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잃다
박영광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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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나 영화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첫 장면처럼 <<이별을 잃다>>도 그렇게 시작한다. 주인공의 죽음. 난 주인공이 죽는 것에 익숙하지가 않다. 현실 세계에서의 거의 모든 것들이 그렇게 밝지만은 않음으로 그 외에 내가 접하는 문화들은 밝고 명랑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악은 벌을 받는 권선징악의 형태를 갖춘 것들이 좋다. 일종의 현실 도피라고나 할까...

그런데,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주인공이 죽었단다. 그것도 나쁜 짓하다가 그런 것도 아니고 악의 무리를 잡는 강력반 경찰이었던 그가, 범인을 검거하려던 그 순간에 칼에 찔려 죽은 것이다. 난 잠시 망설였다. 계속 읽어야하나...말아야하나..... 제목에 "이별"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니 충분히 예상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별을 잃었으니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이 경우, 처음부터 주인공이 죽었으니 거의 불가능한 결말이지만 말이다.

하루하루 행복한 삶을 살아오던 경찰관이 범인의 칼에 맞아 죽는다. 그리고 그는 곧 이별 여행을 떠난다. 그 자신이 어렸을 적 고왔던 젊은 시절의 어머니에게, 뒤늦게 한눈에 반해 사랑을 하게 된 젊은 시절의 아내에게, 자신이 같이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첫아이 출산 시절의 아내와 아들에게, 그리고 딸이 태어나던 순간으로 되돌아가 차례차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것 같아 반성하고 감사하며 더욱 그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 박영광은 현직 경찰관이라고 한다. 때문에 경찰관인 주인공의 삶은 매우 타당하고 현실적으로 보인다. 시체에 대한 묘사나 사건들, 범인을 잡기 위한 경찰관들의 노고가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소설에서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진 것은 경찰관으로서의 주인공이 아닌,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의 한 진수"이다. 어느 누구든 갑작스럽게 "이별"을 맞이할 수 있고 그 이별을 맞고서야 우리는 그동안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들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평범한 삶 속에서의 행복은 너무나 평범하고 흔해 보여서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기 위해 주인공 한 진수는 삶을 되돌아보는 이별 여행을 한 것 같다. 

너무나 슬픈 소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주인공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슬픔이 조금 반감되는 것이 아쉬웠다. 영화였다면 이미 스토리에 푹~ 빠져있어 주인공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보다가 카타르시스를 맛보며 마음껏 울었을텐데, 소설에서는 죽은 이가 따라다니며 설명해 주는 식이다보니 그런 격정적인 슬픔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역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삶이어서, "죽음"에 대해 그리고 "평범한 매 순간"의 행복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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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뜨는 여자
파스칼 레네 지음, 이재형 옮김 / 부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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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소설에 지친 이들에게 권한다"...라는 문구가 나를 유혹했다.  우아한 겉표지에 그려진 여인의 얼굴은 "어디 한번 읽을테면 읽어 봐. 네가 나를 이해할 수 있겠어?"라는 느낌으로 나를 도발한다. 다른 어느 나라 소설보다 프랑스 소설이 내게 주는 느낌은 모두 특별했고 신비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안이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한 문장에서 다음 한 문장으로 넘어가기가 힘겹다. 아주 이해하지 못할 말들은 아닌데 한데 뭉쳐 있으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처음엔 "번역에 문제가 있나?"하고 생각했다가 "나...바보인가?" 싶다가..."이 작가 왜 이렇게 꼬였어?"로 결론을 내린다. 한 문장 한 문장을 모두 이해하려 하다가는 도저히 이 책을 읽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별 수 없다. 하나하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읽고 보는 수 밖에... 어찌보면, 내 생각은 적중한 것 같다. 이 비비 꼬인듯한 문장력에 비해 내용은 정말 단순하다.

