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도서관
모니카 브라운 글, 존 파라 그림, 이향순 옮김 / 북뱅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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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려는 소중한 마음과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하고 책읽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서의 열정이 정말 훌륭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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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다의 목격 사계절 1318 문고 131
최상희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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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상희 작가는 '델 문도'라는 단편소설집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참 신비로운 이야기를 많이 가진 작가란 생각이 들었다. '델 문도'를 참 여러번 읽고, 분책해서 한 편씩 다시 곱씹어보며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작가의 '모든 매력이 담긴 한 권의 책'이 바로 <닷다의 목격>이라니 일단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다.

작가는 일상적이지 않은 이름을 사용한다. 이 작품들만해도 그렇다. '닷다', '무나', '우나', '이안', '유이'...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닷다'라는 이름도 '작가가 건너 건너 아는 이의 이름을 빌렸다는 걸 보면, 실존하는 이름인 거다. 작가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작품의 소재가 된다는 사실은 어느 소설가든 같겠지만, 최생희 작가의 글에서 보이는 소재들은 언제나 나에게 신비로움을 전해준다.

이 책에는 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담겨 있다. 인간이 가진 다양한 기운을 먹고 사는 어쩐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닷다의_목격 은 남들은 보지 못하는 존재를 보는 '닷다'라는 아이의 이야기다. 학교에 급식을 먹으러 오는 너구리 영혼을 통해 인간의 기운을 먹는 존재들에 대해 알게 된다. 기쁘고 즐거운 기운만이 아니라 분노하고 짜증내는 기운을 좋아하는 존재들도 있다는 건 인간들이 어떤 감정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우리 주위를 맴도는 존재들, 영혼들의 상태도 달라진다는 점에서 경고가 된다. 어느 날 화장실 몰카사건이 터지고 폭력사건으로까지 번졌지만, 진심없는 사과를 한 대충 요령있는 아이들은 오히려 피해자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목격자들은 이미 방관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교실에는 섬뜩한 놈이 나타났다. 아이들은 보지 못하는 그 존재는 점점 교실에 맴도는 그 어떤 기운을 먹고 삽시간에 커지기 시작한다. 진실을 보고도 외면한 아이들,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이거나 귀찮아서 외면한 아이들이 숨기는 그 기운들을 먹고 사는 무서운 녀석이 아닐까? 소설에서는 명확히 그 존재에 대해 밝히지 않지만, 사건의 정황을 생각할 때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내 가슴도 압박해오는 듯한 그 시커먼 존재가 그 교실을 다 덮어버리면 어쩌나 불안해지기도 했다.

#제물 은 괴물에게 인간 제물을 바치는 풍습을 다룬 작품이다. 해마다 열다섯에서 열일곱 사이의 소녀들 중에 제비뽑기로 선택된 아이는 마을사람들의 행운을 위해 희생제물이 된다. 그렇게 뽑힌 아이를 보내기 전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묻는다. 이 아이를 대신할 사람이 있느냐고. 자신이 뽑히지 않아서 다행이라 안심하는 사람, 이 고비만 넘기면 내년엔 열여덟이 되니 살아남을 수 있다고 안도하는 사람, 언니가 제물이 된 것을 보며 울며 따라가겠다고 떼를 쓰는 여동생의 고개를 애써 돌리게 하는 부모.. 사람들은 저마다 제비뽑힌 소녀가 어서 괴물의 분노를 잠재워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뽑힌 소녀는 '무나'라는 아이. 거대한 나무에 묶인 채 정신을 잃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쏜살같이 떠난다. 그리고 나타난 커다란 그림자. 인간이 바치는 인간제물을 받는 괴물은 실존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만들어낸 생각에 얽매인 족쇄가 아닐까?

