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신비 이매진 컨텍스트 6
베티 프리단 지음, 김현우 옮김 / 이매진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책날개 속 <저자 소개>에는 베티 프리단이 스미스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했다고 적혀 있다. 그랬다. 베티 프리단은 스미스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그녀는 장학금을 받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얼마 후에는 전문 심리학자로서 일생 동안 일할 수 있게 해 줄 박사 과정을 위한 또 하나의 장학금을 받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사로잡은 의문, 계속해서 일어나는 의문, 그녀 안에서 사그라들지 않는 의문은 그녀를 놓아 주지 않았다. 그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두려움 속에서 그녀는 안절부절 못했다. 그녀를 사로 잡았던 의문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 질문이다.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가?”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자신의 모습을 전혀 상상해 보지 않았기에, 자신이 떠나온 중서부의 마을, 자신의 집으로, 자신의 어머니와 부인네들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녀 앞에, 막상 심리학자로서의 길이 펼쳐지자 그녀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가 되는 길일까?” 당시 그녀에게 이러한 의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딱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사랑이었다. “우리 사이가 이래가지고는 아무 일도 안 되겠어, 나라면 당신처럼 장학금을 수락하지는 않을 거야.” 손을 끌어 주는 남자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녀는 장학금을 포기했다.

 


부모와 집을 멀리 떠나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려 했던 용기 백배의 소녀, 스미스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할 만큼의 지적 능력을 가졌던 여성의 결정이다. 그녀는 말한다.

 



내가 왜 그 일생의 직업을 포기했는지 결코 설명할 수 없으며 나 자신도 도대체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미래를 위한 특별한 계획도 없이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하루하루 살아왔다. 즉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여성의 신비에 이끌려 교외의 가정주부로서 살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 의문은 나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결국 그 의문을 직시하고 스스로 해답을 얻으려고 애쓸 때까지는 내 인생에 대한 어떤 목적의식, 마음의 안정도 얻을 수 없었다. (138)

 



책을 쓰면서 만났던 스미스 대학의 동창들과 스미스 대학의 4학년 학생들과 면담을 하면서 그녀는 그 의문이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확인한다. 그녀들은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 받는 것을 싫어한다. 아무도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결혼하게 되어 그 질문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을 행운으로 여기고 있었다.

 



오늘날 여성 문제의 핵심은 성적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에 관한 문제, 즉 여성의 신비 때문에 영속화된 성숙을 방해하고 기피하는 문제라는 것이 내 논제다. 또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가 당시 여성들로 하여금 기본적인 성적 욕구를 인정하거나 충족시키지 못하게 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의 문화 구조가 여성으로 하여금 인간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해 발전시키려는 기본적인 욕구, 즉 성역할에 의해서도 전혀 제한받을 수 없는 욕구를 인정하거나 충족시키지 못하게 막고 있다는 것이 내 논제다. (150)

 



여성의 신비, 여성적 성취에 대한 신화는 여성의 능력과 활동 범위를 가정으로 한정한다. 능력 있고 다정한 남편,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교외의 주택에서 만들어가는 행복한 가정. 집안을 청소하고 정리하고 요리하고, 아이들을 돌보는데 특화된, 오로지 그 임무에만 한정된 여성.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로만 정체성이 규정되는 여성들. 그런 여성들은, 그런 삶을 살았던 여성들은 이 질문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일까. 내가 원하는 게 바로 이런 걸까.

 



<4장 열정적인 여행>에서는 남성에게 어린애로, 인형으로, 장식품으로 사랑받으며 살기를 거부하고, 동등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웠던 용감한 여성들의 투쟁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여성해방 운동은 미국 독립전쟁 말기에 시작되었는데, 바로 그 때 노예해방 운동이 강력하게 성장했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미국 여성들이 노예해방 투쟁에 정서적으로 동일화된 사실이, 자신들의 반란이 무의식적으로 촉진됐음을 입증할 수도 있고 입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해 조직하고 청원하고 연설하면서 미국 여성들이 자신들을 자유롭게 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177)

 



자그마한 체구에 품위 있는 모습, 은방울 같은 목소리를 지녔던 루시 스톤. 여성들의 권리를 위해, 그리고 반노예협회의 대리인으로서 일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하고, 여성과 흑인의 권리를 위해 싸웠던 그녀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여성의 글쓰기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뉴욕 도서관이 작가들에게 무료로 6개월씩 자리를 빌려주는 프레드릭 루이스 알렌관이 있어서 책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주일에 사흘을 베이비시터를 부르고 시내를 오가며 글을 쓴다. 점심식사 중 여성에 대한 책을 쓴다는 이야기에 조롱 대는 작가들을 견디고, 식탁 위, 거실의 소파에서 원고를 계속해 써 나간다. 아이들을 어디로 데리고 가거나 저녁식사를 만들기 위해 중단해야 할 때는 머리 속에서 이어 쓴 다음,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면 작업을 계속한다.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일을 계속해 나가면서도, 쓰고, 또 써서, 그녀가 멈추지 않아서 지금 내 앞에 이 책이 있다.

 



나 스스로 내가 쓰고 있는 것, 그 글이 인도되는 방향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각 장을 마칠 때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내가 미친 게 아닌가 하고 궁금해했다. 그러나 실마리들이 서로 맞아 들어가면서, 과학 탐험 이야기에서 어떤 발견을 해낼 때 과학자들이 느끼는 것과 확실히 똑같은 고요하지만 강력한 확신이 점점 더 강해졌다. (44)

 



그녀가 말하는 실마리, 여성으로서 내 삶에 펼쳐진 크고 작은 실마리들이 맞아 들어간다

그녀가 얻었던 고요하지만 강력한 확신에 점점 더 가까이간다.

간다, 더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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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성의 신비‘에 맞서고자 할 때
    from 책이 있는 풍경 2017-05-12 13:50 
    완벽한 교외 주택 단지에 거주하며 행복한, 혹은 행복해 보이는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는 전업 주부들. 여성의가장 큰 가치와 유일하게 전념해야 할 목표는 가정 안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완성이라고 가르치는 ‘여성의신비’에 사로잡힌 전업주부들에 대한 면담과 연구를 통해 저자 베티 프리댄은 ‘여성의 신비’ 시작점과 그것이 사회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과정, 그리고 여성의 신비 신화의 직접적인 수행자이자 피해자인 여성들의 삶을 조망한다.677쪽, 이 책을 거칠게
 
 
2017-04-21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4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