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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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복잡다단하고 미묘한 심사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한없이 우울해진다. 물론 한가닥 희망과 긍정을 포기할 순 없다. 다만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에 좌절하고 마는 것이다. 답은 없다. 아니 저마다의 답이 있겠지만 그것을 정답이라고 확정지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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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의 잔인함만을 그린 소설은 아니다. 그 곳에 속해 있던 많은 인물들의 갈등과 혼란에 대한 이야기 일수도 있고 인간이 어떤 기점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그린 이야기일수도 있겠다. 다만 그 참상이 참상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너무도 부족하고 참담하다는 것에 대해 그 잔임함에 놀라게 된다. 그저 눈감고 귀막고 안보고 안들을 수 있길 바라게 된다. 직접 겪은 이들의 마음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간접 경험 만으로도 너무 괴롭고 지친다. 잔임함보다 더한 생명력에도 질리고 만다. 그렇게까지 우리는 살고 싶은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는다. 도리고도 나카무라도 살아남았지만 그 순간들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다. 삶 전체를 뒤흔들고 가치관을 뿌리뽑는 그런 처절한 순간들은 인간을 쉽게 놔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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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할 수 없는 심경의 변화들이 나를 휘청거리게 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사이엔 크나큰 장벽이 존재한다. 어떤 경우는 결코 뛰어넘지 못하기도 한다. 너무 거대하고 잔인한 이야기에도 살아가는 인간들과 그 속의 상처에 대해 짐작할 수 없다. 그저 아프고 아프고 아플 뿐이다. 안녕한 하루는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 일을 겪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그 안도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을 붙잡는 그들의 손아귀가 좀 더 굳세기를 바란다. 더불어 돌이킬 수는 없어도 다음 기회가 있다고, 인간이란 언제든 변할 수 있다고 용서받지 못해도 용서받기 위한 노력은 값지다고 말하고 싶다.

#먼북으로가는좁은길 #리처드플래니건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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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빛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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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식의 말장난과 비유들. 그리고 알 듯 모를 듯한 주제들. 어딘지 애매하고 모호해서 단정할 수 없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왜 좋은지 물어도 대답하기 어렵다. 음, 그러니까...하고 몇 번 쯤 더 생각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뭐라고 해야할지 도통 알 수 없다. 그냥 좀 좋아한다. 로맹 가리란 이름으로 출판한 글도 에밀 아자르란 이름으로 출판한 글도 좋아한다. 그의 삶을 보자면 또다시 말줄임표를 적극 활용할 수 밖엔 없다. 그저 파란만장하고 대단하더라 정도로 어물쩡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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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여자의 빛’이라는 제목부터 몹시 거슬렸는데도 로맹 가리니까 하며 구입했다. 이 이상한 줄거리는 꼭 말하고 싶다. 너무 행복하고 잘 어울렸던 두 사람 중 여자가 죽을 병에 걸리고 더는 견딜 수 없어 죽음을 택한다. 그리고 그 죽음을 실행하기 전에 남자를 내쫓는다. 그 남자는 멀리 떠나지도 못하고 그 실행을 그저 기다린다. 아니 그저 기다리는 것은 아니고 그 사이 누굴 만나게 된다. 어떤 여자. 불의의 사고로 아이를 잃고 남편마저 병에 걸린다. 그리고 더는 그 남편을 사랑할 수 없어서 둘 모두 죽었다고 말하는 여자를 만난다. 그저 사고와 해프닝일 수도 있는 그 만남이 이 책의 내용이다. 하룻밤. 너무도 사랑해서 종교처럼 여겼던 여자가 죽어가는 동안의 시간. 그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알리바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아내와 합의한 내용이라고 말한다. 이상한 이해하기 힘들면서 얼마쯤 알겠기도 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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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이에 죽음이 끼어들고 그것을 각자의 방식대로 받아들이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흔치 않은 이야기지만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상식선에서 자꾸 생각하다보면 이상하다 여기다가 남자의 정신나간(?) 태도에 납득하고 만다. 아무래도 제대로 미쳐있는 하룻밤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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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빛이지만 사랑의 빛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작가도 역자도 말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을 만나면 상식이나 논리나 이성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맹목적이고 혼란스러운 기이한 상태. 자신의 상태와 감각을 제대로 인식하기도 어렵다. 그저 움직이고 있을 뿐, 여자가 원했던 대로. 분단히 움직인다. 동참해 줄 상대를 단번에 알아낸다. 그건 분명 첫눈에 반하는 것과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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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상하고 이상하고 이상한 이야기 속에도 그 감정이 녹아있다. 오히려 더 짙게 드러난다. 그래서 결국 끄덕끄덕 하고 말았다. 적당히 사랑하자. 인간의 범위 안에서 정신을 잃더라도 금새 회복할 수 있을 만큼. 사랑을 종교 삼지는 말자.