#화성의_플레이볼 은 홍콩 시민들의 범죄자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가 한창일 때 쓴 소설이라고 한다. 화성 개척사업이 활발해지면서 사람들은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이주하기 시작한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이주한 화성에서는 겉보기엔 완벽해보이는 각종 시설이 잘 갖춰진 우주도시였다. 그러나 많은 것들을 대체식품으로 만족해야 하는 이주민들은 지구를 그리워하기 시작한다. 화성 주민들이 겪는 우울증, 무기력, 두통과 불면증, 식욕부진과 만성 변비 등을 해소하기 위한 치료방법으로 제안된 것이 바로 스포츠였다. 즉각 화성에도 대규모 야구장이 건설되고, 화성의 역사도 야구 이전과 이후의 시기로 나뉠 정도로 역사적으로도 획기적인 사건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지구와 화성의 친선 경기가 이뤄진다. 지구 중력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화성에서 즐기는 야구는 그야말로 눈물을 빼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공을 잡기 위해 공중으로 뛰어오르면 지구에서보다 1.6배나 높이 뛰어오르고, 공은 가볍게 보라색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풍경들은 눈물나게 웃기는 야구경기로 주민들을 압도했다. 말 그대로 야구인기 최절정의 시기에 지구에 사는 주운의 여학생 야구팀이 화성에 초청을 받는다. 꼭 한번 화성에서 뛰고 싶었던 주운의 오랜 꿈이 드디어 이뤄진거다. 그러나 화성에 도착한지 사흘 때, 구장 연습을 마친 뒤 호텔로 향하던 버스는 낯선 길을 달리고 있었다. 화성의 뉴시티에 사는 평범한 시민들이 납치범이 되어버린 건 1년 전 사건 이후였다. 처참하게 죽은 여학생 시신이 발견되고 범인이 밝혀졌지만, 지구에서 파견된 광산 노동자였다. 그는 범행 직후 유유히 지구로 돌아가버렸다. 화성에서는 지구에 범죄자를 돌려보내라고 요구했지만, '범죄자 귀환법'때문이었다. 화성인이든 지구인이든 범죄자는 언제나 지구로 인도할 수 있다는 법이었다. 지구에서는 용의자가 무혐의로 풀려났다는 소식까지 전해지자 화성인들은 분노했다. 귀환법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도 일어났다. 그러나 경찰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화성의 정치인, 인권단체 직원, 시민 등이 지구로 체포되어 보내지기까지 했다. 화성인들은 귀환법 폐지와 화성인 석방, 지구로부터의 사법권 독립을 요구하며 시위를 계속 이어갔다. 그 와중에 화성에 지구의 야구팀이 도착한 거였다. 지구의 입장에서 화성은 단지 광물을 캐내기 위한 거대한 광산일 뿐, 그곳 시민들의 안전에는 무심하다는 걸 깨달은 시민들의 행동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화성인들의 요구 조건이 받아들여지지만, 화성의 폭력단체가 총격사건을 일으키며 지구는 영영 화성과의 대화를 단절해버렸다. 그리고 화성으로 간 야구팀 역시 잊혀지고 말았다. 지구와 화성에서의 시간은 서로 다르게 흘러간다. 던진 공을 잡기 위해 날아오르는 높이가 다르 듯, 대화의 문을 닫아버린 지구를 향해 던진 공이 지구에 닿기까지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흐를지도 모른다. 작가가 중국과 홍콩 사이에서 벌어진 여러 충돌과 갈등에 대한 뉴스를 접하며 이 소설을 구상했다는 말이 이해되는 지점이었다. 미력하나마 올바른 것을 위해 행동하는 이들이 지치지 않고 날아오른 공을 잡을 수 있을 때까지 저 우주 어딘가에서 꼭 포기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 하다.

