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비평] 여름호에 실릴 글 한 편 올립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국내의 푸코 수용을 다루는 글입니다.
아직 교정이 다 끝난 글이 아니기 때문에, 이 글을 인용하거나 이 글에 관해 토론하기를 원하는 분들은
출판된 [역사비평]에 실린 글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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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에 대한 연구에서 푸코적인 연구로: 한국에서 푸코 저작의 번역과 연구 현황
I. 친숙하면서 낯선 철학자, 미셸 푸코
미셸 푸코는 흔히 ‘포스트구조주의’로 분류되는[ ‘포스트구조주의’라는 말에 따옴표를 친 이유는, 이 단어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과 더불어 현대 프랑스 철학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국내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되어 왔지만, 정작 프랑스에서는 이 두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미국에서 널리 활용하고 있는, 즉 미국 학계 및 언론계의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에서 발명된 용어들로 프랑스 철학을 지칭하는 관행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어볼 만하다. 이 문제는 다른 자리에서 좀더 심층적으로 다뤄볼 만한 주제다.] 동시대의 다른 프랑스 철학자들에 비해 큰 행운을 누린 철학자였다. 알튀세르, 데리다, 들뢰즈, 리오타르 등과 같은 대부분의 다른 철학자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었음에도 정작 프랑스 학계에서는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던 데 비해, 푸코는 광기의 역사(1961), 임상의학의 탄생(1963), 말과 사물(1966) 같은 저작들의 성공에 힘입어 일찌감치 대학에 자리 잡았고, 1970년에는 장 이폴리트(Jean Hyppolite)의 후임으로 프랑스 학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자리인 콜레주 드 프랑스(College de France)의 교수로 취임했다. 콜레주 드 프랑스 부임 이후에도 감시와 처벌(1975), 성의 역사 1권: 지식의 의지(1976)와 같은 저작들을 통해 미셸 푸코는 대중적인 명성은 물론이거니와 프랑스 학계의 중심에서 확고한 권위를 누렸다.
그의 행운은 사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97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은 다시 한 번 서구 학계에 푸코에 대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감시와 처벌과 지식의 의지 출간 직후 푸코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했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1975-76), 안전, 영토, 인구(1977-78), 생명정치의 탄생(1978-79) 같은 강의록들은 복지국가의 위기 및 신자유주의의 도래에 관한 정교한 분석을 담고 있어서 광범위한 인문사회과학 분야 연구자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말 그대로 푸코 르네상스가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들뢰즈와 더불어 한국에서도 보기 드문 행운을 누린 현대 프랑스 철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반면 데리다와 장-프랑수아 리오타르는 꽤 불운한 프랑스 철학자들로 간주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너무나 많은 오역본들이 범람하는 까닭에 그의 사상에 대한 상당한 오해가 만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리오타르의 경우는 오역도 오역이거니와 그의 주저들이 거의 소개되지 않고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선 그는 국내에 소개된 프랑스 철학자들 중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가장 잘 소개된 철학자다. 1979년 성의 역사 1권이 푸코 저작 중에서는 처음으로 번역된 이후,[성은 억압되었는가?, 박정자 옮김, 인간사, 1979. 하지만 이 번역본은 꽤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1987년 말과 사물이 번역되고,[이광래 옮김, 민음사, 1987. 이 번역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었는데, 2012년에 질적으로 더 우수한 새로운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말과 사물, 이규현 옮김, 민음사, 2012.] 곧이어 불문학자 김현이 엮은 미셸 푸코의 문학비평이 출간되었다.[김현 엮음, 문학과지성사, 1989. 이 책 역시 번역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었다. 따라서 초기에 번역된 이 세 권은 푸코 저작들 가운데서 오역이 심한 편에 속한다.] 그리고 그 뒤 성의 역사 1~3권,[성의 역사 1권: 지식의 의지, 이규현 옮김, 나남, 1990; 성의 역사 2권: 쾌락의 활용, 문경자ㆍ신은영 옮김, 나남, 1990; 성의 역사 3권: 자기에의 배려, 이혜숙ㆍ 이영목 옮김, 나남, 1990.] 광기의 역사 축약본,[김부용 옮김, 인간사랑, 1991. 이 책은 영역본으로 출간된 광기의 역사의 축약본, Madness and Civilization, Vintage Books, 1971의 번역이다. 광기의 역사 완역본은 2004년 출간됐다. 광기의 역사, 이규현 옮김, 나남, 2004. 이 책은 전반적으로 무난한 번역이지만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상당히 많이 눈에 띈다. 개역본을 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식의 고고학,[이정우 옮김, 민음사, 1992. 이 책도 전반적으로 무난한 번역이지만, 좀더 개선될 필요가 있다. 이는 같은 역자가 번역한 담론의 질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담론의 질서, 이정우 옮김, 서강대학교 출판부, 1998.] 감시와 처벌[감시와 처벌: 감옥의 역사, 오생근 옮김, 나남, 1994. 감시와 처벌은 이 판본 이외에 또 다른 번역본도 출간된 적이 있다.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 박홍규 옮김, 강원대출판부, 1993.] 등이 연이어 소개되었다. 또한 김현, 이광래, 이정우 같은 국내 학자들의 푸코 연구서도 일찌감치 출간되어, 푸코는 프랑스 철학자들 중에서 국내에서 가장 먼저 각광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김현, 시칠리아의 암소, 문학과지성사, 1990; 이광래, 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에서 성의 역사까지, 민음사, 1989; 이정우, 담론의 공간: 주체철학에서 담론학으로, 민음사, 1994.]