"그녀의 길지 않은 손가락은 뜨개질 연습을 할 때면 열에 들뜬 듯 움직였다. 그 손놀림은 그녀와 거의 따로 노는 듯 보였지만, 그녀 안에 존재하는 섬세함과 육중함의 통일성을 깨뜨리지는 않았다. 그녀가 하는 일은 그 어떤 것이든 곧장 이런 조화, 이런 통일을 이루었다. 그때 그녀는 구성과 세부가 그 모델을 마치 몸짓 속에 박아 넣은 것처럼 비치는 그런 풍속화 가운데 한 폭이 됨직했다. 이를테면, 틀어올린 머리를 매만질 때 머리핀을 입으로 무는 그 자세! 그녀는 ’속옷가지를 맡은 하녀’, ’물 나르는 여인’ 또는 ’레이스 뜨는 여자’였다." .....12p

작가가 <<레이스 뜨는 여자>> 뽐므를 묘사한 부분이다. 얀 베르메르의 작품 <레이스 뜨는 여자> 의 주인공과 뽐므는 이렇게 연결된다. 겉모습도 동글동글하고 속도 동글동글할 것 같은 여자, 뽐므(사과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얀 베르메르의 <레이스 뜨는 여자>

하지만 뽐므, 그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파스칼 레네는 뽐므의 주변 인물에 대한 설명은 해주지만, 뽐므 자체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 그저 주변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혹은 그녀에게 일어나는 일들로 추측해볼 뿐이다. 그녀는 매우 평범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평범하기에 유별나다. 친구 마릴렌과,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그녀의 유일한 사랑인 에므리와의 관계에서 그녀는 너무나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한다.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뽐므를 보며 나를 떠올리기도 한다.

"뽐므가 자신을 스스로 방어했더라면, 그녀가 가시 돋친 말을 몇 마디라도 하거나 비록 억제된 것일지라도 울음을 터뜨렸더라면, 아마도 에므리는 그녀에게 다른 결말을 안겨 줬을 터였다. 그는 그녀를 좀 더 높게 평가했을 것이다(그녀는 그와 좀 덜 다른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두 사람의 이별을 중요한 어떤 것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며, 적어도 뽐므는 격심한 고통이라는 거룩한 마음의 양식을 갈무리했을 것이다." ....123p

내가 뽐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작가도 하고 있다. 이렇게 파스칼 레네가 직접 설명하고 있는 이유는..."소통의 부재"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뽐므 자신은 매우 평범한 여자이지만 그 누구와도 재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그녀는 조금 다른 존재가 되어간다. 자신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제 때에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 또한 용기라는 것을....

마지막 이재형 번역가의 말을 통해 파스칼 레네가 일부러 이런 문장들을 만들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나서  "나, 이 책 제대로 읽은 게로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안심. 확실히 쉬운 책은 아니었지만, 몇 개월 후에 다시 이 책을 손에 들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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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회 추억
신영복 지음, 조병은 영역, 김세현 그림 / 돌베개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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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나 동화책에나 삽입되어 있을 것 같은 한국적인 일러스트가 곁들여진 아주 아름다운 책이다. 표지도 특이하고 종이질도 빳빳한 것이 촉감이 아주 좋다. 게다가...뒷표지에는 오디오북도 들어있다. 이런 멋들어진 책이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면...당연히 내 책장에 꽂혀있어야만....한다.

<<청구회 추억>>은 신윤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있는 글 한 편을 발췌하여 일러스트를 넣고, 영어로 번역된 글도 첨부하여 따로 단행본으로 낸 책이다. 유독 이 글이 이렇게 단행본으로 재탄생하게 된 이유는 뒤에 신윤복 선생님의 후기나 번역가의 글에서 알 수 있는데, 원래 <청구회 추억>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초판에는 들어있지 않았던 글이라고 한다. 신윤복 선생님께서 사형수로 계실 때 다른 감옥에서 쓴 수필 형식의 글이 <청구회 추억>이고, 그 이후 대법원에서 재판이 파기되어 무기징역수가 된 후 쓴 글이 모아져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한 감옥에서 다른 감옥으로 이송될 때, 원고(원고라고 해봤자 하루에 한 장씩 나눠주던 화장지용 재생 종이)를 빼앗길까 봐 몰래 헌병에게 부탁했던 것을 후에 발견하게 되어 1998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증보판에 넣게 된 것이라고.