#여자의빛 #로맹가리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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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레이라가 주장하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2
안토니오 타부키 지음, 이승수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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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까지 읽고 나니 이 모든 이야기가 실잰가 싶어졌다. 그리고 중간에 성장기 청소년에게 줄거리를 들려줬다. 그녀석 표현에 의하면 ‘짠하다’고 했다. 그래, 이 이야기는 짠하다. 슬프고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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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유럽은 판타지적인 필터를 통해서일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이 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 삶과 세상과 정치와 이상과 충돌과 슬픔과 분노... 모든 감정이 있다. 물리적인 거리감과 세계사 시간의 기억이 더해진다. 거기에 좀 더 적극적으로 쟁취한 자유와 복지로 머나먼 여기에선 그곳이 유토피아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굵직하고 참혹한 전쟁들 사이의 삶에 대해 몰랐다. 정치적 현실따위 알 리 없었다. 내가 알게된 것은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소설을 통해서 였고 이 책 역시 그들의 그 때를 너무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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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하의 민주화운동, 그 맥락을 생각하면 그들의 희생에 너무 아프고 민감한 나는 분노하고 만다. 하지만 너무나 먼 포루투갈의 이야기 였기에 슬펐다. 그렇게 죽고 도망치고 숨고 입을 닫고 고개를 숙이고 자꾸 주변을 살피며 사는 사람들. 공포에 휘둘리고 불신에 날카로워지는 사람들의 일상. 상상할 수 있을까? 잠깐의 불편함도 견디기 힘든 우리가 그것들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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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슬펐다. 죽은 아내의 사진에 말을 거는 페레이라도 죽음보다 삶에 더 관심이 많은 몬테이루 로시도 금발의 깡마른 어깨를 가진 마르타도 프랑스로 떠난 카르도주 박사도 바빠서 고해를 들을 시간도 없는 안토니우 신부도 포트와인을 전하는 마누엘도 모두 슬프기만 했다. 그 슬픔 가운데 다짐해본다.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마음의 원칙을 붙잡고 살겠다고 눈을 크게 뜨겠다고. 우리는 역사를 살고 있다고. 지금이 괜찮은 역사가 되는 것은 눈을 크게 뜨고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 덕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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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분강개하는 마음으로 집어든 책이었다. 분노를 다스릴 요량이었다. 그래, 마지막에 남는 것은 연민이고 다행히 나는 인간답기를 소망한다.
#페레이라가주장하다 #안토니오타부키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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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트레인 - 센세이셔널한 예술가 패티 스미스의 마음 기록
패티 스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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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구입하고 미뤄뒀다. 가수이자 시인이래도 좋고 엉뚱한 활동가래도 좋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녀의 음색과 흐트러진 머리칼의 젊은 시절이고 그마저도 기억에 시간이 더해져 희미한데도 어쩐지 구입할 수 밖에 없었다. 반가워서 덥석 집어들고 말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왜 이제야 읽었나가 속상할 정도다. 초반부터 울고 웃고 마음이 바쁘고 신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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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귀여운 분이 내 어머니 연배라는 것에 새삼 놀라고 그래도 여전한 사랑스러움에 감탄했다. 아, 나는 저렇게 나이들고 싶지만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너무도 부족하다. 어디선가 에너지를 끌어와 급속 충전하고 싶다. 여벌의 배터리도 챙겨서 급하고 바쁜 마음처럼 움직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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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의 말에서 생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생존자. 이 단어가 주는 엄청난 충격과 현재 숨쉬는 우리 모두가 생존자라는 괴리가 주는 안도감. 제멋대로라도 나쁘지 않다고 나를 보라고 말하는 듯한 패티 스미스의 사랑스러움이 너무 반가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욕구일지도 모른다. 혹은 바람이나 소망이라고 해도 좋겠다. 움직이거나 생각하거나 집착하고 충동적으로 구는 것, 누구의 이해나 간섭도 필요없이 좋아하는 것들에 빠지는 것.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소망과 충동들이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들이 행동으로 이어져 삶 곳곳에 스밀 때 우리는 충만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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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모든 감정을 느끼며 행복했다. 내게는 참 고맙고 다정한 책이다. 그녀가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책들을 나도 읽었다는 것이 뿌듯하다.
#M트레인 #패티스미스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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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발라드 제4번
로베르토 코트로네오 지음, 최자윤 옮김 / 북캐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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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글렌 굴드를 언급할 때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몰락하는 자’가 자꾸 떠올랐다. 종종 온다 리쿠의 ‘꿀벌과 천둥’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동안 피아니스트에 대한 책들을 읽어온 것이 주관적이고 편협한 내 읽기에 색을 더했고 그 색들 덕에 더 즐겁게 이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역시 읽는 것은 좋다. 좋다고 할 밖에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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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와 결말이었다. 그렇다고 흥미진진했냐 물으면 그건 분명 아니다. 지루한 것도 아니고 묘한 속도감과 리듬감을 느꼈는데, 발랄하고 흥미진진하고 어딘가 매력적이어서라기 보다는 BGM같은 게 아니었나 싶다. 들리다가 말다가 하지만 거슬리진 않고 내 취향인지 아닌지 알 듯 모를 듯한 기분으로 온종일 듣게 되는 그런 배경음악 같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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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 주인공시점인데 이제 늙어버린 천재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이다. 늙었지만 여전히 연주자로서 인정받고 있고 자칭 타칭 공인된 천재다. 그 오만한 태도가 내내 드러나는 데, 그 정도면 오만보다는 아무렇지 않은 뻔뻔함이라니 하는 생각에 신기하기까지 했다. 등장하는 음악과 연주자들에 잠깐씩 멈추기도 하고 청각적 호기심을 품기도 하면서 어쩐지 줄다리기 하는 심정으로 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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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전개와 문체, 속도감 등이 이 글이 이상한 매력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주제는 음악이 아니더라. 음악을 이용해 전달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다. 계속 갸우뚱거리며 책장을 덮을 수 밖엔 없었다. 좋고 나쁘고를 말하기도 애매하고 재미하냐 지루하냐를 말하기도 애매하다. 어딘지 어둡지만 아름다운 음악이 들이는 미로를 헤메다 온 기분이다.

#쇼팽발라드제4번 #로제르토코트로네오 #북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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