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
소메이 다메히토 지음, 정혜원 옮김 / 몽실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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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나쁜 여름>으로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 우수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이다.

632페이지에 걸친 대단히 긴 장편에 속하지만, 초반에 리듬을 타면 거의 한자리에서 읽을 수 있을 만큼 몰입감이 뛰어난 책이다.

살해범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가부라기를 수용하고 사랑하고 신뢰하는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하여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고 손에 땀에 쥐며 읽게 된다. 그 이면에 어떤 잔학한 면모가 숨어 있을지 조마조마하며 읽게 되는데, 마지막 장을 넘기며 주인공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인생, 그러나 경찰의 총에 죽어버린 그의 인생에 애통한 눈물을 흘리게 된다.

원죄(누명)을 다룬 사회파 작품이면서도 대단히 감성적이고 섬세하며 감동적이다. 그야말로 휴먼 미스터리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프롤로그 탈옥 1일째>

사카이 마이는 이제 2주 후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의 가장 세련된 거리 오모테산도에 미용전문학교 진학할 예정이다. 이바라기현의 본가에서 편도로 1시간 반이 걸려서 생애 첫 자취도 시작하기로 했다.

단란하고 화목한 3인 가족이 함께 보는 뉴스에서 효고현 고베 구치소에서 수년 사형수 탈옥 뉴스가 흘러나온다. 1년 반 전, 18세 때 사이타마현 구마가야 시 일가족 3명 살해죄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소년사형수의 탈옥은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당시 사건은 다음과 같다. 2017년 10월 13일, 당시 18세였던 가부라기 게이이치는 사이타마현 구마가야 시의 남편 이오 요스케(29세), 아내 치구사(27세), 아들 슌스케(2세) 일가족을 살해했다. 이오 요스케의 모친인 50대 여성은 벽장 속에 몸을 감추고 있어 살해당하지 않았다.

<제1장 탈옥 455일째>

· 장소: 유한회사 아오바 (치바현 아비코 시 재택형 유료노인 그룹홈 아오바)

· 인물: 사타케 (49세, 사장), 요모다 다모츠 (9년째 직원)사쿠라이 쇼지 (21세, 파트타임)

· 주요사건

요모다 다모츠는 9년째 아오바 그룹홈의 직원으로 일하며 힘들지만 보람을 느끼고 있다. 오늘 오후의 파트타임 면접 대상은 21세 청년이다. 유료노인 그룹홈 아오바는 1층 9명, 2층 9명 총 18명의 입소자가 있다.

면접을 보러 온 사쿠라이 쇼지는 아오바에서 꽤 먼 곳에 살지만, 그룹홈이 자기 성격에 맞는 것 같다고 한다. 일반 영업직이나 육체노동도 안 맞는다고 하지만 다모츠는 사쿠라이의 부드러운 인상과 건장한 체구를 보고 그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한다. 사쿠라이는 홀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는데 심부전으로 부친이 사망했다고 한다.

사쿠라이는 2주 정도가 지나자 기존 직원 이상으로 훌륭한 업무 모습을 보여준다. 늘 일손이 달리는 입장에서 사타케 사장은 사쿠라이에게 직원 채용을 제안할 것이라고 한다.

2층 입소자인 이오 요시코는 55세 여성으로 자주 악몽을 꾸며 깨어 덜덜 떨며 울곤 한다. 그녀는 40대였던 6년 전, 장년성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그때까지는 니가타현의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진단을 받은 후, 교사를 관두었다. 남편에게서 폐 종양이 발견되고 전신으로 전이되어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세상을 떠났다. 이후, 사이타마현의 아들 집으로 와서 동거했다. 2017년 10월 13일, 열이 있어 줄곧 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저녁쯤 비명이 들려 살짝 내다보니 모르는 남자가 거실에 서 있었다. 그리고 벽장 속에 숨어 있었다. 사건 이후, 여동생 세키하라 히로코가 그녀를 거두었으나 그녀에게도 돌볼 가족이 있어 지인을 통해 언니를 그룹홈에 맡겼다.

사쿠라이는 1층 담당이지만 2층 입소자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세심하게 잘 돌보고 있다. 사쿠라이는 사장의 직원 제의를 보류한다. 간병보호사 자격증 따는 것도 보류한다. 2층을 담당하고 싶다고 한다.

<제2장 탈옥 33일째>

· 장소: 우시쿠보 토목 공사 현장

· 인물: 노노무라 가즈야(22세, 막노동꾼) 외 막노동꾼들, 벤조(21세, 이름은 엔도이나 벤조로 불림)

· 주요사건

66세로 최고참인 히라타, 27세인 신카와, 39세 알콜중독자 야타베 등은 테니스 코트 시설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막노동꾼들이다. 시공사가 사실상 도산하여 이 공사가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노노무라 가즈야는 히라타를 따른다. 가즈야는 이시카와현 어촌 출신이다. 대체적으로 평온한 소년 시절을 보냈지만, 중학생 때 불량 그룹에 가입했다. 아버지는 모른 척했고 엄마는 바람을 피우고 가출해버렸다. 가즈야는 사랑받은 기억이 없다. 17세 때 다른 폭주족과의 싸움에 휘말려 후배를 태우고 가다가 습격을 받고 부상당한 후배를 두고 도주했다는 이유로 그룹 내에서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마을에서 투표로 가즈야를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전국 방방곡곡을 전전하며 막노동판가지 이르렀다.

