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 평전 - 천재의 의무 Meaning of Life 시리즈 8
레이 몽크 지음, 남기창 옮김 / 필로소픽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뵙겠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님. 저세상에서 비트겐슈타인 님은 잘 지내고 있습니까. 저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게 언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철학자라는 것도요. 언젠가 우연히 알았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 뒤로도 그냥 이름만 알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한국에는 ‘비트겐슈타인’이라는 밴드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때 제가 이름을 기억한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음악은 어땠더라, 안 들은 지 오래돼서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그래도 그거 재미있지 않나요. 밴드 이름이 ‘비트겐슈타인’이라는 것. 아마 그 밴드를 만든 사람이 비트겐슈타인 님을 좋아했을 거예요. 저는 지금까지 철학과 관계있는 책은 거의 안 봤는데, 제가 철학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중학생 때예요. 그저 관심만 갖고 어떻게 알 수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학교 다닐 때 윤리 시간에 철학자에 대해 배웠던 것 같습니다. 철학을 깊이 배운 게 아니고 아주 조금이었습니다. 그때 배운 것은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제가 아는 이름이라곤 이 정도뿐입니다(나중에 더 생각났지만). 비트겐슈타인 님 평전을 보다보니 괴테가 문학뿐 아니라 철학도 했나 했습니다. 제가 너무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괴테와 니체를 함께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처음 생각한 것보다 오래 걸려서 비트겐슈타인 님 평전을 읽었습니다. 어쨌든 끝까지 읽었지만 다 알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올해 읽다 만 책이 몇 권 있는데, 비트겐슈타인 님 평전은 보다가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기뻐해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조금 부끄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서. 비트겐슈타인 님은 자신의 평전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사실과 다르게 쓰는 것은 없을까 하는 걱정은 되지 않던가요. 비트겐슈타인 님은 세상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니 평전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평범한 사람한테 관심 갖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요. 아니, 식구들은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두달전에 저는 ‘카프카 평전(이주동)’을 보았습니다. 카프카 소설을 읽어본 적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한국사람이 써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 님 평전도 한번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카프카 평전’과는 아주 다르더군요. 카프카 평전을 보면서도 생각했던 게 있는데 그게 맞았습니다. 카프카가 조금 일찍 세상에 나왔지만 비트겐슈타인 님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거예요. 그때 살았던 사람 가운데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많이 있군요.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비트겐슈타인 님한테도 유대인 피가 흐른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그저 독일 사람이겠지 생각했거든요. 제2차 세계전쟁 때 비트겐슈타인 님은 어떻게 했을까 하는 걱정도 했습니다. 그것보다 전쟁에 나갔을 때를 더 걱정해야 했는데 말입니다.

 

비트겐슈타인 님은 어렸을 때부터 철학을 하였더군요. 그때는 자신이 철학을 한다는 생각을 못했을 것 같습니다. 여덟아홉 살 아이는 그저 밖에서 노는 데 마음이 더 갈 텐데. 형제들도 아주 많은 집안의 막내였지요. 그러면 더 철이 없을 것 같은데 비트겐슈타인 님은 그러지 않았군요. 집안 분위기가 비트겐슈타인 님을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아니, 다른 형제들은 음악에 더 관심을 가졌던가요. 그게 비트겐슈타인 님한테 어떤 영향을 미쳤을 테지요. 공학을 공부하다 철학을 하게 된 것은 버트런드 러셀을 만나서였지요. 러셀은 비트겐슈타인 님을 천재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비트겐슈타인 님은 아홉해 동안 해온 죽고 싶다는 생각에서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도 그런 생각을 아주 안 한 것은 아니군요. 책을 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잖아요. 그때 저는 에드거 앨런 포가 떠올랐습니다. 포는 자신이 일찍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장편보다는 단편을 더 많이 썼다고 합니다. 포를 많이 아는 것은 아니고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은 거예요. 비트겐슈타인 님이 케임브리지에 다닐 때 사귄 친구 핀센트와 함께 어디에 간 이야기는 재미있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님은 핀센트와 있을 때 편했겠지만 핀센트는 조금 달랐다고 하더군요. 누구보다 친했던 친구가 먼저 죽어서 마음이 아팠겠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만나서 어딘가에 함께 가자고 했잖아요.

 

전쟁이 끝나고 비트겐슈타인 님은 많이 달라졌다면서요. 전쟁에 나간 게 자신이 바뀌기를 바라서였군요. 전쟁터에서 글을 쓰고 그 글들로 책을 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지요. 그 뒤에 비트겐슈타인 님은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지요. 저는 수학을 잘 못했습니다. 제가 수학문제를 푼 것은 중학교 3학년 때까지였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1학년 때도 조금 풀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도 나름대로 공부한다고 했는데 잘 안 되더군요. 며칠전에는 수학시간에 앞에 나가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일입니다. 제가 그 꿈을 언제 꾸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꿈을 꾸고 나서 비트겐슈타인 님 평전을 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비트겐슈타인 님 학생들을 때렸다면서요. 좀더 부드럽게 아이들을 가르쳤다면 좋았을 텐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다시 철학을 하기로 해서 다행입니다. 철학 연구를 할 때 비트겐슈타인 님은 마치 소설쓰기에 푹 빠진 작가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대학에서 학생들한테 철학을 가르치고 연구해야 해서 힘들지 않았습니까. 누군가를 만나고 강의한 것이 책으로 묶이기도 하고 여러가지 일이 있었군요. 왜 비트겐슈타인 님이 쓴 글을 스스로 타이핑하지 않고 타자수한테 시킨 건가요. 이런 것을 물어봐도 대답을 들을 수는 없겠군요. 타자수가 타이핑한 것을 비트겐슈타인 님이 다시 읽어봤겠지요.

 

조금 신기한 일이 있더군요. 비트겐슈타인 님이 미스터리 소설을 즐겨읽은 겁니다. 어쩌면 미스터리가 논리학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것은 거의 생각 안 하고 책을 보기도 하거든요. 비트겐슈타인 님은 자신을 좋게 바꾸는 게 세계를 바꿀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고 했잖아요. 맞는 말입니다. ‘내가 바뀌니 세상이 바뀌었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비트겐슈타인 님이 저세상에 가기 전 두해는 친구와 제자들 집에서 살았군요. 마지막에 비트겐슈타인 님이 ‘멋진 삶을 살았다.’고 말하였는데, 그렇게 말할 수 있어서 좋았겠습니다. 그 말을 보고 저도 그런 말을 할 수 있게 살아야 할 텐데 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님이 쓴 글을 거의 못 봤고 앞으로도 볼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비트겐슈타인 님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아서 좋았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님 평전을 볼 동안은 기분이 조금 좋지 않았지만요. 그것을 비트겐슈타인 님 탓으로 돌리면 안 되겠지요. 저는 다 알기 어려웠지만 비트겐슈타인 님 평전이나 비트겐슈타인 님이 남긴 책을 보고 잘 알려고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쉬십시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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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0 17: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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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1 00: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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