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과 열렬한 우정을 나눴던 여인 베티나 폰 아르님이괴테에게 보냈던 편지의 한 구절을 살펴보자.
베토벤에게 있어 인생의 모든 것은 감각적인 존재에게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영적인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도구였고, 그는 자기 자신이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창조자라고 생각했다.
인간에게 불을 주었던 프로메테우스처럼, 베토벤은 자신도음악을 통해 인류에게 신성한 무언가를 퍼트린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과거에 그가 왜 유서를 통해 "나에게 맡겨졌다고 느끼는 이 사명을 완수하기 전에는 세상을 버리지 못하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 비참한 생명을 부지하기로 했다."라고 이야기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 P52
용기를 가져라! 내 허약한 신체에도 불구하고, 내 천재성은 결국 승리할 것이다. 이제 내 나이 스물다섯 살 완성된 인간성을 드러내야 할 시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힘을 다해야 한다. - P76
이처럼 베토벤의 유년기는 안정적으로 자란 모차르트의 어린 시절과 참으로 달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다. 모차르트는 묘지 관리인만 지켜보는 가운데 쓸쓸히 묻혀 현재까지 유해조차 찾고 있지 못한 반면, 빈에서 성대히 치러진 베토벤의 장례식에는 무려2만여 명의 추모객이 운집했다. - P86
그만큼 그는 자신의 전무후무한 예술성에 자신감이 있었다. 예술가의 꿈을 갖고 있다면 부디 자신의 색깔과 개성을 당당하게드러내기 바란다. 물론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릴 때 가질 수 있는순수하면서도 용맹스러운 포부를 가지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남들의 시선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자. - P90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을 통해 ‘음악은 안정적인 화음으로 시작되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깨버린 베토벤의 시도는평론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여기서 더 재미있는 점은 평론가들이 꺼려한 특정 화음을 다른 곡에 계속해서 다시 사용했다는 것이다. 당대의 전문가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베토벤은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통해 드러낸 자신의 신념과 독자적인 기질에 자신감이 있었다.1801년, 평론가들이 틀을 깬 자신의 작품에 대해 가혹한 비평을 늘어놓자 베토벤은 편지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저들이 (편지에서 베토벤은 평론가들을 ‘라이프치히의 소들‘이라고익살스럽게 표현했다. 참고로 슈만은 평론가들을 ‘소고기 덩어리‘라고표현하기도 했다.) 마음껏 떠들도록 내버려두시오. 저들이 지껄인다고 해서 그 누구도 불멸의 존재를 만들 수 없거니와, 또아폴로 신만이 수여할 수 있는 불멸의 영예를 빼앗을 수도 없습니다. - P95
개인적으로 나는 이렇게 되새기곤 한다. ‘우주는 언제나 나를 위한,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숭고한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해 나의 길을 가고, 결과는 우주에 맡긴다. 베토벤 역시 그 어떤 아픔에도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자신의 길을 갔을 뿐이다. - P99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억제하고 나보다 남의 시선을 우선시하면서 연주하는 연주자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면좋겠다. 고전 음악가라고 불리는 그들이 오늘날까지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이유는 틀을 벗어난 혁신적인 정신을 음악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작품이 세월을 관통해 우리에게까지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치의 위선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하는 위험을 감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음악을 절대적으로 창조했고, 절대적으로 사랑했으며, 자신의 본질을 끊임없이 탐구했다. 그리고 그것을 솔직하게표현했다. 그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권리, 즉 자유의 권리를 확실하게 선택했고 누렸다. - P101
겸손과 겸허는 결코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겸손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해서는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느끼되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모두의 덕분이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반면 교만함은 어떤 성취를 자신이 잘난 덕분에 이룬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머지는 상관하지 않는 태도다. - P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