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자 - 소중한 것은 한 글자로 되어 있다
정철 지음, 어진선 그림 / 허밍버드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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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와 연필을 좋아하고 글은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쓰는 것이라고 말하며 빨리 가는 사람을 보면 왠지 쉬어 가라고 옷자락을 잡을 것 같은 사람이 있다.

 

<한 글자>(허밍 버드. 2014)는 카피라이터 정철이 262 가지 한 글자에 소중한 사람살이를 담아 보여준다. 한 글자를 추려놓고 오래 들여다보며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게 맞춤하게 담아낸 글 바구니엔  세상살이의 묘안이 가득하다.

 

글자 하나에 생각과 마음을 담은 차림표를 보면 놀랄 것이다. 세상에 우리가 쓰고 있는 한 글자가 이렇게나 많았나 하고 말이다.

 

뒤 옷 산 꽃 연 씨 봄 첫 팔 답 것 A  뒤 옷 산 꽃 씨 봄 첫 팔 답 것 돈 적 일 신 뼈 똥 공 방 쿨 잠 벼 삶 겁 헛 꿈 반 낮 곳 탑 늘 밭 띠 늪 덫 생 약 컵 과 흠 하 귀 깃 효 다 뜻,....

 

씨앗 같은 글자 하나하나마다 카피라이터인 저자의 사유와 통찰력이 빛을 발한다.

 

"철- 아빠를 아버지라고 부를대부터 철이 드는 게 아니다. 아버지를 다시 아빠라고 부르고 싶은 순간부터 철이 든다. 숲- 숲을 보려면 숲을 보지 마세요. 숲을 보지 말고  나무 하나하나 의 사연을 더한 것이 숲입니다. 사람을 알고 싶으면  사람들을 만나지 마세요. 사람들을 만나지 말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세요."

 

"톱- 톱은 단칼에 나무를 자르지 않는다. 수십 개의 톱니로 수십 번 왕복하여 나무 하나를 겨우 토막낸다. 그래야 나무의 자존심이 상처받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의 자존심을 잘라야 한다면 칼이 아니라 톱이 되어야 한다."

 

책장마다 광고 카피 같은 구절은 한 호흡을 쉬게 한다. 그렇지 않고는 말의 결을 어루만질 수 없다. 눈코 뜰 새 없이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으니 이 즈음에서 쉬어가라고 하는 것 같다. 저자의 호흡 따라 가만가만 따라 하다 보면 그 안에 소중한 것들이 가득하다. 그동안 우리가 소중한 것을 얼마나 놓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한눈 팔고 해찰하면 큰 일 나는 걸로 알고 살아왔고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가르침 아래 앞사람의 뒤꼭지만 보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세상은 더러 삐딱한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다르게 봐야 새로운 길이 보인다.

 

 항- 어항에 갇힌 물고기가 억울할까요. 덩달아 갇힌 물이 억울할까요? 수요일 하루쯤은 수항이라 불러 줍시다. 회- 우리는 생선회를 먼저 먹은 후에 매운탕을 먹는다. 날 것을 먼저 먹고 익힌 것을 먹는다. 지식도 그렇게 먹어야 한다. 익힌 지식, 삶은 지식, 끓인 지식보다 날 것을 먼저 먹어야 한다.

 

 날 지식은 도서관이나 박물관에는 없다. 할머니의 느릿한 말속에, 계절의 바쁜 변화 속에, 개미의 복잡한 동선 속에 살아 있다. 우리는 이 말 지식을 지혜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세상 모든 지식은 지혜를 먼저 먹은 후에 먹어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다."(209쪽)

 

 저자의 말대로라면 한 글자로 된 말의 의미만 잘 살펴도 삶에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가지나 가르침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특히 어렵지 않고 짧고 정갈해서 공부에 지친 아이들에게 권할만 하다 뇌도 쉬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생각과 사유가 정도를 맛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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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보는 색색의 헝겊 조각을 잇고 덧대어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각보는 한 점 예술품이다. 조각보는 집안의 귀한 물건을 싸 두거나  선물을 담아 예쁘게 묶어 보내곤 했다. 이 책<난,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위즈덤하우스. 2014)이 그렇다. 한 편 한 편의 글이 색 고운 조각천 같다.  일상의 낱말로 직조된 문장들이 시처럼 유려하고 에세이처럼 보풀보풀 설렘 속에 읽힌다.

