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벚나무의 저녁
장 철 문
민박표지도 없는 외딴집. 아들은 저 아래 터널 뚫는
공장에서 죽고. 며늘아기는 보상금을 들고 집을 나갔다
한다. 산채나물에 숭늉까지 잘 얻어먹고, 삐그덕거리는
널빤지 밑이 휑한 뒷간을 걱정하며 화장지를 가지러 간다.
삽짝 없는 돌담 한켠 산벚꽃이 환하다. 손주놈이 뽀르르
나와 마당 가운데서 엉덩이를 깐다. 득달같이 달려 온
누렁이가, 땅에 떨어질세라 가래똥을 널름널름 받아서 먹는다.
누렁이는 다시 산벚나무 우듬지를 향해 들린 꽁꼬를 찰지게 핥는다.
손주놈이 마루로 올라서자 내게로 달려온 녀석이 앞가슴으로 뛰어 오른다.
주춤주춤 물러서는 꼴을 까르르 까르르 웃던 손주놈이
내려와 녀석의 목덜미를 쓴다.녀석의 꼬리를 상모같이 흔들며
긴 혓바닥으로 손주놈의 턱을 바투 핥는다.
저물어 가는 골짜기 산벚꽃이 희다.
장철문시집 <산벚나무 저녁,창비>의 24쪽의 시
<마음대로 詩해독> 장철문 시인의 시는 왠지 마음이 끌린다. 그림이 그려지면서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그의 시 속에서는 남루하고 힘없는 이웃들이 산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손주를 키워야 하는 노인, 밭두렁에서 호박 하나를 따와 마음이 편치 않아 양심선언하는 남자, 어둔 창앞에서 차 한잔을 나누며 서로 애잔해 하는 부부, 그의 시 속에서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의 넋두리를 꼭 들어 주어야만 할 거 같은 분위기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보편적인 이야기다. 시 속 손주를 키우는 노인네도 부모 사랑을 못 받고 할머니랑 사는 어린 손주도 누렁이도 끝까지 마음이 쓰인다.
단촐하니 맞는 저녁 풍경속 산벚나무꽃은 얼마나 환하고 서글플까?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장욱진의 소박한 그림들과도 겹쳐진다.
삽짝 없는 돌담 한켠 산벚꽃이 환하다. 저물어 가는 골짜기 산벚꽃이 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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