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했다면... 사랑한 것이다 - 사랑을 잃어버린 어른들을 위한 동화
이장수 지음, 이성표 그림 / 홍익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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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을 보고 선택한 책이었다. 감성이 뚝뚝 떨어질 듯한 제목이 아닌가.

<미워했다면... 사랑한 것이다>라는 제목 자체가- 

하지만 실상 내용을 들여다보면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닌 둘이 등장한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광고하면서 사랑하지 않는 둘이 등장하다니. 이 책은 처음부터 아이러니했다. 첫 장을 읽어보니까 사랑하지 않기만 하면 다행이게. 사랑하지 않으면서 미워하기까지 하는 둘이 등장했다. 그런데 외려 그것이 사랑했던 거라고 단정짓는 책 제목에 고개를 갸우뚱 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책의 주인공은 나무벤치와 가로등 둘이다. 같은 공간에 자리한 이들은 서로를 무지막지하게 싫어하는 사이이다. 제대로 이야기 한 번 나눠본 적 없지만 보고 있기만 해도 왜인지 모르게 싫다. 보이는 모든 것이 싫었으며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싫었다. 그냥 사라졌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그러다 그 둘 사이로 여자와 남자 한 쌍이 등장하고 세 개의 계절동안 추억을 공유하고, 하나의 계절동안 그리워했다. 그리고 가로등이 떠나가게 된 날,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화해한다는 내용이다. 책의 내용은 짧게 간추린다면 이 정도가 될 것 같다.

 

사실, 책은 꽤 두서가 없는 편이다. 어른 동화를 표방해서인지 몰라도... 급박한 전개도 그렇고, 마지막에 서로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도 그렇고. 어른 동화를 만들려다가 이도저도 되지 않은 느낌. 여백이 많아도 생각할 것이 있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이 존재하는데, 이 책은 그 두 사이의 어느 지점쯤 되는 곳에 서 있는 꽤 어중간한 느낌이다. 하지만 책이 풍기는 느낌은 꽤 산뜻하다. 책의 곳곳에 있는 일러스트들은 굉장히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같은 나무들을 그려놓고 잎파리만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표현해낸 일러스트나 아래 보이는 초록과 파랑으로 이루어진 일러스트들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많은 색상을 사용하지 않아서 오히려 동화스러운 느낌이 살아난 일러스트였다고나 할까.

 

 

 

 

 

 

 

 

 

책을 읽으면서 "미워했다면 사랑한 것이다"라는 제목에는 끝까지 동의하지 못했다. 사랑을 하면서 빚어진 말과 행동들로 인한 미움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무벤치와 가로등처럼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체로 미워한 경우에 끝이 좋은 경우는 실생활에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체로 잘 모르는 체 미워한 경우엔 끝까지 잘 모르고 미워한 체로 끝나는 경우가 대체로기 때문이다.

 

난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면서 '오해'와 '이해' 사이의 미묘한 감을 보았다. 사람들이 하는 오해라는 것은 되게 사소하고도 어이없는 경우가 많으며 대체로 자신의 잘못된 편견에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잘못된 것이 옳다 끝까지 우기는 경우도 많다. 그런 오해가 이해로 바뀌는 것은 어떤 한 계기가 되기도 한 마디의 말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편견 때문에 생긴 오해는 의외로 이해로 바뀌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나무벤치와 가로등도 서로에 대한 오해가 깊어졌을 뿐이었고, 자신의 오해가 편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챘을 때 순식간에 오해가 풀려버렸다. 그리고 그동안 서로에게 무심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

 

살아가면서 오해를 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을까.

또 오해를 풀고 이해를 하게 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을까.