이름은 엔도지만 ‘벤조’라고 부르는 키가 크고 마른 몸을 가진 청년은 일주일 전에 온 노동자로 언제나 혼자 행동하고 겉도는 존재이다. 모두가 일을 마치고 함께 들어가는 욕탕에도 가지 않고 민간 목욕탕에 다닌다. 방에 법률 관련 책이 가득하다는 소문이다.

어느 날, 최고령인 히라타가 일하다 부상을 입는다. 한 푼이 아쉬운 히라타는 동료들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지만 모두는 여태까지 같이 어울려 다닐 때와 달리, 사업주와 얘기해 보자고 하며 피하려고 하며 가장 친한 가즈야에게 떠넘기려 한다. 가즈야는 모두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그리고 벤조에게 의논한다. 벤조는 자신도 그 사고를 목격했다며 직원을 만나러 함께 간다. 야나세라는 직원과 얘기하자 그는 오히려 거드름 피우며 회사의 온정으로 히라타처럼 쓸모없는 늙은 일꾼을 머물게 해 줬다고 한다. 벤조는 법적인 지식을 동원하며 할증임금을 왜 지불하지 않냐며 따진다. 벤조는 가즈야에게 10만 엔 정도를 얻어내보겠다고 한다.

반신반의하는 가즈야에게 며칠 후, 벤조는 10만 엔을 준다. 우시쿠보 토목이 낸 돈이라고 했고 히라타에게 위로금도 10만 엔을 준다. 가즈야는 벤조를 무척 따르지만 벤조는 거리를 두며 자신은 집에서 쫓겨났으며 삼수는 할 수 없다며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그때부터 가즈야는 벤조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뉴스에서 소년사형수 탈옥 사건을 접한다. 그리고 묘하게 벤조가 마음에 걸린다.

가즈야는 벤조가 얻어준 10만 엔을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로 탐내는 동료들에게 정이 떨어진다. 벤조가 히라타에게 민간 심부름센터를 물어봤다는 얘기에 벤조의 정체가 사형수인 가부라기가 아닌지 의심한다. 검색해 본 결과, 탈옥 경위는 다음과 같다. 열이 39도까지 오르고 객혈을 하여 시내 종합병원으로 이송하던 중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고서는 따라온 간수를 머리로 받고 도주했다고 한다. 마침 그즈음 타 교도소에서 발생한 옥사 사건과 전염병 에볼라 유행을 염두에 두고 계획한 것이었다.

가즈야는 벤조를 미행하다가 그가 60대 남자를 만난 것을 보고 그를 잡아 협박하여 벤조가 무엇을 부탁했는지 알아낸다. 니가타현 출신 49~50세 여성 세키하라 히로코를 찾는 일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벤조가 사라진다. 그리고 경찰이 노동판으로 들이닥친다. 벤조가 가부라기임에는 틀림없다고 확신하지만, 경찰 조사에서 벤조에 관해 끝까지 전면 부인한다. 가즈야의 마음속 무언가가 그렇게 시킨다.

<제3장 탈옥 117일째>

· 장소: 라이프 뉴스를 취급하는 미디어 회사, 안도 사야카의 집

· 인물: 안도 사야카(직원), 이나모토 미요코 (실장), 나스 다카시(프리랜서 기사작성자)

· 주요사건

8년 전, 라이프 뉴스를 발신하는 미디어 회사를 설립하며 같이 하지 않겠냐는 이나모토의 말에 따라 함께 따라온 안도 사야카. 지금은 건물 한 층을 다 쓰며 50명의 직원이 생길 정도로 회사는 성장했고 사야카는 35세의 치프 디렉터가 되었다. 화려한 커리어와 달리, 최근 그녀는 불륜 상대였던 유부남과 헤어졌다.

이곳에는 프리랜서로 기사를 작성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직접 와서 수령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면서 얼굴도 익히고 책임감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나스 다카시라는 23세 남성은 무척 좋은 이미지이다. 기사가 대단히 능숙하지는 않지만, 마감을 어기는 법도 없다. 사야카가 신분증을 요구하지만,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한다. 무척 호감을 주는 청년이어서 사야카는 충동적으로 저녁을 같이 먹으러 가자고 하고 다른 사람 이야기라고 하며 자기 불륜 이야기도 한다. 직감적으로 나스에게 거처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갈 데 없지 않냐며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더니 나스는 정말 가방을 하나 들고 진짜 온다. 이상하게 경계심이 생기지 않는다. 이렇게 이들의 은밀한 동거가 시작된다. 사야카가 출근하면 나스는 집안일과 식사 준비, 기사 작성을 하며 사야카를 기다려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평온하고 행복한 나날이다.