이 외에도 국경의 시장, 튤리파의 도서관, 사과의 반쪽, 그래도 될까 등의 단편소설을 통해 그저 재미로 읽기에는 심오한 삶의 현장들을 만날 수 있고, 인간의 감정들을 경험해볼 수 있어서 최상희 작가만의 신비스러움이 묻어나는 매력에 빠져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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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체의 딜레마 - 제7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 사계절 1318 문고 130
임서진 외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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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인물이 투명한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다. 문득 다소 불편해 보이지만, 투명한 마스크를 쓸 수 있다면, 그나마 코로나 시대를 살아갈 영유아들의 기억 속에 사람의 얼굴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작년부터 보아온 사람들도 순간 마스크를 벗으면 흠칫 놀란다. 전혀 다른 이미지로 다가올 때도 있고, 원래 모습을 내가 잊고 살았구나 싶을 때도 있어서다. 그러나 안전하고 실용적인 투명 마스크가 생긴다면 그나마 코로나 이전의 삶을 조금은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책을 읽을 때, 꼭 표지를 읽으라는 말이 있다. 앞 표지에는 산소마스크를 쓴 소년, 땅에 닿자마자 빠른 속도로 자라는 식물, 제비의 모습을 한 우주복이 있고, 뒷 표지에는 달과 로봇 강아지, 사람과 소통하는 식물, 무방비 상태의 한 남자의 모습이다.

이 책에 담긴 여섯 편의 이야기를 나타내는 이미지다. 표지를 제대로 읽지 않은 나로서는 읽고 나서야 눈에 띈 것이 못대 아쉬웠다. 미리 생각 해보고 읽을 걸...

제7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수상작이자 대표 제목인 <항체의 딜레마>가 역시 제일 흥미로웠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논(None) 바이러스가 지구를 완전히 장악한 미래사회에서 '이브'란 소녀는 부모님을 잃고, 혼자 살아간다. 지하에 설치된 감염인 구역과 비감염인 구역을 중심으로 청소일을 하는 이브의 일과는 꽤 단조롭다. 청소하고, 귀가할 때 온 몸을 소독하고. 한 번 감염되면 죽음으로 이어지게 하는 막강한 바이러스로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와 이웃을 잃은 시대다.

그때 한 남자가 이브 앞에 나타난다. 공처럼 구긴 종이뭉치를 주며 다시 만날 때 답을 달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진다.

나를 도와줘, 그러면 네 발 크기만 한 금을 더 줄게.

13p.

여러모로 의심쩍은 남자의 엉뚱한 말이라 생각한 이브는 종이뭉치를 소각장에 버린 순간 반짝! 정말 금이었단 걸 발견한다.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경제적으로 힘든 이브는 그걸 이용해서 급한 불은 끄지만, 이후 다시 찾아오는 남자에게 어떻게 해야할 지 망설여져 그저 피하기만 한다.

친구에게 하소연도 해보지만, 그가 이브를 찾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 같다.

단 하루라도 자유롭게 살다가 죽고 싶어.

25p.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그의 말이 계속 귓전을 스친다. 결국 이브는 그의 탈출을 돕지만, 믿고 고백한 친구의 신고로 보안요원들에게 잡히고 만다.

그동안 그가 한 말이 모두 거짓이라는, 그는 인간이 아니라는 말들이 공중에 뒤섞이기 시작한다. 그는 A라고 불리는 인조인간이었다.

A는 너무 똑똑해서 우리의 감정을 이용하고 마음을 조종할 수 있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로봇이야. 흉내만 낼 뿐이지.

35p.

자유라는 기억만 심겨진 인간과 흡사한 로봇 A. 그의 존재 이유는 인류 전체를 위한 항체로서의 역할이 아닌 일부 고위층만을 위한 치료용 항체 로봇이었던 것이다.

이브는 그런 A에게 마음이 쓰인다. 그리고 마음이 이끄는 데로 따른다. 아무리 로봇이라도 '자율'를 원하는 그를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아픈 기억을 잘 잊지 못하는 이브의 성격때문일까? A를 돕기 위해 다시 나선 이브는 또다시 보안 요원들의 공격을 받고 산소마스크가 망가진 채 논(None) 바이러스에 침식당하고 만다.

