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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아이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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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에 실린 다섯 편의 단편 소설들은 어딘가 닮았다. 다섯 편의 소설들 중 상대적으로 수준이 좀 떨어지는 「지요코」를 제외한다면 모두 동일한 윤리 의식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요코」 자체도 근본적인 윤리 의식의 기저는 같다. 그것이 이 소설들의 닮은꼴을 형성한다. 소설의 텍스트를 활용하자면 이 윤리 의식이란 <돌베개의 에토스>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산 속에서 생활하는 부부가 친절을 가장하여 나그네에게 잠자리를 제공한다. 침구인 돌베개를 베고 나그네가 잠이 들면 부부는 망치로 머리를 내리쳐 살해한 뒤 금품을 챙긴다. 부모의 끔찍한 범죄 행위를 막고 속죄하는 차원에서 부모 몰래 딸이 나그네와 자리를 바꿔 잠에 든다. 정황을 모르는 부모는 딸을 죽이고 나서야 후회하지만 되돌릴 수 없다. 이것이 「돌베개」라는 소설에 삽입된 <돌베개>의 이야기이다. 



인과응보. 나쁜 짓을 하면 돌고 돌아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교훈의 구비전승이다.

"저자 선생님과 이야기를 해 봤어. 이런 인과응보의 사고방식이 우리 마음속에 뿌리를 내려 여간해서는 사라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세태를 보면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 앞으로 십년쯤 후에는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옛날이야기를 다루는 그림동화에서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라고 하시더군."

이시자키도 동감이다. 예사로 사람을 죽이거나 상처 입히고도 거리끼지 않는 인간들이, 특히 젊은이들이 무섭게 증가하고 있다.(강조는 인용자)

― 「돌베개」, 108쪽.



"강연회 등의 테이프를 문자로 바꾸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것의 훌륭함을 깨닫고"라는 책날개의 저자 소개글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와 같은 작중 인물의 언어가 작가의 발언임은 분명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은 인과응보라는 처벌의 공포와 죄책감이라는 양심의 재판장이 결합된 <돌베개의 에토스>가 다른 소설들에서도 윤리 의식으로서 핵심적으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존속되는 심리적 기제로서의 에토스가 아니라 요즘 세태와 특히 젊은이들에게로부터 마모되어 가는 에토스, 자리에서 물러나 사라져 가는 재판장으로서의 에토스이다. 유년 시절 자신의 친구를 시기심만으로 살해하고도 죄책감 없이 살아가는 유카리가 그렇고(「눈의 아이」), 홧김에 여자친구를 살해하는 대학생 남자친구가 그렇고(「돌베개」), 14세 시절의 가즈미(「성흔」)도 여기에 해당된다. 그들에겐 <돌베개의 에토스>가 통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래 전의 옛날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뿐더러 낡은 교훈에 불과하다. 그들이 또한 모두 젊은 세대에 속하는 인물들이라는 것 역시 작가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좌표를 가늠하게 한다. 그들은 "예사로 사람을 죽이거나 상처 입히고도 거리끼지 않는 인간들"의 유형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마모된 돌베개의 에토스의 세계. 이 세계에 한 극점에 선 인물들이 우리에겐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성흔」에서 등장하는 가즈미라는 소년은 "선악을 구별할 수 있었고, 자기 생각도 분명하게 말했지만 감정이 없었다고나 할까, 희로애락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이쯤에서 이른바 현대적 유형의 불량 생산물이자 병폐인 '사이코 패스'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될 것이다. 위키백과는 사이코 패스를 정의하는 키워드로서 '공감 및 죄책감의 결여', '양심의 가책 결여' 등을 꼽는다. 그리고 이러한 사이코 패스는 "망상, 비합리적 사고 등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신병과는 분명히" 구분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를테면 사이코 패스란 미유베 미유키에게서는 돌베개의 에토스가 완전히 마모되어 버린 인간, 기계적이고 인형이 되어버린 인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이코 패스의 낙인이 찍힌 인물들이 아니다. 사이코 패스에 가까운 인물들, 혹은 잠재적 성향을 일면 공유하는 인물들이다. 살인을 저지른 인물들이 기괴하거나 유별나게 도드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이 「눈의 아이」에 등장하는 유카리처럼 평범한 이웃, 은행의 창구 직원과 같아서 눈에 띄지 않는다. 폭행과 협박, 반인륜적 행위를 자신에게 일상적으로 자행하는 엄마와 동거인을 견디지 못하고 살해한 냉혹한 소년 가즈미마저도 가히 성자적인 자기 반성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미야베 미유키 소설의 인물이다. 돌베개의 에토스가 회복된 세계, 그것이 소박하지만 작가가 지향하는 세계일 것이며, 시샘으로 친구를 죽인 유카리가 우등생에서 전락하는 세계, 두루주머니를 결코 떨쳐낼 수 없는 아사쿠라 다쿠미의 세계, 악마적 베르테르의 세계를 견디지 못하는 가즈미의 세계로 나타나는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러한 돌베개의 에토스가 회복된 세계라는 것은 작가의 지향점이기도 할 것이며, 또한 소박한 세계이다. 죄책감, 양심의 문제라는 것은 개인의 기질적 문제인 동시에 사회의 구조적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간단한 문제는 아니며, 막연히 생각하자면 인류의 존속과 더불어 영원할 문제이어서 돌베개의 세계가 있었고 그것이 마모되어가는 세계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근대라는 시대정신에 의해 발굴되고 금칠된 '개인'이라는 신성한 실존적 자각으로부터 배태된 문제일지도 모른다. 다만 미야베 미유키의 사회학이랄까, 역시나 돌베개의 에토스가 마모된 세계의 일면으로서 나타나는 현상을 작가는 노골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이를테면 '사이비의 세계'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범죄 피해자의 프라이버시가 점점 더 무시되고 있잖아? 다들 피해자에게 무례한 짓이란 걸 알면서도 보다 자세히 알고 싶어 하고, 알려졌으면 해. 그 내막에 무언가 자신과는 다른 '나쁜' 요소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니까. 사이비 종교에서는 재난을 겪은 사람들에 대해, 그들의 행실이 나빳기 때문이니 인과응보라고 하잖아."(강조는 인용자)

― 「돌베개」, 109쪽.



본래 가해자의 죄책감이 심정적 재판장으로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면 오늘날은 피해자의 결점이 심정적 재판장으로 존재하며 이것이 악질적인 소문들을 양성해낸다고 하는 것이 작가의 논리이자 에토스이다. 이것이 바로 미야베 미유키에게 보이는 사이비의 세계, 정통의 윤리 의식으로부터 전복된 세계일 것이다. 묻지마 범죄, 사이코 패스, 이유를 알 수 없는 범죄 행위에 노출된 현대인들이 범죄로부터 자신을 거리두기 위한 심리적 방어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에는 예리한 부분이 있다. 이것은 이미 극도로 개인화 되어버린 사회, 소립자의 세계, 무늬화된 공동체의 세계, 일본이라는 특수한 세계에 국한되지 않고 이러한 현상이 보편화 되어버린 세계의 현대인들이 갖는 병리적 태도일지도 모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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