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내심 재미있을 것 같아 신청한 알라딘 신간평가단(소설 부문)에 선발이 되었다. 그 첫 활동으로 11월 출간 소설 중 기대되는 소설을 추려내는 작업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사실 나는 굳이 신간 소설을 찾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검증 된 구간의 소설들도 충분히 많다. 그렇게까지 엄격한 것은 아니지만 『상실의 시대』의 나가사와의 의견에 수긍이 간다고 할까(나가사와는 사후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소설은 읽지 않는 주의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낯설고, 높은 비율로 추리물 소설이 신간을 차지하고있다는데 놀랐다. 누군가에겐 서울 복판에 떨어진 한양의 촌놈 같은 소리로 들릴 것 같다. 처음이라 잡설이 길었다. 책소개를 살펴보며 12월의 기대되는 신간 소설을 추려 봤다.

 

 

 

 

 

 여성 소설가의 소설은 언제나 기대만큼 조심스러움이 뒤섞인다. 무엇보다 그것은 (보통 남성 소설가 이상의)섬세함에 대한 기대와 우려이다. 섬세함이 소설에 꼭 맞는 외투가 된다면 나는 거기에서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섬세함이 소설을 온통 뒤덮는다면 나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현기증을 느낀다.

육 년 동안 아홉 편의 단편 소설을 썼다는 사실에 나는 똑같은 기대와 우려를 갖는다. 일 년에 한 편 꼴로 장편소설을 써내는 소설가들도 얼마나 많은가. 소설가는 소설을 쓰는 것이 일이겠지만 그것은 여느 일처럼 의미가 부여되지 않은 결과물을 창출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될 필요는없다. 흘러가는 시간을 쫓아가기에도 바쁜 시대에 짧은 소설에까지 많은 시간을 들인다는 것 자체가 이미 대단한 섬세함이다. 내게 아름다움이 남는지 현기증이 남는지 두고 볼 일이다.

 

 

 

모옌이라는 소설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뉴스가 돌면서부터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이미 언젠가는 읽게 될 소설가의 명단에 모옌의 이름이 포함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나는 아직 그의 소설을 한 편도 읽어보질 못했으니 11월에 출간 된 소설 중 가장 읽어 보고 싶은 소설로 『열세 걸음』을 꼽는다.

 

 

 

 

 

 

 

 

 

 

책 소개를 보니 황석영의 『강남몽』 이 겹쳐 떠오른다. 한국전쟁 이후 서울의 시대사를 다루었던 그 소설을 바쁘게 읽어치웠던 기억이 난다. 간혹 황석영을 두고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별칭을 붙이곤 하는데 정말 잘 어울린다. 비가 내린 다음 날 도랑의 물 흐르듯 이야기가 거침 없이 흘러나간다. 독자는 신명나게 이야기의 물살을 타면 그만이다. 그러나 급한 물살은 타고 내려오기야 신나지만 엉덩이가 땅에 닿고 보면 어딘가 아쉬운 맛이 남는다. 재미나게 한바탕 놀고 난 뒤 돌아온 일상은 어딘가 낯설다.

19세기 조선말기의 시대사를 압축적으로 다루었다는 소개글에서 나는 그저 한 이야기꾼이 다룬 19세기의 풍경만을 가벼운 마음으로 기대해본다.

 

 

 

 

 

전쟁은 언제나 세계(심지어 일상의)의 압축으로 표현되어 왔고, 그러하고, 여전히 그럴 것이다. 전쟁이 파괴하는 것은 약자, 소수자, 이방인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강요된 희생을 조건으로 누군가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악마의 놀이에서 여성은 약자이며 소수자이고 이방인이다. 그런 여성의 세계를 전장에서 관찰하려는 이야기를 어떻게 무관심하게 지나칠 수 있을까. 그것이 러시아의 여성이든 독일의 여성이든, 유대인이든, 혹은 일본인이거나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문학 안에서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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