 

부드럽고 섬세한 바느질로 완성한 조각보처럼 시인의 감성으로 사이, 마음, 책, 독서, 삶이라는 키워드를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꿰매 완성했다. 이 삶의 이야기는 '이동진의 빨간 책방'의 문을 여는 오프닝 멘트이다. 귀 기울여 듣다 보면 편안하고 쉬운 말들이 때로는 시처럼 와 닿아 편안함에 기대어 한없이 기울어지다가, 나의 삶을, 더러는 나의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워지게 만든다.

 

책은 살아가면서 지치거나 쉽게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주듯 따뜻한 언어와 언어 사이에 온기가 있다. 그것이 전해지는 순간 위로받는 느낌이다. 더러는 무덤덤한 사람도 그 자체로 보아주면서 그의 가슴에 시나브로 즐거움의 리듬을 만들어준다. 시인이 찍은 사진과 다정한 문장들은 소박하지만 그녀만의 무늬와 울림이 있다.

 

"손은 토닥입니다. 손은 어루만집니다. 손은 쓰다듬어 줍니다.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감싸고, 다독이고,.... 손이 하는 무수한 일 가운데 이런 것들이 있다는 걸 잊어버린 사람처럼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머리를 빗어 주는 일, 단추를 여며 주는 일, 눈물을 닦아 주고  박수를 쳐주는 일, 이런 사소한 동작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뒷짐을 풀어 깍지를 껴 봅니다. 팔짱을 풀어 어깨를 감싸 줍니다."(64쪽) 

 

장미꽃은 장미꽃만의 향기가 있고 라일락은 라일락만의 은은한 향기를 품었듯 가장 소박한 말과 말로 이루어진 문장은 마음의 빗장을 풀게한다. 뜨겁지 않으면서도 꽁꽁 언 마음을 녹여준다. 그런가 하면 저자는 곁에서 재미있는 책을 읽어주듯 삶을 조근조근 얘기한다. ' 한 작가가 즐겨 쓰는 단어들은 그의 세계를 엿볼 수 있고 은연중 자주 쓰는 말들이 다른 사람에게 나를 누설하는 단서가 된다는 조언에 고개가 수긋해지기도 한다.

 

이처럼 책에는 독서를 통해서 시인이 들려주는 지혜,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 나뭇잎 한 잎, 종이 한 장에서도 자연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찬찬히 읽어내게 만든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읽어내는 것에는 독서와 사람이 살아가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설가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라면 시인은 이동진 작가의 말마따나 '말의 먼지를 털어 조심스레 그 말을 캐 주는 사람이 아닐까.

 

그동안 시인이 캐낸 아름다운 말들을 받아 적느라 썼다 지웠다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형형 색색 조각보를 곁에 두고 보듯, 한 편 한 편 행간에서 머무르며 때로는 꽃으로 또 때로는 나무로 살고 싶다고 시인에게 서슴서슴 친한 척 말을 걸고 싶다. 다음에 나올 시집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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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한 인생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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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더위다. 그래서 올빼미처럼 밤에만 움직이고 낮에는 그늘 속에  숨는다. 더위를 피해 하릴없는 사람처럼 책으로 시간을 죽인다. 이 순간도  시간은 가까스로 넘어가는 책장처럼 더디게 가지만, 그러다 보면 여름도 가을 앞에 무릎을 꿇겠지. 은희경 소설< 태연함 인생>은 사흘에 걸쳐 읽었다. 이 책이 내게는 그녀 작품 중 다섯 번째? 아니 여섯 번째 책인가 그렇다.

