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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만나다 ㅣ 사계절 1318 문고 132
이경주 지음 / 사계절 / 2022년 2월
평점 :
<우리를 만나다> 이 책. 표지가 참 마음에 든다. 고등학교 도서관의 한쪽 벽을 채우고 싶은 디자인이다. 게다가 거기서 '우리'를 만날 수 있다는 메시지도 작품의 내용과 꼭 연결짓지 않더라도 자꾸 눈길이 간다.
출판사를 통해서 이 책의 소개글을 처음 접했을 때는 '삶을 읽는 도서관'이란 소재에서 매트 헤이그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가 떠올랐다. 그러나 '도서관'의 공간적 의미에서는 유사할 수 있으나 스토리의 전개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서 이경주 작가만의 매력이 살아있다!
도서관은 인류에 대한 모든 기록을 담은 곳이다. 그런 도서관이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우리의 삶을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돕는 곳으로 설정된 것이 신비로우면서도 아주 적합한 설정이란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목차를 보면 도서관, 동호, 제로가 계속 반복된다. 도서관에서 시작된 소설 속에는 두 아이 - 소년과 소녀가 등장한다. 그리고 교차되며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지다가 도서관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조금은 신경쓰고 읽어야 한다. 두 아이의 삶은 마치 연작소설처럼 연결되어 있지만 또 각자의 스토리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도서관이었다.- 7p. 첫 문장
모든 기억을 잃은 채 도서관에 도착한 소년과 소녀. 그들이 도서관에서 발견하는 책마다 제목도 글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지만, 그들을 보지 못한다. 이상함을 느낀 두 아이들. 도대체 왜,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없는 두 아이에게 도서관 사서는 두 권의 책을 나눠주며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나갈 방법을 빨리 찾고 싶다면 책을 읽어라. -16p. 사서의 말_각색
소년이 든 책은 '동호'라는 아이가 '강이수'란 친구를 알게 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소녀가 든 책은 닉네임 '제로'라는 아이가 닉네임 '벤쿠버'란 친구를 알게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왕 읽게 된 거 두 아이들은 먼저 읽기를 중단하면 지는 거라며 내기를 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 책 말이야... 이 책 뭔가 이상해. - 19p. 소년의 말
첫 장에는 2004가 적혀 있고, 두 번째 장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두 아이는 서로의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오로지 자기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잃어버린 기억의 실마리일까? 두 아이는 이상하게 친숙한 책 속 이야기에 빠져들어가기 시작한다. 동호는 자신과 다른 성향의 이수와 친해지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우정과 다른 방향으로 다가오는 이수를 외면하게 되고, 제로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벤쿠버를 시기한 나머지 잘못된 선택을 하며 친구를 위기에 빠뜨리는 일이 발생한다.
그렇다. 이 아이들이 읽는 책은 바로 자신의 삶이 담긴 책이었다. 145페이지가 넘어가도록 아이들은 자신의 책을 읽으며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나가기 시작한다. 마침내 이야기가 끝나고,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지워졌던 모든 기억이 되살아난 두 아이들.
어쩌면 우리 삶에도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아서 꼭꼭 숨겨두고 있는 것이 분명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스스로 망각기법을 활용해서 기억 저 너머로 던져버린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든 기억이라도 회피하기 위해 도망친다면 우리는 죽음 앞에서 떳떳할 수 있을까?
우리 각자의 삶이 담긴 책으로 기억을 간직하는 도서관에선 우리가 외면하고자 했던 자신의 삶 바로 앞에 진실되게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너희들은 지금 삶과 죽음의 중간에 있다. 둘은 죽은 자도 산 자도 아니다. 너희가 여기에 온 이유는 책을 읽었으니 알겠지. 다시 돌아갈지, 이곳에 머물지는 너희 마음에 달려 있다.
- 148p. 사서의 말
그리고 한번 더 기회를 준다. 이제 너희의 삶을 제대로 마주했으니, 정말 죽을지 아니면 다시 너희의 삶에 들어가서 살아낼지 선택하게 한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며 현실로 돌아갈 용기를 가질 것인지, 그냥 삶을 포기하고 이제는 다 기억해버린 고통스러운 과거를 평생 짊어지고 죽을 것인지 말이다.
이 작품이 따뜻하고 훈훈한 건 바로 이 아이들이, 청소년들이 어쩌면 현실 즉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힘들 수도 있는 상황에서 용기를 낸다는 거다. 소년과 소녀는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며 서로를 어느 덧 의지하고 격려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내가 만나는 우리 아이들도 저마다의 삶이 있고, 그 안에서 겪는 아픔 그리고 남에게 주는 상처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건 어른인 나도 힘들 때가 많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만난 아이들을 통해 조금은 용기를 갖게 된다. 나로 인해 힘들었을 사람을 떠올려보고, 진심으로 다가가서 사과할 수 있는 용기를 말이다.
OO아, 그땐 정말 미안했어. 너의 진심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속단했던 날 용서해주겠니..? 나의 기억 속에서 가장 순수하고 따스했던 너를 그날 이후 한 번도 잊지 못했어.. 미안하다 정말.. 날 찾아온 그날 그렇게 냉정하게 돌아서버린 것도 미안하고 모든 건 너로 인한 결과라고 판단한 후 한 번도 너의 해명을 들어보려 하지 않았던 것도 미안하다.. 몇년 전 우연히 알게 된 너의 소식이 그저 감사할 뿐이야.. 잘 지내고 있어서 고맙고, 감사해! 다시는 만나거나 연락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며 이렇게나마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언제 어디서든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도할께! - 나의 기억 속에 늘 아린 상처로 남은 그 아이를 위한 사과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도서관이었다 - P7
이 책 말이야... 이 책 뭔가 이상해. - 19p. 소년의 말 - P19
너희들은 지금 삶과 죽음의 중간에 있다. 둘은 죽은 자도 산 자도 아니다. 너희가 여기에 온 이유는 책을 읽었으니 알겠지. 다시 돌아갈지, 이곳에 머물지는 너희 마음에 달려 있다.
- 148p. 사서의 말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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