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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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나도 그랬다. 한국이 싫었다. 숨막히는 현실에서 탈출해서 어디론가 달아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한국이 싫다고 생각되면서도 다른 사람이 한국이 싫다고 하는 것은 듣기 싫었다. 이상한 심정이다. 복잡미묘한 감정을 넘어선 지금은 한국이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아니다. 그저 이 안에서 내가 행복하는 것에 집중할 따름이다.

 

처음부터『한국이 싫어서』라는 제목에 끌린 것은 아니다. 제목만 봤으면 어쩌면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이 '오늘의 젊은 작가 07'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장강명'이라는 작가가 여기저기 나오길래 궁금증이 생겼고, 몇 번을 뒤로 미루다가 그냥 인터넷 서점에서 소설 앞부분만 읽어보자고 결심하고 '미리보기'를 클릭해서 읽게 되었다. 그랬는데 무지 재미있는 것이다. 계나의 생각이 남 얘기같지가 않고 쑥 빠져들어 읽다보니 앞 이야기만 보게 되는 것이 아쉬워 구매해버렸다. 앞부분을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할 일도 산더미같이 쌓여있고 읽을 책도 여러 권 탑처럼 쌓아놓고 있지만 휴일임에도 택배를 받게 되어 오늘 이 책부터 읽게 되었다. 흡인력있고 푹 빠져들게 되는 책이다. 일단 한 번 집어들게 되면 끝까지 읽어나가게 될 것이다. 집중해서 읽으며 계나의 심정을 들여다본다. 어느덧 소설 속 이야기에 공감하며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힘이다.

 

이 소설은 계나가 출국장 앞에서 호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떠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남자친구 지명은 "너는 다시 돌아올 거야. 난 알아. 그때까지 기다릴게."라며 울면서 떠나보냈지만, 계나는 지명과 그것으로 공식적인 이별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출국장에 들어갔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됐어? (11쪽)

떠나고 싶어서 발버둥치던 내 모습과 오버랩된다. 난 결국 하지 못했지만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은 해냈잖아. 시작점에서 이미 그녀의 마음이 아닌 내가 이야기를 진술하는 듯한 느낌으로 소설을 읽어나가게 된다.

 

구질구질한 현실을 드러내고 어떻게 보면 시시한 느낌마저 들면서도 묘하게 애증의 감정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은 우리네 현실과 너무도 닮아있어서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까지는 아니라고 생각되다가도 현실은 사실 이것보다 더 하다고 실토하게 되기도 하고, 미처 보이지 않던 생의 이면을 들여다보면서 유쾌하지만은 않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들키고 싶지 않은 속마음이 까발려져서 민망하고 무안한 느낌이 들면서도 속시원하다. 속시원하면서도 묘하게 불편하다.

 

지명과 계나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책을 읽으며 소설이 아닌 현실 속에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억지스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짓지 말기를 바랐고, 소설은 희극도 비극도 아닌 '현실 그 자체'로 마무리지었다. 그 점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

 

처음에는 이 책이 그저 현실 속의 불만을 투덜거리기에 바쁜 듯한 모습만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읽어갈수록 계나의 생각도 성숙해가고 읽어나가는 나도 변화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의 끝에 나오는 <작품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허희는 '그가 공들여 쓴 『한국이 싫어서』를 완독한 당신 역시 읽기 전과 읽은 후, 나처럼 (무)의식적으로 바뀐 부분이 있을 것 같다. (193쪽)'고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그저 한국이 싫어서 떠난다던 계나는 다시 호주로 가던 날에 '행복해지기 위해서' 떠난다고 한다.

다시 호주로 가던 날에도 지명이가 나를 공항까지 데려다줬어. 공항으로 가는 길에 지금 내가 왜 호주로 가는 걸까 생각해 봤어. 몇 년 전에 처음 호주로 갈 때에는 그 이유가 '한국이 싫어서'였는데, 이제는 아니야. 한국이야 어떻게 되든 괜찮아. 망하든 말든, 별 감정 없어...... 이제 내가 호주로 가는 건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야. 아직 행복해지는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호주에서라면 더 쉬울거라는 직감이 들었어. (161쪽)

 

이 책을 읽고 나니 다크초콜릿을 한 입 베어 문 듯한 느낌이다. 이 책은 생각보다 씁쓸하지만 먹기 간편하고 향이 짙은 다크초콜릿같다. 밀크초콜릿에는 순수한 초콜릿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크초콜릿같은 현실을 맛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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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99 2015-10-01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믐」 저한테 있는데 아직 안 읽고 있어요. 섣불리 넘기게 되지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