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D. 샐린저의 소설 프래니와 주이 일어판을 무라카미 하루키가 번역했다고 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루키는 이런 추천사를 남겼는데 그의 번역은 어떤 느낌일지 새삼 궁금해진다.

 

 

 

˝『프래니와 주이』가 이렇게 재미있는 얘기였다니! 하고 탄복했다. 일어판 번역자로서 앞으로도 시대를 넘어 『프래니와 주이』가 고전으로, 또 동시대성을 지닌 작품으로 오래도록 읽히기를 바란다. 젊은 독자들에게는 젊은 대로, 성숙한 독자들에게는 성숙한 대로 읽히는 수준 높은 문학작품이라고 믿는다. 나이브하면서 기술적으로는 고도로 숙련돼 있고, 원리적이고 근원적이면서 동시에 부드러운 영혼을 지닌 매력 있는 소설이다. 인상적이고 자상한 세부 묘사에는 그만 마음을 뺏기게 된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인생에서 한 번쯤, 혹은 두 번쯤 읽을 만한, 그것도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매우 드문 작품이다. ˝ - 무라카미 하루키

 

 

 

이 책을 읽기 전 너무 오래전에 읽어 느낌이 옅어진 「호밀밭의 파수꾼」을 다시 읽어 보았는데 읽는 내내 영상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홀든의 체취까지도 맡을 수 있을 것 같은 생생한 캐릭터 묘사가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다. 의식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세부적인 묘사로 농축된 당시의 시대와 열여섯 살 홀든의 위태롭고 중요한 순간을 함께 공유한 기분이 든다. 1951년에 출간되었는데도 전혀 낡은 느낌이 들지 않는 이 소설을 그동안 쟁쟁한 영화감독들이 얼마나 영화화하고 싶어 했을지, 그 마음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저 홀든이 말하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한 편의 영화가 될 것 같은, 캐릭터 자체가 곧 소설인 것 같으니 말이다.



「프래니와 주이」역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을 때처럼 잡념 없이 집중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샐린저의 저서를 연달아 읽고 보니 그의 책이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쓰려고 애쓰지 않는' 문장에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말하듯 부르는 노래처럼, 단어 하나하나를 되새김질할 필요 없이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자연스레 공유하게 된다. 그도 이를 유념하고 있는지 책의 본문 중엔 이런 부분이 있다.

 

 

 

˝나는 내가 훌륭한 작가들, 그러니까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셰익스피어 중 그렇게 단어를 쥐어짠 인간이 누가 있었냐고 지적한 것이 완벽하게 정당하다고 생각해. 그 작가들은 그냥 썼거든. ˝ (p24)

 

 

 

「프래니와 주이」는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깊이 있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진지하긴 하지만 샐린저 특유의 시니컬한 위트 덕분에 꽤 익살스럽게도 느껴지는, 여유를 가지고 읽게 되는 소설이었다. 현학적임을 뽐내고 싶어 하거나 치장이랄 것이 없는 그의 문장은 부담스럽거나 무겁지 않아서 하루키의 추천사처럼 '나이브하면서 기술적으로는 고도로 숙련돼 있고, 원리적이고 근원적이면서 동시에 부드러운 영혼을 지닌 매력 있는 소설'이란 말에 동의하게 된다. 이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프래니와 주이편으로 나뉘는 이 소설의 주요 장면에선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대화를 이어나가는데 그들의 대화 자체가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좀 더 인상적이었던 대화는 주이가 등장하는 65쪽부터 였는데 글래스 가의 일곱 남매 중 가장 어린 두 남매인 주이(25세)와 프래니(여동생, 20세),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인 베시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글래스 가의 남매들은 특출나게 똑똑한, 그래서 지적인 고민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어떤 것들인지 조금 옮겨 보려고 하는데 남매들의 어머니 베시는 이런 말을 한다.

 

 

 

 ˝아무리 아는 게 많고 기가 막히게 똑똑한들, 그러고도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구나. ˝ (p152)

 

 

 

프래니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저 에고에, 그놈의 에고, 에고에 신물이 나는 것뿐이야. 내 에고에, 모든 사람의 에고에. 어딘가에 이르고 싶어 하고, 뭔가 탁월한 일을 이루고 싶어 하고, 흥미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들에 신물이 나. 혐오스러워. 정말 혐오스럽다고. ˝ (p44)

 

˝난 그냥 내 의견을 단 하나도 마음속에 담아만 둘 수 없었어. 모든 것을 할퀴고 할퀴고 할퀴어댔어. ˝ (p176)

 

˝그냥 사람들을 비판하는 걸 멈출 수가 없었어. ˝ (p186)

 

˝때때로 나는 지식이 - 게다가 지식을 위한 지식일 때 - 그중 최악이라고 생각해. 어쩌다 한 번이라도, 정말 어쩌다 단 한 번이라도, 지식은 지혜로 이어져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혐오스러운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는, 좀 겉치레로라도 정중한 조그마한 암시라도 있었다면, 내가 그렇게까지 우울해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 ˝ (p186)

 

 

 

주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겐 <지혜로운 어린이> 콤플렉스가 있어. 우리는 평범하게 얘기를 못하고 말을 장황하게 하지. 우리는 대화를 나누지 않고 설명을 늘어놔. 나는 빌어먹을 예언자가 되거나 인간 모자핀이 되어 사람들을 찔러대지. ˝ (p178)