2000년대 들어서는 들뢰즈에 밀려 푸코 저작의 번역 및 연구가 주춤했지만, 최근 비정상인들,[박정자 옮김, 동문선, 2001.]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박정자 옮김, 동문선, 1998.] 주체의 해석학,[심세광 옮김, 동문선, 2007.] 안전, 영토, 인구[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1.] 같은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이 계속 출간됨으로써 국내에서도 푸코에 관한 새로운 관심이 생겨나고 있다. 국내에서 한 철학자에 대한 관심이 20여년 넘게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는 것은 매우 드문 현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2000년대 한국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 및 교양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친 들뢰즈(/가타리)에 대한 관심이 2010년대 들어서 현격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푸코는 그야말로 예외적인 행운을 누리고 있는 철학자라고 할 만하다.
물론 푸코가 외국 및 국내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에 의해 많이 연구되고 또 교양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는 현상을 단순히 행운의 문제로 돌릴 수는 없다. 그것은 그만큼 푸코의 면밀한 분석과 깊은 통찰이 연구자들과 독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푸코의 규율권력에 대한 분석은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기존의 급진 좌파 이론이 소홀하게 다룬 국가의 공권력 바깥이나 그 말단에 위치한 영역, 곧 학교, 병원, 감옥, 군대 등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메커니즘을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다루고 있어서 커다란 반향을 얻고 있다.
하지만 푸코 저작이 이처럼 널리 번역되고 읽히고 있음에도 과연 푸코가 한국 학계에 제대로 수용되고 있는가 묻는다면, 마냥 긍정적인 답변만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푸코 연구 및 수용이 특정한 분야에 편중되어 있을뿐더러,[국내의 푸코 연구는 크게 세 영역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널리 소개되고 연구된 영역은 권력의 계보학 분야다. 하지만 푸코의 권력이론은 지배 권력에 대한 분석에서는 많은 통찰을 주는 반면, 저항이나 해방의 가능성은 사고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이유로 2000년대 이후에는 뚜렷한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두 번째 분야는 후기 푸코 저작에서 나타나는 윤리의 계보학 및 실존의 미학에 관한 연구다. 특히 철학 연구자들이 이 분야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는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 특히 안전, 영토, 인구 및 생명정치의 탄생과 관련된 신자유주의에 관한 분석에서 푸코가 주요한 이론적 전거로 활용되고 있다.] 20여년의 수용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직 푸코 사상에 대한 총체적인 상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푸코가 고전적인 의미의 철학자라기보다는 분과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근대 사회의 권력 구조와 근대적 인간의 정체성에 관해 끊임없이 다르게 사유하기를 실천해온 연구자이자 실천가였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과연 한국에서도 이런 의미의 푸코적인 연구와 실천이 존재하고 있는지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II. 푸코 저작의 번역 및 연구 상황
푸코의 저작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우선 푸코가 생전에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한 저작들이 존재한다. 정신병과 심리학, 광기의 역사, 임상의학의 탄생, 말과 사물, 지식의 고고학을 비롯하여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1~3권에 이르는 이 저서들은 푸코 연구의 중심이 되는 저작들이다. 국내에는 성의 역사 1~3권을 비롯하여 푸코가 생전에 출간한 저작들은 거의 모두 소개돼 있으며,[푸코가 생전에 출간한 책 중에서 유일하게 한글로 번역이 되지 않은 책은 레이몽 루셀에 관한 책이다. Michel Foucault, Raymond Roussel, Gallimard, 1963.] 몇 권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비교적 번역도 좋은 편에 속한다.[푸코 저작들 중 특히 번역에 문제가 있는 저작은 말과 사물, 이광래 옮김, 민음사, 1987; 임상의학의 탄생, 홍성민 옮김, 이매진, 2006이다. 반면 좋은 번역으로 꼽을 만한 것은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들과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1~3권이다. 나남 출판사에서 출간된 감시와 처벌 및 성의 역사 1~3권 번역들은 처음 출간됐을 때에는 상당한 번역의 문제점을 안고 있었지만, 그 이후 개정판이 나오면서 처음의 문제점들이 많이 해소됐다.] 그리고 국내에서 집중적인 연구의 대상이 된 것이 이 첫 번째 부류의 저작들이다.