사야카는 나고야의 본가에 며칠 다녀온 후, 불륜남이 찾아와 난동을 부리고 사야카를 폭행하려 한다. 마침 들어온 나스가 그를 쫓아낸다. 그러나 그는 사야카에게 나스가 탈옥수를 닮았다고 말한다. 사야카는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나스가 탈옥수라면 평소에 의혹을 가져왔던 모든 것에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닮았다. 사야카는 떨리는 맘으로 나스의 가방을 뒤진다. 거기에는 육법전서와 치매 관련 책이 들어있다. 사야카는 나스와 함께하는 비일상만이 정상적인 공간이 되었다. 회사에서도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선배의 충고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윽고 나스도 사야카가 자신의 정체를 눈치챘다는 것을 알아챈 듯한 눈치이다. 그러나 둘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야카는 나스를 지켜주겠다는 결의를 한다.

뭔가 징조 같은 것이 있었던 날. 로비에 정장을 한 남자 두 사람이 서 있다가 사야카에게 동거인에 관해 묻고 싶다고 하며 집으로 따라온다. 어떻게 들켰을까? 형사들은 세탁기 속에 숨은 나스를 모른 척하다가 다시 한번 급습하여 사야카를 밀치고 나스를 찾고 나스는 베란다를 뛰어넘어 도주한다.

<제4장 탈옥 283일째>

· 장소: 나가노현 스가다이라 고원에 있는 료칸 ‘야마키소’

· 인물: 와타나베 준지(53세, 전직 변호사), 아미(23세, 여자 직원), 하카마다 이사오(료칸 직원)

· 주요사건

3월까지 도내 중형 규모 법률사무소 변호사였던 준지는 전차에서 어이없게도 치한 사건에 연루된다. 아무 상관도 없는데 너무 당황하여 도망가는 장면까지 비디오에 찍혀 누가 봐도 그가 치한이라고 생각하게 됨에 따라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다. 가족조차도 그를 믿지 않는 눈치다. 자살도 생각해 봤다. 료칸 일이 익숙지 않아 실수 연발이지만 딸뻘인 아미는 스스럼없이 친근하게 준지를 대해준다.

료칸에서 손님 지갑 도난 사건이 발생하고 서로가 서로를 의심한다. 하카마다는 11월 중순부터 여기서 일했다. 아미는 스노보드를 탈 수 있어서 이곳에 와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준지와 하카마다를 반 강제로 끌고 함께 스노보드를 타러 온다. 이야기 도중에 하카마다는 법대생이라고 하며 준지가 다녔던 학교 학생이라고 한다. 준지가 그 학교 법대 나왔다고 하자 하카마다는 깜짝 놀란다.

어느 날, 아미를 비롯하여 사람들은 준지를 데면데면하게 대한다. 치한 행위가 담긴 유튜브 영상이 료칸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이다. 준지는 또 한 번 절망한다. 어쨌든 준지는 연말까지 일하기로 했으므로 곧 이곳을 떠날 것이다. 그의 마지막 날, 료칸의 남주인은 준지에게 줄 급여봉투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전의 손님 지갑 도난 사건도, 이번 급여봉투 도난 사건도 범인은 남주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경찰이 곧 왔고 하카마다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경찰은 하카마다의 정체에 대해 말했고, 하카마다는 경찰이 오기 전에 도주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경찰이 오면 자신의 신변이 위험할 것을 알고도 경찰에 신고하자고 했었다. 준지는 왠지 하카마다가 일가족 살해범이라는 것이 원죄(누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5장 탈옥 365일째>

· 장소: 니가타현 빵 공장

· 인물: 곤노 세츠에, 오쿠보 노부요, 사사하라 히로코히사마 미치토시(21세, 구심회 신자, 빵 공장 파트타임 )

· 주요사건

소년 사형수 가부라기가 탈옥한 지 1년이 되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곤노 세츠에는 조만간 빵 공장의 기계화로 곧 일터를 잃을지도 모른다. 세츠에는 시어머니를 모실 요양원을 알아보고 있는데 남편 히로시는 간병에는 일체 손도 대지 않으면서 어머니를 집에서 모시자고 하며 뒷짐 지고 있다. 세츠에는 신흥 종교인 ‘구심회’에 나간다. 구심회는 7년 전에 설립된 신흥 종교로 도쿄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회원수는 3만 명을 넘어섰다. 교주인 오네 선생이 회원들의 고민을 듣고 조언하는 형식의 설명회이다. 대부분 메시지는 ‘용서하라’는 것이다. 세츠에는 구심회에 점점 빠져 들어가고 동료인 히로코와 노부요에게도 권유하여 세 사람은 종종 함께 설명회에 간다. 세츠에의 남편은 입회하면 이혼이라고 했다. 세츠에는 치매가 심해져가는 시어머니, 30세에 거의 백수로 도쿄에서 빈둥빈둥하며 지낸다. 꽉 막힌 상황 속에서 세츠에는 구심회에 입회한다.