이 책에서 느꼈듯, 자신의 편견에서 벗어나서 조금만 마음을 열어둔다면

충분히 상대를 이해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것은 누가 시켜서 되는 것도 아니고 어느 순간 깨달아야만 가능한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그 시간들을 누군가를 사랑하는 시간들로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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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 - 더 깊고 강한, 아름다운 당신을 위한 마음의 당부
김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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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평단을 신청할 때도 몰랐다. 저자의 책을 내가 갖고 있는 줄은. 책을 다 읽고 나서 책 날개 부분의 저자 약력을 읽어보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인거다. 게다가 저자가 쓴 책이 무엇무엇이 있다,라고 적혀 있는 곳의 어느 한 책의 이름이 되게 익숙하다.. 생각하기에 왜일까 곰곰히 생각하면서 책장을 보는데- 내가 방금 읽었던 책 제목이 내 책장 속에도 있는 것이 아닌가. 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오늘의 오프닝>이라는 작가의 이전 책은 내가 이미 읽었던 책이었다. 근데 이번의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와는 느낌이 상당히 달라서 눈치채지 못했다. 만약 책의 날개부분을 안 읽고 그냥 지나갔더라면 두 책이 같은 작가가 쓴 것이라는 것도 모르고 지나갔을 테다. 서평단을 신청할 때 이번에도 역시나 라디오의 대본이라는 것에 홀리듯 신청했었다. <오늘의 오프닝>의 서평 때도 적었던 거지만, 라디오 대본을 조금 고쳐서 옮겨 놓은 책은 내가 마치 DJ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의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는 CD까지 함께 있으니, 정말로 DJ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서평 책이 도착했을 당시 생각보다 딴딴한 느낌에 뭐지? 하고 책을 둘러보았더니 책 속에 CD가 함께 포장되어 있었다. 얼른 뜯어서 플레이해보니 정은아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오디오북이었다. 듣고 있자니 명상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도 들고, 되게 차분한 오디오북이었다.

 

요즘에도 나는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은 많지만 예전만큼 생각만큼 라디오를 듣게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심야 라디오를 들어 본 지가 얼마나 됐을까..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라디오는 나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는 느낌이다. 대신 그 자리를 팟캐스트가 대신하고 있지만 내가 찾아 듣는 팟캐스트는 책과 관련된 팟캐스트들 뿐이라, 주옥같은 문장을 듣거나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조금은 삭막한 느낌도 드는 요즘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책장 한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묻어오는 감성에 나까지 폭 물들어 버렸다.

 

<오늘의 오프닝>은 감성적인 글보다는 지식 전달, 혹은 세상의 이야기들을 전해줬던 책이었다. 아무래도 남자 DJ의 목소리로 읽히는 대본이었던지라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뭐랄까.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면서 들을만한 그런 대본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 이 책은 하루를 마감하는 라디오에서 들려올 법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뤘다. DJ가 정은아라는 같은 여자라서 그런 것이기도 하고, 감성을 공유할 수 있어서 그런 것이기도 하고.. 여자만이 바라볼 수 있는 따뜻한 시선, 감정들이 오롯이 전해지는 그런 책이다. 펼치는 족족 마음에 쿡쿡 박혀서- 왜 이리 가슴에 와서 박히는 글들이 많은지. 나처럼 힘들어 하는 언니에게 바로 소개해줬다. 이 책을 읽으면 아마 언니도 위로 받을 수 있을거야,라는 마음으로.

 

1년 사이에 작가의 필력이 늘었다기 보다, 상황이 좀 더 감상적으로 변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사랑을 받고 있다거나, 혹은 사랑을 주고 있다거나. 마음이 힘들다거나 외롭고 쓸쓸하다거나. 많은 대본들 중에 이번에는 이런 느낌들이 모아져 있는 글들만을 추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번 책에서는 짧은 분량의 글을 맨 첫머리에 적어놓았다. 앞으로 이어질 글들의 가장 핵심이 되는 문장들을 뽑아서 먼저 적어놓은 것이다. 그 짧은 문장만 보더라도 앞으로 어떤 느낌의 글이 펼쳐질 지 알 수 있다. 그 짤막짤막한 문장들이 사람의 마음을 툭툭 건드린다. 물론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들, 알고는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것들인데, 그것들이 한데 모여 마음 따뜻하게 데워주는 역할을 하는. 그 짧은 문장들은 당췌 한줄도 버릴 수가 없어서 골라내는 데 애를 좀 먹었다. 이 책은 좋은 구절을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 첫머리를 쭉 훑으면서 그날 그날 자신에게 맞는 문장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그게 바로 좋은 구절이다. 그 많은 구절들 중에 몇 개만 골라내자면..

 

'발레리나가 아침에 일어나 아프지 않다면 죽은 거나 다름없다'는

발레리나 문훈숙의 말을 이렇게 바꾸어 본다.