"청구회"라는 이름이 굉장히 딱딱하고 무겁게 느껴진다. 도대체 어떤 단체의 이름일까...궁금하다. 그런데 그 이름에서 느껴지는 포~스와는 매우 다른 답에 조금 당황스럽다. 그도 그럴것이 청구회는 국민학생 7학년, 8학년(국민학교를 졸업했지만 중학교로 진학하지 못한) 6명이 모여 만든 모임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어느 따뜻한 봄날, 서오능으로 소풍가던 중 만난 6명의 아이들과의 추억이 바로 <<청구회 추억>>이다.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한 신영복 선생님의 노력이, 그 생각이 저절로 미소짓게 한다. 첫 질문 하나에 아이들이 자신을 내칠지도 모른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이 긴장하지 않고 "어른"과 대등하고 친밀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질문은 무엇인가...그런 사소한 배려 하나로 신윤복 선생님은 아이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 주변에는 과연 그런 어른들이 얼마나 있을까...싶다. 아이들이 주가 아닌 어른이 주인 세상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 곁에 조금이라도 신뢰를 주고 배려해주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아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래서 신윤복 선생님은 청구회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었다. 

너무나 가난해서 중학교조차 진학할 수 없는 아이들인데도 생각이 너무나 건전하고 맑다. 그래서 신윤복 선생님도 그 아이들에게 끌렸을 것이다. 60년대의 이야기를 읽으며 왜 지금의 아이들은 조금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지 한탄하게 된다. 가장 진하고 밝은 진달래꽃의 빛으로 기억하는 "청구회 추억"은 읽는 독자에게도 그만큼 밝게 빛난다. 그 모임이 계속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을 갖고 말이다.

처음엔 왜 영어와 함께일까..생각했는데,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외국 사람들에게도 읽히고 싶었다는 번역자의 글을 읽고 과연 그렇다고 생각되었다. 가장 한국적인 일러스트를 그린다는 김세현님의 그림과 함께 그들도 우리의 60년대 이야기를 함께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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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월 13주 13일 보름달이 뜨는 밤에 독깨비 (책콩 어린이) 1
알렉스 쉬어러 지음, 원지인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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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이라는 숫자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바로 <13일의 금요일>이라는 공포영화가  될 것 같다. 그만큼 서양사람들에게 있어 "13"이라는 숫자는 불길하고 안 좋은 느낌을 갖게 하는 숫자이다. 게다가 맑고 푸른 보름달까지...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 같은 제목이다. 도대체 13개월 13주 13일 보름달이 뜨는 밤에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이야기는 칼리(원래 이름은 스칼렛이지만 머리카락이 붉어 이름과 연관되는 것이 싫어 스스로 바꾼 이름)가 주절주절 떠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본인이 스스로 밝혔듯이 뒤죽박죽 복잡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처음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조금 혼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 칼리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앞부분에 다 나와 있다. 물론 끝까지 읽고나서 다시 앞으로 돌아와야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또 다른 한 가지는 젊음과 늙음에 관한 것이다. 당연히 젊어야 하는 순간에 늙어버린 이야기다."....9p

13이라는 숫자가 그들에게는 아주 길한 숫자라고 하는 못된 마녀에게 몸을 빼앗겨버린 메르디스는 메르디스의 할머니 그레이스로 지내고 있다. 칼리는 메르디스와 함께 그녀의 몸을 되찾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할머니가 된 메르디스의 이야기와 마녀 자매의 대화는 "늙음"에 대해 너무나 구구절절히 잘 표현하고 있어서 노인이 되고 나서는 얼마나 외롭고 아픈지, 얼마나 처절하게 버림받고 있는지 잘 느낄 수 있다. 노인들은 살아갈 가치조차 없는 물건 취급을 받아 마땅하다고 당당히 이야기하고 있으니 오히려 더 애절하고 가슴이 아프다. 