다음으로 푸코 사후에 말과 글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논문, 인터뷰, 강의 원고, 서문과 후기 등을 묶은 네 권짜리 책이 있다.[Michel Foucault, Dits et écrits, ed., Daniel Defert, vol. 1~4, Gallimard, 1988. 이 저작은 최근 두 권짜리 책으로 재편집되어 출간되었다. Dits et écrits, vol. 1-2, collection "Quarto", Gallimard, 2001. 이 글에서 말과 글의 인용은 이 두 권짜리 판본을 중심으로 한다.] 푸코는 프랑스 철학자들 중에서도 가장 인터뷰를 많이 남긴 사람 중 한 명이며, 또한 책으로 묶이지 않은 그의 여러 글들 역시 독자적인 학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는 초기의 문학비평과 70년대의 권력의 계보학에 관한 연구 및 인터뷰들, 니체와 계보학에 관한 글, 마르크스에 관한 긴 인터뷰, 게이 및 레즈비언 운동에 관한 인터뷰, 1979년 이란혁명에 관한 보고, 윤리에 관한 여러 인터뷰 등이 망라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3000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말과 글은 푸코 연구의 또 다른 보고라 할 만하다.
하지만 국내에는 이 방대한 저작 중 극히 일부만이 번역ㆍ소개되어 있으며, 더욱이 그 중 상당수는 영어 중역본인 데다가 꽤 심각한 번역의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김현이 미셸 푸코의 문학비평이라는 제목 아래 1960년대 푸코의 문학비평에 관한 글들을 묶어서 출간한 바 있고, 1980년 영어권에서 출간된 지식과 권력에 관한 인터뷰 모음집인 권력과 지식이 소개된 바 있으며,[Michel Foucault, Power/Knowledge: Selected Interviews and Other Writings, 1972-1977, ed., Colin Gordon, Pantheon Books, 1980; 권력과 지식: 미셸 푸코와의 대담, 홍성민 옮김, 나남, 1991.] 푸코의 권력론과 푸코-하버마스에 관한 논쟁 자료들이 일부 소개되었고,[정일준 엮음, 미셸 푸코의 권력이론, 새물결, 1994; 정일준 엮음, 자유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열망, 새물결, 1999. 이 두 권의 책은 푸코의 저술들만 묶은 것이 아니라 푸코의 저술들 이외에 비판가들의 글도 함께 수록하고 있다.] 마르크스에 관한 이탈리아 언론과의 인터뷰 모음집이 최근 번역된 바 있다.[미셸 푸코, 푸코의 맑스: 둣치오 뜨롬바도리와의 대담, 이승철 옮김, 갈무리, 2004. 이 책의 원서는 1981년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대담집이며, 푸코 생전에는 불어로 출간되지 않았다가 사후에 말과 글에 수록되었다. 국역본은 영역본을 번역한 것이다. Duccio Trombadori, Conversazione con Michel Foucault, 10/17, Salerno, 1981; “Entretien avec D. Trombadori”, in Dits et écrits, vol. II.] 이 중에서 미셸 푸코의 문학비평과 권력과 지식은 번역에 꽤 문제가 있어서 푸코의 초기 문학비평과 70년대 푸코의 권력의 계보학이 지닌 다면적 함의를 국내의 독자들이 충실히 접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말과 글에 대한 좀더 체계적인 번역과 소개는 국내의 푸코 연구를 위해 시급한 과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독일과 영미권에서는 이미 말과 글에 수록된 거의 모든 글에 대한 체계적인 번역과 소개가 이루어진 바 있으며,[Michel Foucault, Dits et Ecrits. Schriften: Schriften in vier Bänden, Suhrkamp, 2005; The Essential Works of Foucault, 1954-1984, vol. 1~3, New Press, 2001.] 이는 푸코의 저작을 새롭게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푸코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말과 글에 대한 기획 번역이 하루빨리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총 13권으로 기획되어 1997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이 있다. 푸코는 1970년부터 콜레주 드 프랑스에 재직하면서, 안식년인 1976-1977년을 제외하고 1년에 한 차례 대중들을 상대로 공개 강의를 진행했다. 이 강의를 위해 푸코 자신이 작성한 강의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청중들의 녹음자료를 바탕으로 편집자들이 재구성해낸 강의록이 출간되면서 푸코 연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 강의록은 몇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선 이 강의록은 푸코 사상의 전개과정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망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푸코 사상의 전개과정에는 몇 차례의 휴지기가 존재한다. 1969년 지식의 고고학(또는 앎의 고고학이라고 옮길 수도 있다)과 1970년 콜레주 드 프랑스 취임강연인 담론의 질서가 출간된 뒤 1975년 감시와 처벌이 나오기까지 5년 간의 공백기가 존재한다. 또한 1976년 성의 역사 1권: 지식의 의지가 나온 뒤 1984년 푸코가 사망하기 직전에 성의 역사 2권: 쾌락의 활용과 성의 역사 3권: 자기에의 배려가 출간되기까지 푸코는 무려 8년 동안 아무런 저작도 출간하지 않았다.