구심회에 가는 길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청년이 있었다. 함께 설교회에 참석했던 청년이다. 다음 주에 공장의 파트타임으로 그가 온다. 히사마 미치토시라는 청년으로 세츠에가 소개해준 것이다.

유난히 기운이 없는 히로코와 함께 하야시 라이스를 먹는데 히로코가 비밀이라며 치바현 아비소 시에 있는 그룹홈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또, 히로코의 남편은 새로 직장을 구하고 있는데 잘되지 않는다고 한다. 히로코는 새로 온 청년 히사마가 그 범인과 비슷한 것 같다는 말을 한다.

그때 군마현에서 모자 살해사건이 발생했는데 범인은 아시카마 기요토 (24세, 무직)이며 가부라기의 모방범이라고 했다. 가부라기의 현상금은 계속 상승한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가부라기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생기기도 한다.

모두가 같이 차를 타고 구심회에 다녀오다가 비 오는 날 운전을 하다가 중학생 남자애를 치는 사건이 있는데 경찰이 왔을 때 히사마는 이미 사라졌다. 그리고 셋이서 또 구심회를 가던 중, 오토바이를 타고 그들에게 나타난 히사마는 서류를 내밀며 구심회가 악덕 사기조직이라는 증거가 담겨 있다고 한다. 세츠에 등 회원과의 상담 명목으로 얻은 가족 정보 등으로 사기 사건을 일으키곤 한 것이다. 히로코의 남편은 산책길에 늘 만났던 청년을 통해 새 직장을 얻었는데 그 인상착의가 히사마와 아주 비슷했다.

<제6장 탈옥 488일째>

· 장소: 유한회사 아오바 (치바현 아비코 시 재택형 유료노인 그룹홈 아오바)

· 인물: 사타케 (49세, 사장), 요모다 다모츠 (9년째 직원)사카이 마이(파트타임)사쿠라이 쇼지 (21세, 파트타임)

· 주요사건

도쿄의 미용학교에 진학했던 사카이 마이는 생각과 너무 달랐던 미용학교를 그만두고 고향집으로 돌아와 간병보호사를 준비하며 그룹홈 아오바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선배 사쿠라이 쇼지를 좋아한다.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은 밤마다 사쿠라이가 입소자인 이오 요시코 씨와 얘기하는 것이다. 얼핏 들었을 때 ‘기억을 되살려 달라’라는 등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 몹시 궁금하지만 묻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마이는 미남형의 가부라기와 못생긴 축에 속하는 사쿠라이의 외모는 천양지차이지만 사쿠라이가 일가족 살해범인 가부라기라는 것을 왠지 모르게 눈치챈다. 고민 끝에 정직원인 요모다에게 상담한다. 요모다는 사쿠라이를 믿는다며 신고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요모다는 경찰에 신고해 버리고 경찰이 그룹홈 아오바를 포위한다. 궁여지책으로 사쿠라이는 마이를 인질로 잡고 이오 요시코 씨를 요청한다. 그리고 마이에게 자신은 살해범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쿠라이는 경찰이 쏜 총을 맞아 사망한다.

이오 요시코 씨는 검찰이 그렇게 시켜서 사쿠라이가 범인이라고 했으며 법정에서는 정말로 사쿠라이가 범인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알츠하이머에 걸렸던 상태였기에 기억에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제7장 정체>

사카이 마이는 잠시 외할머니댁에 가서 한 달 정도 요양하고 돌아온다. 아직 사건에서 헤어나오지는 못했지만, 부모가 걱정할까 봐 티를 내지 않고 지낸다. 그러다 요모다의 쪽지를 통해 한 카페로 간다. 그곳에는 가부라기가 신분을 감추고 스쳐 지나왔던 제2장~제6장까지 만났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다. 주축은 변호사인 와타나베 준지로 공사 현장의 노노무라 가즈야, 안도 사야카, 곤노 세츠에가 모여 가부라기의 원죄(누명)을 증명하고 매스컴에 적극적으로 어필하였다.

그리고, 가부라기의 모방범이라고 했던 군마현 모자 살해사건의 범인이 실제로는 가부라기가 누명을 쓴 사이타마현 일가족 살해사건의 진범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에필로그 모든 것이 백주에 드러나다>

        법정에서 가부라기의 무죄가 선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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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모네이드 할머니
현이랑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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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포함]

일시금 수 억에, 월정액이 천만 원이 넘는, 마을로 위장한 최고급 요양병원이 있다. 그러나 입주자들은 모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치매 환자들이다. 그곳은 직원들도 마을 주민으로 차려입고 어느 곳에서나 좋은 말로 하면 입주자들을 돌보고 나쁜 말로 하면 감시하고 있다.