자신들을 살릴 유일한 항체의 보유자인 인조인간 A를 공격하지 못하는 보안요원들. 그걸 아는 A는 연구소 안의 모든 전력을 차단하고, 모두를 논 바이러스에 감염시킨다. 오직 이브만을 지키며...

긴 꿈을 꾼 듯, 시간이 흐르고, 다시 눈을 뜬 이브는 수정처럼 맑은 세상에 발을 디딘다. 그리고 전혀 늙지 않은 아름다운 그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정말 긴 꿈을 꿨어. 아담."

풋! 엔딩에서 웃음이 나왔다. 아담과 이브. 여주인공의 이름이 이브인데 아담을 생각하지 못했지 싶었다. 이 작품은 바로 천지창조의 시작인 두 인간, 아담과 이브로 다시 시작하는 세상을 열면서 마무리가 된다. 이를 두고 추천사를 쓴 사람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으로 마무리된 결말이 훌륭하다'고 평했다.

그렇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인조인간이 오히려 이기심과 악한 마음에 사로잡힌 인간들을 모두 없애고, 다시 시작하는 깨끗한 세상을 만든다는 설정과 성서의 '아담과 이브'로 시작하는 새로운 세상을 연다는 설정으로 본다면 '가능성'이라 여길만하다. 그런데, 결국 이 작품에서의 아담은 인조인간 아닌가? 인간이 스스로 지키지 못한 세상을 인조인간이 열어간다는 것은 과연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다음 작품들도 읽어봤다. <반달을 살아도>라는 작품이었다.

오염된 지구에서 대피하여 우주에서 살아가는 아이와 베이비 시터 역할을 맡은 로봇 개의 이야기도 '항체의 딜레마'와 같은 작가의 신작이다. 여기선 새로운 행성을 찾으려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우주선에서 폭동이 일어나 가까스로 탈출한 아이와 로봇 개가 도달한 곳은 다름 아닌 지구. 그리고 이렇게 우주로 신호를 보낸다.

정착 행성을 찾았다. 반복한다. 정착 행성을 찾았다. 이곳은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이곳은 우리가 떠나지 말아야 했던 곳, 지구다. 여기는 지구, 푸른 별 지구로 귀환하라.

<반달을 살아도> 86p.

같은 작가의 두 단편이란 점에서 점점 비교가 되었다. 오히려 두 번째 작품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보였다. 인간의 잘못으로 망가진 지구였지만, 지구만의 자생능력으로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인간이 거주하기 적합한 환경으로 다시 조성된 지구. 푸른별 지구. 이는 대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로서의 지구를 의미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더 심오했다. 그나마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 안타까움이 덜했지만, 대표작보다도 더 의미심장한 두 번째 작품에 더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마 다른 독자들도 이 두 편 '항체의 딜레마'와 '반달을 살아도'를 비교해서 읽어보며 토론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외에도 책 표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시간여행이나 우주인 등의 소재로 쓰인 작품들이 있는데,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 옛이야기인 '흥부와 놀부'를 패러디 한 느낌의 작품도 있고, 신윤복의 '월하정인'이란 작품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기사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쓴 작품도 있는데, 과학소설이지만, 뭔가 문학과 예술적 요소들을 융합해보려는 시도가 돋보인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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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타, 이탈리아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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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이자 청소년 소설작가로 유명하신 이금이 작가의 여행에세이다. 특히 40년지기 절친과 단둘이서 한 달 동안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이야기라는 점에서 우리는 소중한 베프를 떠올리며 그 여행에 동반하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펼칠 수 있다.

 

쉰여덟 살 봄, 첫 문장을 쓰듯 우리는 떠났다.’_프롤로그(16p.)

 

프롤로그의 마지막 문장이지만, 개인적으로 이 문장이 작품의 '첫 문장'같은 매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답게 첫 문장을 쓰듯 여행을 떠난 그 마음에서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독자의 기대심리를 자극한다.

