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 꿈터 책바보 19
움베르토 에코 지음, 에우제니오 카르미 그림, 김운찬 옮김 / 꿈터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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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구를 삶의 터전으로 빌려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할 것들을 세 가지 이야기로 엮은 책.

    

 

1. 폭탄과 장군

평화로운 원자들의 세상을 분열시키고 파괴하려는 나쁜 장군이 있다.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폭탄을 모으는 그에 맞서려고 아토모라는 이름을 가진 폭탄 속에 갇혀있던 원자가 몰래 폭탄 밖으로 도망친다. 아무것도 모르고 빈 폭탄을 도시에 떨어뜨리게 되어 계획에 실패한 장군은 군복을 입은 호텔 문지기가 되었고, 사람들은 위험이 사라진 아름다운 세상에 행복해하며 빈 폭탄을 꽃병으로 사용한다.

 

자신의 과거가 부끄러움을 알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아들이는 장군의 모습은 어쩐지 낯설다. 우리 사회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모습이기에 더 그렇다. 자신의 과오를 떠올리며 얼굴이 붉어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폭탄이 꽃병으로 변신하는 데는 아토모라는 원자의 용기와 실행이 있었다. 그저 자신들이 산산이 부서지며 세상 온갖 것들을 파괴시킬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아름다운 세상을 맞이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이름 모를 수 없는 아토모들의 용기와 실행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2.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다른 행성이 궁금한 지구인이 쏘아올린 세 개의 우주선. 미국, 러시아, 중국에서 온 이 세 사람은 서로를 싫어했고 믿지 못했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각국의 언어에서 엄마라는 뜻이 비슷한 발음을 낸다는 공통분모를 발견했고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다음 날 우연히 만난 기괴한 모습의 화성인을 경계하는 상황에서, 작은 새 한 마리를 향한 애처로운 마음이 지구인, 화성인 너나할 것 없이 같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비록 우리의 겉모습은 다르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각기 다른 삶의 방식들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 중요함을 느끼게 해준다.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때로는 편견 없는 시선과 선택적 수용이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지구인들끼리, 지구인과 화성인들이 서로 다른 모습과 언어를 넘어서 마침내 화합할 수 있었던 것은 감정을 통한 연대감 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소리를 듣고, 같은 장면을 보고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이 당연한 듯 어려운 일이 우리를 끈끈하게 만든다.

 

3. 뉴 행성의 난쟁이들

새로운 땅을 발견하고 싶어 하는 황제가 우주탐험가를 통해 멋진 행성을 하나 발견한다. 그야말로 지상낙원인 이곳에 착륙해 지구의 문명을 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는데 뉴 행성의 난쟁이 대장은 썩 내키지 않아한다. 초대형 우주 망원경으로 본 지구는 공장과 자동차가 만들어낸 뿌연 먼지, 석유가 퍼지고 쓰레기가 난무하는 바다, 무분별한 벌목으로 황량해진 들판, 곳곳에 정체되고 사고를 일으키는 자동차들뿐이었다. 지구의 문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누가 봐도 그들의 천국을 짓밟는 일이었기에 자신들이 지구를 발견하고, 뉴 행성의 문명을 전파하는 것이 어떠냐고 되묻는 난쟁이들. 자존심이 상한 우주탐험가는 마치 비장의 무기처럼 병원이라는 카드를 꺼내지만 뉴 행성에서는 아플 일이 없어 그마저도 소용없게 된다.

 

누가 누구를 먼저 발견하냐는 중요하지 않다. 지구에서 하는 일이 최고라고 여기지 않고 오래도록 공생하는 길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최첨단 기술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우리의 문명이 자랑스럽고 매일 급성장하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새로운 시각에서 보면 그로 인해 희생해야 할 것이 더 많음을 깨닫는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동·식물생태계에까지 영향을 주는 환경오염과 현대사회라는 굴레 속에서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

행복을 논하는 기준은 시대나 유행에 따라 조금씩 변할 수 있지만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욕구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환경보호 같은 문제는 체감 상 먼 미래의 일이라 생각하기 쉬워서 잠깐 경각심을 가졌다가 금세 풀어져버리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이 책을 본 사람들이라면 뉴 행성의 난쟁이들이 짧은 문장 하나로 우리가 진짜 살고 싶은 곳을 상상하고 희망하며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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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땐 뇌 과학, 실천할 땐 워크북 - 우울에 빠진 뇌를 재배선하는 10가지 실천 도구
앨릭스 코브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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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우울감을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고, 그 우울감과 헤어지는 방법을 조언을 해주는 책.