이 두 개의 휴지기는 푸코 사상의 전환이 이루어진 시기라는 점에서 푸코 연구에서 상당히 중요한 시기였다.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과 담론의 질서에서는 연구의 초점을 담론에 맞추고 있으며, 특히 지식의 고고학에서는 고고학 방법론을 체계화하고 있다. 하지만 감시와 처벌 이후에 푸코는 권력과 지식의 관계 또는 비담론과 담론의 관계에 대한 계보학적 분석에 주력하고 있다. 이 5년의 시기 동안 푸코가 했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은 현재 세 권이 출간되었는데,[Michel Foucault, Leçons sur la volonté de savoir: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0-1971), Gallimard/Seuil, 2011; Le Pouvoir psychiatrique: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3-1974), Gallimard/Seuil, 2003; Les Anormaux: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4-1975), Gallimard/Seuil, 1999; 비정상인들, 앞의 책.] 이 시기의 강의록이 모두 출간되면 이 5년 동안 푸코 작업의 전환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좀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푸코 사상의 전개과정에 대한 이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좀더 중요한 것은 지식의 의지와 쾌락의 활용 및 자기에의 배려 사이의 8년 동안 푸코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했던 강의 내용이다. 사실 강의록이 출간되기 전까지 푸코 연구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 중 하나는 지식의 의지와 쾌락의 활용 및 자기에의 배려 사이에서 나타나는 전면적인 주제의 전환이라는 문제였다. 주지하다시피 푸코는 지식의 의지에서 프로이트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억압 가설, 곧 19세기 이후 서양 사회에서는 성이 억압되어왔다는 가설을 비판하는 것을 핵심 주제로 삼았다. 반면 쾌락의 활용과 자기에의 배려에서는 시대 배경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 및 초기 기독교 시대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논의의 주제 역시 권력과 지식의 계보학에서 실존의 미학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감시와 처벌 및 지식의 의지에서 전개된 권력의 계보학에서는 규율권력에 의한 예속적 주체의 생산이라는 문제가 중심 주제였던 반면에, 말년의 저작에서는 오히려 윤리적 주체의 구성이라는 주제가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푸코 비판가들은 푸코 말년에 주체로 회귀했다고 주장하면서 푸코 사상은 비일관적이며, 푸코의 권력의 계보학은 이론적으로 (또는 적어도 규범적으로) 실패한 기획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이런 비판은 다음 저작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낸시 프레이저, 「푸코의 권력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경험적 통찰과 규범적 혼란」, 정일준 엮음, 미셸 푸코의 권력이론, 새물결, 1994; 위르겐 하버마스,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 이진우 옮김, 문예출판사, 1994; Peter Dews, Logics of Disintegration: Post-tructuralist Thought and the Claims of Critical Theory, Verso, 1987. 이러한 비판에 대한 반비판도 숱하게 제시된 바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논의로는 Tom Keenan, “The ‘Paradox’ of Knowledge and Power: Reading Foucault on a Bias”, Political Theory, vol. 15, no. 1, 1987; David Campbell, “Why Fight: Humanitarianism, Principles, and Post-structuralism”, Millennium - Journal of International Studies, vol. 27, no. 3, 1998; Ben Golder, “Foucault and the Unfinished Human of Rights”, Law, Culture and the Humanities, vol. 6, no. 3, 2010 등을 참조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출간된 이 시기의 강의록은 푸코 작업의 전환이 비일관적인 이론적 태도의 결과이거나 권력의 계보학의 규범적 실패의 결과였다기보다는 집요하고 일관된 탐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령 감시와 처벌 및 지식의 의지와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강의를 보면 푸코가 담론의 질서에서 감시와 처벌에 이르기까지 추구했던 권력의 계보학의 난점들에 관해 매우 명철하게 자각하고 있음이 잘 드러난다.[이하의 논의에 대한 좀더 자세한 분석은 진태원, 「생명정치의 탄생: 푸코와 생명권력의 문제」, 문학과 사회 75호, 2006 참조.] 푸코가 권력의 계보학을 추구했던 것은 에밀 졸라나 사르트르 등으로 대표되는 보편적인 지식인의 이상, 곧 보편적인 대의나 이상을 내세우면서 권력에 의해 억압받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지식인이라는 이상이 이제는 더 이상 실효성도 없고 정당성도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푸코는 예속된 앎의 반항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곧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을 대신하여 투쟁하는 대신, 권력의 그물망에 따라 규격화되고 갇혀 있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앎을 깨닫고 그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제 지식인의 역할이 되었다는 것이다. 푸코는 이러한 지식인을 “특수한 지식인”(intellectuel spécfique)이라고 부른 바 있다.[Michel Foucault, “Entretien avec Michel Foucault”, in Dits et écrits, vol. II, Gallimard, 2001, p. 154.]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두 가지 난점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푸코의 권력의 계보학은 규율 권력(le pouvoir disciplinaire)이 근대 서양 사회를 지배하는 유일한 또는 적어도 지배적인 권력 형태라는 것을 전제한다. 하지만 푸코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와 안전, 영토, 인구에서 보여준 것처럼, 근대 사회에는 규율 권력 이외에 또 다른 주요한 권력 형태, 특히 생명 권력이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상이한 권력 형태들 사이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라는 문제 또는 상이한 권력 형태들을 함께 설명해줄 수 있는 개념적 틀은 어떤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둘째, 이에 따라 권력에 대한 저항의 문제 역시 새롭게 제기된다. 규율 권력이라는 문제설정 아래에서 저항은 규격화 내지 정상화(normalisation)에 대한 저항의 문제로 제기된다. 하지만 푸코가 강의록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예속적인 개인적 주체들의 생산을 목표로 삼는 규율 권력과 달리 종으로서의 인구 전체를 대상으로 삼는 권력, 곧 생명 권력의 문제였다. 