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현암사 동양고전
오강남 옮기고 해설 / 현암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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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혼자 길을 걷다보면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있었다.이름하여 '도인'들....  연인이나 친구들 처럼 우루루 몰려다니는 사람들에겐 잘 접근하지 않는다.좀 어수룩해보이거나 생각이 많이 보이면 슬그머니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   "도에 관심있으세요?"...  대개는 무시하면 피할 수 있었다.하지만 가끔 은근과 끈기가 힘인 사람들이 있다.이런 사람들은 몇 십미터를 졸졸 따라다닌다.언젠가 그런 사람을 한 번 만났다. 어떻게 떨칠까 고민하다 내가 꺼낸 말..."저 맑시스트거든요.아시죠..빨갱이?"  .... 그 영업사원인지 도인인지는 벙찐 표정으로  가만히 서있었다. 나 역시 '이거 효과가 생각보다 대단한데..'라고 느끼며 내 잔머리의 영특함을 스스로 대견해 했다.그리고 내린 결론 "역시 대한민국에서는 호환마마,불법 포르노 보다 더 무서운건 빨갱이구나.. 도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군."

나는 옛글을 좋아하는 편이다.노자의 도덕경이란 걸 처음 읽었던 것이 대학교 1학년때였다.사실 뭐 잘 알고 본 것은 아니다.그후에도 논어니 맹자,채근담같은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가끔 한시도 뒤적이면서 앞뒤로 오고가며 해석도 해봤다.나름대로 재미있었다.일단 옛 글은 압축적인 멋이 있다.또 나름대로 사리에도 맞는 말들이고...거기에 속물적인 정서도 하나 작용했다.어디가서 그런데 나온 글 하나 외워서 이야기하면 좌중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그걸써먹는 나도 유치하지만 또 거기에 "와...." 하는 인간들도 다 똑같다.

요즘도 마음이 혼란스럽고 세상사로 인해 감정이 울렁울렁 대면 옛글을 하나 찾아 읽곤한다.주로 법구경이나 숫파니파타를 본다.이 책 <장자> 역시 앞으로 그 목록에 들어갈 것 같다. <장자>의 내용이 선불교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는지 아니면 진리가 서로 닿아서 그런지 내가 알고 있는 몇몇 불교의 가르침과 상당히 유사했다. 우선 <장자>의 첫구절은 동물이야기로 시작한다.그 유명한 물고기 곤과 새 붕에 대한 이야기이다.노자 도덕경의 첫 구절 만큼이나 유명하고 또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이야기이다.세상사의 모든 것이 변하고 또 모든 것이 하나라는 말로만 이해된다만 정말 아는지는 알 수 없다. <장자>는 물고기와 새의 변화로 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우화와 풍자,반어를 통해 현실의 한 차원을 뛰어 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우리가 이것 밖에 없다고 믿는 그 모든 것이 '우물 속 세상'이므로 마음을 수련하여 대양으로 나아가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선 해야하는 것은 "자신을 잊어라"는 것이다.<장자>제 2편 남곽에 사는 자기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이것이다. 본문에는 "지금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라고 하고 있다.여기서 자신이라는 것은 실존적 존재로서의 나뿐만이 아니라 나의 실존을 구성하는 기타 모든 환경까지 포함되는 듯하다.즉 나와 나를 만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면 새로운 차원이 열리는 것이다. 도는 버리는 것이라는 말 역시 같은 의미일게다.서양 철학에서 근대의 자아론이  탈자아론으로 변증법적 발전을 꿰하는데 <장자>에서는 이미 그것을 오래전에 말하고 있다. 하이데거나 니체,가깝게는 들뢰즈 이런 사람들의 말 속에 가끔 씩 선불교와 노장의 사상이 묻어나는것도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 속에 서있는 듯하다.광고에서도 자주 들려지는 말들은 자아정체에 대한 확실한 각인이다.흔히들 하는 '나는 나고 나는 세상의 중심이고' ...뭐 결국 소비주체로 당당히 서서 열심히 사서 쓰란 이야기인데도 괜히 그럴싸해보인다.특히 에고가 강한 젊은층에게 이런 메시지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장자>는 "내가 과연 나일까"하는 비판적 넘어섬을 또 넘어서라고 한다.불교에서 말하는 '백척간두 진일보'의 마음일 것이다.자아에 대한 비판적 사유 역시 결국 '나'라는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일 뿐 진정한 넘어섬은 '오상아'-즉 나를 잃어버림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세상이 하나이고 모든 것이 한뿌리에서 나옴을 깨닫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분별심'을 없애는 것이다.<장자>에서는 마음 굶기기-즉 심재-를 통해서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을 깨라고 일갈한다.비교종교학자 답게 역자는 성경의 말씀을 인용한다."마음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가난한 것이나 마음을 굶기는 것이나 같은 말일 게다.여기서 말하는 이분법이란 것이 '너는 여당 나는 야당'하는 것이 아니다.남과 여,기쁨과 슬픔,삶과 죽음 ....등등등 세상을 구성하는 여러요인들의 흐름을 분별하여 보는 것을 삼가하라는 뜻이다.선악미추 생사 고락이 모두 평등한 가치가 된다.선불교에서 역시 인간의식과 감각의 위계를 없애라라고 말한다.어디서 주워들은 말 중에 "양단" 이란 말이 있다.양쪽을 모두 자르라..라는 그런 말이다.여기서 양쪽이란 것이 바로 이분법적인 사고를 뜻한다.<장자>의 유명한 우화중 하나는 장자의 아내 장례식 대목이다.장례식에서 북치고 장구친 장자이야기이다.삶과 죽음을 같은 가치  equal value로 본다면 사실 아무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굳이 논리적으로도 어긋남이 없다.몇년전 책이 소개되어 큰 감동을 주었던 스코트 니어링의 죽음을 생각해보면 장자의 가르침과 다를 바가 없다.

