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는 기억만 심겨진 인간과 흡사한 로봇 A. 그의 존재 이유는 인류 전체를 위한 항체로서의 역할이 아닌 일부 고위층만을 위한 치료용 항체 로봇이었던 것이다.
이브는 그런 A에게 마음이 쓰인다. 그리고 마음이 이끄는 데로 따른다. 아무리 로봇이라도 '자율'를 원하는 그를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아픈 기억을 잘 잊지 못하는 이브의 성격때문일까? A를 돕기 위해 다시 나선 이브는 또다시 보안 요원들의 공격을 받고 산소마스크가 망가진 채 논(None) 바이러스에 침식당하고 만다.
자신들을 살릴 유일한 항체의 보유자인 인조인간 A를 공격하지 못하는 보안요원들. 그걸 아는 A는 연구소 안의 모든 전력을 차단하고, 모두를 논 바이러스에 감염시킨다. 오직 이브만을 지키며...
긴 꿈을 꾼 듯, 시간이 흐르고, 다시 눈을 뜬 이브는 수정처럼 맑은 세상에 발을 디딘다. 그리고 전혀 늙지 않은 아름다운 그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정말 긴 꿈을 꿨어. 아담."
풋! 엔딩에서 웃음이 나왔다. 아담과 이브. 여주인공의 이름이 이브인데 아담을 생각하지 못했지 싶었다. 이 작품은 바로 천지창조의 시작인 두 인간, 아담과 이브로 다시 시작하는 세상을 열면서 마무리가 된다. 이를 두고 추천사를 쓴 사람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으로 마무리된 결말이 훌륭하다'고 평했다.
그렇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인조인간이 오히려 이기심과 악한 마음에 사로잡힌 인간들을 모두 없애고, 다시 시작하는 깨끗한 세상을 만든다는 설정과 성서의 '아담과 이브'로 시작하는 새로운 세상을 연다는 설정으로 본다면 '가능성'이라 여길만하다. 그런데, 결국 이 작품에서의 아담은 인조인간 아닌가? 인간이 스스로 지키지 못한 세상을 인조인간이 열어간다는 것은 과연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다음 작품들도 읽어봤다. <반달을 살아도>라는 작품이었다.
오염된 지구에서 대피하여 우주에서 살아가는 아이와 베이비 시터 역할을 맡은 로봇 개의 이야기도 '항체의 딜레마'와 같은 작가의 신작이다. 여기선 새로운 행성을 찾으려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우주선에서 폭동이 일어나 가까스로 탈출한 아이와 로봇 개가 도달한 곳은 다름 아닌 지구. 그리고 이렇게 우주로 신호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