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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스라엘이 세워진 땅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군이 주둔했던 곳으로 오랜 세월 속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살았던 곳이다.  물론 성서를 통해 알고 있듯이 더 오랜 세월 속에서는 이스라엘인들이 살았던 곳이나 로마와의 마사다 전투에서 패해 유대인들은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2차 대전에서 히틀러에 의해 수많은 유대인이 학살되고 이 사건을 통해 세계의 동정심을 호소하며 유대인들은 레반트 지역에 이스라엘 건국을 원하게 된다.  그들, 이스라엘 민족지도자들은 영국에게 전쟁 비용을 지원해주는 조건으로 영국군이 주둔해 있는 현 이스라엘 땅을 되돌려 받고자하는 협상을 시도하고, 2차대전이 끝나자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의 이주와 동시에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하게 된다. 

 팔레스타인들은 얼결에 몇 천 년을 살았던 땅에서 내쫓김을 당함으로 수많은 난민이 생겨나게 되었고, 이런 역사적 배경은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그들 사이의 끊임없는 피로 얼룩진 분쟁의 원인이 되어오고 있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은 1947년 유엔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일부를 유대인들에게 할당하면서부터였다.  이듬해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아랍 연합군과의 1차 중동전이 시작되었고. 1973년까지 4차에 걸친 중동전을 치르게 된다.  그리고 1982년 이스라엘은 레바논과 전쟁을 하게되었다.

  수년째 레바논으로부터 북부지역을 폭격 당했던 이스라엘은 1982년 7월 레바논과의 전쟁을 통해 남부를 점령한다.  요르단에 있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본부가 레바논에 자리를 잡고있어 그 기구의 제거와 시리아를 견제하기 위해 베이투트와 레바논 남부를 공격했던 이스라엘은 당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었던 아리엘 샤론이 베이루트 점령 후, 자신과 기독교 동맹인 바시르 제마엘을 레바논 대통령으로 지명한다.  레바논의 무장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공격이었지만 이 시기 그들은 베이루트에서 튀니지로 퇴로를 확보한 상태였기에, 레바논에는 더이상 무장세력의 위협은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공격을 감행했던 이스라엘은 대통령으로 세우려던 바시르가 취임을 앞두고 폭탄테러를 당해 살해되고 만다.  그날 오후, 이스라엘군은 베이루트 지역에 있는 사브라와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포위했고, 지도자를 잃은 팔랑헤당 민병대는 이스라엘군이 쏘아주는 조명탄 아래에서 난민촌으로 들어가 대학살을 자행한다.  기독교 민병대의 난민촌 집입 목적은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을 잡기위함이었지만 실상 그곳에는 늙은 노인들과 힘없는 여자 그리고 아이들이 있을 뿐이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그 대학살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이 바로 <바시르와 왈츠를>이라는 이 만화로 그려진 책이다.  뒷장에는 그때의 학살된 난민촌 사람들의 사진이 실려있는데, 그 사진을 보고있자니 전쟁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우리에게도 학살이라는 것에 대한 기억이 있다.  제주 4.3 사건을 이야기해보자면, 1948년 3월 1일 제주읍 관덕정 마당에서 3.1절 기념집회에 참석한 시위군중을 향해 경찰이 총을 쏘아 6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그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4월 3일 제주도 전역에 걸쳐 무장봉기가 일어난다.   제주도민들은 남한의 단독 정부수립과 단독 선거 반대투쟁에 나서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정부는 좌익의 책동으로 몰아세우고, 이에 미군은 8개 중대 규모의 경찰병력을 제주도에 투입하였고, 남한정부가 수립된 11월부터 4개월 동안의 초토화작전으로 160여 마을 가운데 130여 마을의 주민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되거나 재산상의 피해을 입었다고 하며, 이 집단학살에서 최소 3만여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좌익무장대 사령관 김달삼과 제주 주둔 연대장 김익렬이 48년 4월 28일 전투중지와 무장대 해산 등의 평화협상을 합의했으나 정부는 그런 김익렬을 해임시키고, 11월 초토화작전을 좌익빨치산의 피난처와 물자공급원을 제거한다는 목적으로 강경한 진압을 보이며 제주도민을 학살한 것이다.   그 외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양민학살사에대한 내용을 더 알고싶다면 김상웅의 <해방 후 양민학살사>를 읽어보면 될 것 같다. 