살아온 시간에 상처가 없다면 살지 않은 거나 다름 없다고. (73쪽)

 

사랑이란 바위처럼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빵집처럼 날마다 새롭게 구워야 하는 것. (94쪽)

 

한 밤만 자고 일어나면 다 나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어도 괜찮다. 조금 아파도 괜찮다.

한 밤만 자고 일어나면 녹말이 가라앉듯 고요하고 아프지 않은 하루가 찾아올테니. (190쪽)

 

 

 

그리고 인터넷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이 것. "마음 사용 설명서"

 

고통은 10개월 무이자 할부를 활용하고, 감동은 일시불로 구입할 것.

사랑은 30년 만기 국채를, 그리고 우정은 연금처럼 납입하고,

행복은 언제든 입출금이 가능한 통장에 넣어둘 것을 권함. (50쪽)

 

 

가만히 보면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누군가가 본다면 되게 시시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시시함이 어느새 쾅 하고 와 닿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마음의 소리는 갑자기 어느 순간 들리지 않게 되니까 말이다. 서평을 다 쓰고 나면 이 책을 펼쳐서 다시 찬찬히 읽어보려 한다. 시간을 두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조근조근하게.. 읽어가다 보면 갑자기 와 닿는 글이 있을테고, 그것이 지금 내가 가장 필요한 구절일테고.

 

이 책이 당신의 마음에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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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벗고 색을 입자
황정선 지음 / 황금부엉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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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잘 입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소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젊었을 때는 자신의 매력을 뽐내기 위해서, 좋은 남자 혹은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옷을 잘 입고 싶어하고, 비즈니스를 할 때는 상대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 나이가 들면 나이에 맞는 고상하고 우아한 이미지를 갖고 싶어서 옷 잘 입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여러 종류의 옷을 입어보고 사들이는 것일 테다. 매번 옷의 디자인을 두고 이건 이쁘네, 저건 별로네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더라도 옷을 고르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옷을 고르면서 자주 간과하는 것이 있다. 옷의 색감은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로 고르곤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의 예쁜 디자인의 옷을 골랐는데 막상 입어보니 별로인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옷의 디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과 잘 어울리는 색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자신과 잘 어울리는 색'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좋아하는 색을 어울린다고 착각하지 말자" (102쪽)라는 부분. 저자는 좋아하는 색은 대체로 그 색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이미지가 자신과 잘 어울릴 수도 있겠지만, 색이라는 것이 명도와 채도 사이에서의 조화로움에 따라 어울림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라서 '노랑은 잘 어울리고 파랑은 안 어울린다'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색이라는 것이 그만큼 세분화 되게끔 나눌 수가 있고 조화롭지 않은 색의 선택은 오히려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는 것.

색조 화장품의 선택에도 많이 쓰이는 웜톤과 쿨톤의 구분. 그리고 더 나아가서 봄, 여름, 가을, 겨울 타입을 구분해서 각자 자신과 맞는 색상의 옷들을 선택해 볼 수 있도록 책은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많은 부분을 이런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일러스트와 함께 설명을 해 두었다. 어떻게 옷의 색깔을 매치하는 것이 좋을지, 어울리지 않고 피하면 좋은 색은 무엇인지, 각각의 타입에 맞는 헤어 스타일이나 색상까지도 나와 있었다. 꼭 따라갈 필요는 없겠지만, 참고해 두면 많은 팁이 될만큼 세세한 설명들이었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부분을 알려주어서 보기가 쉬웠다. 대체로 패션쪽 책이라 함은 '어려운 영어 단어들의 나열'로 인해 머리 속이 복잡복잡할 때가 많은데, 이 책은 그런 종류의 단어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론 색상이 갖고 있는 고유 이름들이 너무 많고, 어렵기는 했지만..) 글로 적혀 있는 색상에 대한 색깔을 제대로 나타내줘서 어떤 색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던 점도 이 책의 특징이었다. 일러스트가 특히 눈에 많이 띄는데, 각 부분마다 일러스트가 꼭 같이 들어있어 하나의 예시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참고 하는 입장에서는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어서 꽤 도움이 되는 구조였다.