어떤이들은 이러면 무슨 삶의 재미가 있을 것이냐고 반문한다.나 역시 한편으로 그말에 동의 하기도 하지만 장자가 말한바는 그런 1차원적인 것은 아니였을 것이다.세상사의 즐거움을 알고 관계의 유용함도 깨닫고 충만한 삶을 누리되 거기에 연연하여 큰 진리를 거스르지 말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장자의 사상 중 큰 오해를 받는 것중 하나는 정치사상이다.장자의 사상이 현실은 비루한 것이니 연연해 하지말라는 것으로 파악했다.다른 말로 하면 있는 것은 있는대로....즉 가진자들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이런 무식한 말을 하신분들은 내가 대학다닐때 열심히 운동하시던 선배들이다.그들 역시 뭐 알고 말한 것은 아니였을 것이고 몇몇 책들에서 주워들은 걸 게다.20대초반의 어리숙함을 지금와서 욕해봐야 무슨 소용있겠는가.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 봐도 경솔한 제단은 아니었나 싶다.장자의 사상은 다 소용없다는 허무주의는 아니다.유가의 가르침에 비해 적극성이 떨어지는 (특히 맹자)것은 사실이나 장자는 정치의 다른 차원을 지적하고 있다.큰 틀에서 사람을 다스리기 위해서 안으로의 혁명을 주창한다.장자가 제시하는 정치는 수신에 우선을 둔다.그리고 그다음으로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것을 진정한 다스림으로 본다. 이런 말이 나온다.

"명철한 왕의 다스림이란 그 공적이 천하를 덮어도 그것을 자기가 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변화시키는 힘이 만물에 미쳐도 백성들이 그에게 굳이 기대려 하지 않는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말을 기르는 일과 무엇이 다르겟습니까? 그저 말을 해치는 것을 없애는 것 그것뿐입니다."

무위의 정치이며 작은 정치이고 보이지 않는 정치이다.쉬워 보이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참 위대한 말이다.

나는 이 책을 쉽게 재미있게 읽었다.한자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도 아니니 더욱 용이했다.내용중 일부는 이미 다른 책들을 통해서도 알고 있던 것이었다.그중 일부는 이미 나의 세계관의 한장을 구성하고 잇는 것도 있다.하지만 나는 책을 읽었으나 아직  읽지 않은 것과 같다.내가 읽고 느낀것은 글이지 <장자>의 세계가 아니다.내가 만약 열심히 닦아서 무위당 장일순 선생정도쯤 된다면 그때쯤 <장자> 한번쯤 읽었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몇가지 잡념이 떠올라서 마지막에 쓴다.

내 생각에 결국<장자>에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결국 "행"의 문제가 아닐까한다.장자가 실행의 문제를 딱히 지적한 바는 없다.하지만 모든 철학이나 사상의 중심은 행동이다.수많은 좋은 지혜와 세상을 꾀는 깨달음을 얻어도 자신의 손발이 그와 함께 가지 않는다면 이것을 어떻게 봐야할까? 또 한가지 생각은 이런류의 책에 감화 감동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요즘<장자>류의 책이나선불교,명상론,인도기행등의 책이 인기있다.하지만 이는 대중소비적인 '선사상''무위사상'이다. 여전히 자신의 삶은 분별과 자신의 이기로 가득차 있으면서 퇴근후에 도장에서 명상하고 마음을 비운다고 무었이 비워질 지 모른다.물론 아예 생각한번 해보지 않는 것보다야 훌륭하지만 취미가 되어버린 '도'라는 것이 과연 선인들이 찾던 그 '선'이고 '도'인지 모르겠다.그리고 가끔 만날 수 있는 어설픈 범우주적 세계관 역시 삽질한다고 생각한다.현실의 불의에 대해서는 별 말 못하고 또는 개입을 하려하지 않으며,늘 자신은 한차원 위를 바라본다는 듯 한 범우주론적 세계인들은 우습다.그런 고매한 분들에게 지상의 어설픈 시인 김수영은 "너의 중용은 비겁이다."라고 했다.스스로의 비겁을 형이상학이니 초월이니 하는 것은 고귀한 가르침으로 곡학아세 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분들이 뭔가 알고 있다해도 실제 아는 게 없을 수도 있다.불교에서는 스님들이 화두를 앉고 몇년수행 하다보면 어떤 스님들은 큰 가르침을 깨달았다고 큰 스님을 찾아온다고 한다.이제 다 알았으니 내려가겠다고.본인들은 진짜라고 믿지만 그게 아닌가보다.몇년 절간수행도 그러한데 그까짓  책 몇권보고 마치 세상사 부질없다고 하는 위인들도 경계해야한다. 전부 키치다.키치적 작가들에 대한 키치적 만족이며 키치적 취미에 대한 키치적 낭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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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5-05-16 17:19   좋아요 0 | URL
신영복 님이 쓰신 나의 동양고전 독법 " 강의 " 읽고 있는데..동양고전은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물이 샘솟는 깊고 맑은 샘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머리 속이 시원해 지거든요. 장자도 읽고 싶었는데 ... 드팀전님 리뷰를 보니 더더욱 간절해 지네요.

분홍달 2005-05-17 08:08   좋아요 0 | URL
그 어떤 훌륭한 생각이나 사상도, 행이 따르지 못하면 공허한 일이겠죠...리뷰 잘 봤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