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게임 - '세대 프레임' 을 넘어서
전상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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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익숙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대 논리의 합리성과 현실성을 비판적으로 논한 책. 고속 성장 신화가 지배했던 박정희 집권기부터 그 신화가 부서져 버린 박근혜 정부 말기까지, 여러 시대의 사람들이 공유했던 정서와 신념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담겨 있다. 


흔히 많은 학자들과 독자들은 세대를 나이 기준으로 가르면서, 고연령은 고루하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흘러간 세대, 저연령은 변화와 합리성을 추구하는 신세대로 간주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저자가 2016년말 촛불 현상을 예로 들어 논했듯이, 같은 연령대에도 변화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이들이 있고 평생의 신념이 깨지는 고통을 무릅쓰고 시류에 동참하는 이들이 있다. 같은 나이라 하더라도, 몇십 년 전의 청년들과 지금의 청년들이 공유하는 강렬한 동시대의 경험은 다르기 마련이다. 


이에 저자는, 비슷한 연령의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묶는 강력한 요소는 다름 아닌 같은 '시간'(동시대)의 경험이라고 진단하며, 시간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개념어들을 제안한다. 또한 '세대 게임'을 악용하는 자들, 그러니까 같은 시대적 경험을 공유한 '시간 향우회' 회원들의 긍지와 좌절을 자극하고 부추겨서 특정한 정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전략꾼들에 대한 비판도 저자는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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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에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지만, <세대 게임>을 읽다 보니 본문에도 언급된 영화 <국제시장>에 생각이 닿았기에 영화에 대한 때늦은 평을 간략히 적어본다. 주인공 덕수는 누가 봐도 박정희 시대의 산업 역군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한국 근현대 산업 역군의 에피소드를 주인공의 일대기에 다 때려넣은 설정,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의례 에피소드를 칭찬한 사실 때문에 이 영화는 박정희 시대에 아부하는 작품으로 알려지곤 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미덕은 사람들이 그리 주목하지 않았던 (것 같은) 노인 덕수의 사소한 언행에서 드러난다. 타국에서 가난한 막노동꾼으로 설움을 겪었던 그는 고향 동네에서 업신여김당하는 이주민을 옹호한다. 평생을 땀흘려 지킨 가게 꽃분이네를 지키려 고집을 부리지만, 가족 모임 도중에 조용히 집 안을 빠져나가 대성통곡하며 나름의 평생 씻김굿을 한 다음에는 "꽃분이네 팔아라"며 자신의 시대가 끝났음을 선언한다. 


<세대 게임> 저자의 분석틀에 따르면, 자신의 시대를 떠나 보낸 '시간 실향민' 덕수는 자신이 보낸 시간을 '역사화'하여 떠나 보냄으로써 한을 풀고 자녀들과 화해한다. 적어도 감독은, 덕수의 품위 있는 인생 황혼을 통해 내 집안 일으키는 것을 평생의 과제로 알고 살았던 순진한 어르신들에게 일말의 예를 갖추어 위로를 건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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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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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소설집을 처음에는 3권만 샀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재미있게 읽었어도 책의 만족도는 다르겠거니 하고 시험삼아 한 권만 산 것이다. 결국엔 3권에 감화받아 1,2권도 주문했고, 나도 김동식 전집의 독자 반열에 들었다.

표제작 <회색인간>을 비롯한 1권의 단편들은 극한 상황에서 의미도 목표도 없는 노동을 강요받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여러 가지로 변주한다. 인물들은 지저(지하?) 세계, 무인도 등에 조난되어 영문도 모르고 허겁지겁 일만 하다가, 생산성과 관계없는 활동을 억압하다가, 노래, 이야기 창작, 고백과 경청, 정서 교류 등을 통해 자신들이 있는 곳을 살 만하게 바꾸어 나간다.

