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에 대하여

 

            최영철시인

 

나무는 흔들린다

흔들리지 않으면 불안하므로

흔들리기 싫어하는 모든 것들을 다독이며

남아 있기 위해

남아서 다시 흔들리기 위해 

흔들리지 않아도 흔들리고

흔들리고 싶어서 몸을 비트는

가만히 들으면 알 수 없는 은밀함으로

자주자주 흔들리는

그리하여 다른 모든 것들을 흔들리게 만드는

이 세상 우매함을 무책임을 욕하며

산들산들 작은 바람에도 나무는 흔들린다

잠시만 누워 있다가 일어나기 위해

남아서 다시 흔들리기 위해

​시집<개망초가 쥐꼬리망초에게>92쪽의 詩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노래한 시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친구의 말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산을 깍아 지은 고층 파트에 사는 친구는 바람 부는 날이 제일 싫단다.

 집안에 있으면 기웃뚱 하고 쏠림현상이 느껴진다고 한다. 25층 맨 꼭대기 보금자리가 갑자기 나무꼭대기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지. 이제 좀 살아보니 견딜만 하다며 친구는 우스개소리까지한다. 자기도 이제는 집과 함께 리듬을 타니 울렁증이 덜한단. 알고보니 고층아파트는 지을 때 그걸 감안해 짓는다고 한다.

콘크리트 건물도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게 정상이라고 하니 바람을 타야하는 건 비단 나무만이 아니지싶다. 나무는 바람없는 날에도 흔들리고 작은 바람에도 누웠다가 일어나 흔들린다. 집도 나무도 사람도 아프고 흔들리고 흔들려야 제대로 사는가보다. 그게 삶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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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8-11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지님 오늘아침 커피잔이 똑같아서 깜짝 놀랐어요. 저는 커피ㅎㅎ 좋은시와 함께 굿모닝입니다^^

데이지 2015-08-11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좋은 아침입니다. 똑같다니, 그러셨겠네요.
오늘 하루도 사뿐이 즈려 밟고 지나가시길^^
 

 

젊은 날에는 말이 많았다. 말과 그 말이 가리키는 대상이 구별되지 않았고 말과 삶을 분간하지 못 했다. 말하기의 어려움과 말하기가 위태로움과 말하기의 허망함을 알지 못 했다. 말이 되는 말과  말이 되지 않는 말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언어적 외형적 질서에 하자가 없으면 다 말인줄 알았다. 어쩔 수 없었다, 말하기가 조건들을 일러주는 스승이나 선배도 없었고 가르쳐 주었다하더라도  알아듣지 못 했을 것이다. 말과 글을 배우는 젊은이에게 말이란 너무나도 유혹적인 것이어서 말하기의 두려움을 함께 배울 여유는 전혀 없었다.

 

사전에 나와 있는 단어는 모두 끌어다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한 단어가 사전에 나와 있기 때문에 그 단어를 끼워 넣고 말을 조립하는 것은 정당한 논리의 작용이라고 믿었고, 그 믿음의 근거를 돌아보지 않았다. 말은 질펀하게 넘쳐났고 삶의 하중을 통과하지 않은 웃자란 말들이 바람처럼 이리저리 불어갔다." (51쪽, 말하기의 어려움)

 

김훈의<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생각의 나무)에서 가져왔다.

이 책에서 인문주의자 김훈은  세상 사람들의 안과 밖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중 나이 들면서 말이라는 게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라면 모르지만 세상을 향하여 내 놓을수 있는 말이 그닥 많지도 않고 쉽지도 않다고 고백한다.

젊은 날 많은 말을 지껄여보고 말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음을 경험한 후의 쓸쓸한 깨달음이란 생각이 든다. 말이란 게 몸 안에 있다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회오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 김훈은 말의 유혹을 알기에 말수가 적고 글쓰기에도 명징하게 단문 쓰기를 고집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이 들어갈수록 귀는 열어놓고 입은 다물게 된다는 말뜻에 이해 된다. 젊은 날의 말은 욕망으로 보아줄 수 있지만 나이들어 말은 신중하지 않음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말이 되는 말과 말이 되지 않는 말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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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햇살이 이슬을 다 살라 먹을 때까지 서성거렸다  "

<러셀 베이커 자서전>(2014.연암서가)을 읽고 있다. 
이 문장은 갑자기 아버지가 아프고 엄마는 놀라서 의사 선생님을 부른다.
의사 선생님이 집에 오고 아버지를 진찰하는 동안 어린 러셀은
쥐죽은 듯 조용한 집 뒤뜰에서 숨죽여 서성거리는 장면에서 드러나는 문장이다.

뜨락에 아침 햇살이 퍼지는 순간을 감정이입 해 흘린 표현인 듯한데
너무 빼어나 밑줄 그었다.
불안하고 초조한 상황을 한 문장에 다 담았다.