 

밀라노에서 시작하여 베네치아, 볼로냐, 피렌체, 시에나, 로마, 알베로벨로, 마테라, 나폴리, 포지타노, 폼페이, 팔레르모, 카타니아, 타오르미나, 라구사, 시라쿠사, 스펠로, 아시시 그리고 다시 밀라노로 이어지는 여정은 유럽 여행의 문외한인 사람에겐 그저 모두 생소한 이름과 새로운 세계일 수 있지만, 읽어나가며 상상하고, 작가의 이야기에 눈과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 덧 낯선 친숙함이 비집고 들어온다.

 

'어딜 가든 눈앞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건축물과 예술작품들이 넘쳐났다.'(47p.)는 구절은 마치 우리 눈 앞에 우뚝 솟은 유명한 피렌체의 건축물과 예술작품들을 상상하며 가상현실을 만들듯 그려나가게 되는 신기한 경험도 맛보게 한다.

 

책이나 영화에서나 봤던 장면을 직접 보고 느낌을 서술해주는 작가의 입담을 따라가다보면 나도 어느 새 작가 옆에 서서 같은 곳을 보는 기분도 느낄 수 있어서 읽을 맛이 나는 작품이다.

 

여행 중 여러 상념들이 끼어들었고 그 중 마지막까지 남은 단어는 두려움이었다.(30p.)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과연 우리 각자에게 여행은 어떤 단어와 연결될까? '설레임', '도전', '자유', '행복'... 긍정적인 단어들로만 채우고 싶어했지만, 사실은 '두려움'이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히 크다는 걸 깨닫게 한다. 작가도 언어나 지리 게다가 나이라는 요소가 두려움으로 더 긴박하게 연결시켰을지 모르지만, 그런 두려움을 그저 무서움으로만 남겨두지 않았다는 점이 참 멋지다.

 

'두려움을 이기는 힘은 옆 사람과 맞닿은 어깨에서, 그와 함께 나눠는 온기에서 나오는 거니까.'(35-36pp.) 라는 말에서 더욱 그렇다. 혼자가 아닌 오랜 벗과 함께하는 여행이었기에 두려움은 '용기''우정'이란 갑옷을 입고 당당히 설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이렇듯 작가는 여행 중 길을 잃고 당황했던 그 시간의 두려움마저도 잔잔하고 따스하게 표현했다.

 

, 여행지와 얽힌 에피소드들도 간간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베네치아 공화국의 건물들의 색깔이 아주 알록달록한 이유는 바로 고기잡이 나갔던 어부들이 짙은 해무 때문에 자기 집을 찾기 어렵 자 알아보기 좋으라고 각기 다른 색을 칠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32p.) 그저 알록달록 이쁜 건물들 사진만 보고 연유를 생각해보지 않았던 독자에게는 새로운 정보가 된다. 그리고 이렇게 사진을 찾아보며 그 의미를 되새겨보려는 노력도 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같은 질문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렇게 친한 친구와의 여행하며 갈등한 경험과 극복과정이 어떤지.. 그리고 여행 이후 두 분의 관계가 어떠한지 말이다. 책에서도 친구 진과의 갈등이 언급된다. 24시간 같이 생활하다보면 그동안 몰랐던 점도 보이고, 때론 오해도 할 가능성이 생기게 마련인데, 작가 역시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못해서 혹은 여행 스타일이 달라서 겪는 심적인 갈등을 극복한 사연을 담아두었다. ~ 이 부분에서는 정말 살짝 긴장했다. 40년 지기 우정에 금이 가면 안되는데.. 조바심도 생겨서 더 빨리 읽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 마침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작가와의 온라인 만남에 참관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친구와의 여행에서 참고하면 좋을 만한 팁을 얻었다.

 

1. 서로를 너무 배려하다보면, 오히려 서로가 힘들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자.

2. 때론 친구와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더 여행을 즐길 수 있다.

3. 매일 저녁 10분 정도는 당일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마주하는 건 어떨까?

 

우리가 작가님 덕에 오랜 벗을 떠올리고, 또 여행을 꿈꾸며 꼭 기억해야 할 조언이 아닐까?

