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게 흘러가는 동안에도
박혜숙 지음 / 별빛들 / 201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직장동료가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내 뒷모습을 몰래 찍어서 보내준 적이 있다. 한쪽 턱을 괴고 뭘 보고 있는 건지 구부정한 어깨와 고개, 정돈되지 않아 지저분한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마음에 들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저게 내 모습이라는 걸 부정하고 싶어서 저장도 하지 않고 서둘러 시야에서 넘겨버렸다. 마치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들으면 낯설고 오글거려서 얼른 꺼버리는 것처럼.

    

 

그런데 이 책의 표지가 누군가의 뒷모습이다. 책날개에 표지에 대한 설명도 있다.

내 뒷모습은 원래 잘 모르잖아요. 볼 수가 없으니까 보려고도 안하고, 누가 사진 찍어주지 않으면 못 보는 건데 이번에 제 글이 그런 거 같아요. 내 뒷모습 같은 거, 내가 나한테 내 뒷모습까지 써서 보여주는 거요.

 

뒷모습까지라고 했다. 뒷모습’, 뒷모습써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뒷모습이란 건 자주 보고 손 탄 곳이 아니라 앞모습에 비해 많이 솔직하고 꾸밈이 없다. 그래서 굳이 드러내지 않는 민낯처럼 감추기 급급하다. 그래서 더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써내려갔는지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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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였을까. 커피수기라는 공간에서 생기는 내·외적갈등이나, 고등어가시를 발라 밥 위에 올려주던 옛 연인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가족공동체 일원으로서의 딸 박혜숙의 이야기에 더 마음이 갔다. 나와 다른 성향의 엄마가 때로는 답답해서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는 거, 마음만큼 표현 못하는 걸 만회할 기회가 매일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다음으로 미루는 거, 자랑스럽지 못한 딸이라서 미안하지만 나에게 엄마는 그 누구보다 훌륭하신 분이라는 거, 엄마와 나의 시간은 결코 같은 속도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거. 작가가 내 뒷모습을 보고 쓴 글인지 한 문장 한 문장이 아프게 밟힌다.

 

엄마한테 잘해야지. 이런 마음은 평소엔 수면위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영화나 책을 볼 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과 함께 솟구친다. 엄마는 안 그럴텐데. 엄마는 영화나 책 같은 거 안 봐도 늘, 항상, 매일매일 나한테 더 못해줘서 미안한 마음이 가슴에 콕 박혀 있을텐데.

    

 

어쩌면 내 뒷모습을 가장 자연스럽고 예쁘게 봐줄 사람은 내가 아닌 가족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나를 껴안아주는 엄마가 있어서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더 애틋해지는, 엄마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지는 글들.

당장 엄마에게 전화해서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해야 이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순간이 언젠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면서,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에세이 #잔잔하게흘러가는동안에도 

 <리뷰어스클럽의 서평단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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