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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타이머 ㅣ 사계절 1318 문고 138
전성현 지음 / 사계절 / 2022년 10월
평점 :
분명 소설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과 함께 독자를 책 속으로 빨아들이곤 우주의 혼돈 속에 내던져진 느낌이다. 아주 제대로 열린 결말인 일곱 개의 단편소설들이다.
포춘쿠키를 먹어본 적 있는가? 입체적인 하트에 가까운 모양의 과자를 반으로 자르면 길고 얇은 종이에 행운을 담은 메세지가 적혀 있다. 요즘은 테마별 포춘쿠키로 다양화되기도 했지만, 원래의 포춘쿠키를 먹으면 그저 그 작은 종이 조각에 적힌 메시지가 뭐라고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진짜 행복한 일이 나에게 생길 것만 같아서 하나 더 먹어서 행운을 두배로 만들고 싶단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런데 첫 번째 단편 소설인 <포춘쿠키>는 우리가 마주한 그 '행운'을 담은 메시지가 늘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되는 행운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행운을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을 꾸짖어준다. 생각해보자. '늦가을에 나비를 만날 수 있다는.' 행운은 어느 누가 들어도 행운 같지 않고 힘이 되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나비'가 바로 등장인물이 좋아하는 고양이를 의미한 거라면 우리가 우연히 포춘쿠키를 열어보지만 결국은 그 자신만을 위한 메시지가 담겨 있음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철거 대상 마을에서 어서 주민들이 사라져 주길 바라는 철거업체 쪽 사람이라면 그가 뽑은 포춘쿠키엔 무엇이 담겨 있을까? 주민들이 모두 집을 비우고 떠난 불빛이 사라진 그런 마을을 갈망하는 모습은 시커멓고 무섭고 잔인한 마음이다. 작가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포춘쿠키에는 메시지에 담긴 숨은 의미를 보여주지 않고, 표현 그 자체에 갇혀버리게 만들었다. 그런 점이 반전 같고 과연 이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놀랄 무렵 글은 마지막 문장을 드러낸다.
두 번째 소설인 <가설의 입증>은 더욱 심하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다음 이야기가 마구 궁금해지는데, 거기서 딱 펜을 내리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지며 어서 펜을 들고 더 써달라고 말하고 싶다. 방역과 학생지도 심지어 수술 외에는 간단한 처치도 가능한 의료진이 상시 대기하는 의원급 보건실까지 갖춘 기숙학교에서 이상한 증상을 보이는 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단순히 전학을 갔다고 보기엔 너무나 유망하고 경쟁력 있는 학교였다. 철저한 방역 시스템으로 각종 호흡기 질병이 유행해도 비껴가는 학교였다. 그런 학교에서 이상한 증세를 보이는 학생이 나타나다니!!!
"환경오염이나 방사능 유출로 생겨난 변이 생물들... 이런 변이 생물 종이 나타났다는 건 가설이니 해당 표본이 많아야 입증이 가능하다." - 과학 수업 중 교사와 학생의 대화(재구성)
갑자기 하나 둘 씩 사라지는 아이들. 정말 표본이 많아야 한다는 말처럼 이 학교는 변이 생물의 표본으로 RT 바이러스 감염자들을 모아 놓은 곳인가? 그렇다면 왜? 누가? 대체 무엇을 입증하기 위해서란 말인가? 질문만 마구 던져놓고 끝나지 않은 듯 또 이렇게 이번 소설도 마지막 문장을 남긴다.
.... 대체 어떤 가설을 입증하고 싶은 것일까...?(39쪽)
이 외에도 도플갱어 같은 다른 차원의 같은 아이들이 같은 SNS계정을 공유하며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는 이야기 <유진의 계정>, 각종 환경오염으로 비대면 수업이 일상화되며 저마다의 줌 화면 속에 갇혀 버린 <패러데이 상자>, 영구 동토가 녹으며 인간이 경험하지 못했던 고대 박테리아에 감염되고 수명을 에측하던 앱 데스 타이머의 수명 잔량이 점점 줄어드는 <데스 타이머>, 악몽을 물리쳐주는 기능이 아닌 수면 정보를 이용해서 악몽같은 현실을 감추려 한 <드림캐쳐>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삶을 떠나는 항구 도시 이야기인 <포틀랜드>가 저마다의 색깔을 띄며 독자들의 뇌세포를 깨운다. 상상을 하고 겨우 분위기를 파악할 즈음 나머지 이야기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 채 뒤돌아 걸어가는 작가들의 모습이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무성해지는 책이다.
표본의 수가 많아야 가설이 입증되는 것 - P38
정말 포춘쿠키가 행운을 가져다준 걸까?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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