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대중적 광기는, 이번 주말을 고비로 좀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MBC 앞의 촛불집회에 고작 50명 남짓 모였다는 것을 보면, 인터넷을 중심으로 선동하는
소수의 세력들이 이번 인터넷 광란의 근원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다수의 대중들은 '오랜만에 나온 위인'인 황우석 교수, 우리나라에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고,
노벨상을 타서 국위를 선양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난치병 환자들에게 치료의 희망을 안겨다주는,
그야말로 경제적 이익과 상징적 위신, 인도주의적 감동의 화신인 황우석 교수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시기'와 '모함'에 빠지고, '시청률만을 노린 상업주의적 방송의 도발'의 희생물이 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이런 저런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프레시안]이나 [오마이뉴스], [한겨레]를 중심으로 "일그러진 애국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대중들의 광기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제목소리를 내고 있고,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현재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극단적인 반응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댓글들을 달고 있는 것을 보면,
특별한 선동들이 지속되지 않는 한, 다음 주부터는 극단적인 광란은 어느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인터넷 포퓰리즘은 한번 타오를 때는 걷잡을 수 없지만 그만큼 지속력이 부족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게 더 위험한 것일 수도 있다. 현재의 추세는, 일종의 "누이좋고 매부좋고" 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한편으로 황우석 교수를 비롯한 생명공학 연구자들의 작업에서
준수되어야 할 윤리적 지침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황우석 교수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이번 사태를 겪은 뒤 오히려 더 공고해진 지원이 이루어질 것 같다. 이런 추세가 위험스럽다는 것은
앞으로 황우석 교수를 비판하거나 견제하는 일이 더 어려워지고, 그렇게 해서 문제의 진짜 핵심이
은폐될까 해서다.
황우석 스캔들의 문제의 핵심은, 한편으로 첨단 생명공학과 자본의 결합(이번에 제기된 윤리적 문제는
이러한 결합이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는 비인간적 현상의 극히 일부가 아닐까)이고, 다른 한편으로
포퓰리즘에 편승한 극우 민족주의의 등장, 또는 이 두 가지 경향의 행복한 결탁에 있는 것 같다.
어제 친구가 이번 사태에 관해 한 가지 언질을 준 게 있는데, 이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첨단 생명공학과
자본의 결탁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적어도 그 한 단면을 시사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일부만 그대로 소개해보자.
<우리형 연구분야가 관련 있어서 사실 10년전부터 황우석 얘기를 여러번 들었는데 지난주에 들은
게 바로 노와 황의 커넥션이다.
누가 먼저 접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둘 사이를 연결 한게 바로 박기영이란다 (형이 이 사람도 잘
아나 보던데 386들 따라다녀서 시골 국립대 교수 하다가 청와대 들어간 여자라고 혹평하더군).
그런데 문제는 노의 대중 선동 목적과 황의 연구비 욕심이 만난 것보다 더 큰 의도가 노무현에게
있다는 점이란다. 민노당 성명에서도 지적하듯이 박기영, 황우석, 노성일이 모두 속해 있는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는 우리나라 의료를 완전히 시장에 내주는 걸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사실 그 위원회의 플랜은 삼성에서 제공된거다.
삼성은 의료산업과 의료보험시장의 결합이 유망한 사업분야라고 판단해서 아주 조직적으로
준비해오고 있는데, 너도 알겠지만 삼성생명은 국내보험시장의 거의 절반을 장악하고 있고
삼성의료원은 현재 의료시장의15%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형 얘기로는 공식적인 삼성의료원 외에 삼성이 실제로 지배하고 있는 병원은 훨씬더 많고
지방의 국립대병원들과도 부분적 제휴를 거의 맺고 있단다. 거기다가 범삼성계열인 Cj그룹은
제약업과 생명공학 분야에서 의료산업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형이 진행하고있는 연구도 CJ와 연결이 있단다. 그래서 지금 판단으로는 노무현과 주변 놈들이
황우석 연구의 시장가치를 잘 몰라서라기 보다는 의료의 산업화와 공보험의 무력화를 통한
사보험의 지배력 강화를 관철시키기 위한 대중 선동으로 황우석 연구를 띄워주고 있는 측면도
있을 것 같다. >
생명공학과 독점자본의 결합이 어떤 왜곡된 결과를 낳을지는 속단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것이 현재
많은 난치병 환자들이 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안타까운 노릇이지만 ...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결합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더욱 확고한 이데올로기적 지주를 확보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노무현은 사라져도 남한에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개혁과 참여라는 이름 아래 헤게모니를
확보했듯이, 설사 앞으로 황우석 교수가 이런저런 문제로 낙마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배후에 있는 첨단 생명공학과 독점 자본의 결합, 그리고 그것을 감싸고 있는 극단적 이데올로기는
죽은 아버지처럼 불멸의 권위를 휘두르게 되는 게 아닐지, 나는 그게 더 걱정스럽다.
활동가들과 진보 지식인들이 좀더 고민하고 분석해봐야 할 문제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