이 줄거리들은 일면 빅터 프랭클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활과 '의미 요법'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정작 작가는 공장에서 단순 노동만 반복하느라 독서나 여가 생활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고 하니, 자신이 노동자로서 느낀 자괴감과 답답함, 글쓰기를 통한 나름의 정서적 해갈이 <회색 인간> 속에 비유적으로 녹아 난 셈이다.

책을 사서 읽을 여력이 되는 우리는 작가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인가. 직업에 대한 평판, 받는 급여의 많고 적음, 문화생활 향유의 가능성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근로-노동자인 독자 중에서 내 영혼과 금쪽 같은 시간과 청춘을 썩 내키지 않는 일에 투입해서 월급과 맞바꾼다는 자괴감을 느껴 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런 맥락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는 답답한 일상을 황당무계한 상상으로 견디다가, 황당무계한 소설 속 공간을 그럴듯한 일이 벌어지는 개연성의 세계로 변모시킨 작가의 노동 우화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이게 사는 건가'라며 속으로 한숨 쉬는 우리 노동자들로 하여금, 비생산적 시간과 활동이 우리를 살 만하게 만들어 줌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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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의 김남우 김동식 소설집 3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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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유머> 게시판에 쓰고 또 쓰던 공장 노동자의 소설들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책을 내라는 팬들의 제안에 쑥스러움과 겸양으로 답하던 그가 어느 날 진짜 작가가 되었다. 여러 팬들이 돈 안 드는 치사를 남기고 가는 사이, <오늘의 유머> 게시물을 통해 작가가 된 선배 '309동 1201호'가 편집자로 나서 그를 직접 데뷔시킨 것이다. 


일주일에도 몇 편씩 올라온 유저 '복날은간다'의 소설들은 나름의 일관된 스타일과 특징은 있었지만, 그 소설들을 한데 모았을 때 그려지는 작가의 거시적인 캐릭터와 세계관은 책을 묶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이었다. 소설들을 유형화해 3권의 책으로 묶은 것은 편집자의 공로이다.


소설집 전 3권 중 <13일의 김남우>는 요괴가 아닌 자연인(법인 말고) 도시생활자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보통 사람 김남우와 주변인들의 기이한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는 봉급생활자이고 누군가의 가족이며 친구인 사람들의 평범한 삶에 숨은 소름 돋는 부조리를, 이기심을, 위선을, 나약함을, 갈등을, 편견을 직관으로 짚는다. 


단편이라 하기에도 짧은 분량, 두세 문장으로 툭툭 끊어지는 문단들, 여느 소설가들이 으레 하는 상황 묘사조차도 간단히 건너뛴 채 줄거리만 짚는 서술방식은 작품들을 소설이라기보다 단편 드라마나 연극의 시놉시스처럼 읽히게 한다. 편집자는 이러한 한계 또는 부족함을 굳이 감추려고도 않은 채, 저자가 게시판에 썼던 그대로의 한 줄 띄기까지 그대로 적용해 버린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고 여백이 휑한 글이기에, 소설의 절정에 불쑥 튀어나오는 반전의 한마디 내지 작가의 필살기 멘트는 곧고 강렬하게 독자의 뇌리에 꽂힌다.


작가가 공장노동자 출신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한 작품만 평한다면, 표제작 '13일의 김남우'는 쳇바퀴 도는 하루하루를 견뎌 보내던 저자에게 글쓰기가 어떤 의미의 해방을 선사했는지 비유적으로 고백한 글처럼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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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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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요약: 유명한 라틴어 문장을 테마 삼아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개관하고 서구화된 현대 한국 사회의 뿌리를 분석한 인문 교양서. 동시에 라틴어 격언에 수강자들의 고단한 일상을 비추어 통찰한 책. 교양에 대한 지적 수요와 삶에 대한 정서적 위로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에세이. 세속적으로 크게 성공하진 못했을지라도 강의실에 앉은 청춘들에게는 귀감이 된 대학 강사의 자서전.