전쟁을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그것이 안겨주는 두려움과 고통, 충격에 대해 뼈져린 와닿음을 느껴오지 못 했었다.  하지만 이 책 <바시르와 왈츠를>를 읽으면서,  전쟁 그 한 중간에 놓여져 삶을 살았냈던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희생자든 가해자든 방관자든 그 기억은 평생을 칠흑같은 암연에 감금당하는 일인 것 같다.   
   이스라엘은 1982년 레바논과의 전쟁과 이어진 대학살로 인해 결과적으로 레바논에 과격테러단체인 헤즈볼라가 생겨나게 만들었고, 그들이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한 것이 계기가 되어 최근 레바논과의 전쟁을 일으켰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은 시온주의와 아랍민족주의의 충돌과 영토에 관한 것이다.  무엇이 그 이유가 되었든 가장 큰 피해자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그 이유들에 휘둘려야 하는 힘없는 시민들이 아닐까 싶다.  왜 끔찍한 붉은 피는 이유를 만들어낸 그들이 아닌 힘 없는 시민들이 흘려야 하는 것인지 이 책을 통해 알게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붉은 피나, 우리 역사 속의 양민 학살의 붉은 피들이 여며지는 가슴으로 더욱 검붉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posted by 푸른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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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로 게임]이라는 소설을 읽은 다음 곧바로 내 손에 도착한 책이 이 책이다. 운명같은 공교로움이다. 같은 레바논 이야기라니. [드니로 게임]은 기독교 민병대원의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이 책은 이스라엘군으로 레바논에 갔던 '나'의 이야기다. 이 에니메이션을 보고 싶었지만, 극장에 갈 시간이 여의치가 않아 책으로라도 만나게 된 것을 감사했다. 물론, 책을 본 후에는 더욱 에니가 보고 싶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옛 친구 보아즈와 술집에 들른 나(아리)는 반복되는 보아즈의 악몽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된다. 사건을 겪은지 20년이 지난 후 느닷없이 찾아온 악몽은 2년 동안 매일 밤 26마리의 사나운 개가 나타나는 꿈이었다. 보아즈는 어느 마을에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찾기 위해 들어갔다가 개 짖는 소리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이 도망갈까봐 개를 쏘아죽이게 된다. 딱 26마리. 꿈 이야기에 이어 레바논 전쟁 당시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당시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되고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옛 동료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비밀을 밝혀 낼수록 기억들은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맙소사! 책에서는 사진으로 보여주어 함께 실감하도록 도와준다. 톡 쏘는 듯이 느껴지는 사실적인 그림체는 책에 집중하게 했다.

위에서 손가락으로 때로는 말로 지시만 내리는 사람들은 전쟁 속의 일을 대단하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마치 게임하듯 장기 두듯이 이 엄청난 일을 만들어 낼테니까. 하지만, 그 속에 있던 사람들은 공격하는 사람이나 공격당하는 사람이나 상처 입지 않았겠냐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공격당하는 사람들이 잃은 것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겠지만 말이다. 누군가가 이스라엘의 책임 회피용 에니메이션이라고 써 놓은 것을 보았었다. 하지만, 이 에니를 만든 사람이 국가적 임무를 띄고 이 에니를 만든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의 개인이 이 엄청난 사태에 대해서 책임 회피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잘못을 이런식으로라도 밝히고, 작전에 투입된 개인들의 아픔을 이야기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의 더러운 내전에 대해서 심도있게 이야기 하지 않아서 같은 남쪽 땅에 살면서도 매일 같이 이념전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계속되는 전쟁 이야기에 내 머리속이 전쟁판이다. 전쟁. 정말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 뿐이다.

