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 조선의 왕들, 주역으로 앞날을 경계하다 더 생각 인문학 시리즈 13
박영규 지음 / 씽크스마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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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은 그 유명한 '사서삼경' 중 하나다. 공자가 여러 번 읽어서 대쪽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위편삼절'의 그 책이 바로 주역이고, 아인슈타인이나 칼 융 등 수많은 학자들이 주역을 찾아 읽은 것도 이미 유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솔직히 주역 64괘의 의미를 비롯하여 우주의 본질까지 꿰뚫어본다는 것은 내 얕은 지식과 지혜로는 어렵기만 한 일이다. 그래서 두꺼운 주역 원서는 책장에 꽂혀 있을지언정, 주역입문서격의 책을 찾아 읽거나 하는 등 나름의 소소한 노력은 해보았다.

그런데 이 책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책은 생각 자체가 독특했다. 바로 조선왕조실록을 주역으로 읽는다는 설정이다. 언뜻 생각해보면 조선왕조실록과 주역이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의문이 생기는데, 이 책에 의하면 '《조선왕조실록》에는 주역과 관련된 1000여 건의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6쪽)'고 언급한다. 이순신이 출전하기 전 주역으로 점을 쳤다는 일화는 익히 들어보았지만, 다른 부분은 잘 알지 못한 데다가, 이 책을 통해 주역과 관련된 에피소드 중 엄선된 것을 들어볼 수 있으리라 기대되었다. 이 책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로 조선왕조실록을 주역으로 읽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의 저자는 박영규. 노자와 장자, 주역, 그리고 고양이를 사랑하는 인문학자다. 서울시교육청과 서울경제신문 산하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 프로그램에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주역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주역을 쉽게 소개하려는 의도에서 썼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주역의 연원과 역사적 의미 등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고, 64괘의 핵심 메시지도 총망라되어 있다. 조선시대 군왕과 신하들이 국정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인용한 주역의 괘사나 단사, 상사, 효사 등만 제대로 읽어도 주역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과 원리를 충분히 배울 수 있다. 조선의 군왕과 신하들 가운데는 주역의 대가들이 즐비했으며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그들의 주역 해석은 정치적인 사건과 정책, 제도, 백성들의 민원, 학문적 논쟁 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주역 해설서보다 현장감과 박진감이 넘친다. 그래서 추상적인 단어들로 구성된 주역 텍스트를 직접 읽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주역을 배울 수 있다. (7쪽)

이 책은 총 16장으로 구성된다. 1장 '정조, 주역으로 소통하다', 2장 '이순신의 주역과 선조의 주역', 3장 '숙종, 주역으로 세력 균형을 꾀하다', 4장 '영조, 주역으로 탕평을 이루다', 5장 '세조, 주역으로 자신의 업보를 돌아보다', 6장 '정종, 주역으로 마음을 비우다', 7장 '성종, 주역으로 앞날을 경계하다', 8장 '연산군, 주역의 경고에 귀를 닫다', 9장 '중종, 주역으로 간신을 멀리하다', 10장 '광해, 주역으로 중립을 이루다', 11장 '인조, 주역으로 굴복하다', 12장 '효종, 주역으로 북벌을 꿈꾸다', 13장 '현종, 주역으로 예송을 논하다', 14장 '태종, 주역으로 왕권을 강화하다', 15장 '세종, 주역으로 조정을 놀라게 하다', 16장 '경종, 주역으로도 지우지 못한 당파 싸움의 그늘'로 나뉜다.




옛 에피소드들이 인상적이다. 특히 1457년(세조3년) 4월 9일의 《조선왕조실록》 기사에는 정인지가 주역을 모르는 신하들에게 술로써 벌을 내려야 한다고 발언하는 대목이 나온다.(94쪽) 취중에 농담조로 한 말이라는데, 그 시절 정인지는 주역 공부를 기피하는 신진 선비들의 세태를 비판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인지의 연배가 세조의 아버지 세종과 엇비슷했다고 하니, 젊은 군주인 세조가 듣기에는 '혹시 나한테 하는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날의 분위기가 상상되어 긴장감까지 느껴진 일화였다.

그밖에도 조선왕조에서 주역과 연관된 다양한 일화를 이 책에 잘 풀어서 담아냈다. 주역 자체를 보는 것과는 다르게, 주역이 조선 시대에 어떻게 스며들어 흔적을 남겼는지 이 책을 읽으며 하나씩 알아나간다. 우리에게는 이제 주역 점치는 것조차 생소한 일이 되어버렸으니, 이렇게 다양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더 생각 인문학 시리즈 중 제13권이다. 얼마 전 읽은 12권이 레즈비언 생애기록을 담은 책 《여자x사람x친구》이며, 감성충전 라이팅북, 대한민국 대표 분단작가에게 듣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 아빠의 성과 페미니즘, 대중문화로 본 역사적 트라우마의 치유 등의 책이 출간되어 있으니, '더 생각 인문학 시리즈'의 다양한 주제 폭이 과연 넓디 넓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도 지식의 폭을 넓혀주니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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