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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설계도
이인화 지음 / 해냄 / 201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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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후기가 기억에 남는다. 몇 문장을 빌려 쓴다.

<중요한 것은 『지옥설계도』가 좋은 소설인가 아닌가의 문제뿐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판단해 주시기를 빕니다. 무슨 주의, 무슨 주의 말은 많지만 세상에는 두 종류의 소설밖에 없습니다. 황당무계하고 졸렬한, 대중이 좋아하는 새빨간 거짓말만 씌어 있는 나쁜 소설과 어떤 사회 속에서 부대끼고 고민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 인간의 진실된 모습이 그려져 있는 좋은 소설입니다.>

그렇다. 중요한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독자 여러분 중 하나인 나에게 『지옥설계도』는 좋은 소설이 아니다. 결론에 합당한 이유라는 게 필요하겠지만 일단 먼저 밝혀 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내가 이 소설을 읽은 것이 벌써 2주 전이다. 지금에 와서는 내용이 잘 기억 나질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두 번 씩이나 읽을 수는 없다. 남은 것은 독서 후 남겨둔 메모와 인상이라 부를 만한 것이다. 게다가 흔히 장르소설이라 불리우는 소설들에 대한 독서 경험이 아주 얄팍하다. 장르소설의 문법이라는 것을 특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다만 그런 독자의 입장이라는 사실을 언급해 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군더더기처럼 덧붙이고야 말았다. 아직 리뷰라는 것을 써야하는 괴로움이 남았다. 

 

 

메모를 보니 중반 이후부터 소설이 술술 읽힌다고 적어 두었다. 초반부의 산만함과 지리멸렬함이 비로소 퍼즐이 맞추어지는 단계로 접어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은 현실과 판타지, 보통의 세계와 강화 인간의 세계라는 다중 구조를 산개시키는 방법으로 전개된다. 의문의 살인사건이 하나씩 베일을 벗어나가면서 이야기가 집중력을 갖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소설은 하나의 거대한 클리셰가 되어 독자들을 어떻게든 마지막 책장까지 끌고 간다.  

소설은 추리물에 중세와 현세의 영웅담이 짬뽕 되어 있다. 인페르노 나인의 세계는 게임 세계를 말한다지만 중세적 영웅담 이야기와 차이가 없고, 강화인간이라는 설정은 흔하디 흔한 여타의 에스퍼들과 크게 구분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현 세계의 가장 커다란 문제적 담론이 되어버린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의 경제철학적 이야기가 논쟁을 촉발시키는 중심에 놓인다. 작가의 해박함은 독자를 놀라게 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전히 클리셰를 넘지 못한다. 거칠게 얘기해 보면 이렇다. 공생당은 자본주의의 비극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려는 비밀조직이다. 자본가들의 끝 없는 욕심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것은 선한 자본을 통한 장악이다.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휴머니즘과 연민이며 자본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논쟁은 공생당 내부의 분열을 일으킨다. 그리고 자본가는 뒤에서 웃는다. 공생당의 내부 분열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취조하던 국가정보부 소속의 중년 남성이 내부의 비리를 까발리게 된다.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사실 거의 결정이 나있는 셈이다. 어떻게 전개되어도 전혀 놀랍지가 않다.  

 

 

물론 우리는 큰 줄기를 이미 예상하면서도 소설을 읽는다. 그것은 소설이 단지 이야기로 완성되는 언어예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렇다. 소설은 언어 예술이다. 작가는 소설 미학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소설을 읽고 나니 이건 단지 변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소설가는 소설로 말해야 한다. 작가의 말은 변명의 장이 아니다. 소설의 문장이 술술 읽힌다. 어떤 문장들은 안 읽고 그냥 넘어가도 큰 무리가 없을 것처럼 보인다. 에스컬레이터식 문장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은 욕구가 인다. 도식적 전개에서 적당한 긴장감이 유발된다. 점점 책 읽는 속도감이 붙는다. 고마운 점도 없지 않다. 읽어 치우는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도 기억에 남는 인물이 없다. 삶의 최하층을 경험한 이들이 한 순간에 초인적 능력을 갖게 된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소수의 자본가들이며 그들의 욕망 때문에 민중이 병드는 것이라면 이들 강화인간이라는 것은 그 자본가들을 대체 할 신 인류이며, 그들 역시 과거와 단절된 초엘리트 집단이다. 강화인간들의 추상적 논리에 인류의 운명이 좌지우지 될 판인 것이 이 소설의 눈물 나는 투쟁이며, 위선의 극치이다. 나는 여기에서 어떤 진지함을 느낄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짧게 쓰려고 했는데, 할 말도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글이 길어지고 말았다. 비판도 비판 나름인지라 조금 더 성의 있는 글이어야 했다는 반성을 동시에 하게 된다. 그저 한 독자의 견해일 뿐이다. 할 수만 있다면 침묵 하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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