 

posted by 오로지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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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는 팔레스타인. '화약고 중동'의 핵심문제는 비단 중동뿐만 아니라, 국제정세에도 항시 불안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여러 지역을 포함하며, 대체로 서쪽의 지중해에서 동쪽의 요르단강까지 그리고 북쪽으로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지대, 남쪽으로는 가자지구에 이르는 지역을 말한다.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곧 난민사다.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따라 이스라엘이 세워지는 바람에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됐다.

1982년 9월 16일 벌어진 팔랑헤딩 민병대의 소행으로 알려진 이스라엘 전쟁과 관련해 오랫 동안 많은 사람들의 일상과 일생을 짓눌러 왔던 전쟁의 참화가 한 인간의 기억상실이라는 소재로 정체를 나타내고 있는 영화다. 1980년대 초반 이스라엘과 레바논 전쟁에 참여한 당시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것이다. 자신과 같이 복무했던, 또는 복무했다고 주장하는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동료의 기억을 쫓아 자신의 기억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팔랑헤당 민병대들이 3,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을 그토록 잔인하게 살해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분명한것은 이 학살의 배후에는 이스라엘군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주목할 부분은 살인군대가 난민촌으로 들어가 피의 학살을 벌이는 동안에 이스라엘 군대는 명령에 따라 난민촌 주위를 탱크로 봉쇄하고 밤새도록 조명탄을 쏘아올리며 학살을 도운 사실이다. 


이 영화의 장르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다. 아리 폴만 감독은 학살의 현장에 있었던 자신의 기억을 찾는 얘기의 영화화를 위해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라는 독특한 형식을 도입한다. 이스라엘 출신인 아리 폴만 감독은 친구와 얘기하던 도중 자신이 경험했던 과거가 뭉텅, 날아가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서 아리 폴만 감독은 스스로가 잊고 싶었던 가슴 아픈 진실과 마주대하게 된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당시의 잔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의 사진과 이들의 죽음에 절규하는 노인의 사진을 만날 수 있다. 애니로 진행되던 내용이 갑자기 사진으로 바꼈을때 느끼게 되는 사실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현실적인 느낌이 더해지던 순간이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지역을 일컫는 지명에는 가나안, 이스라엘, 유대, 팔레스타인, 등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이름들이 많기도 하다, 이 명칭의 근원처럼 이스라엘 전쟁의 근원도 제대로 파악할려면 이스라엘 국가가 탄생하는 시기가 아니라 모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어쩌면 인류 역사가 지속되는 날까지 전쟁이 끝나지 않을 지역이 있다면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150명 이상이 사망하는 큰 인명 손실을 보는 등 양측의 분쟁은 당분간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휴전상태지만 이 전쟁의 끝은 양육강식의 원리가 철저하게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피비린내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벌어졌던 사건과도 많이 닮아있음에 서글픔이 더욱 느껴졌다.



posted by 아련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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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영화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특히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느니, 무슨 상 후보로 올랐느니 하는 수식어가 붙은 영화도 그리 흥미를 두지 않는다. 그런데도 개인적으로 유독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만은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내 스스로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영화였기에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유대인 게토를 청소(?)하는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바흐의 피아노곡은 참혹한 학살의 이미지와 묘한 대비를 이루며 기억 속에 오랜 시간 각인돼 있었다. 캄캄한 밤공기를 가르는 처참한 비명과 반복적인 총소리 그리고 피아노곡이 만들어 내는 비현실적인 무대는 인간 내면에 흐르고 있는 학살의 공포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場)이었다. 2차 대전이 만든 살육의 무대 그것이 바로 유대인 홀로코스트였던 것이다.

