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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의 눈물
권지예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2월
평점 :
내가 쓰는 서평은 작가들이 곱게 수 놓아둔 활자에서 떠오르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을 기록하는 것, 딱 그 정도이다. 누군가는 일기 같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주로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는 편이라 작가가 숨겨둔 깊은 의도를 알아차리거나 책이 주는 메시지를 간결하게 정의 내리지 못해서, 책을 다 보고나면 평론가의 의견과 책의 홍보문구를 유심히 보곤 한다. 편견 없고 정답 없는 해석이 독자의 몫이지만 내가 이해한 방향과 작가의 의도가 얼추 맞았는지 비교해보면서 책을 집약해서 나타낸 홍보 문구가 주는 의미를 내 식대로 다시 해석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번에는 소영현 문학평론가가 소설에서 여행이 가지는 의미를 표현한 ‘부재의 시간과의 조우’라는 문구가 6개의 단편을 해석하는 기준이 되었다.
각 단편에서 주인공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여행지에 발을 딛고 그 곳에서의 여정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그 여정들은 주로 여행의 설렘이나 경이로움, 신선함과는 거리가 있는 경계, 불안, 실망,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표현된다. 여행지에서 느낄 수 있는 묘한 긴장감과 주인공들이 처한 난감한 상황들이 뒤섞여 지속되는 피곤함이 마치 나를 그 여행지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외국이라면 생활환경과 문화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고 그것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질감은 여행지를 더 낯설게 만들기도 한다. 평범한 일상을 고민하고 노력해야지 얻을 수 있는 상황이 오면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이 있는 곳이 낯선 외국이었기 때문에 더 처량하다.
이 책은 여행을 통해 마음 깊숙이 숨겨둔 기억, 수면 아래 있던 인간의 본성,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았던 과거 등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았을 어떤 것들을 떠오르게 했다. 각자의 삶의 일부를 극대화시켜 보려면 여행이 가장 적합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여행지에서는 누군가의 웃음도, 울음도 여기서 보다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최소한의 것에만 의지하게 되는 머나 먼 곳에서 그 때 그 때 느끼는 나의 감정에 충실하다보면 ‘부재’를 ‘존재’의 시간으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베로니카의 눈물>
글을 쓰기 위해 아바나에 머물렀던 모니카에게 베로니카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쿠바 엄마와 딸. 스스로 만든 울타리에서 안식, 우월감, 얄미움을 골고루 느낀다.
<낭만적 삶은 박물관에나>
출장차 파리에 온 재이는 허락 없이 키스하는 연인들을 찍는 일을 하다가 어린 시절 꼭 키스하고 싶었던 누군가에게 허락을 구했던 일을 떠올린다. 정작 본인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아서 충동적인 결정이 꼬리를 물게 되어 마지막으로 남게 된 배신감. 그리고 재회.
<파라다이스 빔을 만나는 시간>
남편이 남긴 의문의 물건을 전달하고자 쿠바로 날아간 한수현. 찝찝한 감정을 안고 떠난 낯선 곳에서 날 선 감정을 자주 느낀다. 몰랐으면 더 좋았을 어떤 사실을 알게 되면서 겪은 슬픔과 분노.
<플로리다 프로젝트>
우연히 공짜 여행을 떠나게 된 모녀. 무너진 삶의 한 부분을 어떻게 일으킬지 고민하는 딸에게서 재현되는 자신의 과거를 발견하는 엄마.
<카이로스의 머리카락>
단시간에 인간 군상을 관찰할 수 있는 패키지여행을 떠난 부부. 일상과 멀어 질수록 더 잘 눈에 띄는, 일상과 멀어졌기 때문에 조금 더 깊이 몰입할 수 있는 편견에 대한 이야기.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마>
유일하게 배경이 여행지가 아닌 이야기. 어디론가 보내주고 싶다. 당신이 사는 그 곳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보여준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