따라서 개인 주체들이 아니라 인구 전체의 차원에서 작용하는 권력에 저항하는 주체를 상정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푸코가 안전, 영토, 인구 도중에 통치(gouvernement) 내지 통치성(gouvernementalité)이라는 새로운 문제설정을 도입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난점들에 대한 적절한 답변을 모색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통치 내지 통치성이라는 개념은 권력의 형태에 대한 분석만이 아니라, 권력이 생산하는 예속적 주체화 양식과 다른 자유로운 주체화 양식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푸코 강의록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들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더 나아가 푸코 사상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이해하기 위해 관건이 되는 문제는 푸코가 언제, 어떻게 해서 권력의 분석론으로서의 통치 이론에서 주체화 양식론으로서의 통치 이론으로 넘어가게 되었으며, 그러한 ‘이행’의 분석적ㆍ규범적 근거들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일 것이다. 푸코는 안전, 영토, 인구와 생명정치의 탄생에서는 통치 개념을 주로 권력 분석을 위해 사용하는 반면, 1982~1984년에 이루어진 자기와 타자의 통치 및 진실의 용기: 자기와 타자의 통치 II에서는 주로 주체화 양식의 관점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프랑스에서 간행되지 않은 생명체의 통치에 대하여[Michel Foucault, Du Gouvernement des vivants (1979~1980).]가 나온다면 이 문제에 관해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에는 푸코 생전에 출간된 저작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후기 푸코가 매우 중시했던 주제들이 담겨 있다. 가령 1977~1979년 사이에 이루어진 안전, 영토, 인구와 생명정치의 탄생 강의에서는 자유주의의 계보학 및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석이 핵심적인 주제를 이루고 있다.[미셸 푸코, 안전, 영토, 인구,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1; Michel Foucault, La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Gallimard/Seuil, 2004; 생명정치의 탄생, 오트르망 옮김, 난장, 근간.] 1980년대 초 영국의 마가렛 대처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이 집권하면서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이전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한 이 강의들 중 일부는 이미 1990년대 일군의 영미권 이론가들에 의해 복지국가의 위기 및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을 분석하기 위한 핵심 준거로 활용된 바 있다.[니콜라스 로즈(Nikolas Rose), 피터 밀러(Peter Miller), 토마스 오스본(Thomas Osborne), 콜린 고든(Colin Gordon) 등을 중심으로 한 이 연구자들은 영국의 사회과학 학술지 경제와 사회(Economy and Society)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푸코적인 통치성의 관점에서 복지국가 및 신자유주의를 분석하는 여러 저작을 남겼다. 특히 Colin Gordon ed., The Foucault Effect: Studies in Governmentalit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1; Andrew Barry et al. eds., Foucault and Political Reason: Liberalism, Neo-Liberalism, and Rationalities of Government,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6; Mitchell Dean, Governmentality: Power and Rule in Modern Society, Sage Publications, 1999; Nikolas Rose, Powers of Freedom: Reframing Political Thought,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Nikolas Rose & Peter Miller, Governing the Present: Administering Economic, Social and Personal Life, Polity, 2008 등 참조.] 그리고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이 정식으로 출간되면서 푸코의 분석은,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 비판과 더불어 오늘날 신자유주의 분석을 위한 주요한 이론적 틀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푸코적인 신자유주의 분석을 한층 더 발전시키고 있는 빼어난 저작으로는 특히 Pierre Dardot & Christian Laval, La Nouvelle raison du monde: Essai sur la société néolibérale, La Découverte, 2009; 피에르 다르도ㆍ크리스티앙 라발, 새로운 세계 이성: 신자유주의 사회에 관한 시론, 오트르망 옮김, 그린비, (근간)을 꼽을 수 있다. 국내의 연구로는 서동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 돌베개, 2009가 눈여겨볼 만한 업적이다.]
1982~1984년에 이루어진 자기와 타자의 통치 강의에서는 파레지아(parrhesia)라는 개념—이는 그리스어로 “진실을 말하기”를 뜻한다—이 정치와 윤리, 지식을 연결하는 핵심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Michel Foucault, Le Gouvernement de soi et des autres: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82-1983), Gallimard/Seuil, 2008; Le Courage de la vérité: Le Gouvernement de soi et des autres II: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83-1984), Gallimard/Seuil, 2009. 이 강의록들은 앞으로 난장 출판사에서 번역ㆍ출간될 예정이다.] 이 개념은 생전에 푸코가 발표한 저술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강의록에만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필자가 보기에 이 개념에 관한 푸코의 분석은 고대 그리스 철학과 문학, 정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해줄뿐더러, 현대 민주주의 정치를 다른 시각에서 사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아직 이 개념에 관한 연구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파레지아라는 주제는 앞으로 푸코 연구의 중요한 한 가지 축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푸코의 파레지아에 관해서는 특히 Fulvia Carnevale, “La parrhèsia, le courage de la révolte et de la vérité”, in Pascal Michon et al., Foucault dans tous ses éclats, L'Harmattan, 2005; 프레데리크 그로 외, 미셸 푸코 진실의 용기, 심세광 외 옮김, 길, 2006 참조.]