 레바논. 베이루트 서부. 1982년 9월 16일. 사브라와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


 다시 학살의 무대가 세워졌다. 나치를 대신한 팔랑헤당 민병대와 이스라엘군, 유대인의 자리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번엔 바시르라는 인물이 원인을 제공하고 바시르와 왈츠를 추던 이스라엘의 묵인아래 참담하고 야만적인 학살의 축제가 벌어진 것이다.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은 모두 떠나고 난민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아이들과 부녀자 그리고 노인들이었다. 아무런 저항수단이 없는 이들을 향한 무자비한 폭력의 장(場)은 이스라엘과 바시르의 왈츠를 배경으로 베이루트 서부에서 무대에 올려진 것이다.


 20년 전 학살의 현장에 섰던 아리가 끔찍했던 그 날의 기억을 잊어버린 이유는 무엇이고, 그가 기억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 이유는 또 무엇이었을까? 『바시르와 왈츠를』은 주인공 아리를 통해 팔레스타인 난민학살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망각과 침묵의 방관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저지르는 야만적인 학살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에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럴 때 마다 사람들은 학살을 규탄하고 숭고한 인간애를 이야기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망각의 늪에서 침묵하게 된다. 아니 기억자체에서 지워버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래서 야만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팔랑헤당 민병대가 학살을 자행하는 동안 조명탄을 쏘아 올렸던 아리는 과연 학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얼마 전 폭격 속에서 죽어간 가자의 아이들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야만의 무대에서 우린 아무런 교훈도 얻을 수 없는 것일까? 작품 해설에서 김재명 기자가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바시르와 왈츠』를 과 같은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수는 없는 걸까? 그래서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피로 얼룩진 학살의 과거를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없는 걸까?


 잃어버린 학살의 기억을 되찾았음이 학살을 방조한 책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리고 반복되는 야만의 고리를 끊어내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것, 인간이라면 누구나 전쟁과 학살에 대하여 인간 본연의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갑자기 작은 손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어요. 소년의 손인지, 소녀의 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돌무더기에서 삐쭉 튀어나와 있었어요. 그리고 다시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보였어요. 아니 그것은 먼지에 뒤덮인 곱슬머리를 한 사람의 머리였어요. 손 하나와 머리 하나. 그 소녀는 내 딸 또래였어요. 내 딸도 그 소녀처럼 곱슬머리였거든요.” ---------- p.117

posted by jjolp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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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개인에게 행하는 폭력과, 살인은 어떤 식으로든 처벌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단위가 커지고, 힘있는 소수가 힘없는 다수에게 행해지는 무자비한 폭력은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지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그런말이 있겠는가.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지만 백 명을 죽이면 영웅이라는.....말도 안되는 그런 말.

책의 주인공 역시 기억을 잃고 헤매고 있다. 전쟁에 참여했으나 그때 상황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암흑. 그 암흑 속에서 빛을 찾고자 동료들을 찾아 그들을 인터뷰한다. 그러면서 그 당시의 참혹하고 끔찍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전쟁에 참가했던 군인의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며 비추고 있다. 피해자를 집중 조명한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사람을 죽였던 군인의 기억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인터뷰가 모두 변명같이 들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와닿는것이 있는 것은, 결국 그들 모두 전쟁의 피해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스라엘의 소리없는 지지속에 팔레스타인 수천명의 난민들은 죽어갔다. 힘없고 저항조차 하지 못한 그들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갔다, 아무런 명분없이. 비단, 명분없는 학살이 1982년 사브라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것같은 수많은 끔찍한 살인이 지금 현재에도 너무나 사소한 이유로 자행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전쟁에 참가했던 이의 자기고백을 들으면서 이 세상 모든 끔찍한 상황을 그저 모른채 수수방관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무런 이유없이 오로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수천명의 목숨을 빼앗아서는 안될 것이다. 자기반성을 하는 이유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한가지는 나의 일이 아니라고 해서 그들의 눈물과 한숨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는 그 순간, 이 세상에 전쟁이라는 끔찍한 일은 사라질테니 말이다.

 

posted by po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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