 

아직 그녀 책을 다 읽어 보진 못했지만 지금까지 읽은 책에 대해 말하면 촌스럽게도 '좋다' 다. 그 이유는 문장이 섬세하지만 중언부언하지 않고 깔끔하다. 특히 소설 속 인물 묘사가 그렇다. 읽는 이로 하여금 정확히 이해시킨다. 이 책에서는 인간에 대한 삶, 사랑, 고독을 표현하는데 그 안으로 빠져들게 하면서도 결국엔 밖으로 나와 내면을 보게 만든다.

 

사랑하면 뼛속까지 더 외롭고 고통이라는 말의 무게를 어느 정도 느끼게 해 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그렇잖아도 책 읽는 속도가 느린데 밑줄 긋듯 포스트잇을 붙여 가며 읽었다. 지금 읽고 있는 <중국식 룰렛>을 다 보게 되면 '좋다'라는 말 앞에 '참'이라는 명사를 붙여 주지 않을까.

 

"그녀는 공중전화 부스의 유리에 기댄 채 통화를 하고 있었다. 가냘픈 몸매에 물방울무늬가 들어간 연녹색 원피스와 흰 스웨터 차림이었다. 한 손으로 전화기를 귀에 대고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그녀의 얼굴은 희고 투명했다. 옆구리에는 책과 노트를 끼고 있었다. 속눈썹이 긴 그녀의 눈은 꿈꾸듯 먼 허공을 보았고 입술은 장미 꽃잎처럼 윤기가 흘렀다. 상아로 깎은 듯한 턱이 살짝 위로 들려서 목선을 한층 우아하게 만들어 주었다. 두 뺨은 복숭앗빛으로 물들어 있었는데 말을 할 때마다 그 위로 검은 단발머리가 조금씩 출렁거렸다. 그녀는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그녀는 밤색 구두의 앞부리를 들고 굽으로 톡톡 쳤다." (8~9쪽)

 

"그 침전물이 고통이 아니라 고독이었다는 걸 류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가난한 유학생이 외국인의 입주 가정부가 되어서 창 밖을 바라보며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던 어떤 여름 오후. 스러지는 햇빛 아래 나무의 긴 그림자가 마치 자신의 인생의 퇴락처럼 힘겹게 빛과 모양을 유지하려 애쓰며 바래가던 날, 어머니는 자기 앞에 다가와 있는 상실의 세계를 보아버렸다. 이제부터는 쓸쓸할 줄 뻔히 알고 살아야 한다. 거짓인 줄 알면서도 틀을 지켜야 하고 더 이상 동의하지 않게 된 이데올로기에 묵묵히 따라야 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 세계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세계를 믿지 않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달리 무엇을 믿는단 말인가. 상실은 고통의 형태로 찾아와서 고독의 방식으로 자리잡는 것이었다." (72쪽)

"모든 매혹은 고독의 그림자를 감추고 ​있다.(73쪽)

"고통은 관계의 고독이고 고독은 개인됨의 고통이다."(77쪽)​

"결정 내리기가 쉽지 않을 때는 최상의 결과를 얻는 건 포기해야 한다. 무난한 걸 택하는 게 그나마 최악으로 가지 않는 방법이다."(81쪽)

"데이트하는 남녀는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각기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듣고 스마트폰의 앱을 뒤적였다. 따로 노는 것 같지만 애인을 다른 사람과 만나지 못하게 하는,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혼자 있는 것 또한 자연스러웠다. 공부를 하든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든 집에 틀어박혀 있을 때와 달라서 분명 혼자는 아니었다. 그들 모두는 같은 장소에 함께 있었지만 독립적이었다. 심심할 수 있지만 고독해 보이진 않았다. 어쩌면 각자 눈에 보이지 않는 부스 안에 들어가서 비용을 지불하고 그 대가로 고독에 대한 통각을 차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90쪽)