그 밖에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 및 초기 기독교의 윤리학에 관한 푸코의 분석, 계몽과 근대 개념을 중심으로 한 칸트 철학에 대한 재독해 등은 모두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 연구 주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은 단순히 푸코가 생전에 출간한 저작을 이해하기 위한 보충적인 자료에 그치지 않으며, 독자적인 이론적 가치를 지닌 또 다른 푸코 사상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999년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가 번역되면서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한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은 현재까지 총 4권이 번역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번역될 예정이다. 한 가지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은 지금까지 번역된 이 4권의 강의록 모두 뛰어난 어학 능력과 푸코에 대한 지식을 갖춘 역자들에 의해 번역되어 번역의 질이 아주 높다는 점이다. 특히 가장 최근에 번역된 안전, 영토, 인구는 원문에 대한 꼼꼼하고 정확한 번역과 더불어 적절하고 풍부한 역주를 포함하고 있어서 독자들이 푸코의 강의록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기존에 번역된 푸코 저작들 중 가장 번역 수준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뛰어난 번역 덕분에 앞으로 계속 소개될 콜레주 드 프랑스 한국어판은 푸코 사상을 좀더 정확히 이해하고 응용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III. 푸코적인 연구와 실천을 위하여
미셸 푸코는 다양한 모습을 지닌 철학자다. 그는 초기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이론과 문제설정을 끊임없이 정정해가면서 새로운 주제를 모색했다.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만큼 푸코 사상의 이러한 면모가 잘 드러나는 곳은 없다. 대개 3달 정도 진행된 그의 강의에서는 첫 번째 강의에서 제시된 주제가 마지막 강의까지 지속되는 경우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강의 초기에 제시된 주제는 강의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논의를 낳고 이러한 논의는 다시 강의 전체의 방향을 새로운 주제로 이끌어가게 된다. 가령 안전, 영토, 인구에서는 강의 첫 줄에서 “올해는 제가 두루뭉수리하게 생명관리권력이라고 불렀던 것을 연구해보려 합니다”[미셸 푸코, 안전, 영토, 인구, 17쪽.]라고 말하지만,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강의 주제는 통치 내지 통치성의 문제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마키아벨리와 국가이성에 관한 논의에서 시작됐던 통치의 문제는 고대 그리스와 초기 기독교를 거쳐 정치경제학의 탄생에 관한 분석으로 변화무쌍하게 진행되어간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은 그 다음해 강의인 생명정치의 탄생에서는 20세기 독일과 미국의 경제학 담론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진다. 푸코 강의록의 묘미 중 하나는 이처럼 끊임없이 분석을 정정하고 변경해 가면서 이론적 일관성을 유지하는 푸코의 지적 능력을 확인하는 데 있다.
따라서 푸코를 이런저런 한 가지 틀 속에서 규정하려는 시도는 푸코에 대한 불구적인 이해를 낳기 십상이다. 푸코가 이처럼 다면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은 푸코가 평생 자신을 일정한 틀에 따라 규정하기를 거부했고, “다르게 사유하기”를 자신의 철학적 규범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분류와 정체화가 사상가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고 또한 후배 연구자들이 감당해야 할 과제라고 한다면, 푸코 사상의 다면성과 독창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그의 사상을 일정하게 분류하는 일은 마땅히 시도되어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국내에서 푸코는 대략 네 가지 측면에서 수용되어 왔다. 먼저 푸코는 프랑스 바깥, 특히 영미권에서 ‘포스트 담론’[필자는 여기서 ‘포스트 담론’이란 말을 1990년대 이후 국내 학계와 언론계, 공론장 등에서 널리 수용된 바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포스트식민주의 등을 통칭하기 위해 사용하겠다.]의 상징으로 간주되었거니와 이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푸코가 포스트 담론의 상징이었다는 것은 몇 가지 함의를 지니고 있다. 첫째,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와 다른 새로운 진보 담론(또는 좌파 담론)이 등장했음을 뜻한다. 비마르크스주의적 진보 담론은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노동자 계급을 역사와 정치의 유일한 주체로 상정하지 않으며, 자본주의 경제의 변혁을 정치의 배타적인 목표로 설정하지도 않는다. 