게서 바로 이러한 절대적 이방인의 모습을 발견한다. 오이디푸스는 -바깥의-사람(anomon)”이며, “절대적 도착자”(57)이다. 그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그가 어디로 가는지'에 관한 앎이 없는 채, 그 장소와 그 장소의 이름에 관한 앎이 없는 채.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사이에”(57) 놓여 있는 존재자다. 오이디푸스는 우리가 알다시피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자식이자 동생인 이들을 낳은 사람, 따라서 가장 원초적인 인륜 질서를 어기고 신들에게 버림받았으며, 조국에서 쫓겨나서 눈 먼 채로 이국땅을 떠돌아다는 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데리다에 따르면 절대적 도착자 오이디푸스는 단지 비극 속의 허구적 주인공이 아니다. 그는 오늘날 생생하게 살아 있는 존재자이며 근대 세계를 상징하는 존재자이다.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한나 아렌트가 말하듯,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전쟁을 피해, 나치의 박해를 피해 피난을 간 수많은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자마자 노숙자(homeless)가 되었고 국가를 떠나자마자 무국적자(stateless)가 되었다. 인권을 박탈당하자마자 그들은 무권리자들(rightless)이 되었으며 지구의 쓰레기”(Hannah Arendt,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Harcourt, 1973, p. 267; 󰡔전체주의의 기원󰡕,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489~90.)가 되었다. 바로 이들이야말로 아노모스 오이디푸스, 근대적인 법-바깥에-존재하는 이”(J. Derrida, Hospitalité, vol. 1, p. 187.)가 아닌가? -바깥의-사람들, 그들은 오늘날에도 우리 도처에 존재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일회용 인간이라고 불리는 이들, 남아메리카의 광산에서 저임금 중노동에 시달리는 현대판 노예들만이 아니라,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속에서 위험한 일을 혼자서 감당하다가 건강을 해치거나 목숨을 잃는 수많은 비정규노동자들, 이주자들, 난민들, 성적 소수자들 같은 이들이 다름 아닌 법-바깥의-사람들 아닌가?


그렇다면 데리다가 이러한 이방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에 대한 무조건적 환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은, 철학적, 윤리적, 정치적으로 정당한 태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데리다는 확실히 무조건적 환대의 편에 있는 철학자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세 번째 놀람 또는 반전.

하지만 데리다에 따르면 그럼에도 우리는 무조건적 환대와 조건적 환대에서 한 쪽 편을 확실하게, 결정 가능하게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양자의 관계가 정확히 이율배반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적 환대와 조건적 환대 (또는 [법의 힘]의 표현을 빌린다면) 정의와 법 사이에는 이율배반적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핵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양자의 관계가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은, 단지 양자가 서로 충돌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무조건적인 환대라는 것은 칸트가 말하는 규제적 이념으로 이해될 수도 있고 아니면 추상적이고 유토피아적인”(117) 것에 머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해한다면 무조건적 환대는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이념이지만, 그것은 어쨌든 현실적으로 실천되는 조건적 환대를 규제하고 그것을 개선하는 준거로 작용하는 것으로 이해될 것이다.


하지만 데리다는 이런 해석을 미리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무조건적 환대와 조건적 환대, 또는 "자체와 법이라는 이 두 개의 법 체제는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이면서도 분리 불가능하다. 그것들은 서로를 함축하는 동시에 하나와 다른 하나 간에 서로를 배제한다. 그것들은 서로를 배제하는 순간 서로 합체되며, 하나와 다른 하나 간에 서로를 에워싸는 순간 서로 분리된다."”(117~18) 왜냐하면 무조건적 환대 편에서 보면 조건적 환대는 진정한 환대가 아니라 사실은 치안에 불과한 것이며, 역으로 조건적 환대의 편에서 보면, 공공의 불안을 야기하면서 무조건적으로 이방인을 맞아들이자고 주장하는 무조건적 환대야말로 공익을 훼손하고 정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일 수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보면 조건적 환대들 없이 무조건적 환대는 존재할 수 없으며, 무조건적 환대에 기초를 두지 않는다면 조건적 환대는 그저 행정적이고 치안적인 규제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방인들에 대하여, 외국인에 대하여, 더 나아가 일회용 인간들에 대하여 무조건적 환대를 해야겠지만, 그 무조건적인 환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누군가에는 무조건적인 환대일 수 있는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불안하고 위험한 행위처럼 보일 수 있으며, 심지어 우리가 어떤 타자를 무조건적으로 환대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또 다른 타자들은 배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한한 우리가 모든 타자들에 대해 절대적으로 무조건적 환대를 베풀고, 모두에게 정의를 시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에게 무조건적 환대를 해야 하고 누구는 (적어도 당분간) 환대에서 배제해야 하는가? 어떤 기준에 따라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그 기준은 무조건적 환대의 원리에 부합하는 기준인가 아니면 조건적 환대의 원리에 일치하는 기준인가?


