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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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 그놈의 롤랑 바르트!라던 21살의 내가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잊었고 다른 책들 속에서 그 기억이 기어나왔다. 작년엔 롤랑 바르트가 등장하는 소설을 읽다가 미뤄뒀는데 이제 다시 읽어야 할 때인가 보다. 과연 다시 읽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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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평생 독신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다음날부터 쓴 메모들을 갈무리한 것이다. 글을 읽기 시작하며 텍스트에 대한 강박이 느껴졌다. 쓴다는 것에 대한 집착과 강박. 문장으로 풀어내지 않을 수 없는 강박, 문장을 쓰지 못하게 될 것에 대한 공포, 문장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집착. 그 모든 것이 롤랑 바르트에겐 애도고 슬픔인 것이다.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중간중간 어머니와의 관계가 드러나는데, 단 한번도 질책하지 않았고 아무런 거리낌이 느끼지 않게 돌봐주었으며 나의 롤랑이라고 부르며 조용한 대화들을 했다 정도? 글로만 봐선 조용하고 우아하고 다정한 완벽한 어머니임에 분명했다. 롤랑 바르트가 62세에 이르기까지 함께 했으니 존재하는 내내 어머니와 함께 했고 그 시간이 무려 60년에 이른다.
60년을 함께한 나를 온전히 받아주는 존재를 잃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로선 짐작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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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정에조차 자유롭지 못할 때가 많다. 엉엉 울면서 거울을 본다거나 분노한 상태에서 허기를 느끼고 행복해하면서도 걱정한다. 그 모순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리고 감정에 사로잡힌 상태에서도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자질구레한 일들을 해결하고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해 가장하기도 한다. 괴롭지만 잊고 싶지 않고 괜찮고 싶지만 괜찮아 지는 게 두려운 지독한 모순들을 고스란히 느낀다. 인간의 감정이란 그렇게 단순하고 명료하지 않은 것이다. 단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죽음과 삶 사이. 여기서 저기 사이의 긴밀함과 크나큰 간극. 그 모두를 감당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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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 그의 문장 자체는 어렵지 않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다만 그에 대한 해석만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너무도 학자적인 태도로 감정과 문장을 분석하고 파헤친다. 왜 꼭 그래야만 하는가. 왜 각자 그냥 느끼는 것으로 부족한가. 롤랑 바르트는 궁금하지만 역시 그를 공부하고 싶진 않다. 어쩌면 영원히 이런 식일지도 모르겠다.

#애도일기 #롤랑바르트 #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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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수첩의 여자
앙투안 로랭 지음, 양영란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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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밑줄을 발견하기 전까진 읽은 책이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다시 읽어 참 좋았다고 생각한다. 전과 같은 문장에 반응하기도 다른 문장에 매료되기도 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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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동안은 의식하지 못했는데, 작가의 이름과 주인공의 이름이 같은가? 오, 그런가? 읽는 동안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정산소종 차를 좋아한다는 문장과 주석도 나온다.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즐겁고 적당히 낭만적이다. 더군다나 다양한 작가와 작품들이 등장해서 호기심을 고양시킨다. 파트릭 모디아노나 안토니오 타부키, 말라르메까지- 자꾸 도서목록을 추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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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사건에서 시작되어 지극히 낭만적인 사랑이야기로 끝나지만 진부하진 않다. 여전히 사랑에 대한 환상을 품을 수 있다는 것 또한 반가웠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큰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 이유로 다시 읽길 참 잘했다고 둔한 기억력을 칭찬해본다.

