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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땐 뇌 과학, 실천할 땐 워크북 - 우울에 빠진 뇌를 재배선하는 10가지 실천 도구
앨릭스 코브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20년 1월
평점 :
내 안의 우울감을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고, 그 우울감과 헤어지는 방법을 조언을 해주는 책.
초등학교 시절, 칠판 앞에서 끙끙거리며 모르는 문제를 맞서야 했던 기억 덕분에 수학은 내게 무섭고 창피하게 각인됐다. 옆에서 지켜보던 선생님의 눈빛이 식은땀 나도록 무서웠고 뒤에서 날 보고 있을 수많은 친구들의 눈을 생각하면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
중학교 시절, 수다스러운 수학선생님이 수업 시간마다 옆길로 새서 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 그렇게나 좋았다. 선생님이 이야기만 하다 수업시간이 끝났으면 하는 마음에 세상 초롱초롱한 눈빛과 웃음으로 반응했다. 제발 종이 치길, 시계바늘이 훅훅 움직이길 기도하면서.
고등학교 시절, 수리시간만 되면 심장이 빨리 뛰고 배가 아팠다. 그날 날짜에 따라 번호 호명하는 것을 즐겨했던 선생님이 어느 순간부터 날짜에 덧셈 뺄셈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복통의 강도가 더 심해졌고 심장도 거의 튀어나올 듯이 요동쳤다.
내 학창시절 컨디션은 그날 수학시간이 있냐/없냐, 수학시간이 지났냐/아직이냐에 따라 크게 좌우됐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그게 뭐라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수학성적이 나빴던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때 최악의 성적을 받았던 일을 농담 삼아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 때 내가 겪은 그 모든 감정과 신체의 변화는 모두 우울증과 관련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저 수학이 싫어졌고, 그래서 너무 외면하고 싶고 내 적성에 맞지도 않지만 몇 년간은 고스란히 받아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스트레스인 줄로만 알았다. 그 때 그게 우울증의 일환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내 학창시절은 조금 더 즐거울 수 있었을까?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나는 수포자였지 인생을 포기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점.
「만약 팔이 부러졌다면 당신의 팔이 부러졌다고 하지, 당신이 부러졌다고 하지는 않지요. 당신의 팔이 곧 당신은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어요. 당신은 팔을 들 수도 있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릴 수도 있어요. 팔은 당신의 일부이지, 당신 그 자체는 아니죠.」 (P.47)
아마 그 때도 스스로가 만든 제약은 많았을 것이다. ‘수리를 기초부터 하느니 다른 것에 집중해야지, 시간도 없는데, 젤 중요한 건 수리를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안 생겨.’ 우울증 상태에서는 긍정적인 활동을 상태, 시간, 돈, 에너지, 마음을 핑계로 가로막는다고 한다. 가장 쉬운 핑계다. 내가 아주 조금이라고 우울감을 느끼는 부분에서 발전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즐긴다는 감정이 들면 상승나선을 유지하는 데 굉장히 강력한 힘이 된다. 지금 당신이 우울하다면, 아주 조금씩의 성취감이라도 느끼는 일을 찾아보자.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천적인 방안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바로 ‘감사하기’다.
‘자기가 갖지 못한 것에 슬퍼하지 않고 가진 것에 기뻐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p.297)이라는 말처럼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우울한 상황에 빠지게 하는 사람들은 정작 자신이 가진 소중한 어떤 것들을 인정하지 못한다. 단편적인 타인의 행복함만 극대화해서 보기를 습관화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가진 보물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밖에 없다. 그 보물이 바로 알베르 카뮈가 말한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는 여름”이다. 그건 바로 다른 사람은 가지지 못한 자신만의 소중한 기억. ‘가슴 깊이 남아서 힘든 시절을 견뎌내게 해주는 긍정적인 기억’(p.299)이다.
지금에 와서 중학교 수학 문제집을 사와 풀어보는 내게 이제 압박감이나 긴장감은 전혀 없다. 때로는 시간이 약이기도 하다. 수학을 못했기 때문에 동네 초등학생에게 눈높이 수학 과외를 해 줄 수 있었고, 친구가 풀지 못한 문제를 내가 푼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생생하고 또 감격적이다. 때로는 소소한 기억이 사람을 웃게 하고 또 그런 힘들이 모여 살아가는 힘이 된다.
수학에 관한 이야기라면 아직도 못 다한 이야기가 많지만 그 때의 우울이 지금은 그저 추억이다. 운동도, 휴식도,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도 마땅히 효과가 없다면 각자의 기억과 지금의 상황에 조금 더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