    

 

초등학교 시절, 칠판 앞에서 끙끙거리며 모르는 문제를 맞서야 했던 기억 덕분에 수학은 내게 무섭고 창피하게 각인됐다. 옆에서 지켜보던 선생님의 눈빛이 식은땀 나도록 무서웠고 뒤에서 날 보고 있을 수많은 친구들의 눈을 생각하면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

중학교 시절, 수다스러운 수학선생님이 수업 시간마다 옆길로 새서 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 그렇게나 좋았다. 선생님이 이야기만 하다 수업시간이 끝났으면 하는 마음에 세상 초롱초롱한 눈빛과 웃음으로 반응했다. 제발 종이 치길, 시계바늘이 훅훅 움직이길 기도하면서.

고등학교 시절, 수리시간만 되면 심장이 빨리 뛰고 배가 아팠다. 그날 날짜에 따라 번호 호명하는 것을 즐겨했던 선생님이 어느 순간부터 날짜에 덧셈 뺄셈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복통의 강도가 더 심해졌고 심장도 거의 튀어나올 듯이 요동쳤다.

 

내 학창시절 컨디션은 그날 수학시간이 있냐/없냐, 수학시간이 지났냐/아직이냐에 따라 크게 좌우됐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그게 뭐라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수학성적이 나빴던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때 최악의 성적을 받았던 일을 농담 삼아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 때 내가 겪은 그 모든 감정과 신체의 변화는 모두 우울증과 관련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저 수학이 싫어졌고, 그래서 너무 외면하고 싶고 내 적성에 맞지도 않지만 몇 년간은 고스란히 받아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스트레스인 줄로만 알았다. 그 때 그게 우울증의 일환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내 학창시절은 조금 더 즐거울 수 있었을까?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나는 수포자였지 인생을 포기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점.

만약 팔이 부러졌다면 당신의 팔이 부러졌다고 하지, 당신이 부러졌다고 하지는 않지요. 당신의 팔이 곧 당신은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어요. 당신은 팔을 들 수도 있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릴 수도 있어요. 팔은 당신의 일부이지, 당신 그 자체는 아니죠.(P.47)

 

아마 그 때도 스스로가 만든 제약은 많았을 것이다. ‘수리를 기초부터 하느니 다른 것에 집중해야지, 시간도 없는데, 젤 중요한 건 수리를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안 생겨.’ 우울증 상태에서는 긍정적인 활동을 상태, 시간, , 에너지, 마음을 핑계로 가로막는다고 한다. 가장 쉬운 핑계다. 내가 아주 조금이라고 우울감을 느끼는 부분에서 발전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즐긴다는 감정이 들면 상승나선을 유지하는 데 굉장히 강력한 힘이 된다. 지금 당신이 우울하다면, 아주 조금씩의 성취감이라도 느끼는 일을 찾아보자.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천적인 방안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바로 감사하기.

자기가 갖지 못한 것에 슬퍼하지 않고 가진 것에 기뻐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p.297)이라는 말처럼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우울한 상황에 빠지게 하는 사람들은 정작 자신이 가진 소중한 어떤 것들을 인정하지 못한다. 단편적인 타인의 행복함만 극대화해서 보기를 습관화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가진 보물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밖에 없다. 그 보물이 바로 알베르 카뮈가 말한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는 여름이다. 그건 바로 다른 사람은 가지지 못한 자신만의 소중한 기억. ‘가슴 깊이 남아서 힘든 시절을 견뎌내게 해주는 긍정적인 기억’(p.299)이다.

 

지금에 와서 중학교 수학 문제집을 사와 풀어보는 내게 이제 압박감이나 긴장감은 전혀 없다. 때로는 시간이 약이기도 하다. 수학을 못했기 때문에 동네 초등학생에게 눈높이 수학 과외를 해 줄 수 있었고, 친구가 풀지 못한 문제를 내가 푼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생생하고 또 감격적이다. 때로는 소소한 기억이 사람을 웃게 하고 또 그런 힘들이 모여 살아가는 힘이 된다.