#빨간수첩의여자 #앙투안로랭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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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세상을 만나다 카르페디엠 20
시게마츠 키요시 지음, 오유리 옮김 / 양철북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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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서 어린 시절의 내 마음을 자꾸 끄집어 내곤 한다. 저럴 때 내 마음은 어땠던가, 나는 무엇에 상처받고 무엇에 감동했던가를 자꾸 되새긴다. 이미 어른인 내 시선이 아닌 어린시절의 내 시선으로 아이를 이해하려 노력해본다. 그래봐야 지레짐작이고 그때와 요즘은 너무 다르다. 그만큼 많이 달라졌다. 옛날 생각만 해선 안된다. 그래도 덕분에 어린 시절의 상처들을 마주하고 조금쯤 더 자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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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일본 청소년의 시각으로 그려진 이 소설이 내 청소년기와는 너무도 달랐다. 아마 한국의 2000년대쯤 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 중학생인 아이는 또 다르다. 그래도 나 보다는 아이와 더 기깝게 느껴졌다. 그만큼 솔직하게 씌여진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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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청소년기에 국한되는 이야기라 보기도 어렵다. 몸은 자라도 마음이나 생각은 안자라는 경우도 많다. 민망하고 창피해서 쿨하지 못해서 요즘말로는 쪽팔려서(언젠가 이 단어를 사용했더니 아이가 놀랐다. 그런 말도 할 줄 아냐고- 물론 안다. 더한 말도 잘 알지. 조심할 뿐-) 중요한 것들을 외면한다. 아니 생각하는 것도 차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느 시기엔 어떤 것이 모든 가치와 기준을 뛰어넘기도 한다. 그 역시 당연하다. 그에 대한 잔소리는 지금은 그렇더라도 단언하진 말자 정도 일뿐. 뭐라고 하든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 역시 그렇고 요즘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아이에게 어른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것은 폭력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슬슬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더 중요한 것들이 생기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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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 선의와 악의에 대해 누가 확실한 대답을 줄 수 있을까. 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사회적 함의와 교육으로 방법을 제시할 순 있을 것이다. 욕구와 충동이 모두 선하고 건전하고 바람직할 리는 없다. 아주 사소한 일로 살의를 느끼기도 하고 격렬한 파괴 욕구가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법과 도덕이라는 이름은 때에 따라선 꽤 멀다. 내 안의 욕구나 충동은 순간의 일인데, 법과 도덕은 저만치에 있다. 인간에겐 스스로를 잘 조절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욕구를 조절하고 충동을 대체하고 그 에너지를 변화시키기 위한 방법이 필요하고 그것을 훈련해야 한다. 이렇게 글자로 풀어쓰면 대단한 것 같지만 실제로 일상에서 빈번히 마주한다. 다만 좀 더 의지적이고 명확한 기준이 있는가의 차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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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말을 내뱉어도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의 마음이다. 각자의 마음 속 상처나 고통에 반응하고 잘 대처하는 것, 몸을 튼튼히 하는 것처럼 마음을 튼튼히 하는 것이 아닐까.
성장과 교육은 기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기준을 잘 만들 수 있도록 나 자신의 기준 역시 재확인 중이다. 대단하고 훌륭한 인간 이전에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좀 더 자라야 하고, 아이도 잘 자라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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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캐롤 오츠 : 작가의 신념 - 삶, 기술, 예술 위대한 생각 시리즈 8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송경아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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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국에 살고 있고 한국어에 의존?하는-)가 알고 있는 작가와 모르는 작가 사이. 이름은 들어본 것도 같은(사실 엇비슷한 이름이 많아서-) 작가지만 이 글을 통해 관심이 생겼다. 작가의 신념 혹은 글쓰기에 대해서는 모르겠으나 덕분에 좋은 작가와 좋은 문장과 좋은 이야기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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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자질은 과연 무엇일까?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있음에도 쓰는 것을 두려워하곤 한다. 이렇게 끼적거리는 것 외엔 불가능하게 여겨진다. 시의 함축적인 언어나 운율을 읽고 감동하지만 나는 시를 쓸 수가 없고 소설의 서사와 인물과 주제를 동경하지만 역부족이다. 작가로서의 자질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 독자로서의 자질이라도 갖추고 싶을 뿐. 하지만 독자로서의 자질이란 무엇인가. 그저 즐겁게 읽는 것 외엔 잘 모르겠다. 입력만 존재하고 출력이 존재하지 않는 일방통행이라 아쉬움을 남긴 채 적당히 타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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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이런 책들을 통해 작가를 엿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 정도만도 내겐 벅차다.

#작가의신념 #조이스캐롤오츠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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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혹은 그림자 - 호퍼의 그림에서 탄생한 빛과 어둠의 이야기
로런스 블록 외 지음, 로런스 블록 엮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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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잘 모른다. 빛을 잘 쓰는 화가? 물론 시대는 다르지만 인상파 화가들처럼 빛을 잘 쓴다고 하지만 내 인상은 음영을 잘 다룬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자못 극적이고 이야기의 한 부분같은 인상을 준다. 아마 그것이 이런 기획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호퍼의 그림 한 점에서 각 작가들이 끌어낸 이야기가 담겨있다. 각 작가의 특징이 살아있다. 이런 기획을 할 수 있다는 것, 유명한 작가들이 참여했다는 것에서 예술은 일정 부분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책은 두툼하지만 짧은 이야기 여럿이라 부담없이 슬렁슬렁 읽었다. 한 작가의 단편집과 여러 작가의 단편 모음집은 조금 다르다. 어느 이야기가 가장 재밌었나는 읽은 이에 따라 모두 다를만큼 각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어떤 그림 한 점을 걸어두고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만큼의 상상력을 갖고 싶다. 그 이야기가 온전히 완성될 수 있을 만큼의 문장력을 갖고 싶다. 그림도 이야기도 기획도 모두 근사해서 읽는 동안 두루 즐거웠다.

#빛혹은그림자 #에드워드호퍼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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