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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은 끝! - 일을 통해 자아실현 한다는 거짓말
폴커 키츠 지음, 신동화 옮김 / 판미동 / 2019년 12월
평점 :
일을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수단’ 그 이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당신이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한다면, 당신 몫의 책임을 다하세요.’
이 한 문장은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된다. 책임의 영역은 줄로 그어 표시할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이므로 해석하는 사람의 편의대로 영역을 확장하거나 축소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아주 명확하게 노동력의 기준을 제시한다. ‘회사에서는 일만 하세요’라고. 협업이 이루어져야 하는 회사에서 동료와의 관계를 소홀히 하면서 일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일 외적인 것 때문에 노동력을 허비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일만 확실하게 잘 수행하면 된다는 말이다.
회사에 다녀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회사에서 일만 하는 사람은 없다. 가끔 인터넷 서핑으로 개인 업무도 보고, 친구들과 메신저로 채팅도 한다. 심지어 그 대화의 대부분은 회사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쓸데없는 일들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딴 짓 안하고 퇴근시간에 맞춰 내 일을 다 끝내고 가방을 챙기는 순간, ‘저 직원 일 없나봐?’라는 말이 나오니까. 결국 경력이 쌓일수록 내게 주어진 업무의 종료시점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회사는 내 열정을 표출하거나 자아를 실현하는 곳이 아니다. 일에서 얻는 이득과 자아실현을 헷갈리면 안 된다. 일을 함으로써 일상의 루틴이 만들어지고 돈을 번다. 이는 내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한다는 거창한 의미보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원하는 것을 소비하면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현실에 더 큰 의의를 둔다. 회사는 내 노동의 대가로 보상을 해주지 내 미래를 보장 해주지 않는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자아까지 잃고 싶지 않으면 회사 밖에서 열정적으로 어떤 걸 할 수 있는지 반드시 찾아봐야 한다.
관리자 직급들은 말한다. 일에 더 애정을 쏟아 붓고 잠재된 능력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가 널렸는데 요즘 신입들은 도전의식도 열정도 없다고. 혹시라도 도전의식과 열정을 판단하는 근거가 ‘야근’이라면 다시 생각해봐야한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회사에 헌신하며 살아온 그들은 워라벨이니 뭐니 하면서 야근문화가 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 못마땅하게 보일 수 있다. 집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던 수많은 밤들이 그들에게는 자부심이었는데 그 지나온 시간들이 부정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밀레니얼세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개인주의적 성향, 꼰대 문화 등 세대 갈등을 유발하는 단어들로 사내 분위기를 혼란스럽게 조성하기도 한다. 서로가 가진 편견들이 모여 양보 없이 팽팽하게 당기기만 하는 것 같아 아슬아슬하다. 효율성을 최대 원칙으로 두는 회사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비효율적인 관습이 되풀이 되는 것을 함께 고쳐나가야 한다. 일은 일에 지나지 않음을 전제하면서.
무언가를 인정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는 시대에 적응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각 시대의 장단점은 언제나 있고 어떤 시대를 맞이하더라도 마땅히 옳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적응하고 또 살아내는 것이 우리의 몫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