 

 

 

 

 

 

 

 

몸매가 몸매인지라(;;;;) 나름 패션 책을 많이 보고 연구도 많이 하는 편이다. 나에게 어울리는 색깔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책에 실려 있는 셀프 테스트를 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벅찼다. 아무래도 책에 실려있는 셀프 테스트 만으로 나에게 어울리는 색깔을 찾는다는 건 혼자 힘으로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책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면서 각자에게 어울리는 색깔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테스트를 도와주면서 느꼈던 즐거움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던 부분이었다. 생각보다 한 가지의 색상이 나타나는 색상이 너무도 많았고, 거기에 나에게 맞는 색깔을 골라내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겠지만, 책을 읽으면 적어도 자신이 어떤 타입인지, 그래서 피해야 할 색상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 수 있다. 거기에 덤으로 옷의 색상을 코디하는 법이나 색상을 매치하는 법까지 알 수 있어서 휘리릭 둘러봤을 때의 느낌보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이 훨씬 좋았다.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얼굴 뿐만 아니라 옷에서 풍기는 이미지를 포함한다는 것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다. 신뢰를 주기 위해서 파란색 넥타이를 메고 공식석상에 나타나는 역대 대통령들의 코디네이션을 담당한 사람들의 말을 보더라도, 이미지는 이제 메이킹의 시대가 되었다. 색을 잘 알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꽤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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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박람강기 프로젝트 3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안현주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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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챈들러. '미국의 하드보일드 탐정소설가'라고 한다. 하드보일드 탐정소설.. 장르가 낯설지 않은 것을 보면 들어봤다는 얘기인데 나는 정보가 없다. 게다가 정유정 소설가나 류승완 감독 등 여러 사람이 손꼽을 정도로 지금도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는 인물이라고 하는데, 왜 정작 나는 이 사람을 접해본 적이 없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을 찾아서 읽는 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고전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작가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내가 챈들러를 접해보지 못했던 게 어쩌면 당연했던 거였을 수도.

 

이런 나에게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의 제일 첫 부분, '레이먼드 챈들러를 기리며'란 부분이 없었다면 나는 도대체 이 아저씨가 누굴까.라는 생각으로 꽤 고민해야 했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레이먼드 챈들러에 관해 개략적으로나마 설명해 주고 있으므로, 처음부터 굉장히 친절한 셈이다. 챈들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책의 구성적 내용도 설명해 두어서, 챈들러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첫 부분을 읽고 넘가기를 권한다. 챈들러 본인이 이야기 하는 것보다 후대의 번역자가 이야기 하는 챈들러의 이야기도 나름 흥미 있으니.(적어도 챈들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한 눈에 들어오는 생애의 이야기가 정리가 잘 되어 있다고 느꼈다) 번역자는 챈들러에 대해 많은 애정을 갖고 있음이 눈에 보여서 더 좋게 느껴졌다.

 

 

 

 

편지들을 모아놓은 책에게 어떤 제목을 붙인다는 것 자체가 조금 어불성설인것 같다. 길거나 짧거나 그 편지들은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제목을 붙여보고 싶어 무리하게 '이것은 챈들러 방식!'이라고 이름 붙여봤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게 '챈들러가 작품을 대하는 방식' 혹은 '챈들러가 글을 쓰는 방식'들이었니까 말이다.

 

나처럼 아무 생각없이 글쓰기를 즐겨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무릇 작가란-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과 쓰는 것에 대한 생각하기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게 내 인식이다. 글 쓰는 것이 좋아서 업으로 삼은 것이든 어쩔 수 없이 업으로 삼은 것이든, 그 어느 쪽이건 간에 자신의 글을 쓰는 것에 있어 생각 없이 쓰는 글은 아무래도 깊이가 있어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뚜렷한 자신의 생각을 갖고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어 가는데 두려움이 없는 사람. 책을 읽으면서 느낀 챈들러의 느낌은 그랬다. 자신의 방식에 굉장히 확고한 믿음이 있는 듯 했다. 설사 그 믿음이 없더라도 그 믿음을 향해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듯 보였다.

 

 

할 수만 있다면, 객관적인 방식을 서서히 발전시켜서,

독자를 정말로 드라마틱하고 심지어는 멜로드라마틱한 소설로 이끌고 싶습니다. (23쪽)

 

 

좋은 이야기는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추출해야 하지요.

