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증보판 리라이팅 클래식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산이 깊으면 골이 깊고 태양 빛이 강한 날엔 그림자가 짙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떠오르는 생각이었다.리라이팅 클래식의 출발을 알렸던 이 책은 여러 언론의 찬사를 받을 만큼 많은 미덕을 가지고 있다.우선 기획단계부터 신선했다.우리가 제목만 알고 읽기를 두려워 했던 책들을 순치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새롭게 번역하거나 평역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학자들의 시각으로 해체하고 다시 쓴다는 것이다.이러한 기획자체가 우선 매력적이어서 책이 출간된후 <이성은 신화다>를 읽었다.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을 나름대로 독해해 낸 책이었다.책의 내용 자체가 쉽게 이해되는 그런 류의 철학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리라이팅시리즈에서는 자기의 시각으로 읽어낸 글쓰기가 인상적이었다. 무슨 무슨 강독류의 책에서는 만날수 없는 신선함이었다.그리고 이어서 나온 니체의 책 역시 니체를 처음 접하는 사람조차 읽기 쉽게 쓰여져 있었다.물론 그 한권으로 니체 철학의 전체를 파악할 수는 없었으나 그의 저작 전체를 망라하며 관통하는 사상의 맥을 짚어내는 데는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그 책으로 인해 더 많은 관심을 유발하고 다른 니체의 책 역시 손을 댈 수 있다면 리라이팅 기획의 승리가 아니였을까 한다.

이번에 읽은 <열하일기> 역시 가장 큰 미덕은 글쓰기에 있다.인문사회학 책들이 훈장처럼 달고 있는 의고적이고 번역투의 문장은 책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저자의 박지원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글쓰기를 통해 따분한 책읽기가 아닌 즐거운여행기를 읽듯이 책장을 넘겨 갈 수 있었다.사실 개인적으로는 그것 하나 만으로도 이 책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일부에서는 저자의 주관적 애증이 너무 많이 배인것이 아닌가 하며 따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물론 사실이다.하지만 이는 인문사회학계에 팽배해 있는 아카데미적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라는 차원에서 봐준다면 그다지 눈에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다.그동안 학자들은 자신들의 고루한 글쓰기와 현실과 유리된 언표를 통해 일반인과 유리된 '천공의 성'을 구축하였다.그들은 천공의 성을 기반으로 권력을 획득하고 일반인에 대해 우월적인 위치를 누려왔다. 하지만 김종필 총재도 퇴임사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세상은 변했다고....... 외국서적을 대학원생들 시켜서 번역한다.그리고 한글문법에도 맞지않는 번역서를 자기이름으로 몇 개내고 연구실적이라고 올린다.아직도 이런 학자들이  많은 이 땅에서 자기식으로 읽고 자기식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저자를 비롯해 수유연구팀이 고전을 읽어내는 잣대는 포스트모던론이다.특히 <열하일기>는 자살과 함께 국내  이름이 많이 알려진 들뢰즈의 이론이다.90년대 들뢰즈와 가타리의 이름이 처음 알려졌을때 난 그게 한 사람의 이름인지 알았다. '들뢰즈와'는 이름이고 '가타리'는 성이고.....^^  10여년이 지난 지금 당시 제국주의론을 읽고 프랑크푸르트의 비판 이론을 읽던 사람들이 이제는 들뢰즈의 신도가 되어있다.저자가 책 서문에 밝혔던 자신의 지적편력은 동시대 책읽기를 즐기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일반적인 경우이다.아마 그 전위에 수유연구팀들이 있었겠지만.... 저자는 들뢰즈의 용어들을 중간중간에 감초처럼 넣어가며 열하일기와 연암 박지원을 분석한다.우선 박지원과 들뢰즈의 이론을 연결시키는 상상력이 신선하다. 저자의 시각을 따라가면 연암은 18세기가 낳은 대표적 양반 노마드중에 하나 일것이다. 저자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과거 개인적으로 즐겼던 어느술자리를 떠올리게 했다. 30대 중반의 대학강사들과 우연찮게 합석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그들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푸코가 노가리가 되고 보드리야르가 고추장이 되고 부르디외가 이쑤시개가 되고 그랬다.물론 들뢰즈와 가타리도 후식으로 빠지지 않았다. 그들이 모든 이론에 정통한 것은 아니었으나 나름대로 개괄은 하고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저자는 그 술자리의 담소처럼 박지원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노마드를 들이대고 주름을 이야기하고 리좀을 빗대는 장면을 연출한다.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술자리 학출들의 지식인연하는 태도가 떠올라 조금 배알이 뒤틀렸다.(너 자유롭게 사는 구나 하면 될 걸...넌 노마드적인데..라고 한다.어설프기는...^^)

