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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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를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언저리에 내려 앉은 채 들러붙은 것을 느낀 어느 오후에, 며칠 전에 두어 장 읽다가 덮어두었던 김이설의 「환영」을 꺼내들었다. 사실 난, 이 책의 내용을 몇 개의 서평을 통해 대충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상태였고, 그래서 읽으려던 찰나 바로 손에서 놓아버렸다. 그것은 이 책의 내용이 썩 유쾌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처음 책을 덮었던 것이 ‘답답함’이라고 칭한다면, 아이니컬하게도 책을 펼쳐든 것 또한 ‘답답함’이다. 전에 말한 적 있듯이, 내가 절망적인 상황(물론, 그때의 내 상황이 절망적인 상태까지는 아니었지만)에서는, 나보다 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주인공의 생을 읽어내려감으로써 처연하게 바라보며 나의 안식을 찾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이 책,인 것이다. 나에게 예기치못할 위안을 줄 수도 있겠다, 싶은 책.

 

 

 

서윤영, 그녀는 누구인가 - 책상 위에 펼쳐진 채 넘어가지 않는 책,이기에 매년 낙방하는 남자의 아내이자, 성장이 제대로 되지 못해 돌이 되어서도 엉덩이로 기어다니는 아이의 엄마. 그것뿐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지만 장녀라는 이유로 포기해야했던 반짝였던 청춘의 그림자는 그녀의 삶에 있어 질질 끌리는 짐으로 변질되고 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아버지 병원비 마련이 끝난 뒤에도) 계속되는 돈의 악순환 고리가 그녀의 목을 옥죄는 것과 동시에 손과 발을 꽁꽁 묶어 그녀의 생이 프레임을 따라 젖어들어 끝내는 얼룩진다. _ 집을 일으켜 세워줄 것만 같았던 둘째 민영이, 작퉁을 만들어 파는 사업을 시작한다는 이후, 연락이 끊기고 돈이 필요할 때마다 연락을 했었던 그녀가 다시 연락을 해왔다. 민영과 마지막 통화를 한 오년 전, 그들을 구원해줄 사람은 민영, 그녀뿐이었으니 남은 가족은 집을 파는 것에 쉽게 동의하고 기꺼이 고시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연락은 끊겼다. 그런데 이제와 연락해 또 돈타령이라니. 그녀와의 통화를 들은 왕사장이 슬몃 이야기를 꺼낸다. “아까 듣다 보니, 돈이 좀 급한 모양인데, 내가 좀 도울까?” - 윤영에게는 1부터 40까지 쓰여진 것이 생기게 된다. 숫자 1 옆에 날짜와 왕사장의 사인이 있다. 나머지 서른 아홉에도 날짜와 사인이 있어야 하리라.

 

 

언제나 처음만 힘들었다. 처음만 견디면 그다음은 참을 만하고 견딜 만해지다가, 종국에는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처음 받은 만 원짜리가, 처음 따른 소주 한 잔이, 그리고 처음 별채에 들어가, 처음 손님 옆에 앉기까지가 힘들 뿐이었다. 따지고 보면 세상 모든 것이 그랬다. 버티다 보면 버티지 못할 것은 없었다. (…) 이제 나도 내 마음대로 반찬을 싸가게 되었다. 그게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p58~59) 버틴다고? 어떤 걸, 어떻게? 그녀가 버텨야만 했던 것이 비단 그녀 가랑이 사이로 들어오는 욕구에 눈이 먼 자들의 성기, 그 뿐이겠는가 말이다. 그녀가 정말 버틸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버텨야만 했고, 또 버티는 것 외엔 손 쓸 도리가 없는 것. 그것은 ‘가족’이라 불리는 이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된 그들이, 윤영_ 그녀에게 있어 비애의 전부일지도 모르겠다,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은 흡사, 어미새가 물어다 주는 벌레를 먼저 받아 먹겠다고 부리를 힘껏 벌리고 있는 그것과 닮아보인다. 그것들을 둥지 아래로 떠밀면 분노로 멈춰버린 혈액이 다시금 순환될 것도 같은데, 윤영은, 자신을 남은 생에 맡긴 채로 다시 시작하려는 모양이다.

 

 

 

끝이, 있기는 할까. (p188) 그녀에게 ‘희망’은 사치이고, 호사이며, 코웃음 칠 만큼 우스운 것과 다름 없음이다. 하긴, 그녀에게는 그 이름을 붙여 부를 만한 것이 없다. 도대체 무엇에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가, 말이다. 아니,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주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조차 체념해야했다. 대상은, 그녀의 가족의 굴레에서 그녀를 구원해줄 것만 같았던, 그녀의 남편. 내가 바라는 건 신분 상승이 아니라, 꼬박꼬박 받아오는 월급, 생활비를 주는 남편이었다. 번듯한 벌이가 있는 가장이 필요했다. (p41) 마땅히 가져도 될, 가져야 할 희망이 결여된 여자의 모습은 것은 씁쓸하다 못해 마음이 쓰라려 오기까지 한다. 희망은, 그녀가 모든 것을 놓은 뒤에야 품을 만한 여유가 생길런지도 모르겠다, 생각한다. 그래서, - 실은 나, 이도 저도 안 될 것이라면, 차라리 윤영이 가장 비극적인 선택을 하길 바랐다. 그 비극에 얼룩덜룩한 눈물이 더해져 차라리, 그걸 해피엔딩이라고, 내 멋대로 부르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녀는 살아간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그녀는 사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내는 사람이었다. 지독하다. 정말 끝이 있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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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3-08-03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는것, 삶을 버리는것,
그것이 더 쉽기에 버티는 사람도 있어요.
언제든..얼마든지..이제라도..놔 버릴 수있는..
그런 목숨따위니까..
까짓...하면서...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