아무리 말을 아껴도 장기적으로 보자면 글쓰기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스타일이고,

스타일은 작가가 시간을 들여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투자입니다.

스타일에 대한 투자는, 성과는 느리고, 에이전트의 비웃음과 출판사의 오해를 살 겁니다. (35쪽)

 

 

위에 간단하게 옮겨 보았지만, 34쪽부터 37쪽까지 적은 편지 속 챈들러는, 스타일에 대한 고민을 꽤 깊이 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었다. 편지를 준 독자가 어떤 내용을 적어서 챈들러에게 건넸는지는 알 수 없으나, 독자와 깊이있는 대화를 하는 챈들러 또한 인상 깊었다.

 

 

 

나로 말하자면, 나는 영감을 기다리는 편입니다.

굳이 영감이라고 명명할 필요는 없지만요.

생명력을 지닌 글은 모두 가슴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대단히 피곤하고 지칠 수도 있는 고된 일이지요. (55~56쪽)

 

 

대중적인 취향을 반영하지 않는 예술은 있을 수 없습니다. (61쪽)

 

 

예술은 노력하고, 엄밀한 기준을 두고, 세부 내용을 비판하고,

플로베르의 방식으로 생산할 수는 없어요.

작품은 아주 자유롭게, 거의 무심한 태도로, 그리고 자의식 없이 생산되는 겁니다.

그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63쪽)

 

 

나에게 플롯은 만드는게 아닙니다. 자라나는 거지요. (70쪽)

 

 

 

 

앞쪽의 자신의 작가론에 대해 이야기할 땐 한 없이 자신에게 단단한 사람 같아 보였던 챈들러의 의외의 모습은 뒷쪽의 일상 부분에 담겨 있다. 글을 쓰고 그 글을 논할 때를 제외하고는 챈들러 역시 일반의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 사랑과 외로움, 결혼에 관한 생각, 텔레비전과 자신의 상관관계(?) 등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올만한 편지들도 담겨져 있었다. 아마 앞쪽의 이야기들만이 실렸다면 이 책은 챈들러의 글쓰기 방식에 대한 책으로만 여겨질 텐데, 뒷쪽의 이야기들로 인해 편안한 글로써의 그도 매력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단단한 작가에서 동네 아저씨로 변하는 그 갭이 꽤 즐겁게 다가왔고, 개인적으로 앞부분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가 자신의 글에 대한 생각들 얘기고, 실은 뒷쪽의 챈들러가 더 좋아보인다.

 

인간적인 챈들러까지 담겼던건, 아무래도 챈들러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힘을 모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편집자도 번역자도 챈들러를 좋아하는 마음을 책 속에 숨기지 않으니 말이다. 앞으로 북스피어에서는 계속 장르 소설가들의 새로운 에세이들이 계속 출간될 것 같은데, 이 책으로 말미암아 리스트에 꽂아놓고 싶은 시리즈가 생긴것 같은 느낌이다. (작가를 이렇게나 좋은 마음으로 바라보는 편집부라면 호감이 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거니까.)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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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 마스다 미리 산문집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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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언제 어른이 되는 걸까. 분명 몸이 어른이 되는 시기는 정확하게 존재한다. 2차 성징이 끝나는 시점- 그 시점이 몸이 어른이 되는 시기이고 그건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그렇다면 2차 성징이 끝난 사람은 '어른'인 걸까. 책을 읽으면서도 생각했다. 도대체 언제 어른이 되는걸까, 하고. 근데 정확하게 답을 정할 수가 없더라. 어른은 생각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작가의 말마따나 그저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문득'되어 있는 것이니 말이다.

