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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궁전 안개 3부작 3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김수진 옮김 / 살림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판타지 소설이라는 장르를 좋아하지 않았다. 또, 여전히 달가워 하지는 않는다. 세상과는 동떨어진 미스터리하고 괴기한 이야기가 그저 유치하다,고만 생각했던 이유로 재미를 느끼지 못한 것이 그 까닭이다. 그래서 중학교 시절에, 이른바 모든 아이들의 ‘제 2의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해리포터」 시리즈에 눈길 한번 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에게서 편지를 한 통 받았는데, 자세한 내용까지는 생각이 안나지만, 그때 당시, 지금도 물론 밸라, 혹은 벨라 라는 별명을 가진 나에게 ‘안녕, 벨라요정. 난 헤르미온느야.’ 라고 시작되던 그 편지를 첫 문장을 잊을 수 없다. 그것은 손발이 오글거릴 만큼의 강력한 거부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생각한다. 분명 그때의 나라면, 그 편지를 찢어버렸겠지만,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편지함 상자에 자신의 자리 한켠을 마련하고 있다. 난 아마 그것을 읽으며 욕설을 내뱉으며 상자에 던졌겠지. 그런데 그런 내가, 「해리포터」 그것을 읽었다. 그것도 3일이라는 최 단시간 내에 마지막 편을 제외한 모든 시리즈를 말이다. 때는 대학 일학년인 스무 살. 모델 구상을 해야하는데, 딱히 마땅한 도안이 떠오르지 않아 눈만 빙빙 돌리고 있었을 것이다과오빠가 중학생인 자신의 동생에게 읽힌다며 대출받아놓았던 책이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손에 들고 우리 중학교 때도 참 많이 읽었었는데,라며 운을 떼고 몇 장 읽기 시작했는데, 어라, 재미있네 -.

 

 

 

그 이후로도 평생 읽을 것 같지 않던 판타지 소설이라 불리는 책을 (내 나름대로) 꽤 많이 접했다. 생각할 거리가 가득했던 「위저드 베이커리」 , 그저 로맨스 소설이라는 것에 국한될 줄만 알았지만, 그 역시도 로맨스에 판타지라는 밑바탕이 깔려있었던 「시간 여행자의 아내」 와 「트와일라잇」 , 그리고 이번에 읽은 청소년 판타지인 「한밤의 궁전」 - 이 책을 겨우 몇 장 넘겼을 때만 해도, 추리 소설인 줄로만 알았다. 이렇게 미치도록 화창한 봄날에 추리 소설을 읽는 것은 실례인데, 라며 책을 펴들었으니까. 책에 대한 어떠한 정보가 없는 상태였기에, 음산하게 그려진 표지만을 보고 판단한 것이리라. 아니, 실은 책을 읽고 난 후부터도 역시 100페이지가 넘어가기 전까지도 난 그런 장르의 것이라 생각했던 것. 중간마다 그가 비를 멈추게 한다던가, 백지 상태의 편지가 몇 시간 후에 채 마르지도 않은 빨간 잉크로 써있었다는 점을 미루어 본다면, 충분한 복선이었음에도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절대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그 당시에 일곱명 중 (어쩌면 여덟명) 한 아이, 이언. 그의 독백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에워싼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야기의 시작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누군가의 독백을 듣게 된다는 것은 김이 빠지는 일이기에, 또,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읽는 것은 순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이야기를 읽고 다시 읽어보기로 하고, 과감히 건너뛰기로 한다. 독자들이 직접 작품과 맞닥뜨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하던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그의 말처럼. 그래서 나에게 이 이야기는 1916년 후글리 강으로부터 시작된다. 한 남자가 갓난쟁이 두 아이를 품에 안고 무작정 달리고, 누군가 그의 뒤를 밟으며 희미하게 옅은 미소를 띠고 있다. 그 남자는 아이들을 ‘아르야미 보세’에게 무사히 양도하지만, 그녀는 아이 둘 모두를 살리기 위해 한 아이만을 캘커타의 한 보육원에 맡기게 된다. 아이는 그곳에서 자라면서 ‘차우바 소사이어티’라는 이름으로 일곱 명의 아이들과 비밀 결사단을 만들고, 보육원에서 내보내야 할 나이인 16세가 되어 이제 2주 후가 되면 그 보육원에서 나가 홀로 설 준비를 해야한다. 그때, 한 남자가 그를 찾아왔다. 아이를 찾던 그 사람. 자와할. 그는 무엇때문에, 아이를 쫓고, 무려 16년동안이나 기다려왔는가.