5월이 초여름이다. 실내가 더워 한 낮에
집 창문을 죄 열어 놓았다. 햇살은
기다렸다는듯 베란다 난간 틈을 비집고 들어와 초록잎을 기웃거린다.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하는 꽃대가 서광을 받아 환하다.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오후에 왜 이 문장이 자꾸 오버랩 될까.
촉촉한 이슬위를 덮치는 아침 햇살 때문일까.
문장속 어린 러셀의 마음 때문일까.

 

"나는 햇살이 이슬을 다 살라 먹을 때까지 서성거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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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하종오 시인

 

집으로 돌아가려고 버스를 탄다

햇빛이 가득 찬 차안에서 보면

관공서와 회사와 은행문 굳게 닫혀 있고

신호등 앞에서 기사는 전방만 바라보고 있다

뒷좌석 찾아 앉아 나는 좌우 두리번 거린다.

소비자든 생산자든 경영자든

누구 편에도 속하지 못해

날마다 낡은 가방 메고 일거리 찾아 다니다가

저물녁이면 이렇게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버스정거장에 설 때마다

햇빛이 조금씩 내리고 어스름이 조금씩 올라탄다

버스는 산 아래 터널로 들어서고

마음 얻을데 없는 실업의 나날들

내일부턴 현관 화분에 무슨 꽃씨든 심어놓고

오며 가며 발아라도 기다려 봐야 겠다

터널을 지나 나무들이 움 틔운 산기슭이 보인다

기사는 라디오 켜다가 콱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햇빛이 다 내리고 어스름이 다 올라타는 정거장

오늘 뉴스도 자살 살인 강도, 순간

채널 바뀌어 신나는 트로트 흘러나온다

나는 두 다리로 박자 맞추다가 내려야 할 곳을 깜박, 지나 친다.

 

 하종오 시집 <지옥처럼 낯선>, 102~103쪽의 시

 

<마음대로 시 해독> 출근하는 차림으로 신문을 들고 산으로 오르는 사람, 가방을 메고 터덜터덜 기력없이 다니는 사람, 어디에도  누구편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 실직을 겪어 본 마음이라면 남의 일 같지 않을 것이다. 

아마 시인도  힘든 나날을 보냈었나 보다. 실업의 긴 현실을 시에 담아내는 일 또한 힘이 든다. 행간마다 화자의 마음이 읽힌다. 버스를 타고 앉아 차창밖을 무심히 바라보는 시선, 굳게 닫힌 건물들을 바라보며 오늘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안 화자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이다.

생산자든 소비자든 그 어디에도 소속감이 없는 화자의 마음은 간절하다. 그래서 씨앗을 심고 싹이 트는 날을 기다리겠다고 말한다.속으로 희망을 가져 보다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치는 마음이 긴 터널속 같아 자꾸 마음이 쓰인다. 가방 맨 어깨가 축 쳐져보였던 그 사람처럼.

"햇빛이 조금씩 내리고 어스름이 조금씩 올라탄다."

"내일부턴 현관 화분에 무슨 꽃씨든 심어놓고

오며 가며 발아라도 기다려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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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비룡소의 그림동화 34
마이클 베다드 글, 바바라 쿠니 그림, 김명수 옮김 / 비룡소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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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 시인인 에밀리 디킨슨의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마이클 베다드가 담았다.  디킨슨은 자신이 태어난 매사추세츠 암허스트를 벗어난 적이 없이 여동생과 함께 은둔하며 살았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집안에서 정원을 가꾸며 시를 쓰며 살았다고 알려졌다.

 

사후에 그녀 방에서 1,800편이나 시나 발견됐다니 놀랍다. 베다드에게는 호기심이 생길 만도 하다. 베다드는 주로 어린이책을 쓰는 작가이며 <에밀리>를 쓰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고도 부족해 에밀리 디킨슨의 생가를 찾기도 했다. 하얀 겨울 풍경과 은은한 봄빛은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마음 같다.

 

 에밀리 이야기는 말 그대로 한 편의 시다. 그림을 따라 이야기를 들어보자.<내용 일부 수정하였슴>

 

 

 

우리 거리에 '신비의 여인'이라고 부르는 아주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길 건너편 노랑 잡에서 여동생과 함께 살아요.그 아주머니는 20년 동안 거의 자기 집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낯선 사람이 찾아오기라도 하며 그분은 달려가서 숨어 버려요. 나는 그 아주머니를 에밀리라 부릅니다.

 

우리가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어느날 우편 구멍으로 편지가 왔습니다. 편지를 뜯자 납작하게 말린 꽃도 있었습니다

 

"이웃에 사시는 분께" 엄마가 편지를 읽었습니다.

"저는 마치 이 꽃과도 같답니다. 당신의 음악으로 저를 소생시켜 주세요. 그 음악이 저에게 봄을 가져다줄 거예요."

 

나는 이층 내방 창턱에 그 꽃들을 꽂아두었습니다. 아래에는, 눈 속에서 정원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나는 우리 집 보도를 따라, 길 건너 노란 집의 울타리 안까지 이어진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나는 침대에 앉아서 길 건너편을 바라보았어요. 아주머니 방안에 불빛이 비쳤습니다.