비교적 정신이 말짱한 치매 초기의 괴팍한 '레모네이드' 할머니, 그리고 요양병원 싱글맘 의사의 여섯 살 아들 '꼬마'가 콤비를 이룬다. 겉에서 보기에는 그야말로 호젓하고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마을 속에는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어느날, 이 평화로운 마을에 사건이 터졌다. 쓰레기장에서 사산아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지루해 죽겠는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옳다거니 하고 사건 조사에 나선다. 일찍 철이 든 똘똘한 여섯 살 꼬마가 조수 역할을 톡톡히 한다. 폭력 남편으로 인해 이혼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이 마을의 페이 닥터로 온 꼬마의 엄마 서이수 선생도 내심 그 사건이 궁금했던 터라 은근히 협조적이다.

꼬마와 할머니의 주거니받거니 하는 대화 속에 콕콕 찌르는 인생의 진리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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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어떤 아저씨들은 내가 웃지도 않는다고 싸가지 없다고 하던데요

​할매: 그건 사람들이 옛날부터 늙으면 하는 소리다. 신경 쓰지 마라.(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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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뭐 흔한 이야기죠. 요즘엔 많이들 이혼하잖아요. 뉴스에서도 그랬어요.

할매: 남들에겐 흔한 비극이라도 자기가 당하면 서러워지는 게 인간이지.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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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네 이름도 말하지 마. 알면 나중에 헤어질 때 슬퍼져. 넌 그냥 '꼬마'로 있으면 돼. (60쪽)

별다른 능력도 없고 말을 더듬으며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는 이름없는 아르바이트 청년은 모르핀과 일회용 주사기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요양병원에서 쫓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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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고시원 방을 보고 관짝이 아니냐고들 하지만 나는 비행기 퍼스트석이라고 생각한다. 비행기 퍼스트 석에 타 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많이 봤다. 구조도 내가 쓰는 방과 비슷했다. 침대에 책상, 작은 창문. 내게는 거기다 작은 샤워실까지 있다. 다만 어디로 날아가고 있는지 모를 뿐이다.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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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자식 인생에 별로 도움이 안 돼. 자기가 하는 일이 다 자식을 위해서 하는 거라고 말은 하지만 자신을 위한 거짓말이거나 실제로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지. (222쪽)

세상 사람 좋을 것 같은 원장이 실은 비둘기를 훈련시켜 마약 밀매를 하고 돈을 빼돌리고, 그와 공범인 정치인, 병원장 등 사회 고위층은 요양병원에 은밀히 마약 파티를 할 곳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고급 와인과 마약으로 파티를 한다.

사산아 시신 사건을 쫓던 레모네이드 할머니와 꼬마에게 누군가 은밀히 도서관의 장부를 조사해 보라는 쪽지를 건네준다. 그리고, 그 사건은 묘하게 원장의 중학생 딸과 연결되어 간다. 원장의 중학생 딸, 최고 모범생이다가 한 번의 실수로 아이를 임신하게 되는데, 사랑받지 못한 이 아이가 사건의 중심인물이었다.

그리고, 암 말기였던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꼬마 곁에서 꼬마의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는다. 이 요양병원의 전모가 밝혀져 줄줄이 체포되어 가고, 레모네이드 할머니의 유언이 실현되는 장면이 TV에 나온다.

그건 바로 할머니의 전 재산을 동전으로 바꾸어 서울역 광장에서 뿌리는 것인데, 그 일은 이름없이 사라졌던 아르바이트 청년이 맡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소설은 아니었다. <폴리팩스 부인> 시리즈처럼 본격적인 스파이물이나 미스터리를 예측했었는데 영아 시신 사건에서부터 왠지 불온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부유층 자녀들과 연예인들의 마약 관련 사건은 너무나 흔해서 '그들이 사는 세상'이 그런 것인지, 우리 아이들도 휘말릴 수 있을 만큼 마약이라는 것이 저변으로 확대된 것인지 이미 기성세대가 된 나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불안했다. 이 책에서도 조직적으로 마약 밀매매가 행해지고 불법 자금을 축적하고, 빼돌리고 이중 장부를 기록하는 등 그런 일이 버젓히 일어나고 있었다.

돈은 있지만, 사랑은 없는 부모가 결국은 아픈 아이들을 만드는 것이었다. 중학생 여자아이의 깊은 좌절이 사건을 만들었다. 그리고, 유사 이래 가장 가난한 세대라는 요즘 20대의 억울함과 원통함도 느껴졌다.

그러나, 희망이 없지는 않았다. 소년원에 들어간 소녀가 만들어 보낸 빵, 그리고, 꼬마와 꼬마의 엄마 서이수 의사, 죽은 레모네이드 할머니의 심복이라고 할 수 있는 비서가 일말의 양심과 희망을 보여주었다.

Start small. 나 하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작지만, 그런 작은 희미한 불꽃이 모인다면, 변화의 잔물결이 일지 않을까?

현대를 사는 인간들의 씁쓸한 군상극이었지만, 역시 레모네이드 같은 달콤한 끝맛도 남는 책이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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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요테의 놀라운 여행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13
댄 거마인하트 지음, 이나경 옮김 / 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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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로 읽고 번역본으로 다시 만난 책이다. 표지를 그대로 사용하려면 약 50만 원을 추가로 더 내야 하기도 하고, 개인적인 생각으로 우리나라 편집자 및 디자이너가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보통 번역서 표지를 다시 디자인하기도 하는데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표지가 없을 듯하여 이대로 쓴 것이 아닌가 싶다. 원서를 읽을 때도 역시 표지 보고 골랐었다.