 

수학에 관한 이야기라면 아직도 못 다한 이야기가 많지만 그 때의 우울이 지금은 그저 추억이다. 운동도, 휴식도,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도 마땅히 효과가 없다면 각자의 기억과 지금의 상황에 조금 더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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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두려운 오늘의 너에게 내일이 두려운 오늘의 너에게
조성용 흔글 지음 / 경향BP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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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이 있지 않은 이상 내일은 늘 찾아온다. 내일이 오기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퇴근 후부터 잠들기 전까지 시간이 멈췄으면 하지 내일이 빨리 다가오기는 원치 않는다. 내 기억에도 소풍, 데이트, 여행을 앞두고 있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내일이 빨리 오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던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이 책은 내일을 막연히 기대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다가 올 내일, 알 수 없는 내일을 두려워할 시간에 내 마음을 천천히 정비해볼 것을 권한다.

 

<화요일 같은 삶>

작가의 말처럼 화요일은 존재감이 없는 요일이다. 아무런 수식어도 붙지 않는다. 체감상 가장 피곤하지도 설레지도 않는, 중간도 끝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있다. 그런 화요일을 정체성이 없는 것에 비유한 것이 꼭 나쁜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화요일을 자신만의 특별한 요일로 지정하는 것은 각자의 몫일 수 있으니까. 남들이 다 똑같이 느끼는 요일에 대한 감상이 아닌 오로지 자기 스스로를 위한 화요일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괜찮아>

어린아이가 넘어졌을 때 부모가 너무 흥분하거나 놀라는 기색을 보이면 아이도 덩달아 필요이상으로 크게 반응한다고 본 적이 있다. 물론 상대방의 사정을 100% 헤아리지 못한 처사일 수도 있지만 나 같이 작은 일에도 호들갑떨며 전전긍긍하는 사람에게는 상대방의 담백하고 무던한 태도가 오히려 도움이 된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이 한 마디에 조금 진정하고 다시 생각해보면 내 예상보다 심각한 사안이 아닐 수도 있고, 감정에 휩싸여 섣불리 부정적으로 판단했던 것이 면면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저 한 템포 함께 쉬어갈 존재가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도, 사고의 전환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그냥 살자>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이 오고간다. 그냥 저 한 문장이 어디선가 박제되어 돌아다닌다. 새해에 좋은 일이 얼마나 있어야 복을 많이 받은 걸까. 문득 많이라는 단어에 욕심이 가득 찬 것 같다. 우린 당연하게 오지 않는 어떤 것들을 무작정 소원하고 심지어 많이’, ‘’, ‘되길 바란다. 그렇게 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지만 어쩐지 앞에 저런 한 두 글자 정도 넣어줘야 제대로, 간절하게 원하는 느낌이다. 새해에는 조금만 관대해져야겠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돈을 버는 행위를 부지런히 하는 스스로를 다독여주고, 살을 많이 빼지 못해도 건강에 충분히 관심을 가지며 어떤 노력을 했다는 것에 대견해할 줄 알기로. 인생에 사활을 거는 문제가 아니라면 조금만 느슨해지기로.

 

<리뷰어스클럽 서평단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에세이 #내일이두려운오늘의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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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사과의 마음 - 테마소설 멜랑콜리 다산책방 테마소설
최민우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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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모양과 색깔, 크기일 테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우울을 테마로 한 소설 묶음집이다.

 

보통의 우울은 거리감과 함께 찾아오는 듯하다.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 공들인 시간과 반비례하는 성취도, 갑작스럽게 변화 된 주변 상황과 그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 상황 사이의 괴리감 등 무언가로부터 멀어지고 떨어지면서 마음이 끝없이 추락한다. 누군가는 외줄타기 하듯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낼 테고 또 누군가는 시소에 올라타 앉은 듯 오르락내리락하는 마음을 위로하며 견뎌낼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의 이야기가 6가지의 단편에 담겨져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 없이 무언가를 잃어간다. 어릴 적 내 분신과도 같았던 애착 장난감도, 언제 불러도 뛰어나올 것 같던 같던 옆집 친구도, 평생 기억할 수 있을 것만 같던 할머니가 불경을 읽으시던 목소리도. 눈앞에서, 기억에서 자꾸만 사라져가는 게 이젠 익숙해지는 것이 더 겁이 날 지경이다. 제일 슬픈 건 내 자신까지 잃어가는 걸 덤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존감도 용기도 없어지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도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어서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는 느낌이 든다. 무슨 나쁜 일이나 슬픈 일이 들이닥쳐야 느낄 것 같았던 우울감이 그저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나를 잠식해왔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낯설고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이렇다 할 원인을 찾아내기가 어려워서 이따금씩 드는 어두운 감정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횟수가 늘어난다.