둘째, 이러한 담론은 경제적인 적대와 계급투쟁으로 환원되지 않는 여러 가지 사회적 갈등을 새로운 정치와 윤리의 쟁점으로 제기한다. 이러한 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성적 갈등, 인종 갈등, 환경 문제 등은 경제적 적대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쟁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진보 담론은 필연적으로 투쟁의 다양성과 국지성을 설정하며, 상이한 투쟁들 사이의 연대 및 소통이라는 문제를 새로운 진보 정치의 중요한 과제로 파악한다. 푸코가 포스트 담론의 상징으로 간주되어 왔다면, 그것은 아마도 푸코가 1970년대의 계보학적인 분석을 통해 규율 권력이라는, 정치의 새로운 물질적 토대를 발굴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푸코에 대한 연구 및 활용에서 권력의 계보학이 가장 주목을 많이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푸코는 무엇보다 권력의 계보학자로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는 권력의 계보학을 대표하는 두 권의 저작인 감시와 처벌 및 지식의 의지가 푸코 저작 중에서도 가장 번역이 잘된 저작이라는 사정도 중요한 동기로 작용했다. 하지만 돌이켜본다면 푸코의 권력의 계보학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많이 존재했지만, 푸코적인 권력의 계보학을 수행하려는 시도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김진균과 정근식이 주도한 식민지 규율 권력에 대한 집단적 연구는 푸코의 계보학적 권력론을 일제 식민지 시대 분석에 활용하려는 주목할 만한 시도였으나,[김진균ㆍ정근식 엮음, 근대 주체와 식민지 규율 권력, 문화과학사, 1997.] 후속 작업은 푸코적인 문제설정과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가령 공제욱ㆍ김진균 엮음, 식민지의 일상: 지배와 균열, 문화과학사, 2006.]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전자의 작업은 비교적 푸코의 규율권력론에 충실하게 공권력이 작동하는 국가 제도 바깥의 영역(공장, 학교, 병원, 군대 등)에서 작동하는 규율권력이 어떻게 (식민지의) 예속적 주체들을 생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후자의 작업은 (필자들에 따라 다소간의 관점의 차이는 있으나) 지배 권력의 주체로서 (식민지) 국가를 상정하는 가운데 지배자와 피지배 사이의 강압과 동의의 복합적 관계를 분석하는 데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푸코 특유의 관계론적 권력론과 다를 뿐만 아니라[푸코의 관계론적 권력론에 관해서는 진태원, 「푸코와 민주주의: 바깥의 정치, 신자유주의, 대항품행」, 푸코 이후의 철학과 정치, 제 2회 그린비 심포지엄 자료집(2012. 2) 참조.] 푸코가 계보학적 권력 분석을 시도할 때 염두에 둔 “예속된 앎의 반항”이라는 규범적 원칙과도 다른 것으로 보인다.
셋째, 주체화(subjectivation) 이론가로서의 푸코라는 모습이 존재한다. 국내에서는 권력의 계보학보다 덜 주목받고 있지만, 푸코가 말년의 작업에서 특히 관심을 기울인 문제는 주체화의 문제다. 주체화의 문제는 푸코가 생전에 출간한 저작 가운데서는 특히 쾌락의 활용과 자기에의 배려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진 바 있으며, 유고작으로 출간된 말과 글의 여러 대담 및 80년대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에서도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생전에 출간된 저작에서 주체화의 문제는 실존의 미학이라는 관점에서 주로 다루어졌으며, 따라서 국내의 연구도 대개 윤리학적인 측면에서 수행되었다.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의 출간이 갖는 의의 중 하나는 권력의 계보학과 실존의 미학 사이에서 균열을 보인 후기 푸코 사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앞으로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이 계속 번역ㆍ소개된다면, 통치의 문제설정을 중심으로 하여 규율 권력의 이론가 푸코와 주체화의 윤리학자 푸코 사이의 균열을 메우려는 국내의 연구도 좀더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네 번째로 푸코는 신자유주의 통치성에 대한 분석가로서 주목받고 있다. 앞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신자유주의 비판가 내지 분석가로서 푸코의 면모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은 안전, 영토, 인구 및 생명정치의 탄생이라는 강의록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일부 연구를 제외하면 그다지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가령 임동근, 「국가와 통치성」, 문화과학 54호, 2008년 여름호; 서동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앞의 책; 「신자유주의 분석가로서의 푸코」, 문화과학 57호, 2009년 봄호 등을 참조할 수 있다.] 프랑스와 영미권 또는 독일에서 현재 푸코 연구의 중심축의 하나를 이루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통치성에 관한 연구다.