"모든 일은 아이반과 함께 시작됐다." (7쪽)

이 책은 아이반과 함께 시작되는데 아이반은 표지의 줄무늬 고양이다. 5년째 히피인 아빠 로데오와 딸 코요테는 56인승 버스를 집으로 삼아 미국 전역을 방랑하고 있다. 방랑이라기보다 도망이다. 추억으로부터의 도망. 불의의 사고로 코요테의 엄마, 언니, 여동생이 5년 전에 죽었다. 로데오는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아빠와 딸의 관계성까지 내려놓고 자신은 로데오, 딸에게는 어스푸름한 일출의 시간에 고속도로변에서 본 '코요테'를 따라 코요테라고 부른다.

이야기가 급물살을 타는 것은 할머니와의 통화에서 엄마, 언니, 여동생과 함께 추억상자를 묻었던 동네 공원이 철거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다. 코요테는 아빠가 극구 피하려 하는 교통사고의 장소, 구석구석 추억으로 채워진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코요테와 로데오는 길 위에서 자신을 떠나버린 여자를 찾아 떠나는 레스터, 아빠의 가정폭력을 피해 무작정 집을 나온 살바도르와 그의 엄마, 그리고 살바도어의 이모, 동성애자라는 게 밝혀져 부모에게 혼나고 가출한 밸, 그리고 고양이와 염소까지 태우고 좌충우돌 로드 트립을 이어간다.

로드트립을 다룬 작품들의 특성처럼 자꾸 여정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끼어들고 막판에는 12살짜리 코요테가 무면허 운전까지 하여 우여곡절 끝에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고 있는 공사 현장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한다.

5년간의 방랑생활의 원점으로 돌아와 이들은 코요테와 로데오라는 모호한 관계를 버리고 엘라와 아빠의 관계로 돌아간다. 그리고, 감정을 외면하거나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직면한다.

"가끔은 울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감추지 않아도 된다. 슬플 때면, 엄마와 언니와 동생이 보고 싶을 때면 그냥 울면 된다. 그러면 아빠는 내 어깨를 감싸 안는다. 가끔은 아빠도 나와 함께 운다. 괴롭다. 하지만 좋다." (358쪽)

아이반과 함께 시작된 여정은 이렇게 끝이 난다. 앞으로 이들은 이렇게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좋은 일과 나쁜 일 등 많은 일이 있는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갈 것이다.

아이가 어른의 선생님이다.

영상화되어도 충분히 좋을 작품이어서 검색해봤는데, 아직 그럴 예정은 없는 모양이다.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읽기를 추천하며 글을 맺는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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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러브레터
야도노 카호루 지음, 김소연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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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없음]

28년 만에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 미즈타니 가즈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수신인인 유키 미호코는 결혼식 당일에 그를 두고 자취를 감췄다. 평온한 일상에 잔물결이 인다. 미즈타니 가즈마의 일방적인 몇 번의 연락 후에 미호코도 답장을 보낸다. 그가 이렇게 연락할 줄을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그인지 검증이 필요했는데 결혼 전에 그에게 했던 말은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였기에 확신하고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그 둘은 3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 추억담을 소소히 나누는 듯하다. 대학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서로의 느낌, 천재 연극 연출가와 촌스럽지만, 놀라운 연기력을 가진 천재 배우로서의 만남, 소소한 시간을 함께하며 연인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이 청춘소설처럼, 흡사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면서 후반부로 가면서 등장인물들의 추악한 면모들이 슬슬 드러나며 책임 공방전을 전개한다. 서간체에서도 날선 어조가 느껴진다.

그러고는 마지막 몇 페이지에서 경악할 사실이 밝혀진다. 30년 만에 연락한 남성의 의도가 밝혀지고 30년 전 여성이 결혼식 당일에 증발한 진상은 무엇인가? 한순간에 머리 속에 그려지며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이 책은 워낙 일본 현지에서도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책이라 관심이 있었다. 논픽션이라는 띠지의 멘트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어느 정도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 그 내용이 가히 경악할 만하다는 점, 일약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이 데뷔작이라는 점, 작가가 정체를 밝히지 않은 복면 작가라는 점 등 이야기 자체의 화제성만큼 이야기를 둘러싼 이야기도 드라마틱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은 1, 2년 전에 우연히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다. 한 권의 책으로 묶이기에는 출판사에서 꺼릴 만한 짧은 분량으로 다 읽는 데는 한 시간 남짓 걸렸다. 이번에 읽게 된 리커버의 아름다움과 가독성 높은 편집도 높이 살 만하지만, 이전의 구판도 트렌디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술술 잘 읽히는 짧은 분량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정통 미스터리처럼 복선이 촘촘히 깔려 있어서 결말까지 읽고나서 머릿속에 착착 퍼즐이 맞아들어가는 음향 및 비주얼 효과는 없었지만, 읽으면서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부분들은 있었다.

