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만만찮은 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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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1 ㅣ 세미콜론 코믹스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희정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10월
평점 :
작가도 몰랐어요. 출판사도 그닥 유명하지 않아요. 처음 보는 표지라 신간 서적인줄 알았어요. 심지어, 만화책이라는 것도 책을 받고 알았어요. (저는 밑그림같은 만화, 단순하지 않고 이렇게 수채화 밑그림 같은, '만화'라는 느낌보다 '스케치'같은 이런 만화책은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 책엔 그런 만화 취향이 문제가 안될 정도로 저를 확- 끌어당기는 한 방이 있어요.)
이웃(herenow) 서재에 놀러갔다가 표지를 본겁니다. 딱 세 쪽을 밑줄긋기 해놓으셨더라구요. 단 한마디 코멘트도 없었죠. 정말 딱 세 쪽 밑줄. 그거 보고 완전 꽂혔어요. "세상에나, 이렇게 내 마음을 콕 찝어 그릴 수 있는 말이 있었구나! 아아아, 통쾌해." 그랬어요. 정말이지 10년 묵은 체증이 훅- 내려가는 시원함을 느꼈어요.
궁금하시죠. 대체 뭘 보고 이러는지?
직접 한 번 가서 보세요. 자 여기, 링크 걸어둘께요.
http://blog.aladin.co.kr/herenow/4305612
다녀오셨나요?특히 두 번째 밑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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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야, 타인에게 죽여 달라고 하고는 죽이는 법에 불평하는 그런 인생 보내기가 싫어졌어. 여길 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코모리 사람들...그리고 부모님도 존경할 수 있게 됐어. 내용이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오셨구나 라고.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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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나요. '부모님도 존경할 수 있게 됐어. 내용이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오셨구나' 이 부분을 읽고 눈물이 나요. 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생긴 거예요. 나도 내 아버지, 내 어머니를 보면서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그런 삶. 껍데기만 있는 그런 삶이 아니고, 누추한 면도 있고 거칠기도 하지만, 그래도 손수 가꾼 건강한 삶, 책임지는 삶'이라서 다행이다 그랬어요. 근데 그게 다였어요. 그게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헤아리지 못했고, 그래서 당연히 부모님께 존경한다는 표현은 하지 못했어요.
우리 부모님은 시골에서 나서 시골에서 자랐지만, 결혼하고 얼마 후 도시로 나왔어요. 자녀를 넷 낳아 키우면서 도시에서 도시로 떠돌아 다니셨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시에 정착했다'기 보다는 '도시를 떠돌았다'고 표현하는 게 낫겠어요. 아버지는 2002년도에 하늘로 '귀천'하셨고, 어머니는 결혼 안한 딸자식, 아들자식이 합동으로 귀농(귀촌)하자고 아무리 꼬셔도 쯪쯪~ 딱한 표정만 지으세요. '니들이 농사가 뭔지나 알아? 니들이 시골 살아봤어?' 이런 말을 하시는듯해요.
저는 시골에 놀러간 적은 많지만, 시골에 살아본 적은 없어요. 그래두 저 말, 내용이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어떤 의미인지는 느낄 수 있어요. 그건 시골에서 산다고 다 알 수 있는 건 아닐거예요. 물론 시골에서 살면 기회가 훨씬 많기야하겠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많으니까 훨씬 쉽게, 자연스럽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거구요. 그렇다고 도시에 살면 그게 안된다는 법도 없는 거예요.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면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우리 부모님은 도시에서 살았지만 결코 껍데기만 두른 삶을 살지 않으셨어요. 도시에 살면서도 충분히 '내용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내셨어요. 그래서 저는 부모님을 존경해요. 한 분은 하늘나라로 가셨고, 한 분은 병원을 집처럼 들락거려야하는 자신을 못마땅해하시지만, 그래도 누구를 등쳐본 적 없고, 누구를 배신한 적 없고,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 안하면서 맨손으로 삶을 일궈내신 두 분을, 존경합니다.
우리들은 참 많은 걸 타인에게 맡기며 살아요. 누가 열배 백배로 늘려주겠다고 하면 내 돈두 맡기구요, 때로는 '어쩔수 없잖아' 그러면서 내 아이도 맡기고 내 부모도 맡기죠. 소위 '시설'이라고 하는 데다 말예요. 그뿐인가요? 세탁도 맡기죠, 집안 일도 맡기죠, 요즘엔 김장도 맡기잖아요? 하긴 육아도 남의 손에 맡기는 판에 집안 일쯤 대순가요? 부모 공양도 시설에 맡기는 판에 김장쯤이야 뭐, 돈만 주면 다 맡아서 해주는데 뭐하러 손수하겠어요?
스트레스는 술에 맡기구, 운전은 대리기사한테, 택배는 경비실에, 골치아픈 일은 심부름센터, 짝짓기는 듀오, 청혼-돌잔치-회갑잔치 그런건 이벤트 회사에 맡기구, 장례식은 보람상조에 맡기면 되잖아요?
우리 부모님은 달랐어요. 애들을 남에게 맡겨 본 적 없구아! 학교는 보내셨습니다만, 집안 일은 더구나 하나부터 열까지 남에게 맡겨 본 적 없어요. 외식? 그런건 참 바보같은 일이라하셨죠. "아니, 뭘 믿고 사먹냐, 엉? 미원 설탕 얼마나 퍼 부을텐데! 그릇이나 제대루 닦겠냐? 백날 사먹어봐야 사먹는 건 살로 안간다. 집에서 먹어야 살이되구 피가되지! 그러니까 얼른 먹어 치워! 배불러두 먹어 치워!" 다 옳은 말씀이긴한데 맨날 그렇게 먹어치우다가 우리 엄마 당뇨 걸리셨다는.. ㅜㅜ
돈이요? 돈은.. 은행에 보관하신 적은 있어두 남한테 부풀려달라고 맡기신 적은.. 없다고 하려는데 딱 하나, 둘, 셋.. 걸리는 사건이 있네요. 음.. 그러고보니 울 엄마도 디게 당하긴 하셨군요. ㅋㅋ 도시 생활 부작용이라고 해둘까요? 아니 그야.. 시골이라고 사기꾼이 없을까, 그건 아무래도 자기 욕심이겠죠. 아무튼, 한 번 된통 당하신 뒤론 다시는 남의 손에 돈 맡기는 일이 없으시니깐... 그래두 이 부분은 썩 깔끔하진 않네요.
말장난같은 진심을 쓰노라니 한도 끝도 없네요. 아무튼 결론은 이겁니다.
"내 인생 내가 닦자!"
내가 할 일 남의 손에 맡기면 껍데기 생기기 시작합니다. 껍데기와 알맹이, 안과 밖이 분리된단 말입니다. 껍데기가 뒤덮으면 알맹이는 갇혀버립니다. 숨을 못쉬어요. 죽습니다. "내 인생 내가 닦자, 성공하든 실패하든 내 인생 내 책임!" 그럼 최소한 안과 밖, 완전 분리는 막을 수 있습니다. 내 할 일 남한테 미루지 않고, 내가 한 일 결과가 안좋아도 남한테 책임 떠넘기지 않고, 그것만 해도 '내용있는 말 할 수 있는, 그런 삶' 됩니다.
'지은이 이가라시 다이스케가 『리틀 포레스트 1』에서 하고싶은 얘기는 바로 이런 얘기가 아니었을까?' 하고, 리뷰로 각색해봤습니다. 얼마나 공감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 실은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말하고싶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비로서 '부모님을 존경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되었는데, 저 말고 누구에게 대신 제가 부모님을 존경한단 말을 전해달라고 맡겨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