그림자가 그 속에서 움직였습니다. 그분도 이따금씩 저기에 앉은 나를 지켜 보았을까요?

 

다음날 아침, 집안은 온통 음악으로 가득했습니다.

나는 꽃에 물을 주며 아빠하고 온실에서 있었습니다. 햇빛이  내얼굴 위로 따스하게 내리쬐었어요.

 

"그 아주머니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노란 집의 숙녀말이냐? 모르겠구나,얘야 그분을 직접 본 사람은 많지 않단다. "

 

아파는 화분으로 옮겨 다니면서 시든 이파리들을 뜯어냈습니다.

"아빤 그 아주머니가 외로울 거라고 생각하세요?"

 

 


 

 "때로는 그렇겠지. 우리 모두 이따금씩 외롭단다. 하지만 그분은 동무가 되어줄 여동생이 있고,

또 우리처럼 꽃을 가꾸고 있지. 그리고 시를 쓴다 거구나."

 

"시가 뭐예요?" 내가 물었습니다. 아빠는 시든 이파리를 손바닥 위에 놓았습니다.

 

"엄마가 연주하는 걸 들어 보렴. 엄마는 한 작품을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데, 가끔은 요술 같은 일이 일어나서 음악이 살아 숨쉬는 것처럼 느껴진단다. 그게  네 몸을 오싹하게 만들지. 그걸 설명할 수는 없어. 그건 정말, 신비로운 일이거든. 그런 일을 말이 할 때, 그걸 시라고 한단다."

 

 


 

저녁놀이 노란 집 창문들을 황금빛으로 물들었어요. 이제 곧 밤이 될 겁니다. 나는 백합 뿌리들을 창턱을 따라 한 줄로 늘어놓았습니다. 그것들은 편지에 담긴 초롱꽃처럼 생기도 없고 죽은 듯이 보였어요. 하지만 아빠는 그것들이 숨겨진 생명을 지니고 있대요.

 

엄마는 내일 노란 집을 방문할 거예요. 내가 부탁하자 함께 가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두려워졌습니다. 어쩌면 노란 집에 사는 아주머니도 두려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정원의 눈이 녹기 시작했습니다. 지빠귀 한 마리가 어느새 파릇해진 잔디에 내려앉았습니다. 그것은 봄이 오는 신호였어요. 나는 창 턱 위의 초롱꽃 선물을 바라보았습니다. 내 호주머니에는 뭔가가 불룩하게 들어있었습니다.

 

"들어오세요. 오 꼬마 손님도 오셨네. 에밀리가 기빠하겠네요." 커튼은 드리워져 있고 방은 어두침침하고 딱딱한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몸을 돌렸습니다. 그러자 계단 위로 얼른 사라지는 흰빛이 보였습니다. 

엄마는 의자에 앉아 피아노 연주를 했습니다. 음악이 어두운 방에서 퍼져 나갔습니다. 박수소리가 밀려오더니 가녀린 목소리가 뒤다라왔습니다.

"동무님, 당신의 연주는 지빠귀의 노래보다 아름답군요. 좀더 연주해 주세요. 벌서 봄기운을 느낄수 있네요."

 

나는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계단으로 오르기 시작했어요. 그 꼭대기에는 하얀 여인이 하나 앉아 있었습니다. 그분의 무릎에 놓인 종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게 시예요?" 내가 물었습니다.

 

"아니, 시가 바로 너란다. 이건 시가 되려고 애쓰고 있는 것뿐이야."

창턱 위에 놓아둔 초롱꽃러러 그분의 목소리도 가볍고도 예민했습니다.

"아주머니께 봄을 좀 가져 왔어요." 나는 호주머니에서 백합 알뿌리 두 개를 그분의 무릎에 내려 놓았습니다.

"땅에 심으면 백합꽃으로 변할 거예요."

"어머나 예뻐라"

"그런 나도 너에게 뭔가를 줘야겠구나."

 

그분의 연필이 무릎 위에 놓인 종이 위를 가로지르며 급히 움직였는데, 그 모습이 마치 엄마의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 위를 가로질러  미끄러질 때 같았습니다. 엄마가 연주를 마치자 아주머니는 생강빵과 셰리 주 한 잔을 내놓았습니다. 엄마는 셰리주를 마시고 나는 생강빵을 먹었습니다.

 

가야 할 시간이 되자 에밀리 아주머니의 눈동자 빛깔은 유리 잔에 조금 남아있는 셰리주 빛깔이었습니다.

봄이 오자 내 방 창 아래다 백합 뿌리를 심는 걸 아빠가 도와주었습니다.

 

나는, 높은 울타리 너머 자기 정원에 다 내가 준 선물을 숨기고 있을 에밀리 아주머니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가끔은 요술 같은 일이 일어나서 음악이 살아 숨쉬는 것처럼 느껴진단다. 그게 네 몸을 오싹하게 만들지. 그걸 설명할 수는 없어. 그건 정말, 신비로운 일이거든. 그런 일을 말이 할 때, 그걸 시라고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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