- 사진이 흐릿하여 창에 반사된 모습을 확대하여 인물을 확인하고,

- 자꾸 sns에서 여성의 딸의 모습을 확인하며 여성과 딸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암시하고,

- 찾아가지도 않을 거라면서 주소는 왜 알려달라고 하고,

- 중간에 '경찰'이라는 단어도 은연 중에 언급된다.

순수한 청춘을 추억하며 회상하는 서간치고는 불온한 기운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등장인물 중 누구 하나도 맘 붙일 사람이 없다. 하나같이 이상하다. 스토커를 방불케 하는 미즈타니, 미즈타니의 약혼자로 의붓아버지와 중학생 때부터 관계를 맺어왔던 유코, 아르바이트로 성매매업소에서 일했던 미호코, 이들의 연극 서클 사람들 모두 정상이 하나도 없어서 읽으면서도 정이 가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소설 <마션>의 첫 문장이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 이상으로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충격적이다. 읽고 나서도 기분이 찜찜하긴 하다. 속고 나서도 기분 좋은 소설이 있는가 하면, 진상이 모두 밝혀지고 나서 내내 찝찝한데 이 책은 후자다. 그걸 노린 책이기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정말 독특하고 기묘한 책이긴 하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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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해보니 나름 할 만합니다 - 40대에 시작한 전원생활, 독립서점, 가사 노동, 채식
김영우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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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앓이'라고 내 멋대로 명명한 이 증세 때문에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유심히 지켜보곤 한다. 매력적인 제목보다도 '40대에 시작한 전원생활, 독립서점, 가사 노동, 채식'이라는 부제에 이끌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누가 부제 뽑았는지 정말 이 책을 가장 간명하게 표현하는 문구였다.

10대 때, 학교에서 10시, 고3 때는 12시까지 자습실에서 친구들과 웃고 울었던 그때는 모두가 비슷했다. 한 학군에 속한 비슷한 지역의 비슷한 아이들이 비슷하게 학교에서 지냈다. 10대의 마지막 입시 후, 20대 때는 그야말로 모두에게 광풍 같은 시기였으리라. 20대 때 그려본 모습은 30대 중반에는 거의 모든 것이 세팅되고 40대에는 그야말로 '내 누님과 같은 국화'처럼 원숙하고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살 줄 알았다.

40대앓이란 여지껏 마음이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 같고, 아직도 인생을 모르겠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더 모르겠고,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 눈길이 휙휙 돌아가는 나의 증세를 말한다.


[생각한 대로 살기]

이 책은 프리랜서 글 노동자이자 주부로 살면서 40대에 전원에 주택을 짓고 이사하여 독립서점을 운영하며 역시 글 노동자인 아내, 딸과 함께 살아가는 대한민국 남성의 이야기이다.

누구나 생각은 쉽지만, 생각대로 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김영우 작가님의 가족은 그렇게 했다. 그러면서도 자녀 교육에 관해서, 또 서울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서울의 집값 등 포기한 삶에 대한 미련, 생각대로만은 되지 않는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며 쓴웃음을 짓기도 하고, 부부가 유머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언젠가 아내와 씁쓸하게 내린 정의가 있긴 하다.

우리가 딸에게 바라는 건

"세상에 대한 건강하고 비판적인 시선을 갖춘,

'그러면서도'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학생"이라고 말이다.(98쪽)

자기 주관대로 살아가는 저자의 모습에서 위로를 받기도 했다. 아마도 70년대 초반 출생, 90년대 초반 학번으로 6, 7년 정도 인생의 선배이실 텐데 주관대로 살아가며 타인의 말과 삶의 모습에 흔들릴 때 아마 자신을 다잡으며 타이르셨을 그 말들이 내게도 무척 큰 위로가 되었다.

내가 할 일은 취하지 못한 것까지 미련을 두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돌아온 길을 살피고 궁리하는 것일 터였다. (27쪽)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무언가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삶을 지탱하는 단 하나의 해법은,

행동하는 데 있다. (46쪽)

순탄했다고도 험난했다고도 감히 평할 수 없지만

적어도 떳떳하고 정직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등 두들겨줄 만한 삶을,

앞으로도 함께 이어나갈 것임을 간절히 소망하면서. (125쪽)

[독립서점과 전원생활]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모습은 내가 다 똥줄이 탔다. 감정이입을 너무 잘하는 타입인 탓에, 도서관에 도서를 공급하게 되셨을 때의 안도감과 저자의 불찰로 입찰 기간을 놓쳤을 때의 자괴감에는 나도 같이 한숨을 푹 쉬며 개탄했다. 그리고 뒷부분에 생업으로 하시는 기업 연감 등을 쓰시는 일을 하신다고 하여 한시름 크게 놨다.

