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 망태버섯이다. 아침 산책길에서 만났다.

망사같은 그물을 펴기 위해 밤부터 새벽에 걸쳐 폈다가

2시간 정도 머문다고 한다.

 

망태버섯은 그물모양이 새끼나 노끈으로 엮어 만든 망태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외국에서는 드레스를 입은 신부같다고 해서 드레스 버섯이라고도 불린단다.

 

여름에서 가을 사이 잡목 숲에서 자라는데 금방 사그라들기 때문에

마음 착한 사람 눈에만 띈다는 말이 있다니

그럼 나도? 은근 기분이 좋다.

 

망태버섯은 야하다. 망사 치마를 두른 아가씨같다. 망사치마 사이로 하얀 속살이 비친다. 몸매가 드러난다.

망태버섯보다 망사버섯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너무 야한가?

 

미니 스커트보다  

옆트임이 깊은 롱스커트가 더 섹시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더 에로틱한 게 잠자리 날개옷이라 부르는 모시 한복을 입은 여인의 자태다.체형을 다 감싸고도 우아함과 기품이 있으며 속이 훤히 보이되 천박하지 않는 섹시함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여름에는 저녁을

 

           오규원시인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마당 위에는
멍석
멍석 위에는
환한 달빛
달빛을 깔고
저녁을 먹는다

숲 속에서는
바람이 잠들고
마을에서는
지붕이 잠들고

들에는 잔잔한 달빛
들에는
봄의 발자국처럼
잔잔한
풀잎들

마음도
달빛에 잠기고
밥상도
달빛에 잠기고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밥그릇 안에까지
가득 차는 달빛

아! 달빛을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마음대로 詩 해독解讀> 오규원 시인이 여름밤 풍경을 멋스럽게 그려 놓았다. 시인은 가고 없는데 시는 남아서 하냥 비추는 달빛처럼 마음을 교교하게 만든다.

시를 읽고 있으면 옛날이 돌아온다. 마당에 멍석이 깔리고 마당 한 켠에 모깃불이 피워지고 식구들이 멍석위에 모이고 도란도란 앉아 저녁을 먹는 풍경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달빛아래 생풀 타는 냄새가 그들먹하면 팔베개하고 누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시간들이 있었지. 여름 달빛은 맺혔던 마음을 풀어주고 달빛숭배자가 되게 한다. 시인은 가고 없는데 시는 남아서 지난한 여름을 잘 살아보라 하는 것 같다. 초저녁 하늘도 한번 올려다보고 달빛에 잠겨도 보며 살아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정 문학과지성 시인선 468
배용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시집을 손에 들고 한 편 한 편 읽다보면 시인이 보인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인간을 연구하는 사람인지. 노래 부르기를 즐겨하는지. 생각이 많은지 시의 결에서 언뜻언뜻 보인다.

 

이 시집에도 그 언뜻언뜻이 보인다. 바람의 집이다. 이 시집의 주인은 바람이다. 그안에는 바람이 산다. 잠들어 있는 바람, 고요한 듯해도 속에선 들끓는 바람, 비를 부르는 바람, 해를 반기는 바람, 인간의 형상을 한 바람들이 사는 집이다.

 

 궂이 말하자면 나는 시를 읽는 게 아니라 '바람'을 따라 가는 중이다. 비가 퍼 붓는날 서점을 가고 그 많던 시집 코너에서 이걸 고르는 순간 바람에 감염되었는지도 모르지.

 

삶에서 바람은 위태롭다가도 사그라지는 불씨를 향한 풀무질 같은 것 인지도 모른다.

거미줄에 맺힌 이슬처럼 사정없이 휘둘리다가 흔적없이 사라지는 한이 있어도 한번쯤 걸어볼 만한 모험이다.

 

시인이 결마다 숨겨 놓은 바람은 불안이었다가 잊고 지내는 사람에게 묻고 싶은 안부기도 하다.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것 같지만 이미 나무가 떨고 있는 것이다. 나무가 술렁일 때 바람을 보았다고 하는 시선처럼 때로는 그림으로 때로는 소리로 무수한 바람을 기억한다.

 

이 바람의 집에는 아파하고 외롭고 떠돌았던 생의 무수한 발자국들이 남아 있다. 그 흔적을 따라 가면 그동안 흘려 보냈던 온갖 슬픔의 종류들이 어지러운 흔적으로 남아 있는 듯하다.