나이 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나면 우리는 왜 그제서야 젊음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걸까? 내게 젊음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젊음이 아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특히 자만심과 자존심이 하늘을 찌를듯 하던 청소년 시절에는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청소년들은 그런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닫게 될 것 같다. 

마녀 이야기가 나오는 판타지 같은 이 재미있는 소설을 읽으며 아주 깊숙이 감정이입이 되기 때문에 "젊음과 늙음"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할 문제제시를 해 준다. 모든 일을 겪고 난 후로 나이 드신 분들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보면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되려 아이들을 호되게 꾸짖게 되는 칼리처럼 이 책을 읽음으로서 칼리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단지 나는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그들이 모르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349p


"13개월 13주 13일 보름달이 뜨는 밤에" 칼리와 메르디스가 행했어야 하는 일들을 함께 읽었을 독자들도 그들과 함께 경험했으므로 그들처럼 이해하고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책을 읽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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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맛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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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독특한 구성의 책을 한 권 만났다. 9편의 단편소설이 모여 있는 이 책은 각 단편들의 제목에서부터 동화를 떠올리게 한다. <상추, 라푼젤>, <헨젤과 그레텔의 집>, <수족관 속에는 인어가>, <연못 속에는 인어가>가 그렇다. 동화처럼 달콤한 내용일까, 혹은 몇해 전부터 유행하는 "잔혹한 동화"나 "동화 뒤집기" 같은 내용일까...하고 추측했다. 막상 책을 집어들고 읽어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 그 어느 것도 아니었지만 굳이 갖다 붙이자면..."동화 뒤집기" 쪽이 제일 가까운 것 같다. 

하지만, 그 또한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이유는...이 책의 내용이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서 들어 익히 알고 있는 일, 아니면 TV 속 "SOS" 프로그램 같은 데서 보아왔을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설마 정말 그런 일이 있을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실제로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뉴스를 통해서 그리고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들을 수 있다. 그런 이야기들이 동화와 이렇게 딱 맞아떨어진다고 한번도 생각을 못했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 책의 화자는 마치 동화책을 읽어주듯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그 친절하고 자상한 듯한 목소리가 내용과 맞물려 이야기를 더욱 섬뜩하게 만들어준다. 그림형제가 썼다는 동화는 원래 내용이 매우 잔인하고 비유가 많이 들어있다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마치 그림형제가 썼다는 원전동화처럼 오현종 작가의 <<사과의 맛>>도 그런 느낌을 갖게 한다. 기존 동화의 내용이 언뜻 비치지만 라푼젤은 밸리댄스를 추며 성이  "왕"이고 이름이 "자"인 청년을 유혹하고, <헨젤과 그레텔의 집>에서는 유일하게 돈을 버는 "내"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고려장하려 한다.

 "내"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버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그 짓눌린 듯한 중압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일 것이다. 내가 이 <헨젤과 그레텔의 집> 주인공에 가장 공감이 되었던 이유는 내 아주 가까이에 이 주인공과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도 남자친구에게 "야, 너희 집은 개판이잖아!".....(53p)라는 말을 들으며 파혼당했다.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가 없다. 그 현실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 것인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소설 속의 "나"는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닐까. 자신이 살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내린 결정.

<<사과의 맛>>을 읽으며 "이건 어떤 동화나 신화일까.."라고 생각하며 읽거나 "이 내용엔 어떤 현실의 내용이 담겨 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우울한 내용이지만 동화와 결합되어 비유적으로 씌여 있기 때문일까..내 기분까지 함께 가라앉지는 않는다. 현실 세계의 부조리함이나 가족의 붕괴를 아주 잘 녹여낸 것 같다. 여러 편의 단편들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을 오현종 작가는 <<사과의 맛>>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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