 

그런데 이 책의 6가지 이야기가 이건 비단 너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해준다.

 

은주가 겪는 눈의 이물감, 미듬의 수모에 생긴 구멍과 같이 정면으로 마주하고 치유해야 하는 감정의 신호가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도 와 있을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들 중 사람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무조건 불행한 것일까. 일어나지 않았어야했던 인재로 인해 고용환경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이 커져 문제 제기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면 그 누군가의 숭고한 희생은 우울한 사회적 이슈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겠지. 자식을 잃은 슬픔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진정시킬 여유도 없이,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부인이 혹여나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될까봐 불안해하는 경조의 심정은 얼마나 막막할까. 삐쩍 곯아빠진 외로움이 신체를 지배하는 여관직원의 헛헛한 마음은 지면을 타고 내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우리 모두는 은주를 차로 친 남자처럼 겉만 봐서는 그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그저 좋은 인상에 속는 일이 없다면 잘못된 결혼이나 사기를 당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눈 여겨 보는 일에 서툴다면 내 마음을 바로 알아야 한다. 힘들고 피곤한 마음을 달래고 위안이 되는 무언가를 기꺼이 제공하고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간 은영이 아버지처럼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용기를 짜낼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여행지에 간다고 해도 내 마음이 맑지 못하면 그 무엇도 눈과 마음에 담아낼 수 없다. 이 책을 보고 우울감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는 것은 내 마음이 아직은 건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본다. 그저 다른 깊이로 우울감과 동행하는 우리의 삶이 잘못되거나 실패한 인생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우리 안에 존재하는 우울이라는 씨앗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그것이 더 크게 자라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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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술래잡기 모삼과 무즈선의 사건파일
마옌난 지음, 류정정 옮김 / 몽실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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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랄한 범죄 사건들로 탐정을 가지고 노는 L과 그를 잡기 위해, 그에게 희생당하는 무고한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난 능력을 가감없이 발휘하는 모삼과 무즈선의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


모삼의 추리력은 그야말로 경이롭다. 하나도 허투루 판단하는 법이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지 않되, 눈에 보이는 대로 추리해나가는 것이 모삼의 주특기다. 자신이 분석하고자 하는 대상을 감싸고 있는 공기의 형태까지 밝혀낼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행동이 이루어진 과정과 결과는 물론 그 행동에 영향을 주고받은 사람들의 범위까지 낱낱이 파헤쳐 진다. 살아있는 상대방을 이런 식으로 기선제압하는 것이 모삼이라면 죽은 자의 모습에 덧씌워진 비밀을 들춰내는 것은 무즈선의 역할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이야기를 함께 흡수할 수 있기에 이 둘은 절대 뗄 수 없는 한 쌍이 된 것이 아닐까.


사실 실제 사건을 모델로 했다는 잔인하고 엽기적인 범죄들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악순환의 고리를 이어가는 모습이었다. 누군가의 아팠던 과거가 시간이 지나 잔인한 현재가 되었다. 끔찍한 기억이 생긴 피해자의 상처를 제때 보듬지 못해서, 그 당시 도움의 손길을 뻗어준 누군가가 없었기 때문에 괴물로 변해버린 이들을 무조건 비판할 수 있을까. 그들이 나락으로 빠진 것에는 공정하지 못했던 법의 심판도 분명 있었다. 복수라는 이름으로 위험한 게임을 하는 이들을 조종하는 L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L은 모삼이 영문도 모른 채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했고,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하게 괴로운 악몽에 빠지게 했다. 누군가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힘들게 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보란 듯이 자신의 게임에 모삼을 끌어들였다. 정해진 시간 내에 사건을 해결하게 함으로써 점차 가까워지는 그의 정체. 자신이 고통스러웠던 만큼 누군가도 아파야한다는 마인드라면 L, 그는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었기에 명탐정을 상대로 공들여 이런 일을 꾸민 것일지 벌써 마음이 착잡해진다. 


L의 새로운 메시지가 두려우면서도 시원하게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모삼과 무즈선 덕분에 누군가의 원한과 복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히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잔인한 범죄로 사건의 진상이 세상에 드러나야만 사건을 둘러싼 일들의 심각성을 깨닫는 우리가 한 번쯤은 이 소설 속에서 현실을 들여다 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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