낭만적인 벽난로 연통을 반나절이나 숯검댕이가 되어 청소했던 이야기나 땔감을 쌓아두는 곳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뱀을 발견한 에피소드 등은 전원생활의 낭만을 와르르 무너뜨리며 역시 "관리된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고 늘 주장해 왔고, 약 4년 전, 교외라고는 하지만, 강남 생활권인 곳으로 이사와 살기를 잘했다고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도 뱀 산다. 산책하다가 저 매끈하고 길쭉한 S자형의 지렁이는 뭐지, 하고 봤는데 뱀이었다.)

[주부생활 & 채식]

이 저자님 글을 기본적으로 잘 쓰시고 관찰력도 뛰어나고 넉넉하고 너스레도 뛰어나시다.

나는 찜에 들어갈 채소를 돌려 깎고 남은 재료를 모아

내 몫의 전을 부쳐 먹으며 함께했다. (221쪽)

'채소를 돌려 깎고'에서 폭소를 터뜨렸다. 정말 나 말고 다른 주부들은 채소를 돌려 깎나? 요리 연구가 아니고 요리 사진 찍는 거 아닌데도 돌려 깎나? 닭볶음탕, 갈비찜 등에 감자나 당근을 모나게 툭툭 썰어서 넣으면 휘젓거나 익으면서 부스러지기 때문에 마찰면을 전부 강 하류나 바닷가의 돌멩이처럼 동글동글하게 깎아서 넣으면 보기도 좋고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아 국물도 깨끗하다. 예전에 한 번 그렇게 해 봤더니, 남편이 왜 그러고 있냐고 그랬던 적이 있다.

그리고 아침 준비를 해야 해서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일찍 나왔다는 에피소드도 너무 웃겼다. 타고나기를 부지런하고 탁월한 주부시거나 주부의 정체성을 즐기시는 분이거나 '주부란 이래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가지신 것 같다. 예전에 고 신해철 씨가 가사를 열심히 하지만 아내를 돕는다고 생각하며 하는 사람과 가사를 게을리 하지만 자기 일인데 제대로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누가 더 낫냐 하는 이야기를 한 것을 얼핏 들은 적이 있다. 무릎을 탁 쳤다. 진짜 주부 중에 아침 준비를 하려고 모임을 일찍 나오는 사람이 있을까 잠깐 생각해 봤다. 나 같으면 하고많은 날, 한 번쯤은 모닝빵에 잼 발라서 계란 후라이랑 먹어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채식에 관하여 유연성 있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어서 읽으면서 마음이 참 편안했다. 채식을 지향하시지만, 고기를 좋아하는 아내와 딸을 위해 12시간씩 소갈비 핏물을 빼고 2시간씩 양념을 내어 소갈비찜을 내놓는 모습에 박수를 보냈다.

나도 채식을 어떻게든 실천하고 싶은데, 주부로서 음식을 준비하다 보면 고기가 없으면 어떻게 매일 식사를 준비할까 싶은 때가 있다. 아마 나의 절실함과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일 테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에 때로는 오리고기, 생선 등을 총동원해야 그나마 감당이 되니 정말 고민이다. 3월에 채소를 어떻게든 한 가지씩 밥상에 올리겠다는 결심으로 실제로 참나물, 방풍나물, 시금치나물, 양상추 샐러드 하다 못해 콩나물이라도 올렸는데 나만 건강식 먹은 셈이 되었다.

[남녀가 공존하는 삶]

어찌 30여년 남으로 살아온 부부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였다고 해서 동화 속 주인공처럼 살겠냐마는 저자와 아내분은 부창부수의 동반자로 여태까지도 안녕했고 앞으로도 안녕한 삶을 잘 살아가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록 휘황찬란한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그러나 우리의 삶이 충분히 의미 있고 빛나고 있다고,

무엇보다 나의 입장에서 그건 온전히 당신과 함께하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아니었으면 이곳에 있지도 꿈꾸지도 못했을 것임을. (124쪽)

여성주의에 빠지게 되고 새로운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어 주부를 자처하고 독립서점에서 청소년들과 여성주의에 관해 공부하고 늘 자신과 사회를 관찰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성찰하며 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냥 가정이면 될 것을 이성애자 가정, 그냥 남성이면 될 것을 이성애자 남성으로 지칭한 것은 작위적으로 느껴졌으나 오히려 독자에게 문제의식을 어필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개인적으로 동의하든, 하지 않든 저자의 의도는 수긍했다. 예전에 대학시절, 사회학과의 조혜정 교수님이 어느날부터 '조한혜정'으로 부모의 성을 모두 사용하시기 시작했다. 그때 농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럼 자녀를 낳으면 자녀는 성이 4자, 손자는 성이 8자, 증손자는 성이 16자 이렇게 되는 거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었다. 설마 그걸 모르고 교수님이 성함을 그렇게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자연스러운, 고양이 털을 거꾸로 쓰다듬는 것과 같은 거슬리는 표현으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생각했다.

이제 50대에 들어서셨을지도 모를 어떤 40대 가정은 이렇게 프리랜서 글 노동자로 전원 속에서 독립서점을 운영하며 사셨구나, 하며 흥미롭게 가끔 울컥하는 감동을 느끼며 책장을 덮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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