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0. 18. 월

 

메인스트림 교육의 패권주의


"(고교)등급제를 하지 않는다니.. 걱정이군요. 아이 학교를 다른 데로 옮겨야 하는지, 어떤지."

"부동산도 기운다는데…행정수도까지 가면 강남이 어떻게 되는 거죠?"

요즘 강남 학부모들이 나누는 얘기에 이런 것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 고교등급제 폐지와 부동산 신화 붕괴, 이 두가지 정도면 강남은 ‘갈’ 수도 있다. 판검사 변호사 정부 관료 정치인 의사 교수 사장 등등으로 구성된 엘리트공화국 강남은 흔들릴 것이다. 완전히는 아니겠지만 상당히 무너져 내릴 것이다.

대한민국을 강남공화국과 그 변방으로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몇가지 사안으로 그 구분은 명확해졌다. 재산세 파동-고교등급제 소동-수도이전 논란 등에서 비슷한 특정 태도를 보인 이른 바 메인스트림적 부류와 그 바깥에 있는 부류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강남은 메인스트림이다. 교육분야로 말하자면, 고교 학력차 인정하라, 내신 무시하라, 등급제 안할 수 있나, 사교육 하면 어떠냐, 정답 맞추기가 수월성이다, 수월성이 국가경쟁력이다, 평준화는 안된다 등등이 그들의 목소리다.

우리 사회를 고질적으로 갈라왔던 영호남 같은 것이 아니라, 강남과 비강남으로 상징되는 좀더 본질적 결절을 환기한 것이 이번 고교등급제 소동이 준 긍정적 측면이라면 긍정적 측면일 것이다. 고교등급제는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 기회를 줄여 그나마 남은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작은 미덕까지 훼손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기본 원리와 관련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학들이 그걸 몰래 해왔다는 사실에는 좀 어처구니가 없다. 이번 소동은 보편교육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차별적 특권-수월성-국가경쟁력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교육으로 갈 것인지를 가름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고교등급제는 고교간 학력격차와 같은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적용된 것이 아니다. 내신 부풀리기나 변별력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내신 부풀리기가 정말 문제였다면 각 대학은 벌써부터 내신 변별력을 확보할 수단을 개발했을 것이다. 그건 크게 어렵지 않다. 강남 일부처럼 돼버린 대학들의 삐뚤어진 패권주의에서 비롯한 차별이고 속임수일 뿐이다. 서울대 총장까지 이런 행위에 가담하지 않아 피해의식을 느낄 정도라면 대학들의 패권주의 의식이 얼마나 깊은지 갸늠할 길이 없다.

나는 몇몇 대학들이 공언했고 이미 흘리기 시작한 성적부풀리기의 실태나, 고교간 학력격차 따위가 있는 그대로 드러나야 한다고 본다. 대학들은 그 실태를 있는 그대로 발표하기 바란다. 교육부는 성적 부풀리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고교 내신 시스템을 정비하고, 학력격차가 존재한다면 대학들이 고교등급제를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학력격차를 일소하는 강력한 조처를 시급히 취해야 한다. 고교등급제를 인정하지 않는 그 자체가 조처의 첫걸음이다. 등급제가 없다면 강남 특권은 해소된다. 그게 국가의 역할이다.

대학은 자신이 맡아야 할 수월성 교육의 많은 부분을 입시 메커니즘에 내맡기고 게으르면서도 차별적인 고교등급제를 채택함으로써 강남 이데올로기를 부추겼다. 강남은 등급제를 하지 않는 것이 역차별이라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등급제로 다른 지역이 받는 차별이 정상적인 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정부가 등급제를 금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강남불패 신화는 늘 강고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제대로 진행될지 확신하기 어렵다. 판검사 변호사 정부관료 정치인 의사 사장족 학부모들이 내신을 중시하겠다는 2008년 입시정책을 놔둘지도 모르겠다. 본고사가 되던 어떻든 막강한 사교육의 후광을 업은 강남은 자기복제를 위한 또다른 편법을 만들어내려 할 것이다.

도대체 교육이 무엇인가? 대학은 왜 존재하는가?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제 교육에 대해 좀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때가 되었다. 대한민국이 보편교육을 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답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흥동 편집부국장 hdlee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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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0-18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이 지난 번에 답글을 부탁하셨는데, 여태 답변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흥동 편집부국장의 이 칼럼은 제 생각이랑 거의 다를 바가 없는 것 같군요.
제 생각이 궁금하시다면 이 글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릴케 현상 2004-10-18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대를 나온 제 고향 친구는 고교등급제로 모교가 욕먹는 게 썩 마뜩찮은 것 같더군요. 저도 엄연히 시골 취급 받는 부산 사람일 텐데... 긁적긁적 제가 강남으로 들어갈 형편도 아닌 것 같고... 왜 사람들이 본인의 기득권도 안 되는 일에 동조하는지 모르겠어요...

마립간 2004-10-19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almas님,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저의 글을 어떤 느낌으로 읽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의 의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회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과 그렇지 못한 세력은 사회계층간의 유동성이 보장되었을 때, 각자의 개인의 능력에 유지됩니다. 각종의 힘(재력, 사회적 지위, 지적 능력, 자격증)은 학력과 직업에 의해 결정되는데, 부모가 얻게 된 기득권을 자녀들에 물려주려는 방법으로 재산 상속과 학벌이 그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즉 고교등급제를 통한 학벌의 세습은 사회계층의 계급화의 시작이 아니라 완성으로 치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메인스트림 교육의 패권주의>의 글을 보면 판검사 정부관료 등의 직업과 강남 부동산이라는 지역, 재력이 우선 언급되어 있고 이 패권을 유지하려는 고교등급제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90%의 이상의 패권이 주어진 상태에서 마지막 10%(교육)를 밀어붙이는 패권주의는 10%내에서 해결하기 어렵다는 저의 생각입니다. 물론 다음세대를 생각한다면, 10% 마저 패권주의에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교육이지만 고교등급제 논란이 사회구조 혁신의 논점에서 벗어난 것 같은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다시 한번, 잊지 않고 글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