 

마스다 미리라는 작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다. 알고보니 그녀는 만화가였고, 생활 친화적 공감 만화로 명성을 갖고 있었고, 이 책은 그녀가 처음 낸 에세이집이라는 것- 책을 읽고 나서 알게 됐다. 사실, 주목 신간을 뽑을 때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라는 감상적인 제목이 눈에 띄긴 했지만(내 스타일이긴 했지만..) 그보다 더 읽고 싶은 책들이 있어서 내가 추천한 책들 중에는 포함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어본 지금은, 작가의 만화들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정도. (꽤 마음에 들었다는 얘기다.)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라는 이 책은, 40대 싱글 여성인 작가가 일상 생활에서 겪었던 일들에 대해 편안하게 쓴 글들을 모아서 만든 책이다. 여기엔 40대 싱글로서의 고민, 나이가 들어가는 여자로서의 고민, 현재 자신의 직업에 대한 고민 등 여러가지 고민들이 들어있었고, 그것이 꼭 그 나이대의 여자만 공감이 가는 내용이 아니라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었다. 나이가 달라도 여자는 여자이니까, 나도 여자이니까 공감 공감. 그러나 여자가 아니라도 공감할 내용들 또한 가득하다. 실상 고개를 끄덕인 곳은 여자와 관련된 고민들에 대한 것들이었지만, 소소하게 웃으면서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던 건 소재가 '여자'에 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책에 등장하는 화자는 작가 본인이다. 본인에게 있었던 일들을 꽤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그런 서술들이 나를 쉽게 대입하게 하고 '맞아맞아'하고 동의하게 한다. 그저 작가는 자신의 마음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 것 뿐인데, 나는 어느새 작가와 동화 되어서 그녀의 모든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더라. 마녀사냥에 패널로 나와서 알게 된 곽정은은 그녀가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힘을 갖고 있는 건 아마 대다수가 '일상의 힘'에서 오는 게 아닐까,라고 했다. 공감하는 바이다. 작가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어떤 이는 그냥 흘려버렸을 그런 일들을 이야기한다. 너무 평범하기도 한 이야기들인데, 그런 평범한 이야기들에서 나오는 생각들은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어린 시절에는 어른이 되면 저절로 뭐든 다 할 줄 알게 되는 줄 알았지만,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뭐든 할 수 있게 되지는 않았다.                 

- 110쪽. 조금이지만 먹어보렴

 

 

무의미하다고 하면 무의미한 대화다.

하지만 그런 수많은 무의미한 대화는 무의미하지 않은 대화를 위해 있는 편이 좋다.

무의미하지 않은 대화가 한층 돋보인다.

- 37쪽. 12월

 

 

아무리 사소한 일이어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내 속에서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그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아니었어, 실수했네, 싶은 일이 있어도

줄줄이 일정이 밀려 있으면 뭐, 됐어, 벌써 지난 일인 걸, 하고 넘기게 된다.

이 '지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시간이 너무 빠르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게 된다는 것.

- 24~25쪽. 일정을 넣지 않는 날

 

 

학교에서 한자 공부할 때는 같은 글씨를 몇 번씩 노트에 써보는 것이

빨리 외우는 지름길이라고 배웠다. 빨리 잊어버리는 지름길은 몇 번씩 보지 않는 것.

어른이 되어 스스로 생각해낸 대처법이다.                        

- 101쪽. 어른이 되어 생각해낸 방법

 

 

 

책에 줄을 잘 안 긋는 나인데, 마음에 드는 부분들에 줄을 긋다 보니 어느새 포스트잇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대부분 저렇게 갑자기 훅 들어오는 것들이다. 사실, 책은 어려운 것이 하나도 없다. 누군가의 일기를 보는 듯, 옆에서 같이 수다를 떨고 있는 듯 가볍고 재미있다. 작가가 개그 센스가 꽤 있는 편이기도 하고, 작가가 적어놓은 상황들의 면면이 재미있는 부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흘러가던 글들 사이 사이에 저렇게 마음에 와 닿는 글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글의 밸런스를 잘 맞출 줄 아는 느낌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작가는 참 귀엽다. 사실, '어른이 되었다'고 하는 작가는 여전히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 것 같은 느낌이다. '어른'이라고 하기엔 20대인 나와 별 다른 점이 보이지 않는 걸- 처음에도 이야기했지만, 언제 어른이 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본인조차도 말이다. 아마 죽는 순간까지 어른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구에게나 어른이 되고 싶으면서 되기 싫은 공존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살아간다는 건,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어제도 내일도 지금도.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중. 어른이 되는 것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책의 원 제목이 길어서.. 리뷰의 제목이 본의 아니게 되게 길어졌다. 조금 당황스럽다. 하하;;)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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