 

삶의 외형은 다르지만 '외부에서 내부로 내부에서 외부'로 휘둘리며 살아가느라 드리운 그림자들. 아무래도 시인은 전생에 바람을 관장하는 신이 아니었을까. 수면위에 잠든 연꽃을 지나 거미줄에 거미를 지나 마침내 바람의 사원으로11년만에 돌아와 바람의 내부까지 관장하고 있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 이 정도는 돼야 짜릿하고 스릴 넘치고 통쾌하지.

 속이 다 시원하고 쳇기가 내려가는 듯한 영화.

 

휴가 때 짝꿍이랑 <암살>에 이어 두번째로 본 영화<베테랑> 느낌이다.

 

한번 촉이 꽂히면 불도저처럼 밀어 부치는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황정민>

느물느물 경륜 있는 팀장 오달수, 서툴지만 봐줄만한 미스봉<장윤주>의 연기까지 쉴새없는 발차기,순식간에 날리는 잽

배우들의 개성을 잘 살린 연기, 보는 동안 몰입감 최고다.

 

영화는 처음부터 박진감 넘친다.

보여주는 장면마다 빠르고 경쾌하다.

거침없는 장면마다 리얼하고 생생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심장이 쿵쾅쿵쾅,...


류승완 감독 영화가 원래 이랬나. 자신감이 철철 넘친다. 사회 부조리에 대항하는 이들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 신이 난다. 거기다 오달수 특유의 유머와 분위기를 이어주는 노련한 리듬감이 영화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거기다 놀란 건 유아인의 연기다. 맑디 맑은 얼굴의 악인이라. 인간성은 찾아 볼래야 도저히 볼 수 없는 악역을 소화해내는지. 괴물같은 재벌 3세의 조태오역이 소름 돋는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무더위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하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 - 열여섯 소년, 거장 보르헤스와 함께 책을 읽다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수정 옮김 / 산책자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저녁에 시간 있으면 집에 와 책을 읽어 줄 수 있겠나?"

 

 방과후 서점에서 일하는 열 여섯 소년에게 단골인 65살 노인이 다가와 말한다. 그 노인은 바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당시 보르헤스는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고, 그토록 좋아하는 책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상태였다.


아무하고도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하던 소년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알베르토 망구엘. 산책자. 2007) 은 저술가인자 독서가인 알베르토 망구엘이 십대 시절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만나고  난 뒤 자신의 책에 대한 시선과 정신적 성장을 그려 놓은 책이다. 두 사람의 만남이 책장과 책장 사이에 머무르게 한다.

장석주 시인도 그의 산문집 지면에 두 사람의 얘기를 소개한다.​

 

"국립 도서관장을 지낸 보르헤스에게  피그말리온 서점 알바생 소년 망구엘은 책 읽어 주는 사람으로 발탁된다. 그의 서재에서  열 여섯 소년이 책을 읽으면 보르헤스는 눈을 감고 조용히 경청했다. 훗날 망구엘은 보르헤스를 이렇게 기억해 낸다." 보르헤스에게 현실의 정수는 책 속에 있었다. 책을 읽고, 책을 쓰고  책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알맹이였다. 그는 수천 년전에 시작돼서 한번도 끝난 적이 없는 대화를 이러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인식했다."<장석주 산문집"도마뱀은 꼬리에 덧칠할 물감을 어디에서 구할까.">

 

“하지만 보르헤스와 나누는 대화는 내가 생각하기에 모름지기 대화란 그래야 하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책에 대해, 책의 태엽 장치에 대해 그리고 내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가들과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들, 또는 확신 없이 직관적으로 얼핏 스쳐갔던 것들을 보르헤스의 목소리로 들으면 그 짙고도 명백한 광채 속에서 그것들은 찬란하게 반짝였다. 기록 같은 건 하지 않았는데, 그와 마주 앉은 저녁 시간이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만족스러웠다.”12~13쪽

 

"서른 살부터 서서히 진행되다가 쉰여덟 번째 생일을 치른 후에 완전히 자리를 잡은 그의 실명은 독특한 것이었다. 하지만 눈이 멀어 세상을 떠난 영국계 증조부와 조부에게서 약한 시력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늘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예견된 실명이기도 했다. (…) 보르헤스는 자신의 실명을 자주 거론했는데, 주로 문학적인 차원에서였다. 자신에게 ‘책과 어둠’을 주신 ‘신의 아이러니’를 거론한 것은 유명하고, 호머나 밀턴 같은 역사 속의 유명한 장님 시인을 들먹였으며, 자신이 호세 마르몰에 이어 눈이 먼 세 번째 국립도서관장이라는 얘기를 할 때는 미신적이었다.15쪽