저자가 말하는 노마드니 리좀이니 하는 들뢰즈의 개념들이 매력적인건 사실이다.하지만 굳이 그런 심오한 말을 쓰지 않더라도 연암의 자유인적 속성은 풀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저자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의 지적편력과 자유인적인 기질은 여럿이 다루었다.이미 들뢰즈가 그런 용어를 서술하기 전부터 이미 수많은 기인들과 시대와의 불화를 겪었던 사람들은 있었다.오원 장승업은 어떻고 고려시대 만적은 어떠한가....그전까지 우리는 예인적 기질 또는 자유인 뭐 이런 비인문학적인 용어로 말했다.그런데 멋진 프랑스 용어들이 등장하니까 연암은 노마드가 되고 연암을 구속하던 조선이라는 공간은 홈패인공간이 된다. 훨씬 그럴싸해보인다. 저자는 자신이 공부한 들뢰즈와 가타리를 연암이란 대상에 맞춰 옷을 입히려고 무던히 노력한다. 역시 저자는 공부하는 사람이다.

저자가 말하는 노마드에 대해서도 한번 짚어봄직하다. 이건 사실 근대와 탈근대 논쟁에 늘 등장하던 이야기라 신선하진 않다. 또 한번 개인적으로 불운한 추억을 더듬거려본다. 몇년전 미국 유학을 앞두고 있던 한 여성학 강사를 잠깐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충 들은바에 의하면 집도 좀 살고 남편은 좀 더 산다고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 '노마드'란 단어가 나왔다. 그 강사는 일반인의 입에서 그런 단어가 나온것이 무척 신기한 듯했다.그 단어 하나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듯했다.(아마 이런 경험들많으실게다.언어는 권력 맞는 것 같다.)그분은 자신은 노마드적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자신의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고.......솔직히 좀 웃겼다. 그녀의 노마드적인 삶을 바탕해줄 수 있는 것은 그의 든든한 재력과 학벌과 박사학위증이다. 하루 하루를 걱정하고 전세금 올려달라는 주인의 말에 부들부들 떠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유목민이란 과연 무었일까? 정규직의 절반도 못되는 임금에 언제 짤려서 정말 유목하게될지 모르는 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노마드란 무었일까? 지나치게 극단적인 예를 드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하지만 노마드라는 것이 개인의 가치관에 변화를 주는 윤리적이야기라면 충분히 이해가된다.꼭 들뢰즈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박민규의 소설<삼미슈퍼스타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법정스님,전우익 할아버지 같은 분들이 다 노마드의 실천적 예일것이다.하지만 전범일뿐 일상의 무었이 되기에는 지극히 관념적이고 현실도피적이다. 물론 글쓰는 재주가 있어서 조직에 얽매이지 않거나 도자기라도 빚거나 통나무집이라도 지을 기술이 있다면이야 노마드도 멋질것이다.하지만......대부분은 더러워도 가족생각하며 담배한모금에 비굴함을 참는 샐러리맨이거나 도서관에서 책상파보지만 보나마나 실업예비생이거나 주부이거나 중소상인인데야 .......어떻게 노마드들의 공동체를 구현할 것인가.?

뛰어난 노고에 대한 칭찬에 비해 되지도 않는 험담이 길어졌다.젊은 학자들이 나름대로 열정을 쏟아 우리사회에 지적결과물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것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앞으로도 이러한 작업이 계속될길 기원하며 더 좋은 노작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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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아 2004-05-21 23:44   좋아요 0 | URL
며칠 전 부터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를 읽고 있는데
리라이팅이 꿈꾸는 반역의 글쓰기가
책보는 즐거움을 줍니다
또한 제 지식의 한계에 대한 계몽을 불러일으키는데
혹 그 계몽에 빠져서 어설픈 교양인이 될까
두려운게 사실입니다
그러자면 깨어있는 사람으로
반성하는 사유를 해야하는데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반성하는 사유님의 서재와 닮았네요

계속 반성하는 사유님의
지적인 글쓰기를 기다려봅니다

프레이야 2004-06-05 20:46   좋아요 0 | URL
이달의 마이리뷰, 축하드려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사서 보고 싶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