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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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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여행이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게 되었다. 가이드북에서 본 사진, TV나 인터넷에서 본 동영상을 현장에 가서 확인하는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느 곳을 가든 "여기가 타지마할이군" "여기가 그랜드캐니언이군"이라고 별다른 감흥 없이 중얼거리고 돌아온다면 그보다 더 허무한 행위는 없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실재하는 것 그 자체(the real)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사진이나 동영상과 같은 가상을 미리 경험하고, 가상으로서의 사진이나 동영상이 실재하는 것 그 자체보다 더 큰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저자는 몽골의 관광지 테렐지 국립공원을 방문한 소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진과 똑같군, 이런 생각이 내 머리를 빠르게 스쳤다. 마치 그림엽서 같아.(중략)
그림엽서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비전 중에서도 가장 초라하고 빈약한 비전에 속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불행이며, 당황스러운 기분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곳은 분명 의심 없이 아름다운데, 놀랍게도 아무런 감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45,46)

잘 꾸며진 관광지로서의 테렐지 국립공원은 이윽고 저자가 방문하게 되는 유목민들이 실제로 생활하고 있는 초원 알타이-투바와 대비를 이룬다. 저자, 그리고 그녀와 함께 알타이 투어에 참가한 유럽인들은 우연히 마주친 오스트리아 관광객들을 보고 "아,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가 저런 일행에 속한 채 알타이에 오지 않은 것이"(138)라고 생각한다. 즉,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가상과는 다른 실체(the real)를 저자는 경험한 것이다.

몽골, 그 중에서도 알타이는 한국인에게 가장 낯선 여행지다. 저자는 한국에서 미리 알타이에 대한 여행기를 알아보려고 했었다.

몽골로 떠나기 전 한국에서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는 종류의 책-여행기 혹은 여행 안내서를 한 권 사려고 했다. 몽골 여행기 물이다. (중략) 그러나 내가 발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네팔, 인도, 중국, 실크로드 등 전 세계 여행자들의 마음을 빼앗는 매혹적인 관광지에 비해서 일단 몽골 관련 여행기는 출판물 자체의 종류가 절대적으로 적다는 사실이었다. 몽골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책은 한두 권 찾아낸 것이 전부인데, 그나마도 홉스굴이나 고비 사막 등 이름이 알려진 관광지를 중심으로 편집이 되어 있으며, 몽골이란 나라 전체를 다룬 책을 처음붜 끝까지 샅샅이 살펴봐도 알타이 지역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이 되어 있지 않고, 심지어 내가 가게 될 서북부 지역은 지도조차도 생략되었으며, 몽골 소수민족에 관한 내용에서도 '투바'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35)

그렇기에 투바의 족장 갈잔은 저자에게 "환영한다, 너는 이곳 알타이-투바 땅을 방문한 최초의 한국인이다"(72)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알타이라는 지명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랄 알타이어족. 오래 전, 한국어가 우랄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우랄 알타이어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으며, 한국어가 알타이어족 계통으로 분류될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인 학설이 대다수인 모양이지만, 어쨌든 내가 어렸을 때는 그렇게 배웠다.

한국인이 몽고반점이 있는 몽골로이드 인종인 점을 강조하며 허경영처럼 몽골과 통일하자고 주장하거나 황석영처럼 몽골+2코리아연합론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이라는 민족이 아니라 한국어라는 언어가 알타이를 고향으로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몽골을 방문한 저자가 독일에 거주하며 독일어로 글을 쓰며 독일어로 말하는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알타이 투어에 동반한 사람들은 일곱 명의 스위스인과 두 명의 오스트리아인, 열 두 명의 독일인들이었고, 저자와 친하게 지냈던 이들은 마리아와 한스였다.(독일에서 만든 투어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저자는 그들과 독일어로 의사소통을 나누었다. 번역가 노승영이 "이방인의 이방인"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 때문이다. 생김새는 현지의 유목민들과 비슷하지만,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은 함께 온 유럽인들과 더 비슷했을 저자의 경험은 알타이 생활의 특이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저자가 운명처럼 이끌리듯 알타이로 가게 된 것은 투바 부족의 족장이자 독일어로 글을 쓰는 작가 갈잔 치낙의 소설 <귀향>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그리고 알타이에 직접 가서 갈잔을 만난 저자는 독일어로 의사소통한다. 그렇다면 "환영한다, 너는 이곳 알타이-투바 땅을 방문한 최초의 한국인이다"는 말은 저자가 모국어인 한국어의 고향인 알타이로 귀향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까? 갈잔의 소설 제목이 <귀향>이듯이 말이다.

저자가 알타이 초원의 유목민들 사이에서 발견한 실체(the real)는 언어의 고향에서 부유하는 자기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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