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다의 목격 사계절 1318 문고 131
최상희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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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상희 작가는 '델 문도'라는 단편소설집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참 신비로운 이야기를 많이 가진 작가란 생각이 들었다. '델 문도'를 참 여러번 읽고, 분책해서 한 편씩 다시 곱씹어보며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작가의 '모든 매력이 담긴 한 권의 책'이 바로 <닷다의 목격>이라니 일단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다.

작가는 일상적이지 않은 이름을 사용한다. 이 작품들만해도 그렇다. '닷다', '무나', '우나', '이안', '유이'...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닷다'라는 이름도 '작가가 건너 건너 아는 이의 이름을 빌렸다는 걸 보면, 실존하는 이름인 거다. 작가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작품의 소재가 된다는 사실은 어느 소설가든 같겠지만, 최생희 작가의 글에서 보이는 소재들은 언제나 나에게 신비로움을 전해준다.

이 책에는 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담겨 있다. 인간이 가진 다양한 기운을 먹고 사는 어쩐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닷다의_목격 은 남들은 보지 못하는 존재를 보는 '닷다'라는 아이의 이야기다. 학교에 급식을 먹으러 오는 너구리 영혼을 통해 인간의 기운을 먹는 존재들에 대해 알게 된다. 기쁘고 즐거운 기운만이 아니라 분노하고 짜증내는 기운을 좋아하는 존재들도 있다는 건 인간들이 어떤 감정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우리 주위를 맴도는 존재들, 영혼들의 상태도 달라진다는 점에서 경고가 된다. 어느 날 화장실 몰카사건이 터지고 폭력사건으로까지 번졌지만, 진심없는 사과를 한 대충 요령있는 아이들은 오히려 피해자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목격자들은 이미 방관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교실에는 섬뜩한 놈이 나타났다. 아이들은 보지 못하는 그 존재는 점점 교실에 맴도는 그 어떤 기운을 먹고 삽시간에 커지기 시작한다. 진실을 보고도 외면한 아이들,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이거나 귀찮아서 외면한 아이들이 숨기는 그 기운들을 먹고 사는 무서운 녀석이 아닐까? 소설에서는 명확히 그 존재에 대해 밝히지 않지만, 사건의 정황을 생각할 때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내 가슴도 압박해오는 듯한 그 시커먼 존재가 그 교실을 다 덮어버리면 어쩌나 불안해지기도 했다.

#제물 은 괴물에게 인간 제물을 바치는 풍습을 다룬 작품이다. 해마다 열다섯에서 열일곱 사이의 소녀들 중에 제비뽑기로 선택된 아이는 마을사람들의 행운을 위해 희생제물이 된다. 그렇게 뽑힌 아이를 보내기 전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묻는다. 이 아이를 대신할 사람이 있느냐고. 자신이 뽑히지 않아서 다행이라 안심하는 사람, 이 고비만 넘기면 내년엔 열여덟이 되니 살아남을 수 있다고 안도하는 사람, 언니가 제물이 된 것을 보며 울며 따라가겠다고 떼를 쓰는 여동생의 고개를 애써 돌리게 하는 부모.. 사람들은 저마다 제비뽑힌 소녀가 어서 괴물의 분노를 잠재워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뽑힌 소녀는 '무나'라는 아이. 거대한 나무에 묶인 채 정신을 잃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쏜살같이 떠난다. 그리고 나타난 커다란 그림자. 인간이 바치는 인간제물을 받는 괴물은 실존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만들어낸 생각에 얽매인 족쇄가 아닐까?

#화성의_플레이볼 은 홍콩 시민들의 범죄자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가 한창일 때 쓴 소설이라고 한다. 화성 개척사업이 활발해지면서 사람들은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이주하기 시작한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이주한 화성에서는 겉보기엔 완벽해보이는 각종 시설이 잘 갖춰진 우주도시였다. 그러나 많은 것들을 대체식품으로 만족해야 하는 이주민들은 지구를 그리워하기 시작한다. 화성 주민들이 겪는 우울증, 무기력, 두통과 불면증, 식욕부진과 만성 변비 등을 해소하기 위한 치료방법으로 제안된 것이 바로 스포츠였다. 즉각 화성에도 대규모 야구장이 건설되고, 화성의 역사도 야구 이전과 이후의 시기로 나뉠 정도로 역사적으로도 획기적인 사건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지구와 화성의 친선 경기가 이뤄진다. 지구 중력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화성에서 즐기는 야구는 그야말로 눈물을 빼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공을 잡기 위해 공중으로 뛰어오르면 지구에서보다 1.6배나 높이 뛰어오르고, 공은 가볍게 보라색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풍경들은 눈물나게 웃기는 야구경기로 주민들을 압도했다. 말 그대로 야구인기 최절정의 시기에 지구에 사는 주운의 여학생 야구팀이 화성에 초청을 받는다. 꼭 한번 화성에서 뛰고 싶었던 주운의 오랜 꿈이 드디어 이뤄진거다. 그러나 화성에 도착한지 사흘 때, 구장 연습을 마친 뒤 호텔로 향하던 버스는 낯선 길을 달리고 있었다. 화성의 뉴시티에 사는 평범한 시민들이 납치범이 되어버린 건 1년 전 사건 이후였다. 처참하게 죽은 여학생 시신이 발견되고 범인이 밝혀졌지만, 지구에서 파견된 광산 노동자였다. 그는 범행 직후 유유히 지구로 돌아가버렸다. 화성에서는 지구에 범죄자를 돌려보내라고 요구했지만, '범죄자 귀환법'때문이었다. 화성인이든 지구인이든 범죄자는 언제나 지구로 인도할 수 있다는 법이었다. 지구에서는 용의자가 무혐의로 풀려났다는 소식까지 전해지자 화성인들은 분노했다. 귀환법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도 일어났다. 그러나 경찰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화성의 정치인, 인권단체 직원, 시민 등이 지구로 체포되어 보내지기까지 했다. 화성인들은 귀환법 폐지와 화성인 석방, 지구로부터의 사법권 독립을 요구하며 시위를 계속 이어갔다. 그 와중에 화성에 지구의 야구팀이 도착한 거였다. 지구의 입장에서 화성은 단지 광물을 캐내기 위한 거대한 광산일 뿐, 그곳 시민들의 안전에는 무심하다는 걸 깨달은 시민들의 행동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화성인들의 요구 조건이 받아들여지지만, 화성의 폭력단체가 총격사건을 일으키며 지구는 영영 화성과의 대화를 단절해버렸다. 그리고 화성으로 간 야구팀 역시 잊혀지고 말았다. 지구와 화성에서의 시간은 서로 다르게 흘러간다. 던진 공을 잡기 위해 날아오르는 높이가 다르 듯, 대화의 문을 닫아버린 지구를 향해 던진 공이 지구에 닿기까지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흐를지도 모른다. 작가가 중국과 홍콩 사이에서 벌어진 여러 충돌과 갈등에 대한 뉴스를 접하며 이 소설을 구상했다는 말이 이해되는 지점이었다. 미력하나마 올바른 것을 위해 행동하는 이들이 지치지 않고 날아오른 공을 잡을 수 있을 때까지 저 우주 어딘가에서 꼭 포기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 하다.

이 외에도 국경의 시장, 튤리파의 도서관, 사과의 반쪽, 그래도 될까 등의 단편소설을 통해 그저 재미로 읽기에는 심오한 삶의 현장들을 만날 수 있고, 인간의 감정들을 경험해볼 수 있어서 최상희 작가만의 신비스러움이 묻어나는 매력에 빠져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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