입소문에 이끌려 이 책을 손에 넣고 1/3쯤 읽었을 때, 이 책은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겸손하고 친절한 버전이 아닌가 의혹을 품었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처럼 저자는 대학에서 강의하는 사람이고, 그러면서도 서울대보다는 약간 낮다고 평가되는 대학의 비정규 강사 신분이면서, 책 내용은 혼란스럽고 아픈 청춘의 제자들을 위로하고 다독이는 것이었기 때문에, 머릿속 책장에 편리하게 분류해 버렸던 것 같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청춘을 대하는 저자의 명제를 [청춘은 아프다]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진로가 결정되지 못한 처지의 불안감, 본인의 적성과 욕구를 숙고할 여유 없음, 출신학교와 첫 직장의 이른바 '클라스'를 끊임없이 비교하고 비교당하는(비교당한다고 믿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 어떤 이들에게는 꿈은 고사하고 생존조차 힘든 처지. 학자이면서 가톨릭 성직자인 저자는 제자들보다는 진로가 일찍 확정된 인생을 살았음에도, 로마 유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겪고 있는 공부와 생활의 어려움을 고백하는 방식으로 제자들의 아픔에 공감을 표한다.

자칭 실용주의자들, 또는 전략과 팁이 충만한 자기계발서의 애독자들의 취향에는 안 맞는 책일 수 있지만, 책의 여러 행간에서 자기계발의 팁을 찾는 재미도 적지 않다. 예컨대 시간을 (시점이든 러닝타임이든) 정해 놓고 공부를 하라든지, 하루에 10시간 이상 공부하지 말라든지, 본격적인 공부에 들어가기 전에 워밍업 공부를 하라는 것들이다. 비록 이 책이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도중에 부딪힐 시련을 극복하는 법까지 낱낱이 알려주진 않더라도, 저자가 삶의 여러 장애물을 극복하기보다 견디며 동반해 온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자기계발과 성공이란 성실과 인내, 무엇보다도 오늘 해야 할 일을 함으로써 이뤄진다는 평범한 사실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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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이타주의자 - 세상을 바꾸는 건 열정이 아닌 냉정이다
윌리엄 맥어스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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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속한 모금재단의 홍보를 위한 책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으나, 기부, 자원봉사, 공익활동 등의 자선 행위에서 우선시하고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을 짚는 데에는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기부할 곳이나 구호 사업을 정할 때 더 근본적인 부분, 경시되거나 누락되는 영역에 주목해서 빈틈을 채우라는 조언은 10여 년 전에 경제경영 담론을 장악했던 6시그마 이론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기는, 기초가 튼튼해야 집이든 사업이든 탄탄하게 선다. 기초와 시작점에서 새는 부분은 끝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문제를 일으키니까. 그런 면에서, 기부보다 투표가 더 효율적이고 강력한 선행일 수 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이면서도 많은 이들이 간과했기에 참신하게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껄끄러웠던 부분은 자선단체의 실무자가 되기보다 돈 많이 벌어서 기부하는 것이 낫다, 자선단체 노동자가 될 것을 염두에 두더라도 영리기업에서 경력-인맥 자본을 쌓아 가지고 들어오라는 주장이었다. 그 말은, 현재 자선-구호단체의 최전선 현장에서 촉수와 혈관 노릇을 하는 젊은 하급자들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판단으로 읽힌다. 영리기업이든 비영리단체이든 모든 일은 유형 무형의 효과를 꾀하는 '사업'이다. 사업이 잘되려면 영리 추구 여부와 관계없이 사업 실무자들의 양성과 역량 축적-활용을 위해 적지 않은 투자가 필요하다. 저자가 자선단체의 말단 자리에서는 배울 것이 별로 없다고 판단했다면, 그것은 자선단체가 인력을 양성하는 데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업을 잘되게 하는 근본적 투자에 별 관심 없이 돈 많이 벌어서 기부 많이 하라는 주장은, 기부가 기획되고 이루어지는 과정의 합리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인 인적 자원 개발에 대한 무관심으로 읽힌다. 그런 까닭에, 더 근본적인 영역에 많은 자본과 노력을 투자하라는 훌륭한 통찰에도, 이 책의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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