그렇다면 얼핏 보기에 매우 추상적이고 난해한 철학 논의처럼 보이는 데리다의 논변이 지극히 현실적인 함의를 지닌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데리다야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철학자라고 말할 수도 있을 텐데, 깊이 생각하는 독자라면 현실주의철학이라는 두 단어 사이의 관계가 또한 지극히 이율배반적이라는 점을 눈치 챘을 것이다.

 

네 번째 놀람 또는 반전.

하지만 아마 반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앞서 법-바깥에-존재하는 이라고 말했던 오이디푸스에게도 또한 그 바깥이, 또 다른 절대적 타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타자의 이름은 바로 안티고네다. 그는 눈 먼 아버지를 모시고 이국땅을 이리저리 배회하는 존재이지만, 결국 이국땅에서 자신의 묘지를 선택한 아버지를 애도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아버지에게서. 그리고 나중에는 고국에서 크레온에게서. 애도야말로 환대의 또 다른 본질적인 방식이라면, 애도의 기회를 박탈당한 안티고네, 따라서 환대의 가능성 자체에서 배제당한 안티고네는, 우리에게 환대의 문제에 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더욱이 이 책의 말미에 나오는 성경 창세기의 롯 이야기, 곧 이방인을 환대하기 위해 자신의 딸들을 내어주는 그 이야기는 환대에 관하여, 환대와 젠더의 문제에 관하여 무엇을 말해주는가?

 

아마도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방금 언급했던 것들보다 더 많은 놀람과 반전을 경험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환대에 대하여]라는 이 책을 올바르게 환대하는 한 방식일 것이고, 환대에 관한 데리다의 사유를 단지 하나의 철학이 아니라 철학적인 것의 이름으로 만드는 한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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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금요일 부산대 인문학연구소에서 간행하는 학술지 코기토 100호 기념 학술대회가 열립니다. 


저도 발표를 하나 맡게 됐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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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 신유물론, 스피노자 



이 논문은 인류세와 관련하여 신유물론과 스피노자 철학을 비판적으로 비교ㆍ검토해보려고 한다. 최근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인류세와 그것이 제기하는 여러 문제들을 적절하게 개념화하는 것이 자연과학만이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인류세가 지구 시스템에 미친 인간의 행위성으로 인해 기후위기와 종다양성 파괴, 해양 생태계의 훼손 같은 현상들로 표출되는 지구 시스템의 변동이 일어나고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을 지칭하는 명칭이라면, 그것은 과학적 명칭임과 동시에 규범적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인류세는 "본질적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개념"(W. B. 갈리)일 수밖에 없으며, 상이한 이론적, 윤리적 입장을 산출하게 된다. 신유물론은 인류세의 위기에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물질의 행위성을 긍정함으로써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인간과 지구 시스템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신유물론은 그 이론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난점과 한계를 지닌 것으로 보이는데, 나는 역설적 유물론으로 이해된 스피노자 철학이 이러한 난점과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적절한 이론적 자원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논문에서는 스피노자의 역설적 유물론을 여섯 가지 테제로 제시하면서 제인 베넷의 신유물론과 스피노자 철학을 비교함으로써 이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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