"지식인으로서는 정의로운 사람도 정서적으로는 편견투성이였으며 평등을 주장하지만 아는 사람들과 평등해지기 싫어했다. 많은 기자들은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몇 가지 사례만으로 자신의 편견을 일반화할 뿐이지만 전문가들은 더 나아가 거기에서 규칙을 발견해내서 자신의 신념체계로 대중을 속이기를 좋아했다." (143쪽)

 

 

"사랑이 식은 것은 반복되는 관계속에서 상대가 고유성을 잃고 다른 누구와 다를 것 없는 덤덤한 존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161쪽)

​"타인이란 영원히 오해하게 돼 있는 존재이지만 서로의 오해를 존중하는 순간 연민 안에서 연대할 수 있었다. 고독끼리의 친근과 오해의 연대 속에 류의 삶은 흘러갔다. 류는 어둠 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었다."
(265)쪽

사랑이 식은 것은 반복되는 관계속에서 상대가 고유성을 잃고 다른 누구와 다를 것 없는 덤덤한 존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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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반위의 들꽃과 질그릇에 담긴 비빔국수 한 그릇!.

 

여름 손님은 불청객, 대통령이 와도 반갑잖다 라는 말이 있다.

지난 주말

친구를 따라 원당에 있는 도자기 공방엘 갔었다.

불쑥 찾아간 낯선 손님에게 아리따운 공방 주인은

 "손님이 오셨는데." 하며 밖으로 나가더니

들꽃 몇 가지를 꺽어와

자신이 만든 투박한 수반에 물을 채우고  꽃을 꽂는다.

순간  공방 안 분위기가 환해진다.

"아직 점심 전이죠?" 하며

대접할 게 변변찮다며 

금방 비빔국수 한 그릇을 내 놓는다.

파프리카, 배, 매실, 고명으로 넣은 비빔국수는 그릇을 빚는 솜씨만큼이나 맛이 특별했다.

 

더위에 불쑥 찾아간 것도 미안한데

손님이라며 꽃을 꽂고

향 좋은 커피를 내리고

과일을 내 오고 ,...

정말 특별하고 맛있는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난 그녀를 처음 봤는데 낯설지가 않다. 뭐랄까. 친구덕분이겠지만

처음 보는 내 앞에서 살아온 얘기, 앞으로 살아갈 얘기를  들려준 그녀를 보며 

세상에 이렇게 순하디 순한 사람도 있구나 싶다.

 

결혼도 안하고 도자기가 좋아  빚고 구워온 그녀 작업실엔

살아온 이력처럼 아기자기한 색과 모양으로 가득하다.

친구와 나는 더 있다 같으면 하는 그녀 맘을 읽고

해가 져서야 공방을 나왔다.

공방이 들 가운데라 밤늦도록 음악을 켜 놓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잠 드는 게 아쉬워 아침까지 구상을 하고 스케치를 한다는 그녀의 삶 한 켠이 내심 부럽기도 했다.

​친구를 통해 새로운 인연이 닿았다.

오는 길에 내 전화번호를 물어 가르쳐 주었는데, 오늘은 전화라도 해 봐야 겠다.​

"찻잔도 예쁘지만 손잡이가 너무 편하고 좋아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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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와 책 읽다
눈이 피곤해 잠시 쉬러 나온 사이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이 너무 파래 좋다.

플라타너스 그늘에선 매미 소리가 가득한데
마치 가을 하늘 같아서
하얀 운동화 신고
만국기가 펄럭이는 학교 운동장을  뛰었던 어린날 가을 운동회가 생각나
어깨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 본다.

푹신한 침대같기도 하고
콩알같은 스티로폼이 들어 있어
앉으면 누구나 안락한 콩자루닮은 저 흰구름!

아!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다.
가끔은 하늘도 올려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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