 

 

 

이 책은 분명, 가독성은 있다. 아니,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점점 길어질수록 늘어지며 헐거워지는 것을 보기가 힘겨웠고, 끝내는 작가에 따라 나 역시도 슬렁슬렁한 마음으로 책을 보았던 것을 고백하다. 그 까닭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를 집어내자면 - 혹여, 이 이야기가 영웅 스토리를 살리고자 했다면, 인물 묘사가 아쉬웠음을 얘기한다. 독자는, 아니 나의 경우는 대개 이런 식의 소설을 마주할 때면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저자가 저당 잡아놓은 인물이 아닌, 이야기를 끌어갈 만한 또 다른 인물을 구축해놓는다. 그리고 홀로 저자와는 약간 다른 생각을 해가며, 이럴 땐 이 사람이 나와줘야 하는데, 라는 식의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벤’은 이미 저자가 저당 잡아놓은 단 한명의 인물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사건들이 적어도 비밀 결사단에 의해 풀린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까닭이다. 아니, 구지 그렇게 따지자면 ‘벤’ 역시 스스로 한 일은 하나 없다. 그저 남들 하는 만큼만 했을 뿐. 어찌됐건 난 ‘벤’을 제외한 ‘마이클’을 잡아놓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 어떤 인물도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볼 수 있는 이는 없다. 아, 단 한 사람. ‘피크 중위’ - 내가 ‘차우바 소사이어티’의 인물들에 대해 약간이나마 알 수 있었던 것은 이언의 독백을 통해서였는데, 고작 세 장만을 통해 인물을 알아가기엔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닌가. 그 세 장에는 ‘누구는 어떻고~’ 식이었는데, 그것이 아닌, 그들끼리의 대화를 통해 독자 스스로가 ‘아, 이 아이는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구나.’ 라고 생각해야 하고, 부족한 때에 작가가 끼어들어 다른 인물을 통해 부연설명할 수 있는 발언권을 갖는 것이다, 라고 적어도 나는 생각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독자 개개인의 까다로운 입맛을 다 맞추진 못하지만, 인물 묘사가 뛰어나야 한다는 점은 추리 혹은 판타지 소설에서 간과되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아니, 설령 그런 장르의 책이 아니라 하더라도, 배경이 이야기의 소재가 되지 않는 이상 결코 뒷전으로 미룰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두번 째는 시시각각 변하는 시점이었다. 특유의 개성도 없는 아이들을 떼어놓고 이리저리 굴린다 한들, 내 머릿 속에는 제대로 각인되어 있는 아이들이 없다. 그저 인도 박물관 도서관에서 자와할에 관련된 서류를 찾는 아이들이 있었고, 역사 상단에 둘러쳐진 돌출대에 있었던 아이들이 있었고, 지터스 게이트 역사 제일 상단부에 있었던 아이들이 있었으며, 터널에 있었던 벤이 있었다. 라는 것밖에는 남아있는 기억이 없다. 그 시점들 사이에서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었다. 이 역시 첫번 째의 까닭과 자연스레 연결되는 문제가 아닐까. 세번 째는 ‘권선징악’ -. 과연 이 책이 청소년 판타지라서 그럴까, 글쎄. 이야기의 마무리가 결국 이렇게 밖에 될 수 없었구나, 라고 체념하는 데에는 작가에 대한 희망마저 실린 것이다. 작가의 책을 난 이 책으로 이제 겨우 한 권을 읽은 셈이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게 만든 것이. 사실 처음 자와할에게 쫓기던 피크 중위를 볼 때는 이 책이 흥미진진하겠구나, 생각했다. 하루만에 다 읽어버릴 수도 있는 책이겠구나, 생각했다는 말이다. 이야기란 도입부보다 클라이맥스에서 독자를 안달복달하는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때 손을 놓았다. 또한, 처음에 궁금증을 자아내던 것들은 노부인의 한 번의 거짓말로 인해 한꺼번에 틀어지고, 진실을 이야기할 때 즈음에 설레야 할 이야기들이 설레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앞서 말했듯, 헐거워진 이야기는 결국 그렇게 끝이 나고, 책장을 다 덮은 후에도 뭔가 모를 찜찜함이 남아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작가가 책을 통해 하려는 말을 이 책을 통해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했다. 아비의 사랑일까, 그들의 우정인가, 그도 아니면 정말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권선징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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