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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생태보고서 - 2판
최규석 글 그림 / 거북이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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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만화라는 것에 끌렸고 둘째, 제목때문에 세계적으로 주목하는 습지생태에 관한 환경보고일 것이라는 점에 호감이 갔던 책이었다. 두번째 이유가 묵직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첫번째 이유인 만화였기에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내 짐작과 달리 작가가 말하는 '습지'란 다섯명(사슴으로 등장하는 녹용이 포함)이 모여사는 반지하 단칸방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곳 '습지'에서 생활하며 벌어지는 궁상맞은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역시 환경문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한없이 가벼워보이는 지지리 궁상들의 에피소드라고 덮어두기엔 실제 인물들을 캐릭터화하며 완성한 리얼함과 가벼움에 균형을 잡아주는 멘트들이 만화라고 보아넘기기엔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언중유골이라고 웃음으로 포장했지만 내용에서는 오히려 진지함이 묻어난다. 주인공들의 궁상맞지만 초라하지 않은 당당한 태도와 자신감에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며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불편할 뿐이라는 말을 새삼 떠올렸다.
 

부모에게서 가장 먼저 떨어져 생활할 수 있는 대학 자취시절에 이렇 듯 혈기왕성한 20대청춘들이 음울한 골방에 모여 복작복작 살을 부대끼며 살아간다는 게 경험해보지 않는 나로서는 선뜻 공감이 되지는 않았지만 분명 피폐하고 방탕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부모의 한 달 용돈을 생각하며 빠듯한 살림에 불평불만없이 아끼고 절약하는 모습이 훨씬 보기 좋았다. 작가 자신의 경험담이라 그런지 더욱 실감나고,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생김새와 뚜렷한 성격은 각각의 에피소드를 감칠맛나게 해주는 요소들이었다.


또 이 책의 매력은 경박한 만화라고 웃어넘기기에 작가의 신념과 사회적 통념들을 비틀고 쥐어짜며 나오는 생각들이 고개를 끄덕거리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씬마다 등장해 독자의 판단이 한쪽으로만 기울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약방의 감초같은 녹용이의 대사들이다. 세상을 전부 알고 있다는 듯 충고하는 녹용이의 모습은 세속적인 우리의 심리를 너무도 날카롭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뛰어 오른 적 없어!>라는 에피소드에 등장해 속물근성에 태클을 거는 녹용이의 반론은 숨기고 싶은 우리 마음 속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이 책을 보는 동안 웃는 얼굴은 점점 일그러지고 마지막에는 체념의 한숨이 나오게 된다. 그렇지만 습지생활을 비웃는 녹용이가 될 것인가 아니면 습지의 친구들을 통해 희망을 얻을 것인가는 나의 판단에 달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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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움직이는 미식의 테크놀로지
츠지 요시키 지음, 김현숙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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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자지껄한 광장시장의 골목, 한 눈에도 시장에서 마주할 것 같지 않는 범상치 않은 외모의 그가 아저씨들 틈바구니에 앉아 빈대떡을 우물거린다. 허기진 상태에서 게걸스럽게 먹는 것이 아니라, 빈대떡의 재료 하나 하나를 입 안에서 씹고 맛보는 듯 미간의 주름까지 잡아가며 신중하게 먹는 모습이 요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썩 유쾌할 것 같지만은 않다. 얼마 전 방영된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가 왜 조마조마한걸까? 당연히 좋은 평가가 나올 것이라는 한국음식에 대한 자부심과 아리송한 말로 대답을 회피하면 어쩌나하는 우려가 반씩 섞인 감정때문이다. 츠지조그룹교의 교장 츠지 요시키의 대답은 어떤 것이었을까? 굉장히 긍정적인 답변이었다.  '그럼 그렇지'하는 뿌듯한 마음에 나는 한국음식의 우월함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만큼 작가인 츠지 요시키에 대한 감정은 지극히 호의적이었다. 단순히 그런 기대에서 펼쳐들었는데 이 책에는 세계를 주름잡는 6명 요리사들의 성공 노하우와 요리에 대한 철학을 작가가 나름 객관적인 입장에서 평가하고 해석하고 있어 그의 요리에 대한 이해와 안목에 또 한 번 놀랐다. 좋은 내용이 많은 책이었다. 요리사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진지한 프로의식에 감탄했다. 프랑스 미식문화를 선도하는 유명한 잡지 <미슐랭 가이드>에서 3스타라는 영예로운 자리를 오랫동안 유지하며 까다로운 미식가들을 사로잡은 6명의 스타셰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요리가 단순히 우리가 먹기 위해 만드는 생존도구가 아닌,그 시대의 문화와 한 나라의 전통까지 엿볼 수 있는 기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요리를 앞에 두고 그 요리의 배경에는 어떤 문화가 자리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곱씹어봐야 한다. 그렇게 해서 얻은 에센스를 자신의 근본과 어떻게 접목해서 어떻게 응용할 것인지 검토하고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서 수련해야 비로소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 수 있다.   -p.238

