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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 / 박하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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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신간평가단 활동을 하면서 좋은 점은 평소라면 안 읽었을 책, 놓치고 말았을 책들을 읽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달 신간평가단 선정도서가 도착했을 때, 먼저 든 생각은 "이번 달은 망했구나"였다.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는 그렇다 쳐도, <내 심장을 향해 쏴라>가 문제였다. 700페이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책에 대해 별 기대가 없었다. 내가 추천한 책도 아니고, 책 소개도 딱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장석주, 표창원 같은 사람들이 추천한 책이라니 좋은 책이겠지 싶은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700페이지라는 분량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잘 쓰인 추리소설과도 같았다. 아니, 어지간한 추리소설도 이 책의 빨려들어가는 듯한 흡인력은 따라오지 못한다.

 

이 책의 저자는 마이클 길모어, <롤링스톤>의 수석편집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물론 이 책이 음악평론 서적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을 게리 길모어의 막내동생으로서 썼다. 게리 길모어가 누구냐 하면,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형수"라고 한다. 1976년, 그는 2명을 총으로 쏴 죽였는데, 아무 이유가 없는 묻지마살인이었다. 법정에서 자신을 사형에 처해달라고 한 그는 결국 사형당함으로써 10년간 시행되지 않던 유타주의 사형제도를 부활시켰다.

 

그의 소년원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뉴스를 통해 게리가 저지른 가엾은 돈키호테 같은 무모한 행적을 보면서, 나는 몇 번이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거기로 달려가서 게리를 두 팔로 안고서 이렇게 이야기를 해볼까 하고 말입니다. '(중략) 이 자식들 체면 좀 살려주잔 말이야. 안 그러면 자넬 죽여버릴지도 몰라. 이번 한 번만 머리를 좀 숙여봐. 그들이 원하는 걸 줘버려. 잘못했다, 용서해다오, 그러면 되는 거야.' 나는 분명히, 만일 게리가 자기가 꺾을 수 없는 높은 권위에 도전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했다면, 그들 마음속에는 게리를 살려줄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중략) 그때 내가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나는군요. '저놈의 유타 모르몬 교도들은 신이 항상 자기들 편이라고 생각하지. 그래서 자기들이 신의 명령을 행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추호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어.'" (291, 292)

 

게리 길모어는 무고한 두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도 자신을 죽여달라며 기존의 도덕을 부정했기 때문에 사형에 처해졌는지도 모른다.

 

둘째 형 게리 길모어가 사형에 당하고, 어머니마저 죽자 막내동생 마이클 길모어는 자신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그 시작은 어머니의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르몬교의 피의 역사부터 시작된다. 나는 모르몬교가 기독교의 일파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 따르면 1820년대 조셉 스미스라는 계시자가 <모르몬경>이라는 사이비 경전을 쓰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내용은 네피 족과 라만 족의 천년에 거친 전쟁이라고 하는 정통 성경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정부로부터 박해당하던 모르몬교도들은 유타주로 이주하게 되었다.

 

모르몬교 유타 이주의 역사를 따라오다보면 길모어 형제의 어머니 베시 길모어가 나타난다. 베시 길모어는 어렸을 적에 악령이 씌어 동생이 죽는 등 괴이한 일들을 겪는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 염증을 느낀 베시는 프랭크 길모어와 결혼하여 집을 나간다. 그런데 베시보다 스무 살 이상 나이가 많았던 프랭크 길모어는 미국 전역을 떠돌아 다니는 사기꾼에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쫓기고 있는 형편없는 인물이었다. 프랭크 길모어는 자신의 아버지가 미국의 전설적인 마술사 후디니라고 믿고 있었다.

 

여기까지 게리 길모어 얘기는 안 나온다. 심지어 게리 길모어는 장남도 아니고 차남인지라 게리 길모어는 167페이지가 되어서야 태어난다.

 

지난 몇 년 동안, 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던 의문이 있다. 언제 어떻게 그 죄의 씨앗이 싹튼 것일까? 다르게 말하자면, 이 모든 잘못된 결과를 불러오는 원인이 된 시점을 내가 찾아낼 수 있을까?(중략) 그 역사의 어디쯤, 우리는 운명을 바꿀 수 있었을까? 내 형의 영혼을 살인으로부터 구출할 수도 있었던 시점은 어디였을까? 그 순간을 잡을 수만 있다면, 그 파멸의 운명을 피할 순간을 찾아낸다면, 그 운명의 악순환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순간순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절망적인 기분이 든다. 매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쁜 쪽으로 결정되고 있었다. 한 명의 살인자, 그의 지독하게 불행했던 삶의 행로를 바꾸려면, 한 순간이 아니라 과거의 매 순간을 새로운 고리로 연결해야만 했다. (172)

 

그렇게 게리는 정해진 운명대로 파멸의 길을 가게 된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아버지에게 매일같이 매질을 당하던 게리는 점점 비뚤어져 소년원에 가고 마약과 절도 등 범죄에 물들어간다. 결국 게리는 앞에서 말했다시피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에 처해지게 되는 것이었다.

 

다소 뻔할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차분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몰입감을 선사하는 책이다. 이 책은 나다니엘 호손(혹은 에드거 앨런 포나 커트 보네거트)의 계보에 속하는 미국문학의 걸작으로 평가해도 좋을 듯 싶다. 19세기 모르몬교도의 이야기부터 마술사 후디니나 인디언 악령의 전설이라는 역사의 거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가정폭력과 살인자의 내면 심리로 파고 들어가는 수법이 인상적이다.  <호밀밭의 파수꾼> <위대한 개츠비> 등 미국소설의 걸작들을 일본어로 번역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책을 번역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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