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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는 아니지만 - 구병모 소설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뭐랄까, 어떤 것이 말간 모습을 하고 나를 향해 걸어왔다. 뚜벅뚜벅. 그리고, 마치, 헤어졌다 만난 연인을 만나듯이, 두 팔을 벌리는 것. 그것이 내가 은밀히 친애하는 저자의 작품을 만난 반가움을 표시하는 방법이었다. 어쩌면, 조금은 두려움이 도사렸을지도 모르지, 나에겐 전작인 「아가미」의 야릇하고 오묘한, 그러나 손을 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아가미의 ‘곤’이 그러했으니, 올해에 나는, 그보다 더 찬란한 빛깔을 지닌 이를 본 적이 없었노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어쩌면, 아니 실제로도 나는, 그와 사랑에 빠졌을런지도 모른다. ‘강하’라는 강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곤’은, 또 물고기 ‘곤’을 품고 있는 ‘강하’라는 강은 내게 그만큼의 여운을 가져다 주었던 것. 그 까닭이었다. 그런데 그들을 탄생시킨 조물주, ‘구병모’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이 막 세상에 태동시킨, 탯줄은 잘렸지만, 생김새는 보이지 않는 어떤 아이를 안아들고.
비유가 법으로 금지된 S시 《마치 …같은 이야기》, 땅 속에 하반신이 묻힌 남자 《타자의 탄생》, 자신의 rule로 차별없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유치원교사 《고의는 아니지만》, 절망을 가진 사람을 먹이로 삼는 새, 그리고 떼어진 살점이 부럽다고 생각하는 여자 《조장기》, 대필로 생계를 유지하는 여자가 아이를 잠재우는 방법 《어떤 자장가》, 감정 신경계를 꿰맨 남자 《재봉틀 여인》, 전자발찌를 찬 성범죄자가 성욕이 발생할 때를 조심하라 《곤충도감》 - 궁금한 게 많다. 비유를 법으로 금지한 시장 ‘미무르’(쥐와 생김새가 비슷한 그것)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도시는 종국에는, 그대로 비유를 상실한 채로 남아있을까. 하반신이 묻힌 남자는 무엇때문에 그런 상황에 놓여졌고, 끝내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고의는 아니었지만 유치원교사의 차별없는 혹은 그렇다고 생각하는 그것은 무엇이 문제였고, 그것말고 달리 다른 해결방법이 있었을까. 살점이 승천하는 걸 보며 부럽다고 한 그 여자,는 다시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갔을까. 아니면, 그녀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혹은, 그녀도 하늘로 승천하지는 않았을까. 설마, 세탁기와 전자레인지에 돌려진 아이가 현실은 아니겠지. 정말 말 그대로 환상일 뿐이겠지. 저자가 환상이라 말한 적은, 결코 없지만. 하지만 사람이 미치기 일보직전이면 그럴 수도 있지는 않을까. 남자는 세포를 다시 풀지는 않았을까. 재봉틀 여인이 해주었던 것처럼 흉내를 내며, 그렇게. 여자는, 그것을 해방시켜 놓으려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설마, 그래, 설마 여자의 몸 속에 들어앉은 건 아니겠지. 하는 그런거, 말이다.
사실 이것은 모두 ‘논리의 오류’를 범한다. 그것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말하기엔 껄끄러운 내가 사는 지금 현재를 표방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기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어떤 책임감을 부여하고, 그 속에서 내가 그 혹은 그녀가 된다. 그게 싫으면, 철저하게 관찰자가 되던지. 저자는 이야기를, 나와 그리고 다른 그대들과 공유하려는 걸까. 그녀와 내가 만드는 이야기를, 보고 싶은걸까.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아이러니하게 어떤 것이 가장 좋았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우울함이 감도는 이야기들에서 희망을 찾기란, 적어도 나에게는 불가능이다. 일곱 편의 단편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런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내가 일곱 편의 이야기들의 엔딩을, 해피엔딩으로 내지 않았거나, 이야기를 그대로 끝냈다는 것, 그것이 될게다. 아마 후자겠지. 이야기를 그곳에서 끝내고, 깜빡깜빡이며 떠오르는 물음표들을 책 속에 구겨넣고 그대로 책을 읽어가겠지. 그래서, 없다. 그냥, 다, 똑같다. - 폭발되기 직전의 화산의 움직임을 느꼈고, 폭발된 후의 화산재를 몸으로 맞았으며, 그것에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만연체에 호흡이 길게 끌리다가도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었던 순간, 턱없이 부족한 나의 상상력 앞에서 이야기는 끊겼다. 하지만, 최고였다. 현실과 판타지의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하고, 따라서 그것은 존재할 수 없지만, 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없다는 것. 현실이 상상이 되고, 상상이 현실이 된다. 내가 이래서, 구병모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