 6인의 요리사들이 요리를 배우게 된 과정이나 배경, 미식가들에게 인정받을 수 밖에 없었던 요리에 대한 열정과 개성, 철학이 굉장히 흥미롭게 그려있다. 하지만 제 아무리 3스타라고 운운하며 칭송해도 나에겐 생전 맛을 볼 수나 있을지 알 수 없는 요리들이니 모두 그림의 떡이었다. 어려운 발음의 요리와 조리법조차 생소하고 디테일한 색감의 요리사진조차 나의 미각을 자극할 수 없었으니 텍스트이상으로는 좀처럼 해석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요리가 아니라 그 요리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이다. 주먹만큼 담겨나오는 전체의 일부요리에조차 그들의 땀과 노력이 베어있다는 것까지는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참 놀라웠다. 또한 그만큼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고 인정하는 요리사들이었지만, 분명한 건 요리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코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조금씩 발전시켜가며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성공비결은 배워야할 점이 많았다. 꼭 미슐랭 가이드에 나와서 미식가들에게 3스타라고 인정받아야하는 건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인정하고 대우받는 요리사가 별로 없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많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느끼는 요리를 만들려면 '종합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맛 내는 법, 불 조절하는 법, 소스 만드는 법, 농도, 메뉴 구성하는 법, 미각의 강약과 그 흐름, 식사가 끝난 후의 만족감 등 모든 단계에서 뛰어난 기술과 센스를 갖추지 않으면 미식가들에게 결코 지지를 받을 수 없다.    -p.63

6인의 셰프들이 서로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요리를 선보이고 있지만, 그들이 요리를 접하게 된 계기나 요리에 대한 원칙과 신념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대부분 어렸을 때 먹었던 가족의 인상깊은 요리에서 영감을 얻고, 자연스럽게 요리와 친해지는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환경에서 자랐더라도 요리사가 되지 않았다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들은 모두 훌륭한 셰프가 되었다. 둘째, 온고지신 정신. 전통을 받아들이고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요리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고, 셋재는 요리에서 가장 훌륭한 재료는 '자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넷째, 자기만족을 위한 요리가 아니라 까다로운 입맛의 고객들에게 행복한 기억과 감동을 주려는 요리사로서의 근본적인 욕구와 마음가짐이다. 

앞으로 요리사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은 자신의 요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이다. 한순간의 번뜩임이나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밟고 서 있는 땅의 문화와 역사, 전통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위에 표현하고 싶은 것을 더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것은 곧 요리를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p. 260

 이 대목에서는 솔직히 요리사라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했는데, 생각해보니 이런 사람들은 엄마나 할머니처럼 나에게 애정을 가진 가족들밖에 없는 것 같았다. 시린 겨울날, 뜨거운 아랫목에서 먹었던 살얼음이 동동 떠있던 식혜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 후 한 번도 맛볼 수 없는 그리운 맛이 되었다.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로는 부족한 감동의 나머지 부분을 채우기 위해 그들은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감동을 줄 수 있는 요리라면 그 어떤 미식의 테크놀로지라도 뛰어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라면 요리하는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던 미셸 브라스의 말처럼 6인의 요리사 모두가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니 생소한 요리의 맛이 혀끝에서 느껴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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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이 직접 만든 이야기 식물도감 교학사 자연도감 21
임영득 외 글 사진 / 교학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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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이 넘도록 주위에 흔한 꽃과 나무, 식물들의 이름을 모르고 살았다는게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았고 궁금하다고 여긴 적도 별로 없었다. 몇 해 전 태어난 조카가 옹알이를 시작한지가 얼마된 것 같지 않은데 문장이 될만한 말들을 제법 늘어놓으며 겁없고 호기심많은 그 아이는 우리 주위에서 가까이 할 수 있는 풀이나 나무, 꽃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고 진중하게 쳐다보며 묻는 표정이 되곤 했었다. 그 때마다 얕은 지식으로 알고 있는 몇가지 나무와 꽃이름만 가르쳐주고 큰소리로 따라 말하게 했는데 점점 보는 게 많아지다보니 우물거리며 지나칠 수가 없게 됐다.  

큰 맘 먹고 식물도감을 구입해 첫 장을 펼치는 순간 나는 단어를 처음 배우고 익힌 아이만큼이나 천진해하며 좋아하게 되었다. 일단 구성이 굉장히 맘에 들었다. 학교와 집주변, 논과 밭, 산과 들, 냇가나 연못,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풀이나 나무, 꽃으로 개념적 구분을 하지 않고 우리가 기억하기 쉽도록 공간적 구성으로 큰줄기를 잡은 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어릴적 강원도 산골에 살면서 냇가나 산, 들에 지천으로 피어있던 꽃과 나무의 이름을 알지 못한채 형태로만 추억하는 것들이 많았다. 손에 잡힐 듯 부옇게 떠다니던 그 유령같던 식물들이 도감에서 찾은 자기의 이름으로 비로소 억울함을 풀고 내 가슴 속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선명하게 기억될 수 있었다.   

김춘수의 꽃이란 시구절이 나의 분명한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처음부터 마지막장까지 두번, 세번 훑어보면서 새록 새록 그 식물들의 이름을 머리속에 새겨넣고 있다. 그리고 식물 하나 하나에 꽃말이나 그 식물에 얽힌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적어놓은 것이 좋았다.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면 오래 오래 기억할 것만 같았다. 특히 '며느리밑씻개'란 재미있는 이름의 들풀이나 '도둑놈의 갈고리'같은 재치있는 이름들은 아이들이 더욱 좋아할 것 같다. 물론, 나도 특이하고 재미있어서 도감의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다.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우리주변에 하찮은 미물이라고 여겼던 모든 것들에도 우리말 특유의 아름다운 이름이 참 많다. 사람처럼 죽고 살며 화려한 인생을 멋진 한송이 꽃으로 피우고, 씨앗을 뿌려 자손을 남기는 모습이 어찌 사람보다 하찮다고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자연이란 이름으로 포용한 이런 식물과 꽃, 나무에게 붙여진 이름표를 잘 기억해뒀다가 오래 오래 기억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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