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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싹 - 오늘의 한국 인문학을 있게 한 인문고전 12선
김기승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인문학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삶이라는 이어달리기에서 이 책은 [우리보다 앞선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향한 고뇌와 열정을 담은] 바통으로써 우리에게 건네졌다. 이제 우리가 달릴 차례이다!
이 책은 인문학박물관에서 ’우리 인문학의 역사 교실’이라는 강좌를 통해 고심해서 선정한 12권의 책과 그 분야의 전문 강사님들을 모셔서 강의를 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좋은 책과, 좋은 강사, 좋은 청중의 삼박자가 잘 어우러져 만들어낸 하모니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싸이렌의 노래마냥 나를 책 속으로 푹~ 빠져들게 했다.
책의 목차를 보면 제1강 이중환의 택리지(1751)를 시작으로 제12강 이종하의 우리 민중의 노동사(2001)로 강의를 맺는, 책이 출판된 순서대로 강의가 진행된다. 유명한 강사님들이 많겠지만 한겨레신문을 통해 들어 본 [강사:진중권]이라는 아는 이름을 발견하고 살짝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강사님들 별로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강의를 하지만 대체적으로 책요약, 저자소개(단순한 약력같은게 아니라 위인전처럼 어린시절부터 죽음까지의 이야기), 책이 씌여졌던 시대적 상황, 질의 응답 순서로 진행된다. 인상 깊었던 것은 청중들의 나이가 지긋해서 강사와 청중의 관계가 일방통행이 아닌 서로 아는 것을 주고 받는 쌍방통행이라는 것이었다. 강사님의 강의도 좋았지만 청중의 날카로운 질문들은 내가 미쳐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까지 깨우침을 주었다.
그럼 인문학의 숲을 함께 산책해보자. "인문학의 싹"이라는 이 책은 수많은 나무들이 있는 인문학의 숲에서 그중 12그루의 나무만을 엄선해 소개하고 있다. 지리, 문명, 통계, 교육, 정치, 철학, 역사, 미학, 신화, 노동 등 전혀 다른 듯 하면서도 같은 양분을 먹고 서로 연대하며 자라는 이 나무들이 함께 모여 아름다운 숲을 이룬다. 우리 선조들이 일궜던 인문학의 숲을 이제 후세에게 가꾸어 나가도록 이 책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오제연 강사님은 인문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제가 보기에 인문학은 사람들에게 치열한 삶의 모습들, 뜨거운 삶의 모습들을 던져주는 것 같아요. 열정이죠. 이런 열정들을 박열 같은 혁명가들의 삶 속에서 읽어낼 수 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싶고, 그냥 적당히 살고 싶고, 무기력하고 싶을 때 이런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다시 한 번 용기를 얻고 뜨겁게 살아갈 수 있는 거죠."
사람들의 마음속 깊숙이 자리하던 그 열정이 언제 눈을 뜨느냐 하는 것은 고통, 혹은 현실에 대한 반발에서 나오지 않나 싶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시대적이거나 혹은 개인적이거나, 아픔에서 비롯된 것이고 아픔을 아픔으로 여기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삶에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것에 답을 찾는 학문이 바로 인문학인것이다.
궁형을 받아 옥에 갇혀 사기를 쓴 사마천처럼 이중환도 유배를 당하지 않았다면 택리지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테고 일제치하에 식민지 생활이 없었다면 조선문명사나, 숫자조선연구 등 여기 소개된 책들이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묘미는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을 곳곳에서 찾아내는 보물찾기의 즐거움에 있지 않나 싶다. 거의 모든 고지도에 대마도가 있는 이유나, 검열을 하는데 고친게 다 티나게 하는 귀여운 검열, 테러리스트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랑, 또 그녀의 죽음에 관한 영화같은 이야기, 모든 예술가들의 속에 끓어 오르는 반역에의 열망, 맥아더의 자존심?, 일본발음을 시켜서 잘 못하는 조선인들을 학살한 간토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에 대한 진실, 부동산 투자의 첫주인공은?등 그동안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재미에 퐁당~ 빠져들게 된다.
당신은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합리적인 존재이지만 그것은 머리의 일부이고 우리 전체는 그냥 삶이거든요. 그건 비합리적인 거예요. 합리란 우리가 생을 위해서 만든 겁니다. 어떤 필요에 따라 만든 삶의 일정한 태도에 불과하다는 뜻이에요. 더 중요한 건 밑에 깔린 삶 자체를 보는 일이죠. 이것이 딜타이의 생철학과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철학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라고 진중권 강사님은 비합리적인 면이 더 많은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렇게 비합리적인 인간이 더 잘 살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인문학은 항상 ’상상’하는 겁니다. 지금 우리의 현재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분명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있을 것이다. 이것들을 믿고 상상하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죠."
인문학은 이렇듯 살아있다면, 그리고 인간이라면 한번쯤은 고민하고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가야할 학문이 아닌가 싶다.
봄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 봄에 우리 마음에도 인문학적 소양이 움텄으면 좋겠다. 여기 인문학의 싹이 있다. 이 싹이 독자들의 마음에 심어져서 꽃피고 열매맺어 아름다운 숲을 이루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