 

갔던 곳을 또 여행하노라면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30p.)

 

역시나 작가로서의 매력도 곳곳에 숨겨둔 걸 발견할 수 있는 구절이다. 여행을 독서에 비유하는 이 표현이 책을 좋아하고 작가를 예찬하는 사람들에겐 잔잔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마음에 자리잡을 것 같다. 그리고 작가의 여행이 반복해서 읽으며 보석을 찾는 새로운 여행이 되었으리란 생각에 괜히 뿌듯해진다.

 

여행은 여정 자체가 목적이기에 어떤 경험이든 그 자체가 여행의 일부라던 말이 떠오른다. 작가의 여정 자체가 담은 다양한 생각과 경험들이 모여 여행 에세이가 완성되었듯, 이제는 무거운 가방과 언어 장벽 그리고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으로 움츠려들었던 마음도 독자들과 공유하며 그마저도 '여행'의 일부가 되었으리라!

 

여행가들의 귀국 가방은 언제나 '선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작가 역시 가족과 지인들을 위한 선물을 채우며 자신의 짐을 비워나가는 모습이 훈훈했다. 그리고, 가족도 지인도 아닌 우리 독자들을 위한 선물로 <페르마타, 이탈리아>라는 책을 준비해준 작가에게 닿을 수 없는 편지같은 마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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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일 때
이종필 지음 / 사계절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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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이종필 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그 강연의 핵심이 이 책의 제1장에 담겨있다.
작가이신 이종필 교수가 말하는 한국형 천재. 곧 잘 외우고, 계산 잘하는 사람이다. 그래야 우등생이 되고 대학도 잘 간다. 이런 천재. 물론 유용하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해도 암기력과 이해력과 산술력은 있으면 땡큐다. 그러나 작가의 우려는 '지나침'에 있다.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경쟁구도 속에 있다보니 딱 거기서 멈춘거다. 잘 외운 지식으로 공유하고 성장하고 적용하고 소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개인의 성장 중심이다. 뛰어난 계산능력을 갖추어도 기계같은 차가운 마음이라면 세계를 위험에 빠뜨릴 기술만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과학 수업에서 제일 먼저 강조해야 하는 건 아무것도 믿지 말라는 거다. 교과서도 믿지 말고, 논문도 믿지 말 것! 스스로 의문을 갖고 탐구하며 밝혀내려는 노력이 곧 과학의 그발전을 위한 기본자세인 것이다.
또한 혼자만 잘하는 시대는 끝났다. 아우를 줄 알고 집단지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끄는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다. 개인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되 동료와 협력할 수 있는 자세. 참 많이 들어본 말이지만 다시금 우리의 발걸음이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되짚어보게하는 울림이 있다.
지식의 전달과 습득이 아니라 지혜의 공유와 체화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34p.)
한국교육에 대한 진단이자 제언이다. 그렇다면 지혜를 쌓고 공유할 줄 알고, 우리 삶 속에 스며들게 하려면 어떤 교육이 이뤄져야 할까? 작가는 이 질문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대화하며 찾아갈 의지를 보인다. 그 역시 20세기에 고등교육을 끝내고 21세기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자문하면서 말이다.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세상 어느 학문과도 연결되지 않은 인문학이 없음은 자타가 인정하는 사회다. 과학 역시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책들이 수없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은 왜 인문학과 닿아 있을까?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은 역사역사상 가장 훌륭한 지식 창출 플랫폼이다.(55p.)
수많은 과학자들이 순수자연과학에서 출발해서 얼마나 다양한 학문과 기술을 만들어냈는가. 인간의 삶에 필요에 따라 발견하고 발전시켜 온 과학이 인문학적 태도나 관점 없이는 절대로 삶에 녹아들어오기 힘든 법이다.
이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일 때 우리는 삶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고, 서로의 분야를 융합해서 다양한 삶의 구석구석에 산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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