 

˝너는 그들이 대변하는 것을 경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 자체를 경멸하지. ˝ (p205)

 

"넌 대학 캠퍼스를, 세상을, 정치를, 여름 공연 한 시즌을 보고, 멍청한 대학생들의 대화를 듣고, 아주 쉽게 결론을 내렸지. 모든 것이 에고. 에고. 에고라고. ˝ (p210)

 

˝무엇이 에고이고 무엇이 에고가 아닌지 결정하려면 그리스도가 직접 와야 될 거야. 이건 신의 우주야, 친구, 네 우주가 아니라.˝ (p211)

 

˝그를 생각해, 오직 그만을, 있는 그대로의 그를, 그가 그랬더라면 하고 네가 바라는 모습 말고. 너는 어떤 사실과도 직면하지 않아. 사실을 직면하지 않는 그 빌어먹을 태도가 바로 애초에 네 정신 상태가 엉망이 된 원인이야. ˝ (p214)

 

˝프래니. 예술가의 유일한 관심은 어떤 완벽함을 달성하는 것이고,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의 완벽함이야. 너는 다른 것들에 대해선 생각할 권리가 없어. ˝ (p250)

 

 

 

J. D. 샐린저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어 읽는 내내 목이 칼칼한 느낌이 든다. 프래니도 주이의 시가에 대해 불평을 하는데 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그 시가는 평형추란다. 순수한 평형추. 주이가 시가를 붙잡고 있지 않다면 그 애의 다리는 바닥에서 위로 날아오를 거고, 우리는 다시는 주이를 보지 못하게 되지. ˝ (p242)

 

 

 

매캐한 담배연기가 피어오르는 틈 속에서 가끔씩 한 팔로 공기를 휘저어 가며 남매의 대화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드는 이 소설은 내게도 그런 평형추가 있음을 돌아보게 만든다. 한동안 어떤 생각이나 감정에 빠져 있다가도 다시 스스로를 정화시키고자 할 때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들을 말이다. 이들 남매의 대화를 일종의 글로 쓴 홈비디오라며 옮긴 글 속의 화자는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지금 제공하는 것은 신비주의적인 이야기도, 종교적으로 신비화된 이야기도 전혀 아님을 밝힌다. 나는 이것이 복합적이거나 다각적인, 순수하면서도 난해한, 사랑 이야기임을 밝힌다. ˝ (p68)

 

 

 

이 책의 마지막 장까지 다 읽은 후 나는 그 의미를 나의 뜻대로 받아들였다. 어떤 종교이든, 사상이든, 철학이든, 하다못해 독한 냄새를 피우는 시가가 됐든, 누구에게나 자신의 평형추를 필요로 하지만 스스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절실하고 근원적인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들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평형추에 의존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한다. 내가 나이기를 바라는 것과 진정한 나와는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이는 타인에게도 마찬가지라며 늘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프래니와 주이에겐 그들의 대화가 무엇보다도 든든한 평형추가 아닐까 싶었다. 진지한 관심이 있어야 진지한 대화도 가능하니 말이다.



드라마틱한 서사를 좋아한다면 최소한의 배경에서 주로 대화를 통해 이어가는 이 소설이 달갑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이 소설의 형식을 샐린저의 실력이라 생각할 수도, 단점이라 여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조물을 올리는 걸 중요시하는 작가가 있는 반면 배경들은 흐릿하게 놓아둔 채 의식의 흐름에만 집중하고 싶어 하는 작가도 있다. 이도 저도 가리지 않는 나의 성향으론 J. D. 샐린저를 좀 더 알게 된 것 같은 소설이었다. 결국 책이란 사람을 알게 되는 일이고, 한 사람을 알게 될 때마다 그를 통해 나와 세상을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라 생각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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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8-27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년 전에 제가 알라딘 중고매장에 <프래니와 주이> 구판을 구했을 땐 책이 절판된 상태였어요. 시중에 구하기 힘든 책이었어요. 새 표지, 새 번역의 책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

물고기자리 2015-08-28 11:34   좋아요 1 | URL
이 책이 좀 이상한 매력이 있는 게 같은 페이지를 다시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라져요^^ 사실 이보다 더 심오한 이야기들도 다른 책을 통해 충분히 읽을 수 있지만 남매의, 특히 주이의 말을 통해 듣는 게 굉장히 매력 있더라고요. 사실적이면서 직설적이지만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처럼 미워할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그만의 부드러움이 있거든요. 전 하루키가 추천사를 왜 저렇게 썼는지 공감하고 있어요^^ 다시 읽어 보시면 또 다른 느낌이실 거예요 ㅎ

[그장소] 2015-09-03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자기 스타일이 확실히 살아있어서 참 좋군요!^^잘 보고갑니다.^^ Agalma 님 글을
제가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이유인데..오늘 또 하나 보물을 찾은 듯하군요!^^

물고기자리 2015-09-03 14:32   좋아요 1 | URL
격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AgalmA 2015-09-07 00:17   좋아요 1 | URL
깜짝...부끄러움 뒤...어떻게 해야 될 지 몰라 ((((줄행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