푸코의 통치성 분석의 의의는 금융 자본의 세계화에 초점을 맞추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정치경제학 비판과 달리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의 핵심을 새로운 예속적 주체화 양식 및 그것과 연결된 새로운 합리성 체제의 구현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분석은 신자유주의를 자본의 음모로 이해하거나 자본에 의해 개인들에게 외재적으로 강제되는 경제 정책과 이데올로기로 파악하는 관점을 넘어, 사회 전체의 차원에서 개개인의 사고 양식과 행동 규범으로 내면화되고 체화되는 주체화 양식 및 합리화 체제로 이해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훨씬 더 견고하고 뿌리 깊은 새로운 통치 유형이기 때문에 단순히 복지국가를 실현한다거나 금융 자본의 활동을 통제하는 것으로 극복될 수 없으며,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새로운 주체화 양식의 발명이 필수적인 과제로 요청된다.[이 문제에 관해서는 특히 Pierre Dardot & Christian Laval, La Nouvelle raison du monde: Essai sur la société néolibérale, op. cit.; 피에르 다르도ㆍ크리스티앙 라발, 새로운 세계 이성: 신자유주의 사회에 관한 시론, 앞의 책의 분석 참조.] 이러한 분석은 자칫 신자유주의를 내적인 균열이나 모순에서 벗어난 일종의 전체주의적 지배의 체제로 이해하게 만들 위험도 품고 있으나, 잘 활용된다면 신자유주의를 좀더 복합적이고 정교하게 분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네 가지 측면과 달리 국내에서 가장 주목을 덜 받은, 따라서 앞으로 좀더 많은 관심과 연구 및 응용이 필요한 푸코는 역사학자로서의 푸코일 것이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나 말과 사물(이 책의 부제는 ‘인문과학의 고고학’이다), 지식의 고고학 및 감시와 처벌(이 책은 ‘감옥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성의 역사 같은 그의 주요 저작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 프랑스철학자들 중에서도 역사의 문제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 철학자였다. 실제로 그는 고고학이나 계보학 같은 새로운 역사 분석 방법론을 고안해냈을 뿐만 아니라, 특히 감시와 처벌 같은 책에서는 광범위한 1차 사료를 활용하여 독창적인 역사학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프랑스의 정치학자인 마르셀 고셰(Marcel Gauchet)는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 나온 직후 프랑스의 젊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우리나라의 동사무소에 해당하는 말단 관청의 고문서를 뒤지는 것이 크게 유행한 바 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Marcel Gauchet, La condition historique: Entretiens avec François Azouvi et Sylvain Piron, Gallimard, 2005 참조. 물론 이러한 회고는 지적 유행에 쉽게 휩쓸리는 젊은 연구자들의 경박한 풍조에 관해 비판적으로 언급하는 대목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푸코의 역사 분석이 당시 얼마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푸코 역사학의 독창성에 대한 좀더 전문적인 평가로는 폴 벤느,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 김현경ㆍ이상길 옮김, 새물결, 2004 참조.]
하지만 국내에는 푸코의 역사학에 관한 서양사학자들의 몇몇 연구나 국사학자 이영남의 단행본 저술이 나와 있으나, 푸코 역사학의 혁신적인 면모를 밝히기에는 충분치 못하다.[가령 다음과 같은 연구들을 참조할 수 있다. 이윤미, 「미셸 푸코의 역사 연구 방법과 교육사 연구」, 교육과학연구 제 28집, 1998; 천형균, 「푸코의 역사 인식」, 전북사학 제 21~22집, 1999; 고원, 「푸코와 브로델: 교차점과 쟁점」, 역사와 문화 9집, 2004; 고원, 「서양역사 속의 몸과 생명정치: 미셀 푸코와 몸의 역사」, 서양사론 104집, 2010. 이영남,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푸른역사, 2007.] 사실 푸코 역사학의 면모를 정확히 해명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뿐더러, 그의 역사학 방법론을 특정한 분야에 응용하여 새로운 인식을 산출한다는 것은 더욱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서양사학계에서 푸코의 역사학이 미친 영향과 그것이 산출한 혁신적인 효과를 감안하면,[이 분야에서는 특히 다음과 같은 연구를 참조할 수 있다. Hayden White, “Foucault Decoded”, History and Theory, vol. 12, no. 1, 1973; Alan Megill, “The Reception of Foucault by Historians”, Journal of the History of Ideas, vol. 48, no. 1, 1987; F. R. Ankersmit, “Historiography and Postmodernism”, History and Theory, vol. 28, no. 2, 1989; Gérard Noiriel, “Foucault and History: The Lessons of a Disillusion”, The Journal of Modern History, vol. 66, no. 3, 1994; Jan Goldstein ed., Foucault and The Writing of History, Wiley-Blackwell, 1994; Mitchell Dean, Critical and Effective Histories, Routledge, 1994; John Neubauer ed., Cultural History after Foucault, Walter de Gruyter, 1998; Peter Ghosh, “Citizen Or Subject? Michel Foucault in the History of Ideas”, History of European Ideas, vol. 24, no. 2, 1998; 폴 벤느,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 앞의 책.] 국내 학계에서도 푸코의 역사학이 지닌 강점과 생산성에 좀더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여 년 동안 국내에서 이루어진 푸코 저작의 번역 및 연구 현황을 돌이켜볼 때 가장 아쉬운 점은 그동안 푸코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루어졌으나 여전히 푸코적인 연구와 실천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의 푸코 연구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가장 뛰어난 푸코 연구자들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은 대개 푸코 저작에 관한 주석이나 해석을 시도하기보다는 푸코의 사상과 분석을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응용하고 변용하면서 푸코적인 문제설정을 수행적으로 실천한다는 점이다. 가령 프랑스의 자크 동즐로(Jacques Donzelot)나 로베르 카스텔(Robert Castel), 피에르 다르도, 크리스티앙 라발 같은 연구자들이나 영미권의 이른바 통치성 학파의 이론가들 또는 폴 레비나우(Paul Rabinow) 같은 인류학자의 작업, 그리고 독일의 토마스 렘케(Thomas Lemke) 등이 수행하고 있는 통치성 연구 및 생명권력에 대한 연구들이 그 빼어난 사례들이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푸코에 대한 연구는 푸코적인 연구, 푸코다운 연구와 분리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푸코가 생전에 출간한 저작들이 모두 번역되고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들이 속속 번역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의 푸코 연구자들도 이제 어떻게 푸코적인 연구와 실천을 수행할 것인지 질문해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