 

 "우주를 도서관이라고 부르고 낙원을 ‘도서관의 형태로’ 상상한다고 실토한 사람의 서재치고는 그 규모가 실망스러웠는데, 어떤 시에서도 말했듯이 언어란 단지 ‘지혜를 모사(模寫)’할 수 있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책이 넘치는 공간, 책으로 터져나갈 것 같은 책장, 원고더미가 길을 막고 빈 틈새마다 빼곡한 잉크와 종이의 정글을 기대했다. 그런데 정작 와서 보면 몇 귀퉁이에만 얌전하게 책이 꽂혀 있었다."27쪽

 

 

"있잖니, 눈이 멀지 않은 시늉을 하며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처럼 책을 탐독하고 싶어. 새로 나온 백과사전이 얼마나 갖고 싶은지 몰라. 지도의 강줄기를 따라가고 수많은 항목에서 놀라운 내용들을 찾아내는 상상을 한단다.”"28쪽

보르헤스의 방은 평범했다. 철제 침대와 의자 하나, 작은 책상과 나지막한 책꽂이 두 개가 전부였다. 그의 세계는 오롯이 언어로 채워졌고, 음악과 색과 형상은 좀처럼 그 세계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특히 그림을 보는 눈과 음악을 듣는 귀가 없었다. 브람스를 존경한다고 했지만, 그의 음악은 듣지 않았다. 탱고와 밀롱가를 흥얼거리기도 했지만, 탱고를 지나치게 예술화시킨 피아졸라는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재즈가 좋다고 했고, 영화 를 높이 평가했다.

 

가끔은 그가 직접 선반에서 책을 고르기도 한다. 어떤책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서, 어김없이 그곳으로 간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곳 예를 들어서 외국에 갔다가 책방에 들를 때가 있는데 ,거기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어쩐지 소름이 돋는다. 보르헤스는 모형지도의 울퉁불퉁한 표면을 훑듯 이 책등을 어루만진다. 그곳의 지형을 알지는 못해도 살갗으로 지리를 읽는 것같다. 한번도 펼쳐본 적이 없는 책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면 뭐랄까. 장관의 직관 같은 것이 지금 만지는 책의 내용을 알려주는 지 분명히 눈으론느 읽을 수 없는 그책의 제목과 이름을 판독해 낸다."35~36쪽

보르헤스의 또 다른 전복은 모든 책은, 어떤 책이건, 다른 모든 책들의 전망을 자동적으로나 지적으로 품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보르헤스는 이 생각을 극한으로 추구할 수 있다면, 그게 사실이라고 믿었다. 글이라는 건 결국 자모 스물네 개(언어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겠지만)의 조합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모들의 무한한 조합은 상상할 수 있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책이 꽂힌 완벽한 도서관을 제공한다. (87쪽)

그는 모든 허약함에도 불구하고 글을 신뢰했고, 직접 시범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글을 읽는 우리 독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우주라고 부르는 무한한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알려주었다. (97쪽)

망구엘은 4년동안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책 읽기, 글쓰기에 대해 탐닉하게 된다. 보르헤스와 함께 책을 읽고 통해 정신적으로 성숙해졌고, 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달라졌다고 말하는 망구엘이 그의 인생에서 보르헤스는 거대한 산이 아닐까.

이 책을 읽다보면 낯선 작가 보르헤스가 좀더 가깝게 느껴지고 그의  문학이 궁금해지게 한다.  작가들에게 그들만의 문체가 있다면 그의 문체는 '보르헤스적'이다. 보르헤스를 통해서 한편 망구엘을 본다.

 

 


 


"저녁에 시간 있으면 집에 와 책을 읽어 줄 수 있겠나?"
"있잖니, 눈이 멀지 않은 시늉을 하며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처럼 책을 탐독하고 싶어. 새로 나온 백과사전이 얼마나 갖고 싶은지 몰라. 지도의 강줄기를 따라가고 수많은 항목에서 놀라운 내용들을 찾아내는 상상을 한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